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악플의 매뉴얼
총욕약경(寵辱若驚)이란 말이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대략 '칭찬이나 비난은 똑같은 것이니 그런 것에 휘둘리지 말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사, 경전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실천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사람인 이상 우리는 칭찬을 받으면 으레 기분이 좋아지고, 반대로 비난을 들으면 그만 분통이 터지고 만다. 그 와중에 가장 불행한 사례는 바로 전 국민적인 칭찬을 듣다가 갑자기 그것이 맹비난으로 전환되는 케이스일 것이다. 말 그대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급전직하하게 되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다. 당사자가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라면 모든 것을 감내하고 반성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별 것 아닌 일로 과한 비난을 받는 경우는 참으로 딱하지 않을 수 없다.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파리 올림픽 3관왕 임시현 선수는 최근 SNS에 잘 모르고 올린 한 표현 때문에 맹비난에 시달렸다. 임 선수는 곧 직접 사과문을 올렸지만, 사과문 자체가 또 네티즌들의 비위를 거스른 탓에 한 바탕 여진까지 치렀다. 고작 2003년생 어린 선수라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 일이었다. 난 유명인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지난 10년째 불특정다수의 대중에게 매일매일 리플을 받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될 때마다 힘든 일을 겪는 어린 친구들을 붙잡고 꼭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다. 첫째, 특정 시점에 악플이 홍수와 같이 달릴 때는 절대 그것을 붙잡고 하나하나 읽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은 처음 이런 일을 겪으면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악플들을 정독하게 된다. 스스로 대범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그러나 나를 포함한 주위의 수많은 내 직종의 사람들을 보아온 바, 쏟아지는 악플을 이겨낼 수 있는 강철 멘탈의 소유자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정 시점까지는 버티는 것처럼 보여도 수인한도를 넘어서는 순간, 인간의 멘탈은 여지없이 '피로 파괴'되는 선박처럼 쩍 갈라져 두 동강이 난다. 그러니 악플은 어떠한 경우에도 읽지 마라. 절대로.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플 사태를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 된다.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이상, 최소한의 책임감은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때는 동료를 적극 활용해 악플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가족이나 연인 등은 안 된다. 그들 또한 악플로 인해 정신적인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동료는 3자이므로 악플을 읽어도 충격을 크게 받지는 않으며, 쓸데없는 악감정이 깨끗하게 휘발된 사태의 핵심만을 제대로 전달해줄 수 있다. 셋째, 악플이 달린 원인까지 파악했다면 이제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또 건조하게 사과해야 한다. '이게 사과까지 할 일인가?'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사과문을 통해 결백 호소, 동정 유도, 억울함 설명 같은 것을 시도해서도 안 된다. 나아가 악플러들과 '기싸움'을 벌이거나 '촌철살인' 같은 것을 슬쩍 집어넣는 것은 최악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은 대중과 싸우는 사람'이라는 명언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을 공격하는 대중에게 더 이상의 빌미를 주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의연한 태도는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또 다른 대중을 내 편으로 만들어 결국은 역풍을 불게 한다. 나는 대한체육회나 각 종목 협회 차원에서 이런 사태를 대비한 프로토콜을 만들어서 앞으로 어린 선수들이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적절하게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면 한다. 정글과 같은 SNS 시대에 '총(寵)'에 우쭐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욕(辱)' 때문에 좌절하는 것만은 어른들이 잘 관리해 주어야 하지 않겠나. 박지형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