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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제656회
■ 가로열쇠 1. ○○ 문고리 잡기. 2. ○○ 높은 줄만 모르고 땅 넓은 줄은 모른다. 3. ○ ○ 쓰고 똥 누기. 5. ○○ ○○ 솜틀은 소리만 요란하다. 7. ○ ○○ 원앙. 8. ○○ 들고 마시겠다. 9. 돌절구도 밑 빠질 때가 ○○. 10. 배 썩은 것은 딸을 주고 밤 썩은 것은 ○○○ 준다. 11. 내 말은 남이 ○○ 남 말은 내가 한다. 12. 큰 벙거지 ○ 짐작. 13. ○ 심은 데 ○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14. 가갸 ○○○도 모른다. 15. 집도 ○도 없다. 16. ○ ○에 난 고기. 17. ○○이 멍석인 듯. 19. 죽은 자식 ○○ 세기. 20. ○도 안 뜯고 먹겠다 한다. 21. ○○에 물 탄 격. ■ 세로열쇠 1. ○○○○ 가는 놈이 불알 떼어 놓고 간다. 2. 남의 말 ○○○ 식은 죽 먹기. 3. ○○○ 버리듯.(관용구) 4. 꿩 구워 ○○ ○○. 6. 돌쩌귀에 녹이 슬지 ○○○. 8. ○○ 가슴에 말뚝 박듯. 9. 도둑에도 의리가 ○○ 딴꾼에도 꼭지가 있다. 10. 고양이 덕과 ○○○ ○은 알지 못한다. 11. ○○ ○○이 열흘 간다. 14. 마냥모 판에는 ○○ 처녀도 나선다. *마냥모 : 제철보다 늦게 내는 모. 18. ○○의 재물도 하루아침. <연재 공지>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는 656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제656회 '임무출(한글학회 회원)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해답은 우편엽서를 이용해 6월5일까지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휴대폰 번호를 반드시 적어주세요) ▨655·656회 당첨자는 지면에 발표하지 않고 개별 연락 후 상품을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제654회 당첨자> ▶한재연(대구광역시 달서구 조암남로) ▶김소은(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 ▶홍옥순(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최병웅(대구광역시 동구 아양로) ▶류충기(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박문길(대구광역시 수성구 무열로) ▶김헌(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상품협찬> ▲ 워터파크 스파밸리 자유이용권 1688-8511 ▲ 교감형 생태동물원 네이처 파크 이용권 1688-8511 ▲ 에코테마파크 대구 숲 이용권 (053)761-7400, 7401 ▲ 팔공산온천관광호텔 입욕권 (053)985-8080 ▲ 〈주〉아모레퍼시픽 아이오페 레티놀 엑스퍼트 0.1% ▲ 청도용암온천 대온천장 초대권 (054)371-5500 ▲ 청도 프로방스 포토랜드 초대권 (054)372-5050 ▲ 〈주〉그린기프트 레디엠 반전립스틱세트 1588-8480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당첨자에게는 협찬 상품 중 한 가지를 우송해 드립니다.
[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사의 선언들
영화 역사에는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사조(思潮)가 등장한다. 이 사조들은 당대 혹은 후대의 평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가령 영화 역사의 가장 도도하고 혁신적인 흐름이었던 프랑스 누벨바그의 경우는 '까이에 뒤 시네마' 등 당대의 비평가들에 의해 호명되면서 자연스럽게 명명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한 누벨바그 감독들은 그 이전 영화들, 즉 '아버지의 영화(Le Cinema De Papa)'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영상언어와 미학을 선보이고자 일련의 시도와 실험을 진행했다. 그것은 결국 후대 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누벨바그는 영화역사에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반면 누군가의 선언이 이러한 사조를 앞당기기도 한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자극을 받은 독일의 젊은 영화감독 26명은 1962년 '오버하우젠 국제단편영화제'에서 모여 '오버하우젠 선언'을 발표한다. 이들은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Papa's Kino ist tot)'며, 기존 영화산업에 사형 선고를 내리고, 관습적 영화로부터의 탈피, 상업주의로부터의 자유 등을 내세웠다. 결국 이 선언은 독일의 '뉴저먼시네마(New German Cinema)'라는 새로운 영화 사조를 탄생시켰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빔 벤더스, 베르너 헤어초크 등이 '뉴저먼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들이다. 기존 영화에 반기 든 혁신적 선언들'뉴저먼시네마' 등 신사조 탄생시켜1920년대 김유영 감독 카프영화운동식민지 현실 보여주는 영화제작 주창뻔한 스토리·획일화된 영화들 속에실험적·개성있는 작품 여전히 등장영화로써 혁신 시도하는 모습 지지해비단 이 선언은 새로운 독일 영화를 열었을 뿐 아니라 '코뮤날레 키노(Kommunale Kino, Community Cinema)'라는 영화 상영 운동을 추동시키기도 했다. '오버하우젠 선언' 이후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자, '다른 형식의 영화는 다른 틀 안에서' 상영해야 한다는 관객의 열망이 이러한 움직임을 만든 것이다. '코뮤날레 키노'의 활동은 상업영화관이 아닌 카페, 살롱 같은 비상설 상영 장소를 거점으로 펼쳐졌고, 영화를 보고 열띤 토론을 나누며 새로운 영화문화를 만들어갔다. 결국 이러한 활동의 공공성을 인정받아 독일 전역에 공공상영관(코뮤날레 키노)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선언도 있다. 바로 '도그마95 선언'이다. 이 선언은 '킹덤' '님포매니악' '살인자 잭의 집' 등 만드는 작품마다 큰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덴마크 출신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주도한 것으로, 이 선언에는 4명의 다른 덴마크 감독들이 함께하였다. 이들은 이른바 '순결의 서약'을 통해 영화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10가지 원칙, 즉 십계명을 제시하였다. '촬영은 세트장이 아닌 로케이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카메라는 반드시 핸드헬드(들고찍기)여야만 한다' '필름은 컬러여야 한다' '감독의 이름은 크레디트에 올리면 안 된다' 등이 있다. '도그마95 선언'은 반 할리우드 노선이자 작가주의 영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는 측면에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제 이러한 10가지 원칙을 다 지킨 영화는 정작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 혁신적인 시도는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키지는 못했다.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1925년에 결성된 카프(KAR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회원이었던 구미 출신의 영화감독 김유영은 카프영화운동을 전개하였는데, 당시 만 스물두 살이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기성 영화예술이 필연적으로 몰락과정을 과정함에 따라 변증법적으로 우리들의 예술시대는 장쾌한 심포니, 생명력, 강력, 용기, 명확, 동철 같은 신경, 대항성, 리듬, 스타일, 인내 등이 추체화되어서 '패스트 페이든인'이 되고 있는 까닭이다." 그는 유물론적 사고에 입각한 영화운동을 주창하였다.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인들에게 장악된 식민지 조선 영화계의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자, 농민이 중심이 되어 조선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 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75년 하길종을 중심으로 결성된 '영상시대'가 새로운 영화를 주창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 바 있다. "'새 세대가 만든 새 영화' 이것은 구각을 깨는 신선한 바람, 즉 회칠한 무덤 같은 권위주의를 향한 예리한 투창이어야 한다. 과연 이 땅에서 단 한 번의 '누벨바그'나 '뉴 시네마' 운동이 전개된 적이 있었는가?"당시 억압적 상황 속에서 한국 영화는 발전하지 못한 채 뻔한 스토리의 영화들만이 양산되고 있었다. 하길종은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였고, '영상시대'는 새로운 한국 영화 시대를 열고자 했다. 결국 이들의 활동은 1980년대 박광수, 정지영, 이명세, 장선우 등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를 촉발시킨 프리퀄로서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의미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이처럼 영화사에서 관습을 깨고 새로운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도전과 선언은 항상 존재해왔다. 비록 그것이 성공하든 그렇지 않았든 후대에 영향을 끼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에도 획일화되어가는 영화들 사이에서 개성을 가지고 실험과 도전을 불사하는 한국영화들이 여전히 등장하고 있다. 이들 영화는 어떠한 선언 아래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몸소 영화로써 그 선언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범람하는 플랫폼의 시대에도 이러한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들은 여전히 설 자리가 많지 않다. 'K-무비'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영화 개념의 재정의와 같은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새로운 영상언어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영화예술로서의 혁신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영화들을 위한 우리의 '지지선언'이 아닐까.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김유영(위부터 둘째) 영화감독이 1931년 9월1일자로 펴낸 종합지 '시대공론' 창간호. 시대공론을 통해 김유영은 '정당한 계급운동에 입각해 나아가겠다'고 천명했지만 조선총독부의 검열과 대중성·통속성이 부족한 글로 일관해 2호까지만 발행되고 폐간됐다. 맨 아래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감독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1961).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K팝 문화의 이면 '악플'(1) 압박과 악플에… 영혼까지 갉아먹힌 ☆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대상에 따라 이성 간의 애정뿐만 아니라 우애, 모·부성애, 인류애, 조국애, 진리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 등 여러 가지 사랑이 있다. 기자 또한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오늘 얘기하고 싶은 건 아티스트에 대한 사랑이다.기자는 K팝 팬이다. 2PM, B1A4, 엑소, 레드벨벳, 지금은 NCT DREAM과 에스파까지. 여러 아이돌 가수를 '덕질'(무언가에 파고 드는 일) 했고, 하고 있다. 덕질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든 매혹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처음엔 아이돌을 왜 좋아하나 싶었다. 헛짓이라 생각했다. 자주 만나기도, 가수가 나를 기억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을 텐데. 뒷모습이 어떤지도 모르고, 잘 꾸며진 이미지에 속아 넘어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감겨버렸다. '너무 멋지다.' 이후 오랜 기간 K팝을 덕질 하고 있지만 아티스트에 대한 팬들의 마음은 여전히 형용하기 어렵다. 동경이라 하기엔 부족하고 사랑이라 하기엔 조금 과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가장 가까운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가까이서 관계를 형성하진 않지만 함께 행복을 나누고 가수를 응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은 단지 K팝 산업이 만들어낸 상품이라는 말로 환원할 수 없는 복잡한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단순히 구매자와 상품이 아닌 이상적인 관계로 본다.하지만 이제 이런 사랑을 '좋은 것'만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몇몇 팬들은 자신의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과 지지를 표현하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과도한 잣대를 들이밀기 때문이다. 최근 수많은 논란과 사과가 반복됐다. 대표적으로 열애설이 공개된 모 아이돌이 이로 인한 자필 사과문을 올리는 일이 발생했다. 일부 팬들이 '배신 당했다'는 비난과 함께 돌아섰기 때문이다. 외신들도 이를 지적했다. 영국 BBC는 "한국과 일본의 팝스타들은 압박이 심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며 "불과 10년 전만 해도 신인의 연애는 물론 개인 휴대전화도 금지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었다"고 했다. 이어 "지금도 연애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팬들에게 스캔들로 여겨지게 한다"고 꼬집었다.이런 일들은 아이돌 산업 구조가 얼마나 기형적이고 상호 의존적인지를 보여준다. 팬들은 가수에게 자신의 사랑을 투자한 만큼 아티스트도 그에 맞는 언행을 하기 바란다. 문제는 그런 바람이 지나친 요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범법적인 행위나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일은 충분히 피드백을 요청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행동들도 '논란'이 되어 화살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들도 아이돌이기 전에 하나의 인격체다. 보이는 직업이기에 대중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사적인 영역과 개인의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얼마 전 좋아하는 가수가 악플로 인한 불안 증세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K팝 산업이 오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팬덤 문화가 선행돼야 한다. 이는 아티스트와 팬 간의 상호 존중과 이해를 기반으로 시작된다. 이런 노력이 함께 이뤄질 때 K팝 산업은 더욱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라면서 이번 위클리포유에선 K팝 문화의 이면에 대해 다룬다.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그래픽=장수현기자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어나더 라운드'(토마스 빈터베르 감독·2020·덴마크)…음주 예찬 영화? 인생 예찬 영화!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93회)에 빛나는 영화의 관람을 오랫동안 미룬 까닭은, 아마도 소재 때문일 것이다. 원제가 'Druk(덴마크어로 폭음이란 뜻)'인 이 영화의 소재는 술이다. '어나더 라운드'란 제목도 '한 잔 더'라는 뜻이란다. 애주가에게는 혹할 말이겠으나, 영화는 결코 음주 예찬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비극 가운데서도 인생을 예찬하는 영화다. 단순히 '음주의 찬반'을 넘어서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깊이 있는 영화다.등장인물은 중년의 위기를 맞은 네 명의 고등학교 교사다. 음악 교사 니콜라이의 생일날, 심리학 교사 페테르가 노르웨이 학자 스코르데루의 이론을 말한다.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활발해지고 창의적이 된다"는 가설이다. 네 명의 친구들은 이 가설을 직접 실험해보기로 한다. 이들의 실험에는 규칙이 있다. 최소 0.05%를 유지할 것과 저녁 8시 이후에는 술에 손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실험의 효과를 톡톡히 본 이들의 생활은 생기가 돌지만, 실험은 갈수록 대담해진다. '끝까지 가 보자'는 것인데, 기억이 끊어질 데까지 술을 마시는 일은 비극을 불러온다.영화의 시작은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글이다. "청춘이란 무엇인가.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 함축적이고 의미심장한 문장이다. 이 글귀가 말해주듯, 영화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청춘을, 사랑을, 인생을 이야기하려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청춘도 사랑도 사라져버린 중년의 사내들이다. 남은 건 인생, 술이 아니고선 견딜 수 없는 사내들의 이야기다. 이들이 실험하는 알코올 0.05%란 와인 한두 잔 정도다. 실험에 성공하고 활기를 찾지만, 사실 그 이론은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스코르데루 본인이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영화를 위해 기꺼이 그 이론을 인용하라고 허락했다는 후문이다. 괴테는 "취해야 하리, 우리 모두. 술 없이도 취하는 게 젊음"이라 했다. 물론 노년에 쓴 시다. 젊음은 누구나 한때일 뿐인 것. 마음만은 젊게 하는 게 뭔지, 삶에 생기를 돌게 하는 0.05%가 무엇인지는 각자가 찾아볼 일이다. 영화가 주는 팁 하나는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는 것인데, 이 또한 키르케고르에 근거한다. 인간의 불안은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영화는 시험의 두려움에 떨던 학생의 입을 빌려 말한다. "실패 가능성을 받아들임이 타인과 삶을 사랑하는 비결"이라고.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 마르틴 역 매즈 미켈슨의 춤이다. 배우 이전에 댄서였던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삶의 기쁨과 환희를 노래하는 역동적이고 멋진 춤이다. 마르틴이 춤을 추며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에서 영화가 끝난다. 그리고 자막 하나가 나온다. '이다를 위하여'. 이 문장으로 비로소 영화가 완성된다. 이다는 감독의 딸이다. 촬영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매즈 미켈슨의 춤에는 감독의 깊은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노래하겠다는 결단이 녹아있는 것 같다. 슬픔과 기쁨과 연륜이 한바탕 춤에 들어 있다. 청춘의 때엔 결코 알지 못했을 깊이로 말이다. 영화 칼럼니스트어나더 라운드 스틸컷.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금주의 영화] 혹성탈출:새로운 시대, 진화한 유인원 vs 퇴화한 인간…생생한 특수효과 '압권'
전편이 나온 지 7년 만에 찾아왔다. 주인공 시저가 죽은 지 몇 세기가 흘렀다. 그사이 인류는 멸망하고 세상의 주인은 유인원으로 대체됐다. 진화한 유인원과 퇴화된 인간들이 살아가는 '오아시스'에서 유인원 리더 '프록시무스'는 인간을 사냥하며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한다.'혹성탈출' 시리즈의 새 주인공으로 등장한 유인원 '노아'는 프록시무스에 맞서 자유를 꿈꾸고 있다. 우연히 숨겨진 과거의 이야기와 '시저'의 가르침을 듣게 된 노아는 묘령의 인간소녀와 함께 자유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 오는 8일 개봉하는 '혹성탈출:새로운 시대'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것은 실제와 같은 생생함을 주는 특수효과다. '엑스맨' '아바타:물의 길' 등에 참여한 VFX(시각특수효과) 기업인 웨타FX가 작업했다. 제작진은 세밀하고 밀도있는 CG작업을 통해 유인원들의 얼굴에 풍부한 표정을 입히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살렸다. 유인원들이 말하고, 움직이고, 분노하는 모습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비주얼 전반을 책임진 에릭 윈퀴스트 시각효과 감독은 기자 간담회에서 "이전의 3부작이 미학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였다면, 이번에 나온 4편은 그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달라졌다. '혹성탈출' 프랜차이즈의 새 장을 여는 작품으로, 사실적이고 감정이 있는 유인원들의 풍부한 표정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유인원들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꺼내놓기는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에릭 시각효과 감독은 "영화 '혹성탈출'의 제작과정은 노력에 노력을 들이는 모험의 연속이었다. 상당히 스케일이 큰 신들이어서 구현하는데 1년이 걸리는 등 총 9억4천600만 시간을 렌더링 작업에 투입했다"며 방대한 작업의 규모를 설명했다.특히 제작 과정에는 한국인들의 손길도 더해져 이채롭다. 한국인 제작진 김승석은 유인원들의 표정을 구축하는 페이셜 모델러로 활동했으며, 또 다른 한국인 순세률은 배우의 움직임을 포착해 촬영하는 모션 캡처 모델러로 활동했다. 제작진이 기술적으로 가장 표현하기 어려웠던 것은 '물'이었다는 후문. 급하게 흘러가는 강을 비롯해 해안 절벽 파도의 거친 물살, 거대한 홍수장면까지 다양한 물을 생명력 있게 표현해 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유인원들의 자연스러운 몸짓을 만드는 작업도 녹록지 않았다. 제작진에 따르면 배우들은 모션 영상을 찍을 때 빛 반사 카메라를 부착한 액티브 슈트를 입었다. 슈트는 LED 마커가 달려 있어서 자체적으로 빛을 냈다. 김은경기자진화한 유인원과 퇴화된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 '혹성탈출:새로운 시대'.
[금주의 영화] 그녀가 죽었다…'관종'의 삶 훔쳐보던 공인중개사, 살인사건에 휘말리다
공인중개사 구정태. 싹싹한 미소가 명품인 그는 보기와는 다르게 고객이 맡긴 열쇠로 그의 집에 들어가 몰래 훔쳐보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최근 그의 관심을 끄는 대상은 SNS 인플루언서인 '한소라'다. 편의점 소시지를 먹으면서 비건 샐러드 사진을 포스팅하는 그녀의 삶은 알면 알수록 흥미롭다. 한소라의 삶을 엿본 지 153일 되던 날, 기어이 사건이 터지고 만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소라의 집에 들어간 구정태가 발견한 것은 소파에 축 늘어져 죽어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던 것. 로맨틱 코미디 같던 영화는 어느새 범죄 스릴러로 태세를 전환한다. 그가 한소라 집에 들어간 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의 협박이 시작되고, 사건을 맡은 강력반 형사 오영주의 수사망은 촘촘히 좁혀진다. 구정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는 먼저 한소라의 SNS를 통해 주변 인물 탐색에 들어가는데….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이나 인물은 낯설지만, 충분히 현실에서 있을 법하다. 멀쩡한 얼굴로 몰래 누군가를 훔쳐보는 남자와 그럴싸한 거짓말로 대중들의 환심을 얻는 인플루언서가 그렇다. 둘은 전혀 다른 이질적 인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닮아 있다. 김세휘 감독은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음흉한 데가 있고, 끊임없이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비호감적인 캐릭터들이다. 절대 옹호하거나 미화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혔다.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김 감독은 "SNS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주된 흐름이 되면서 관종, 염탐, 관음 같은 개념들이 부작용처럼 등장하고 말았는데, 이제는 이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실존적 현상이 된 것"이라며, "관객들이 캐릭터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라는 마음으로 볼 텐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특히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비중 있게 할애한 남녀 주인공의 내레이션이다. 정태는 관객에게 말을 거는 직접적 방식을, 한소라는 스스로에게 독백하는 형식을 썼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정태는 밖으로 향하는 인물이고, 반면 한소라는 안으로 향하는 인물이기에 내레이션을 다르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개봉.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남의 삶을 몰래 엿보는 남자와 거짓말로 대중의 환심을 얻는 인플루언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그녀가 죽었다'.
[주말&여행] 경남 함양 지리산 가는 길, 지안재와 오도재…돌고 도는 고갯길…인생길 닮았구나
명징하게 구속된 속도를 의식적으로 지키고 있다. 어린이가 보이지 않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차량이 뜸한 시골길에서도. 몇몇 차들이 바쁜 아침처럼 꽁무니를 보이며 쌩하니 멀어지면 속도계를 본다. 내가 너무 느린가. 그러다 난데없는 커다란 오토바이가 나를 앞지른다. 헬멧 아래 삐져나온 백발의 머리칼이 긴 강물 같은 잔상을 남긴다. 그 하얀 물결 따라 함양읍 구룡리 옥녀봉 아래에서 '지리산 가는 길'로 들어선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직선 길을 지나 팔령천을 건너고 조동마을을 스쳐 이제 꼬부랑길을 천천히 오른다. 저 앞에서 굽이마다 아슬아슬 기울어지는 오토바이는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지만넘어지지 않고, 멈추지도 않고, 고갯마루를 넘어 사라진다. 남겨진 고갯마루에 사람들이 서 있다. ◆지안재느리게 여섯 번 반을 굽이돌아 고갯마루에 올라 멈춘다. 고개는 지안재다. 함양읍에서 지리산 방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로 2004년에 개통됐다. 워낙 경사가 급한 산길이라 안전을 위해 구불구불 완만하게 돌아가는 도로를 낸 것이 지금의 지안재 모습이다. 재 아래 조동(棗洞)마을은 대추나무가 많다고 대추지 마을이라고도 하는데 팔령천을 사이에 두고 제한(蹄閒)마을과 조동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지안재는 제한치(蹄閑峙)에서 유래된 이름인데 가파른 고갯길에 '말발굽도 쉬어간다'는 뜻이다. 제한은 조동마을의 자연부락으로 옛날 역(驛)이 있었던 곳이다. 제한역은 조선 세종 때인 1438년 실록에 처음 등장한다. '경상도 함양의 새 역은 '제한'이라 칭한다'라는 기록이다. 동쪽의 사근역(沙斤驛)과 서쪽의 인월역(引月驛)은 고려 때부터 있었다. 아마 제한역은 두 역 사이에서 임시로 쉬어가는 역할을 하다 세종 때 정식 역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역 주변에는 역참 관원들에게 딸린 식솔과 물자공급 등을 위한 촌락이 형성되어 제한촌이라 했다. 제한촌의 뒤에 있는 고개가 제한치다. 제한은 시간이 흐르면서 부르기 쉬운 지안으로 바뀌었다고 여겨진다. 역명은 대개 지명을 따르는데 이곳만은 거꾸로 역 이름에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즉 역로는 제한역에서 지안재가 아니라 팔령천을 따라 팔랑치 너머 인월역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지안재에서 말발굽을 쉬어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꾸역꾸역 수풀을 헤치며 가파른 고개를 올라 고갯마루에서 잠시 숨을 골랐을지도 모른다. 거듭거듭 그리하여 오솔길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침내 지금의 길이 났을지도 모른다. 길이 닦인 지 벌써 20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멈추어 쉬어 간다. 지안재는 오도재 아래의 작은 고개다. 다른 지역에서는 '지안재'라 따로 구분해서 부른다는데 함양 쪽에서는 그냥 통칭 '오도재'라 부른다. 나는 함양사람도 아닌데 2007년 처음 이 고개를 넘고는 십수 년을 오도재라 했다. 이후 '지리산 가는 길' 따라 지안재를 넘고 오도재를 넘은 것이 족히 예닐곱 번이건만 지안재의 모습은 잊지 못하면서 이름은 자꾸만 잊었다. ◆오도재사방으로 바짝 좁혀진 골짜기로 든다. 청단풍과 홍단풍이 계절을 뒤죽박죽 엉켜놓은 산길을 따라 더욱 높은 오도재로 향한다. 오도재는 삼봉산과 법화산 사이, 능선의 고도가 낮아지는 잘록한 안부(鞍部)에 있다. 함양에서 칠선계곡과 백무동계곡, 그리고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다. 옛날 지리산골 마천사람들은 함양장날마다 나뭇짐을 짊어지고 이 고개를 넘었다. 벽소령과 장터목을 거쳐 온 남해와 하동 등지의 소금과 해산물도 이 고개를 넘어 내륙지방으로 운송되었다. 잿마루에 '지리산제일문'이 우뚝 서 있다. 현판은 함양 출신의 명필가 정주상 선생의 글씨라 한다. 문 아래에 함양 방향을 조망하는 전망대와 매점, 화장실 등이 조성되어 있다. 전망대 입구에 청매(靑梅) 인오(印悟)조사의 시비가 있다. '깨달음은 깨닫는 것도 깨닫지 않는 것도 아니니/ 깨달음 자체가 깨달음 없이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네/ 깨달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니/ 어찌 홀로 참깨달음이라 이름하리요.' 깨달을 각(覺)이 12번 나오는 그 유명한 '12각시'다. 인오조사는 서산대사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이끈 분이다. 그는 마천면 삼정리의 영원사(靈源寺) 도솔암에서 수도하였는데, 틈틈이 산죽으로 조리를 만들고 소나무의 관솔을 모아 함양 장터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물건값은 주는 대로 받았고 팔리지 않은 물건은 그대로 장터에 두어 누구든 요긴하게 쓰도록 배려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이 고개를 넘어 장터를 오가던 어느 날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오도재의 오도(悟道)는 '도를 깨우치다'라는 뜻이다. '지리산제일문' 옆 숲속에 산신각이 있다. 두 여인이 앉아 치성을 드리는데 아름다운 수목들 사이로 볕뉘가 어른대어 어쩐지 가슴이 미어진다. 가야국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은 532년 신라가 침공하자 선량한 백성을 전쟁의 제물로 삼을 수 없다 하여 나라를 신라에 양국하고 9만 대군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가 잠시 머문 곳이 조동마을 아래 구만동이고, 대궐터를 잡은 곳이 오도재 넘어 추동이다. 그리고 다시 보다 깊은 칠선계곡으로 피란한다. 구형왕의 왕후인 계화부인은 오도재에 올라 제단을 쌓고 망국의 한과 선왕들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이후 성황당이 생겼고, 지나는 길손들이 기도하고, 주민과 무당들이 지리산 천왕신을 모시고 제를 지냈다. 그 자리에 지금 산신각이 있다. 그녀들의 비손 위에 나의 기도를 슬쩍 얹고는 발걸음도 살금살금 숲을 빠져나온다. 여섯번 반 굽이도는 지안재 도로 2004년 개통오도재 잿마루에 관문 '지리산제일문' 들어서조선 청매인오 선사 고개 넘나들다 큰 깨달음'지리산조망공원' 웅장한 지리산 능선 한눈에오도재를 넘어 조금 내려가면 '지리산조망공원'이다. 지리산 산신인 마고할미가 천왕봉을 머리에 얹고 오도카니 앉아 있다. 그녀 너머로 지리산의 능선이 한눈에 담긴다. 조 아래가 추동, 저 아래가 마천, 천왕봉 너머는 하동과 구례다. 김종직과 정여창과 김일손과 유호인 등이 이 고개에 멈추어 지리산을 노래했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와 청매선사 등 승군이 이 고개에 머물렀다. 이 고개의 동쪽 산청 땅에 구형왕의 무덤이 있다. 그의 셋째 아들은 무력, 무력의 손자는 김유신이다. 어느 날은 안개였고 어느 날은 비였고 어느 날은 멈추었고 어느 날은 스쳤다. '지리산 가는 길'은 맥락 없이 자꾸만 이어지는 이름들의 길이다. 자꾸만 떠오르는 시간들의 길이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감쪽같이 잊어버릴 이름들이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가끔 생각날 시간들이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함양IC에서 내려 톨게이트 앞 교차로에서 우회전해 함양 방향으로 간다. 주차장사거리에서 24번국도 남원 방향, 난평삼거리에서 지리산, 남원, 마천 방향으로 가다 '지리산 가는 길' 이정표 따라 좌회전해 1023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지안재 넘어 오도재에 이른다.여섯 번 반을 굽이돌아 해발 370m의 고갯마루에 오르는 지안재. 함양읍에서 지리산 방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로 2004년에 개통됐다.지리산제일문 앞에서 함양방향을 바라본다. 청단풍과 홍단풍이 계절을 뒤죽박죽 엉켜놓은 산길이 펼쳐진다.지리산제일문. 지리산으로 가는 관문으로 2006년에 준공됐다. 오른쪽 시비에 인오조사의 '12각시'가 새겨져 있다.구형왕의 왕후인 계화부인이 제단을 쌓고 기원하던 자리에 산신각이 있다. 길손들이 기도하고 주민과 무당들이 지리산 천왕신을 모시고 제를 지냈던 자리이기도 하다.
[개봉작] 미지수
감독:이돈구 출연:권잎새·반시온 장르:멜로 등급:12세 이상 관람가삶의 궤도에서 이탈한 다섯 인물들의 미지의 슬픔과 시간을 그린 영화.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지수',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절망적인 '우주', 우주선 발사뉴스에 집착하는 '기완', 비가 오면 발작하는 남편 때문에 괴로운 '인선' 등의 사연이 그려진다.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개봉작] 스턴트맨
감독:데이빗 레이치 출연:라이언 고슬링·에밀리 블런트 장르:코미디 등급:15세 이상 관람가 스턴트맨 콜트는 잠수 이별을 택하고 후회뿐인 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영화감독이 된 전 여자친구 조디의 촬영장에 복귀하며 아련한 재회를 기대한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갑자기 주연배우가 사라지는 황당한 상황이 펼쳐진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개봉작] 차이콥스키의 아내
감독:키릴 세레브렌니코프 출연:일리오나 미하일로바 외 장르:멜로드라마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러시아 최고의 작곡가 차이콥스키와 아내 안토니나의 파격적 사랑을 그렸다. 5회 연속 칸영화제에 진출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차이콥스키 부부의 광기 어린 사랑과 열정을 유려한 화면에 펼쳐놓았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개봉작] 쇼생크 탈출
감독:프랭크 다라본트 출연:팀 로빈스·모건 프리먼 장르: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1995년 개봉 이후 30년 만에 다시 찾아온다. 콘텐츠 커뮤니티 '키노라이츠'에서 한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20세기 영화' 설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아내 살해의 누명을 쓴 앤디가 쇼생크 감옥에 갇혀서도 존엄을 잃지 않고 지낸 끝에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는 과정을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보여준다. 8일 개봉.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K팝 문화의 이면 '악플'(2) 무섭고 이기적인 팬덤 문화
"아이돌들 몇억씩 벌면서 징징대는 거 듣기 싫다. 똑같이 힘든데 주 5일 출근에 월 200만원 버는 직장인들도 있다."요즘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K팝 산업과 관련해 자주 보이는 게시글 내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K팝이 흥하고 있지만 산업의 뒤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두운 이면이 존재한다. K팝 아티스트들은 '보이는 직업' 특성상 대중의 사랑을 기반으로 돈을 버는데, 이로 인해 과도한 잣대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모 아이돌의 열애설이 논란으로 떠오르면서 아티스트가 자필 사과문을 올리는 일까지 발생했다.악플 고충 내비친 NCT드림 런쥔 팬들 비난에 불안증세로 활동 중단 에스파 카리나 열애에 극성팬 분노트럭 시위까지 이어지자 사과문 "팬들이 뒷받침해주는 아이돌 문화'보상 심리'로 과도한 잣대 들이대K팝 산업 오래 유지되기 위해선건강한 팬덤 문화부터 선행돼야" K팝 스타인 아이돌은 엔터사의 기획을 통해 만들어진다. 아이돌의 인기를 형성하는 요소는 아티스트들의 재능도 있지만 주로 문화자본, 엔터기획사의 규모, 팬덤 등이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아이돌들은 대중에게 전문적인 아티스트보다는 보이는 직업 또는 엔터사의 상품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며 악플, 감정 착취, 과도한 품평 등 객체화·대상화라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사람들의 관심을 통해 돈을 벌기에 '그래도 되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 K팝 산업과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론장을 새로운 눈으로 풀이하는 책 '망설이는 사랑'에서 저자 안희제도 "아이돌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노래나 춤과 같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일보다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일'로 이해된다"고 했다.이로 인해 최근 K팝 아티스트들의 호소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지난달 7일 그룹 엔시티 드림(NCT DREAM)의 런쥔은 자신이 받은 악성 메시지를 팬소통 플랫폼에 공개하며 고충을 토로했다. 해당 메시지에는 '아이돌들 살기 너무 편해졌다'는 말과 함께 외모와 실력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면서 런쥔은 "아이돌도 사람이고 힘듦을 느낀다. 보이는 건 당연히 예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접한 네티즌들 중에는 런쥔의 입장에 동의하는 이들이 나오는 한편 "굳이 왜 부정적인 메시지를 팬과의 소통 창구에 올리며 징징대는지 모르겠다" "팬들이 감정 쓰레기통인가" 등의 반응도 적지 않았다. 런쥔은 결국 컨디션 난조와 불안 증세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열애설이 논란이 된 경우도 있다. 지난 3월5일 그룹 에스파의 카리나는 자신의 SNS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저를 응원해준 마이(공식 팬덤)들이 얼마나 실망했을지, 그리고 우리가 같이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속상해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마이들이 상처받은 부분 앞으로 잘 메워나가고 싶다." 일주일 전 배우 이재욱과의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는데, 그사이 여러 팬들이 배신 당했다는 비난을 온·오프라인으로 표출하면서 뒤돌아섰기 때문이다. 카리나 소속사 인근엔 해외팬들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트럭 시위가 등장하기도 했다. 트럭에는 "팬이 너에게 주는 사랑이 부족하니? 당신은 왜 팬을 배신하기로 선택했습니까"라는 멘트가 적혀 있었다.런쥔도, 카리나도 스타들이 이렇게 엄격한 잣대에 직면하는 근본적인 이유에는 아이돌은 대중에게 보여줘야 하는 영역과 숨겨야 하는 영역을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10년째 K팝을 덕질(무언가에 파고 드는 일) 하고 있다는 이세영(26)씨는 "아이돌은 보이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긍정적이지만 수동적인 모습만 보여줘야 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듯하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 않는 '아바타'처럼 말이다"라면서 "그런 점에서 고충 토로나 열애설은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는 점에서 숨겨야 하는 영역에 해당한다. '우리의 사랑으로 돈을 버는 네가 감히?'식의 생각이 사람들의 무의식에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팬과 가수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보상 심리'로 풀이되기도 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팬들이 가수를 뒷받침하고 밀어준다고 생각하기에 유사 제작자 마인드가 있는 듯하다. 자신들이 스타에게 해주는 만큼 스타도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열정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 스타로서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기대한다"면서 "그러니 연애를 한다든지, 푸념을 한다든지 하는 건 이들에게 열심히 하려는 마음가짐이 없는 것으로 비친다. 그런 심리가 있어서 아이돌들을 팬들이 다그치는 일들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단순히 상대를 좋아하는 걸 넘어서 과도한 것을 요구하고 이래라저래라하는 건 팬의 위치에 맞지 않는 건강하지 못한 행동"이라며 "스타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응원해주는 선에서 그치는 게 가장 팬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K팝을 좋아하는 대중 사이에서 확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에스파 카리나엔시티 드림 런쥔
[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중국 축구와 아레오파지티카
1644년, 영국 의회가 출판물의 사전 검열에 해당되는 '출판 허가제'를 부활시키려 하자, 문호 존 밀턴은 '아레오파지티카'라 불리는 짧은 팸플릿을 통해 그것을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밀턴은 자유 경쟁만이 '진짜'를 판별해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을 강력하게 설파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오픈된 장에서는 절대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신념은 이어진다. "일견 거짓으로 보이는 것에게도 공평하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을 사전 차단하는 것은 악(惡)이다." 밀턴의 저 통찰은 21세기가 된 지금 모든 정상 국가에서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항상 보편칙은 지켰을 때보다는 지키지 않았을 때 그 위력을 통감하게 된다.지난 1월에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3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1골도 넣지 못한 채로 조기 탈락했다. 얼마 전 치러진 U-23 아시안컵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한 명이 퇴장당한 일본에게 0-1로 패배하는가 하면, 우리와 맞붙은 경기에서도 수많은 기회들을 놓치며 결국 0-2로 패배하고는 조기에 짐을 싸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 중국이 첫 출전한 그 대회에서 내리 3연패로 탈락하게 되었을 때만 해도 중국 축구를 대놓고 무시하는 한국인은 없었다. "지금은 경험이 적어서 저렇지만 20년 뒤가 되면 아마 우리가 이기기 힘든 팀이 되어 있을 거야." 그러나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 축구의 굴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실력이 그 당시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중국 축구가 이 모양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연역적으로 보자면 핵심은 결국 '밀턴의 통찰'과 맞닿아있을 터다. 그 나라에서는 선수 선발의 장(場)이 오픈 된 자유 경쟁 시스템이 아닌 것이다. 즉, 중국의 '아레오파고스(고대 그리스의 법정)'는 철저하게 '특정 선수'만을 뽑을 뿐, '기타 선수'는 아예 배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중국에서 활약했던 유소년 코치들의 인터뷰를 보면 심증은 확신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애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화를 냈어요. 이렇게 게으르니까 니들이 못하는 거다. 그런데 나중에 애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돈 많고, '빽' 센 아이들이 이미 뽑히기로 '내정'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희망이 없는 애들은 열심히 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죠."그렇게 '간택'된 선수들이 가게 되는 프로축구의 환경도 중국 축구의 몰락에 한몫 했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선수들이 기량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중국의 톱 선수들은 이제 자국 리그에 등 따습게 안주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순지하이, 판즈이, 리티에, 양첸 등의 선배들이 유럽에서 고군분투했던 것을 생각하면 기가 찰 노릇이다. 이렇다 할 경쟁 없이 손쉽게 프로가 된 도련님들이, 쿼터로 자리가 보장되는 팀에서 편안하게 백만장자로 늙어가고 있는 낙원. 나라의 리그가 그래서야 국대의 경쟁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나는 중국 축구가 망하든 흥하든 별 관심이 없다. 내게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스포츠 문화다. 과연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돈과 인맥을 초월하여 유소년들을 키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이제 올림픽도 못 나가는 우리네 농구, 배구 선수들은 대체 해외의 그 어떤 리그에서 지금 받고 있는 그 엄청난 연봉을 받을 수 있을까? 밀턴으로 돌아가자.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외국인들에게도 더 크게 문호를 열어라. 스스로 낙원을 버리고, 다시 투쟁으로 나아가자. 14억이 고작 5천만에게 공포를 느끼는, 그 한심한 그들 축구의 무기력을 비웃기 전에. 문화평론가지난달 19일 오후(현지시각) 카타르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조별리그 B조 2차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 연합뉴스박지형 문화평론가
[주말&여행] 마실 가듯 떠나요 '대구 앞산 고산골', 어디선가 '카앙~' 공룡 울음…놀란 잣나무는 쭈뼛쭈뼛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너무나도 청량한 빛깔의 메타세쿼이아에 눈길이 박힌다. 늘씬한 줄기와 뾰족뾰족한 우듬지의 열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수리가 시원해진다. 갑자기 무언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천천히 뒷목을 쭈뼛거리며 고개를 돌리자 공중에 있는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얼굴과 마주친다. 하하 놀랐다.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어디선가 공룡 우는 소리 카앙- 카앙- 들린다. ◆공룡이 활보하던 골짜기주차장 옆 계곡에서 공룡 발자국을 본다.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 때 이곳을 활보하던 공룡이 남긴 것이다. 조각류의 것이 4개, 용각류의 것이 7개, 모두 초식공룡의 것으로 추정된다. 옆에는 물결무늬의 연흔과 퇴적층의 층리도 보인다. 그때, 경상도 일대는 분지형 저지대였다.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들어 점차 드넓은 호수가 만들어졌고 주변으로는 많은 못과 늪지대가 생겨났다. 직경이 150㎞나 되는 호수는 경상도 전역은 물론 대한해협과 일본 본토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규모였다고 한다. 그 한가운데에 대구가 있었다. 날씨는 따뜻했고 초식 공룡의 먹이가 되는 나무고사리, 소철, 연한 순의 송백류 등이 풍부했다. 공룡과 다양한 동물들은 물과 먹이를 찾아 습지와 늪과 수풀로 우거진 호수를 활보했다. 육중한 걸음은 발자국을 남겼고, 발자국이 사라지기 전에 건조한 기후를 맞았으며, 또 다른 퇴적물이 그 위를 덮었다. 그리고 약 7천만 년 전 화산폭발이 일어나 앞산이 생겼고, 2006년 고산골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었다.2016년에는 공룡공원이 만들어졌다. 공룡공원 옆으로 메타세쿼이아길이 뻗어 있다. 넓은 흙길 양편으로 곧게 솟은 나무줄기 사이로 공룡과 사람들이 보이고 이따금 공룡 우는 소리가 골짜기에 퍼진다. 공룡공원은 아이들이게 인기다. 공룡 이름을 줄줄이 외우는 아이들은 공룡 뼈가 숨겨져 있는 모래놀이터를 최고로 좋아한단다. 길가에 또 다른 화석지 안내판이 나타난다. 계곡 아래로 거북이 등껍질 같은 건열이 보인다. 건열은 진흙으로 이루어진 지표면이 마르면서 수축해 다각형의 무늬로 갈라진 것이다. 다각형 무늬가 흰 빛인 걸 보니 갈라진 틈 사이로 모래가 채워진 듯하다. 휙 스치는 오늘의 바람이 1억년 전의 바람 같다. 어린이 체험 학습장이 환하다.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온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를 하고 있다. 아이들 주변을 토끼가 어슬렁거린다. 살아있는 진짜 토끼다. 체험장 가장자리의 벤치에는 자전거를 타고 온 노인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메타세쿼이아길은 공룡공원에서 고산골 수덕사까지 900m 정도다. 수덕사 앞에 고산골 관리사무소와 앞산 등산코스 안내도가 있다. 여기서 길은 토굴암 방향과 법장사 방향으로 나뉜다. 오늘의 목표는 법장사 지나 잣나무 숲이다. ◆법장사 지나시멘트 등산로다. 이 길에는 밤에도 불이 켜져 있어 야간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성불사를 지난다. 등산로 옆으로 숲 트레킹 길이 시작된다. 굴암사를 지난다. 담벼락에 늘어선 무궁화가 이제 막 새잎을 내밀었다. 법장사에 닿는다. 일주문 편액에 '대덕산 법장사'라고 적혀 있다. 담장 위로 석탑이 높다. 신라 말엽에 대를 이을 왕자가 없어 근심이 큰 왕이 있었다고 한다.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서쪽으로 수백 리 되는 곳에 절을 짓고 정성을 들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왕은 절을 짓고 고산사라 했는데, 이듬해 왕비가 백일기도를 올리고 왕자를 낳자 왕은 크게 기뻐하여 고산사에 3층 석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 후 고산사는 자식 없는 부녀자들의 기도처가 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1961년 고산사 터에 세워진 절이 법장사다. 석탑은 흩어져 있던 탑의 잔해를 모아 세웠다고 한다. 고산골은 고산사가 있던 골짜기다. 법장사를 지나면 고개를 숙이고 걸어야 한다. 한 걸음이 천근이라 멈추고, 허리가 뻐근해 멈추고, 무릎이 시큰해 또 멈춘다. 멈추면 들꽃들이 보인다. 하늘하늘 연보랏빛 소래풀 꽃이 많다. 따뜻한 모퉁이에는 노란 뽀리뱅이, 긴긴 목을 빼 들고 작은 얼굴에 빛을 담는다. 야외무대를 지난다. 무대는 풀에 뒤덮여 있고 중앙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주인공처럼 서 있다. 객석은 푸른 이끼로 가득하다. 고대인이 물고기를 새겨 놓은 것 같은 커다란 바위를 지나 가침박달나무의 흰 꽃을 보고 나면 시멘트길과 트레킹길이 만난다. 그리고 곧 침목 계단이 있는 흙길이다. 저 위로 삼각의 지붕과 반짝거리는 거울 벽과 나무에 걸린 빨간 시계가 보인다. '물이 있는 쉼터'다. 맑은 물이 수조에 떨어지고 빨간 바가지가 동동 떠 있지만 음용에 부적합하다는 안내문이 있다. 빨간 시계는 시간이 맞지 않다. 삼각 지붕은 사각의 파고라에 비닐 벽을 두른 쉼터였다. 내부에 거울, 빗, 시계, 달력, 수건 따위가 걸려 있다. 주변에는 커다란 거울과 생각보다 많은 운동기구가 있다. 한 아저씨가 거울 앞에서 스트레칭을 한다. 두 아주머니는 벤치에 앉아 다리쉼을 한다. 나를 앞질러 갔던 여자는 이곳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되돌아 내려간다. 그러고 보니 나를 추월해 간 남자는 내가 이곳에 닿기도 전에 다시 나를 스쳐 내려갔었다. 많은 사람이 이곳까지의 등산을 루틴으로 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잣나무 숲에서 돌 많은 산길이 시작된다.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아 자꾸만 멈추게 되지만 아무도 없는 산길은 언제나 무섭다. 얼마나 더 가야 할까. 비목나무 앞에 긴급구조신고처 파-2 안내판이 있다. 두근두근 급한 걸음으로 10여 분쯤 흘렀을까, 잣나무 숲이 시작된다. 서늘하고 멋있다. 아니, 서늘해서 멋있나. 1983년에 대형 산불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24만㎡ 면적에 4만6천 그루의 잣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고 2002년에 2만 그루, 2015년에 1만1천 그루를 솎아 베었다고 한다. 바람이 심상치 않다. 숲의 심장부로 나아가지 못하고 긴급구조신고처 파-3 근처만 왔다 갔다 하다 돌아선다. 하산 길은 트레킹길이다. 도도도도도 거의 뛰듯이 내려간다. 제법 날다람쥐 같은걸. 그래도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계류 앞에서 멈추는 것을 잊지는 않는다. 다시 시멘트 길을 만나고 유아숲체험장에 들어서고야 큰 숨을 내쉰다. 아이들이 놀다 간 오솔길에 분홍 진달래꽃과 노란 산괴불주머니와 연보랏빛 소래풀 꽃과 초록의 참나무 잎이 모여 있다. 검은 토끼가 벤치 아래 돌처럼 앉아 있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따라 맨발산책로로 들어선다. 고산골 집들이 보이고 텃밭 너머 티라노사우루스와 메타세쿼이아길이 보인다. 바람이 변덕스러웠던 봄, 한바탕 이상한 나라에 다녀온 듯하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앞산순환도로 동쪽 끝 상동교 서단에 공룡공원 이정표가 있다. 공룡공원 바로 앞에 고산골 공영주차장과 주차 빌딩이 있으며 최초 30분에 200원, 이후 10분마다 100원, 1일 주차는 2천원이다. 공룡공원까지 걸어서 10여 분 거리인 남구 국민체육센터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무료다. 공룡공원은 상시 개방이며 입장료는 없다. 저녁 8시 이후는 주차료도 무료다.맨발산책로의 끝자락에 다다를 즈음 텃밭 너머 티라노사우루스가 보인다.고산골 계곡에 있는 공룡 발자국.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 때 이곳을 활보하던 공룡이 남긴 것이다. 옆에는 물결무늬의 연흔과 퇴적층의 층리도 보인다.1961년 고산사 터에 세워진 법장사. 석탑은 흩어져 있던 탑의 잔해를 모아 세웠다고 한다. 고산골은 고산사가 있던 골짜기다.고산골 잣나무 숲. 1983년에 대형 산불이 난 이후 24만㎡ 면적에 4만6천 그루의 잣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다(왼쪽). 트레킹 길에서 만난 폭포와 같은 계류. 트레킹 길은 자연에 폭 둘러싸여 있지만 시멘트길과 크게 떨어져 있지는 않다. 곳곳에 서로를 잇는 샛길도 있다.고산골 잣나무 숲. 1983년에 대형 산불이 난 이후 24만㎡ 면적에 4만6천 그루의 잣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다(왼쪽). 트레킹 길에서 만난 폭포와 같은 계류. 트레킹 길은 자연에 폭 둘러싸여 있지만 시멘트길과 크게 떨어져 있지는 않다. 곳곳에 서로를 잇는 샛길도 있다.
[동 추 거문고 이야기]〈8〉줄 없는 거문고(하) 정신은 찾지 않고 껍데기만 좇을 뿐…고요함 속 찾은 깨달음의 경지
"옛말에 이르기를 거문고는 악(樂)의 으뜸이라, 군자가 항상 사용하여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는 군자가 아니지만 거문고 하나를 지니고 줄도 갖추지 않고서 어루만지며 즐겼더니, 어떤 손님이 이것을 보고 웃고는 다시 줄을 갖추어 주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길게 혹은 짧게 타며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옛날 진나라 도연명은 줄이 없는 거문고를 두고 그것으로 뜻을 밝힐 뿐이었는데, 나는 이 구구한 거문고를 가지고 그 소리를 들으려 하니 어찌 옛 사람을 본받겠는가?" 시·거문고·술을 너무나 좋아해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었던 이규보(1168~1241)가 남긴 내용이다. 그 역시 도연명의 무현금의 세계를 동경했음을 알 수 있다. 줄 없는 거문고 '무현금'의 세계는 이처럼 한국의 선비들에게도 깊이 스며들었다.소리가 없음에 느끼는 오묘함 체득귀한 줄이나 채 가져도 부질 없는 것귀로 듣는게 아닌 마음으로 듣는 것선비들에 깊이 스며든 무현금 세계◆조선의 선비와 무현금이규보는 도연명의 무현금 세계를 찬미하는 시를 적지 않게 남겼다. 다음은 도연명의 시에 대해 읊은 작품 '독도잠시(讀陶潛詩)'이다. 도잠(陶潛)은 도연명의 본명이다. 연명(淵明)은 도잠의 아호이다. '내가 사랑하는 도연명은(吾愛陶淵明)/ 그 말이 너무도 평담하다(吐語淡而粹)/ 항상 줄 없는 거문고 어루만졌다지(常撫無絃琴)/ 그러기에 시도 모두 그렇구나(其詩一如此)/ 지극한 음률은 소리가 없는 법이니(至音本無聲)/ 무슨 줄이 필요하겠는가(何勞絃上指)/ 지극한 말은 문체가 없는 법인데(至言本無文)/ 어찌 꾸밈을 일삼으랴(安事彫鑿費)/ 자연에서 나온 그 평화로운 말들(平和出天然)/ 음미할수록 진미를 느끼네(久嚼知醇味)/ 인끈 풀고 전원에 돌아와(解印歸田園)/ 세 갈래 좁은 길 소요하면서(逍遙三徑裏)/ 술 없으면 친구 찾아가(無酒亦從人)/ 날마다 취해 쓰러졌지(頹然日日醉)/ 한 평상에 희황이 누웠으니(一榻臥羲皇)/ 맑은 바람 솔솔 불어온다(淸風颯然至)/ 순수한 태고 시절 백성이요(熙熙太古民)/ 고상하고 뛰어난 선비로세( 卓行士)/ 그 시 읽고 그 사람 상상하며(讀詩想見人)/ 천년토록 높은 의리 숭앙하리(千載仰高義)'.이규보의 또 다른 시 '소금(素琴)'이다. '천뢰(우주)는 처음부터 소리 없는데/ 흩어져 만규(萬竅)의 소리를 내는구나/ 오동은 본래 고요한 것이나/ 다른 힘을 빌려서 소리가 나네/ 내가 줄 없는 거문고로/ 유수(流水)곡 한 곡을 타네/ 지음(知音)이 듣기를 원하지도 않고/ 속물이 듣는 것도 꺼리지 않네/ 다만 내 마음을 쏟아/ 애오라지 한두 줄 퉁겨 보네/ 곡조가 끝나면 또 고요하게 침묵하니/ 아득히 옛사람의 뜻과 합치되네'화담(花潭) 서경덕(1489~1456)은 '무현금명(無絃琴銘)'을 남겼다. 무현금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거문고에 줄이 없는 것은(琴而無絃)/ 본체는 놓아두고 작용을 뺀 것이다(存體去用)/ 정말로 작용을 뺀 것이 아니라(非誠去用)/ 고요함에 움직임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靜基含動)/ 소리를 통하여 듣는 것은(聽之聲上)/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不若聽之於無聲)/ 형체를 통하여 즐기는 것은(樂之刑上)/ 형체 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不若樂之於無刑)/ 형체가 없음에서 즐기므로(樂之於無刑)/ 그 오묘함을 체득하게 되며(乃得其)/ 소리 없음에서 그것을 들음으로써(聽之於無聲)/ 그 미묘함을 체득하게 된다(乃得其妙)/ 밖으로는 있음에서 체득하지만(外得於有)/ 안으로는 없음에서 깨닫게 된다(外得於無)/ 그 가운데에서 흥취 얻음을 생각하면(顧得趣平其中)/ 어찌 줄에 얽매이겠는가(爰有事於絃上工夫)/그 줄은 쓰지 않고(不用其絃)/ 그 줄의 줄 소리 밖의 가락을 쓴다(用其絃絃律外官商)/ 나는 그 본연을 체득하고(吾得其天)/ 소리로써 그것을 즐긴다(樂之以音)/ 그 소리를 즐긴다지만(樂其音)/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요(音非聽之以耳)/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聽之以心)/ 저 종자기가(彼哉子期)/ 어찌 나의 거문고 소리를 귀로 들으리(曷耳吾琴)'종자기(鍾子期·BC 387~299)는 중국 춘추전국 시대 초나라의 사람이다.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의 거문고 소리를 종자기만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종자기가 죽은 후에 백아는 지음(知音)을 잃었다고 탄식하며 거문고를 다시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조선 전기 문신인 이영서(?~1450)가 남긴 시 '무현금(無絃琴)'이다. 여기에서도 이런 선비의 삶을 잘 읽을 수 있다. '도연명이 거문고 하나를 가졌는데(淵明自有一張琴)/ 줄을 매지 않았지만 뜻은 더욱 심오했었네(不被朱絃思轉深)/ 참된 맛을 어찌 거문고 소리로써 얻을 것인가(眞趣豈能聲上得)/ 천기란 모름지기 고요함 속에서 찾아진다네(天機須向靜中尋)/ 좋은 거문고 줄과 채는 모두 부질없는 것(鯤絃鐵撥渾閑事)/ 유수와 고산을 켰다는 악곡도 헛애만 쓴 것이네(流水高山 苦心)/ 옛 거문고 가락 속인의 귀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니(古調未應諧俗耳)/ 천년 세월이 흘러가도 그 곡조 아는 이 없으리(悠悠千載少知音)' '곤현(鯤絃)'은 곤어(鯤魚) 가죽으로 만든 줄로, 좋은 거문고 줄을 의미한다. 곤어는 북해에 산다는 상상의 큰 물고기이다. 그리고 '철발(鐵撥)'은 쇠로 만든 채(현을 퉁기는 도구)를 말한다. 좋은 악기나 연주 도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리 이전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것이 관건임을 이야기하고 있다.줄이 없는 거문고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쓸모가 없는 물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도연명은 무현금 하나를 가지고 어루만지면서 심오한 뜻을 추구했다. 참다운 맛은 거문고에서 나오는 소리로 얻어지는 게 아니며, 귀한 거문고 줄이나 채를 가졌다는 것은 다 부질없는 것이다. 백아가 아양곡을 잘 타고 종자기가 그 가락을 잘 알아들었다는 것도 헛애만 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도연명이 줄 없는 거문고에서 들었던 그 곡조를 알고자 하는 뜻을 드러내고 있다.동양의 대표적 고전인 '채근담'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고작 유자서(有字書)나 읽을 줄 알았지 무자서(無字書)를 읽을 줄은 모르며, 유현금(有絃琴)이나 뜯을 줄 알았지 무현금(無絃琴)을 뜯을 줄은 모르니, 그 정신을 찾으려 하지 않고 껍데기만 쫓아다니는데 어찌 금서(琴書)의 참맛을 알 도리가 있겠는가.' 이처럼 선비들, 군자와 성인이 되고자 했던 옛 지식인들은 그들이 추구한 인격을 완성해 가는 동반자로 무현금을 가까이했던 것이다.무현금의 세계를 추구한 것은 선비들뿐만이 아니다. 선사들, 불교 수행자들은 '몰현금(沒絃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깨달음의 경지를 드러내고 있다. 줄 없는 거문고라는 비유를 통해 탐진치(貪嗔痴)를 벗어난 깨달음의 세계,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경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이경윤(1545~1611)의 '월하탄금도'(부분). 이 그림은 줄이 없는 거문고를 그린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김봉규 bg4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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