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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산책·다시 읽는 고전명작]
[노벨문학상 산책] 해럴드 핀터 '축하파티'…예술가와 시민으로서 추구하는 정치적 비전과 진실
끔찍한 곤경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주된 의무는 우리의 삶과 사회의 '진정한'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굽힐 줄 모르는 확고하고도 맹렬한 지적 결단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강제적인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결단을 우리의 정치적 비전으로 구현하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거의 놓쳐 버린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예술, 진실 그리고 정치성: 노벨상 수상 연설', 2005)◆핀터의 부조리성과 정치성2005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극작가 해럴드 핀터(1930~2008)는 1950년대 말에 등단해 반세기 계에 걸쳐 29편의 극작품뿐 아니라 27편의 영화 대본, 그리고 시와 소설, TV와 라디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핀터레스크'라는 형용사가 옥스퍼드 사전에 수록될 정도로 독특한 핀터랜드의 지형도를 그려낸 그의 극작품은 20세기 새로운 현대 연극의 전통 생성에 주요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등단과 동시에 핀터는 사무엘 베케트를 선구자로 한 부조리극 전통을 확립한 마틴 에슬린에 의해 부조리극작가로 분류됐다. 에슬린의 부조리극 비평은 예술과 정치를 분리하는 이분법적인 냉전 시대 미학을 반영한 것으로, 현대 드라마의 전통을 부조리극과 정치극으로 양분해 파악하는 입지를 취한다. 따라서 현대 연극 비평의 정전 역할을 자처한 에슬린이 주도한 부조리극 비평은 핀터와 그의 극작품을 정치적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핀터의 정치성을 배제하거나 부조리성으로 대체하는 읽기를 해왔다. 이러한 읽기는 '핀터레스크'를 탈정치적인 부조리극작가의 작품의 특성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핀터는 198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중반, 두 번에 걸친 극작 중단 선언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관심과 극작품의 정치성을 명확하게 밝혔다. 첫 번째는 정치극에 전념하기 위해 이제 정치성이 분명하게 부각되지 않은 기억극을 쓰지 않겠다는 공언, 두 번째는 한 시민으로서 정치적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더 이상 극작을 하지 않겠다는 결단 표명이었다. 1980년대 중반 선언 이후 본격화된 그의 부조리성과 정치성에 대한 열띤 논의는 정치적 은유라고 할 수 있는 초기 '위협희극'까지 소급하여 그의 작품은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늘 정치적"이었다는 결론으로 수렴됐다. 2005년 극작 중단 선언 이후 그의 노벨상 수상과 연설 '예술, 진실 그리고 정치성'은 예술가와 시민으로서 그의 정치적 비전과 추구해온 진실을 통해 그의 극작품의 세계, 핀터랜드를 구축해온 정치성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런던 이스트엔드에 정착한 유대계 이민 2세로 핀터가 겪은 제2차 세계대전 경험과 해크니에서의 성장과정은, 그의 극작가로의 수업 시대인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과 극으로 각색한 '난쟁이들'(1952∼1956/1990)에서 냉소적인 마크 길버트처럼, 그를 "본능적 아웃사이더"로 어떤 체제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반대자'로서의 그의 성향을 형성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그가 보고 경험한 전후 체제적 권력이 초래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비인간성의 이미지들과 공포"와 이러한 체제적 억압에 대한 거부와 저항 의식이 그의 삶과 연극의 무대를 전개하는데 근간을 이룬다. ◆21세기 파국의 시대의 '축하 파티'핀터의 대표작으로는 그의 첫 성공작 '생일 파티'(1957)를 들 수 있지만, 가장 활발했던 극작 시기는 '옛 시절'(1971), '배신'(1978) 등과 같은 기억극을 쓰던 시기였다. 그러나 본인은 '방' 안에 갇혀 '몽유' 상태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고 평가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마지막 한 잔'(1986), '산악 언어'(1988) 등과 같은 '명백한 정치극'을, 그리고 정작 본인은 정치성을 주장하지만, '기억극으로의 귀환'으로 평가되기도 한 '축하 파티'(2000)를 마지막으로 한 일련의 후기 정치극을 쓴 뒤 극작 활동을 중단했다. 핀터의 마지막 작품이자 그 특유의(핀터레스크) 정치극이라고 할 수 있는 '축하파티'는 2000년 초연부터 통상 첫 작품인 '방'(1957)과 함께 공연되고 있다. 43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쓴 두 작품의 동시 공연은 두 작품의 상호텍스트적인 읽기를 유도한다. 1950년대 그리고 21세기가 막 시작되는 시점의 런던을 각각 배경으로 해, 핀터도 지적했듯이, 두 작품 모두 '폭력'을 주제로 다룬다. 각각 다른 시기에, 다른 극작 방식으로 동일한 주제를 다룬 첫 그리고 마지막 작품을 동일한 무대에 올리는 것은 '핀터랜드'의 지형도를 조망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지배와 종속의 게임'을 다루는 위협희극으로 분류되는 첫 작품 '방'은 정치적 은유의 우회적인 방법으로 폭력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축하 파티'는 직설적인 풍자의 방식으로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노벨상 수상 연설을 비롯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핀터는 우리가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긴박한 파국적 현실을 맞이하고 있음을 역설했다. 권력 유지에만 관심이 있는 정치가들의 담론이 만들어낸 "거짓말의 거대한 태피스트리"에 둘러싸여, 우리의 생각은 마비가 되고 그 이면에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예술가는 더 이상 모호한 은유적 의미들을 만들어내는 거울 비추기 놀이로 진실을 추구할 수 없게 되었고, 이에 극작가로서 그는 거울을 깨뜨릴 때가, 즉 극작을 중단할 때가 되었음을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선언에 앞서 그가 마지막으로 쓴 작품이 바로 '축하 파티'이다. '축하 파티'의 무대인 런던의 최고급 레스토랑은 정치적 언어로 평등주의를 위장하고 있지만 엄격한 위계질서의 계급 피라미드 구조의 자본주의 시스템의 축소판이자, 탐욕과 형편없이 추락한 지성의 수준이 지배하는 사회로 전락해버린 "대처 집권 이후 영국의 소우주"를 보여준다. 저속한 물질주의적 포스트모던 문화의 찬양과 존속을 위한 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레스토랑은 돈과 권력의 위력으로 특권 계급이 된 천박한 포스트모던 인간들을 위해 격조 높은 최상의 서비스로 럭셔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파티를 제공한다. 그러나 '생일 파티'를 비롯하여 다른 후기 정치극 '파티 타임'(1991), '달빛'(1993)의 파티처럼 이 파티 또한 그 이면에 숨어 있는 폭력적이며 야만적인 파국의 현실을 드러내 보이는 의식으로 전용되고 있다. '축하 파티'에 등장하는 '젊은 웨이터'는 젊은 시절 웨이터로 일하다 해고를 당한 경험이 있는 핀터를 연상시킨다. 젊은 웨이터는 그 레스토랑이 그에겐 자궁과 같은 곳으로 거기에서 나와 탄생을 하는 것보다 머물고 싶다고 고백한다. '생일 파티'의 스탠리처럼, 그는 '방' 밖 '실재의 사막'으로 나가는 것보다 '매트릭스' 속에 머물기를 선호한다. 그러나 그는 레스토랑에서 준수해야 할 엄격한 원칙을 어기고 세 번이나 파시스트적인 웅변을 늘어놓는 천박하고 무식한 포스트모던 인간들의 대화에 품위와 전통을 상징하는 모더니스트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끼어드는 "부적절한" 개입을 감행했다. 그들의 대화에 한 번 더 끼어들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그의 마지막 독백은 그에게 세계를 내다 볼 수 있는 망원경을 사준 할아버지를 따라 "거짓의 태피스트리"를 벗어나는 결단에 이르게 된 핀터의 혼란스러운 심정을 담고 있다. 정문영은 계명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대영미드라마학회장, 계명대 인문과학연구소장, 여성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정문영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다. 2002년부터 열린대학 솔N이락의 공동대표로 시민인문학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 서울대와 미국 델라웨어대에서 현대드라마와 비평이론을 전공했고, 해럴드 핀터를 비롯하여 주요 현대드라마작가들, 소설, 연극, 영화의 상호매체성, 각색연구, 한류연구 분야에서 다양한 주제들에 관한 연구와 강의로 활발한 저술과 학술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Pinter at Sixty'(Indiana University Press, 공저), '현대비평이론과 연극'(동인), '해럴드 핀터의 정치성과 성정치성'(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해럴드 핀터의 영화 정치성'(동인) 등외 다수, 논문으로는 'Hallyu and Film Adaptation: Maids of Decolonization in Park Chan-wook's The Handmaiden'(Korea Journal), 'Stage as Hyperspace: Theatricality of Stoppard' (Modern Drama)를 비롯하여 다수가 있다.공동기획 :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정문영 계명대 명예교수가 번역한 해럴드 핀터의 책. 2000년 국제핀터학회(런던)가 마련한 70세 생일파티의 주인공 핀터의 '축하파티' 낭독 후 리셉션에서 해럴드 핀터(왼쪽)와 필자. 정문영 (계명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2023.12.29
[노벨문학상 산책] 가오싱젠 '영혼의 산'…씁쓸한 통찰·언어적 독창성으로 中 문화 근원 찾던 순례자
"첫 희곡작품 '절대신호' 커다란 성공 불구 공연금지중국사회 매서운 풍자로 자국 입국 금지까지 당해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中 문화 근원 찾는 여정 지속첫 장편소설 '영혼의 산' 문학의 존재 이유 드러내"중국에서 나고 자라 베이징외국어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한 다독가 가오싱젠(高行健, 1940~ )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겪으며 "문학이 가능하지 않던 시기에 비로소 문학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 적 있다. 사십에 가까운 비교적 늦은 나이에 소설집, 희곡과 평론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펴기 시작했는데, 1981년 펴낸 '현대 소설의 기교에 대한 초보적 탐색'은 소설의 현대화를 둘러싼 논쟁을 야기하며 중국에서 모더니즘 및 아방가르드의 수용과 탐색에 있어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가오싱젠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대표적인 작품은 희곡들로, 실험적이고 선구적인 작품들이다. 1982년에 나온 첫 희곡작품 '절대신호'는 베이징인민예술극원에 공연된 최초의 실험극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 발표한 '버스정류장'을 통해 그의 극작가로서의 명성이 확립됐다. 오지 않는 버스를 막연히 기다리는 인물군상의 모습을 통해 중국 사회에 대한 매서운 풍자와 함께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그러나 당국에 의해 '정신오염원'으로 지목되며 공연이 금지되었다. 1985년 발표한 '야인'은 브레히트의 소외효과 같은 서양의 현대 연극기법과 중국 전통 경극을 기반으로 한 노래, 춤, 곡예 등의 요소를 가진 실험적인 형식을 통해 윤리, 전통, 생태환경, 부정부패 등을 다루어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었으나 중국 내에서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던 가오싱젠은 현대적인 수묵화를 그려왔는데, 신비감에 싸인 무채색의 풍경들이 등장하는,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추상도 구상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그의 그림들은 작가의 책 표지 삽화로도 자주 선보였다.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지점에 그림이 시작한다고 하는 그는 이 같은 회화작업 덕분에 1980년대 후반부터 유럽에서 체류하게 되면서 망명작가로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1989년 톈안먼 사건이 발발한 뒤 그가 중국 정부의 대응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희곡 '도망'을 발표하자 중국 당국은 그의 모든 작품을 금서로 정하고 중국 입국을 금지했다. 작가의 유일한 책임은 "작가가 쓰는 언어"에 있다는 가오싱젠은 그 어떤 정치적 이념도 탈피하고, 여러 풍조와 유행에 휩쓸리는 시장 중심 소비사회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은 '무(無)주의'를 주장하며 문학비평을 지속했다. 작가는 1997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고, 1992년에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2001년에 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지옹도뇌르훈장을 받기도 했는데, 2000년에 마침내 노벨문학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가 "보편적 타당성, 씁쓸한 통찰과 언어적 독창성을 지닌 작품을 통해 중국 소설과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했다. 가오싱젠은 아시아 출신 작가로는 네 번째, 중국 출신 작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나, 중국 당국은 '중국어 작가'의 수상소식을 거의 알리지 않았으며, 중국작가협회에서도 노벨문학상의 정치화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가오싱젠은 소설작품을 중국어로 써왔으나, 중국에서 희곡작품의 상연이 금지된 이후 공연을 전제로 하는 희곡은 '주말 사중주'(1999)처럼 프랑스어로 쓰기도 했다. 이 밖에도 오페라-경극 '8월의 눈'(2002)을 통해 공연작품의 형식적 실험을 계속했으며, 그가 '영화시'라고 부르는 '혼돈 이후'(2008)와 '아름다움의 장례'(2013) 등의 영화를 만들었다. ◆자신을 찾아가는 순례의 여정, '영혼의 산'가오싱젠은 1980년대 초반 중국 현대연극의 한 획을 그을 만한 희곡작품들을 선보이며 평론가와 관객의 큰 관심과 환영을 받았지만 중국 정부의 강한 제재의 대상이 됐다. 당국의 감시망과 비난을 피하고자 가오싱젠은 베이징을 벗어나 중국 남서부로 향했다. 그는 1982년과 1983년 사이 수개월씩 쓰촨(四川)의 깊은 숲속에 위치한 자연보호구역, 양쯔강의 발원지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산과 숲과 강가를 누볐고, 작가의 말에따르면, "아직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근원, 중국 문화의 근원을 찾는 영적이고 문화적인 탐색"을 했다. 1만5천㎞를 거친 이 긴 여정이 그의 첫 장편소설 '영혼의 산'의 기반이 됐다.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1982년 여름부터 구상해온 이 책의 원고를 들고 작가는 1987년 중국을 떠났고, 프랑스에서 책을 집필하면서 중국에 대한 그리움을 극복했다고 한다. '나 혼자만의 성경'과 더불어 가오싱젠의 양대 장편소설인 '영혼의 산'은 작가가 자신만을 위해 썼던 글이기 때문에 더욱 독특함을 지니게 된 작품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중국 문화의 근원과 사람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에 대한 탐색이자, 세상 속에 자신의 위치와 가치에 대한 회의를 포함해한 사람이 성장해가는 과정에 대한 분석이다. 또한 언어를 통해 이러한 주제를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담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이 "주인공이 자신에게로 순례를 떠나는 순례 소설이자 허구와 삶, 상상과 기억을 구분하는, 거울처럼 반사되는 표면을 따라가는 여행"이라고 표현한 소설 속에 '나' '당신' '그' 등 여러 인칭대명사로 지칭되는 작중인물들은 거울처럼 서로를 반사하고, 때로는 같은 시간과 공간, 때로는 상이한 시공간적 차원에서 움직인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한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남들과 터놓고 자유롭게 대화하지 못하던 시절, 혼잣말을 하다 보니 머릿속에 여러 자신들과 대화했다는 작가의 회상을 떠올리게 한다. '영혼의 산'은 자신을 바라보고 자기 인식을 찾는 주인공을 통해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파격적인 현대소설의 실험적 형식을 취하면서도 그 속에 옛 민담과 전설과 구전가요를 전하며 중국대륙의 문화의 원류를 좇는다. 가오싱젠은 "작가가 쓰고 독자가 읽는 바로 그 순간에" 문학이 실현되고 의미가 있다고 했다. 자신을 관망하는 과정을 통해 '순간의 영원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영혼의 산'은 작가가 말하는 문학의 존재 이유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영인 전임연구원(경북대 미주유럽연구소)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기영인은 프랑스 소르본누벨대학에서 가오싱젠을 포함한 유럽의 동아시아계 이주작가에 대한 연구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 불어불문학과에서 프랑스어권 지역에 대한 강의를 하며, 미주유럽연구소에서 트랜스내셔널한 존재로서의 이중언어작가와 이주문학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아시아 출신 이주작가의 작품 속에 나타난 '언어적 과잉 의식'과 문화의 중첩 양상' ''루', 킴 투이의 '행복한' 망명' '린다 레의 후기 소설' '프랑스 현대 이주문학의 지형' 등의 논문을 썼다. '오늘날의 프랑스'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 등을 같이 집필했고, 문화비평서 '모든 것에 반대한다'와 소설 '나쁜 생각들' '아테나'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가오싱젠 '깊은 산 속에서 자고새 소리 듣다'(The Deep Mountain, 2016) 기영인 경북대 미주유럽연구소 전임연구원
2023.12.01
[노벨문학상 산책] 귄터 그라스 '양철북'…오스카르의 시각서 20세기 전반 獨역사를 꼬집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은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라고 격찬한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에게 돌아갔다.그라스는 1927년 자유시 단치히(현재 폴란드령 그단스크) 변두리 랑푸르의 소시민 가정에서 태어나 2015년 독일 북부 뤼베크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가로서 창작활동을 꾸준히 해왔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 비판적으로 참여하는 지식인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해왔다.그가 현실정치와 맺어온 밀접한 관계는 전통적으로 현실 참여를 꺼려온 독일 문단은 물론이고 세계 문단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독특한 것이다. 1961년 사회민주당 연방수상 후보 브란트를 돕는 선거전을 시작으로 현실정치에 뛰어든 그라스는 나치 과거청산 문제를 비롯한 독일 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반전운동, 환경운동, 인권운동 등 평화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위해 끊임없이 싸워온 전투적 지식인이자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그러나 그는 반동의 부작용과 유혈사태가 뒤따르는 급진적 혁명에는 반대했으며, 사회적 진보란 달팽이의 속도에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인내를 통해서만 진보가 달성될 수 있다는 점진적 개혁주의자의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해왔다.1958년 미완성 상태로 47그룹상을 수상함으로써 문단의 지대한 관심을 받다가 1959년에 출간된 '양철북'은 서정시로 데뷔한 그라스의 첫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양철북'은 허구적 자서전 형태를 취하고 있는 소설로서, 총 3부 46장(제1부 16장, 제2부 18장, 제3부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다.주인공이자 일인칭 서술자인 오스카르는 1952년 9월 간호사 도로테아의 살인 사건 용의자로 체포되는데 재판 후 정신 이상을 의심받아 서독 뒤셀도르프의 한 '치료감호소'에 수감 된 채 1952년 10월부터 1954년 7월까지 지내다 진범이 잡히자 석방된다. 오스카르는 치료감호소에서 생활하는 약 2년(서술시간) 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가족사와 연관해 회고하는 일종의 허구적 자서전을 집필하게 되는데, 1899년 10월 어느 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만남 때부터 1954년 7월 치료감호소에서 자신이 강제로 퇴소당할 때까지 약 55년 동안의 시간이 피서술시간(=사건시간)을 이룬다.서술구조는 순환적 액자구조를 취하고 있다. 액자구조란 바깥 틀을 이루는 외화(外話) 속에 안쪽 이야기인 내화(內話)가 있는 구성 형식인데, '양철북'은 하나의 외화 속에 여러 개의 내화가 있는 순환적 액자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고, 내화와 외화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서로 넘나들고 있으며, 소설의 끝부분에 이르러서는 서로 접맥되고 있다.외화는 픽션과 메타픽션 두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픽션 차원에서는 오스카르가 치료감호소에 수감 된 이래로 치료감호소 감호인, 자신을 면회 오는 변호사와 가족 및 친지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한편, 소설이 하나의 인공물임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메타픽션 차원에서는 오스카르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의문시하거나 성찰하는 과정이 이야기된다. 에피소드로 구성된 모든 장에서 오스카르가 자신의 글쓰기 과정에 대해 성찰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수정하는 대목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현재와 과거 사이의 긴장이 끊임없이 조성되고 있다.내화는 사적 사건에 대한 허구적 서술 차원과 공적 역사에 근거한 사실적 서술 차원, 두 차원으로 구분될 수 있다. 허구적 서술 차원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전쟁 중 단치히와 그 주변 소시민계층에 속하는 허구적 인물들의 일상적인 삶, 전후 서독의 소시민사회에서 살아가는 허구적인 작중인물들과 관련된 온갖 사건 이야기가 서술된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서술 차원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건을 중심축으로 그 앞뒤로 일어난 숱한 역사적 사건들 및 그 사건들과 연관된 역사상 실재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제1부는 1899년 10월 어느 날 감자밭에서 일하던 외할머니(안나 브론스키)가 방화범으로 쫓기던 외할아버지(요셉 콜야이체크)를 폭넓은 치마 속에 숨겨주는 기이한 사건을 시작으로 어머니 아그네스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 아그네스와 알프레트 마체라트의 결혼, 오스카르의 탄생과 그가 세 번째 생일 선물로 받은 양철북, 오스카르의 자의적인 성장 정지, 황달과 생선중독으로 인한 아그네스의 죽음 등을 거쳐 1938년 11월9일 나치의 선동으로 유대인 거주지역에서 건물 파괴와 방화가 자행된 역사적 폭력 사건('수정의 밤')에서 완구점 주인인 유대인 마르쿠스가 사망하는 11월10일까지의 시기(1899~1938)를 서술하고 있다.제2부는 독일군의 폴란드 공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9월1일 며칠 전인 8월부터 하루 전인 8월31일 밤의 폴란드 우체국 전투, 1943년 나치 선전부대에 들어간 오스카르의 전방 위문 공연 활동, 전쟁 막바지 소련군이 점령한 단치히에서 알프레트 마체라트가 나치당 배지를 목에 삼키다 소련군에 의해 사살된 사건, 오스카르가 첫사랑이자 계모인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 쿠르트를 데리고 1945년 6월12일 화물열차로 단치히에서 탈출할 때까지의 과정(1939~1945)을 서술하고 있다.제3부는 종전 후 서독 뒤셀도르프로 피란 온 오스카르와 마리아 및 쿠르트, 그리고 주변 인물들을 비롯한 소시민들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서술된다. 전후 서독인들이 잘못된 과거를 반성을 통해 극복·청산하려는 노력은 내팽개친 채 과거를 망각해버리고 오직 물질적 풍요와 안락한 일상생활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타락한 정신적 풍토가 희화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양철북은 사물상징으로서 '군국주의의 상징'으로서 나치 시대의 선동과 파괴를 암시하는 도구, 서술의 매개체 구실을 하는 서술 도구 등 다양하고 모순된 의미를 지니는데, 특히 제3부에서는 과거를 망각해버리고 싶어 하는 전후 서독 사회에 과거를 망각하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각성시키는,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체의 기능을 하고 있다.제1부와 제2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및 전쟁 시기 단치히와 그 주변 지역, 제3부에서는 전후 서독 뒤셀도르프의 소시민사회를 무대로 20세기 전반의 독일 역사를 비판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기본적으로 역사·시대소설의 성격을 지니는 '양철북'이 과거청산이라는 주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힐 수 있는 이유로, 치밀한 구성능력과 기발한 착상, 특유의 유머 감각에 따른 입담 등 우선 작가 그라스의 탁월한 재능을 들 수 있지만, '양철북'에 엄청난 탄력성과 유연성, 시적인 생명력을 부여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현실과 환상이라는 상호 보완적인 두 차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반어적 상호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병덕 교수 (전북대 명예교수)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박병덕(朴秉德)은 전북대 명예교수로, 연구 분야는 현대독일소설이며,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특히 관심이 많다. 서울대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귄터 그라스의 '넙치'에 나타난 서술기법'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대 교수회장,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 상임회장, 전북대 발전지원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주요 저서로는 '귄터 그라스의 문학세계' '현실과 환상의 변증법. 귄터 그라스의 삶과 문학' '카프카 문학론'(공저), '독일 현대 작가와 문학 이론'(공저) 등이 있으며, 주요 번역서로는 '싯다르타'(헤세), '카프카 단편집'(카프카), '그리고 아무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보르헤르트), '파우스트 박사'(토마스 만)(공역), '군중과 권력'(카네티)(공역), '소유냐 존재냐'(에리히 프롬)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귄터 그라스의 소설에 나타난 환상적 리얼리즘' '그라스의 역사개념과 '넙치'에 나타난 동시성의 기법'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에 대한 독서모델' '페터 바이스의 기록극 이론과 '수사'' '카프카의 '변신' 연구' 등이 있다.2002년 5월 당시 서울 남산 독일문화원에서 기자회견하는 귄터 그라스. 연합뉴스박병덕 교수 (전북대 명예교수)
2023.11.03
[노벨문학상 산책] 하인리히 뵐 '여인과 군상'
전후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하인리히 뵐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지도 50년이 넘었다. 1972년 수상자로 발표되었을 때, 그는 국제 펜클럽 회장으로 이스라엘 여행 중이었다. 뵐 이전에 토마스 만(1929년), 헤르만 헤세(1946년), 유대인 여류작가 넬리 작스(1966년)가 스웨덴의 한림원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섰지만, 이들 모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식적으로는 독일 국적이 아니었다. 이들 세 작가는 모두 독일어로 작품을 썼지만 토마스 만은 나치로부터 독일 국적을 박탈당한 후 미국 시민이 되었고, 헤세와 작스는 각각 스위스와 스웨덴 국적이었다. 그래서 뵐 자신의 말처럼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1912년) 이래로 독일인으로는 60년 만의 일이었다.하인리히 뵐이 독일에서 맞이한 세상은 암울했다. 1917년 1차 대전이 끝날 무렵 쾰른에서 출생한 뵐의 유년과 청소년 시절은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한 때였고, 크고 작은 정치 사회적 혼란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는 이 시기에 신생 바이마르 공화국의 명멸과 히틀러의 제3제국의 준동을 직접 목도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을 때, 당시 쾰른 대학 독문과에 재학 중이던 뵐은 독일군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삶을 무의미하고 부조리하게 만들고,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앗아가는 '장티푸스와 같은 존재'로 전쟁을 체험한다. 이러한 전쟁 체험과 기억은 적지 않은 그의 작품의 주제나 배경이 되었으며, 이는 후기 작품에까지 계속되었다. 전장에서 돌아온 뵐은 전후 독일 사회가 빚어내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 상황과 그것이 빚어내는 폐해를 직시하고, 작품을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비판한다. 전후 서독은, '벌채' 혹은 '제로 상황' '새로운 시작'이라는 전후의 거대 담론 아래, 소위 '라인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새로운 정치 사회적 불안(화폐개혁, 군비 재무장 등)과 인간성 및 정신적 폐허 상황이 대두된다. 이때 뵐은 '업적사회'로 상징되는, 전후 재건에만 몰두하는 서독 사회에 맞선다. 그는 무엇보다 인간의 가치와 인간성 회복을 주창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글쓰기와 행동의 일치'를 신조로 내세우면서, 사회적 참여(앙가주망)의 작가 정신을 실천한다. 뵐의 이와 같은 문학관이 가장 잘 반영된 작품은 1971년에 발표된 '여인과 군상'이다. 이 작품에는 1920년에서 1970년 사이 독일의 역사적 사건, 독일의 근대 역사가 총체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뵐의 노벨상 수상이 그의 전체 작품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문학평론가 코른의 말처럼 이 작품이야말로 '뵐 작품 중 가장 중요한 대작으로 일컬어지며, 지금까지 작품 가운데 그에게 면류관을 씌운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이 작품은 레니라는 한 여인과 그녀를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변 인물들의 레니에 대한 회상이나 평을 통해 독일의 현실이 반영되고 있으며, 다양한 인물군상을 통하여 독일 역사가 기록되고 있다. 뵐은 레니에게 각별한 인간성을 부여한다. 그녀는 이 세상의 물정을 모르는 비사회적 인물이다. 그녀는 신발이나 옷도 유행이 지난 것을 걸치고 다니며, 가난한 외국 노동자들에게 세를 받지 않고 집을 무상으로 임대한다. 그녀가 사귀는 남자는 독일인이 아닌 러시아, 튀르키예인인데, 이는 인간의 인간 됨이 인간이 만든 제도나 국적 등으로 재단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 인물 설정이다. 레니는 다소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유토피아적 인물로 드러나지만, 뵐은 이를 통해 현실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 작품의 핵심적인, '업적원칙' 거부 모티브가 강하게 드러난다. 다시 말해 1960년대에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주창한 '도구적 이성'을 비판하면서, 마르쿠제의 '위대한 거부'가 작품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뵐은 여기서 나아가 학교, 군대, 교회와 같은 기구 또는 제도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구들은 업적원칙을 내세우면서, 인간의 창의성을 박탈하고, 획일적 사고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뵐은 이러한 면에서 제도와 규범을 거부하는 무정부적 성향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향은 그가 어떤 그룹이나 신조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경향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를 들면, 뵐은 서독의 전후 문학을 선도해온 '47그룹 상'을 받기는 하지만 그는 47그룹 활동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뵐의 이러한 태도는 종교관에까지도 미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그의 작품의 핵심을 이루지만, 그는 교회라는 기구(또는 제도)에는 부정적이다. 오히려 교회는 한 개인의 신앙생활을 방해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제도로서의 교회를 거부하고, 개인적인 신의 은총을 체험하기를 희구한다. 그는 교회라는 종교 기구나 교리가 오히려 순수한 기독교적 실행(이를테면 이웃사랑)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급기야 1976년에 종교세 납부를 거부한다. 당시 논란이 되었던 '어릿광대의 고백' (1963)도 바로 이러한 점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뵐의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 가운데 하나로 주목되는 점은 휴머니즘이다. 그는 작품에서 외국인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나타내는데 이는 그의 휴머니즘 정신의 발로이다. 그는 모든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 존재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휴머니즘을 강력하게 설파한다. 그의 작품에서 주인공의 주요 파트너로서 등장하는 '열차 시간은 정확하였다'의 올리나, '아담, 너 어디 있었니?'의 일로나, '여인과 군상'의 보리스와 메메트 등 이들 모두는 외국인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독일전후 작가 중 이러한 이민·난민 문제를 선구적 시각으로 다루면서 타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작가로 하인리히 뵐만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언론의 폭력성에 대해서 주목하면서 이를 선제적으로 다루었다. 그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언론의 폐해와 '소문 살인'을 주제로 다루었다. 원래 이 작품은 1970년대 초 독일에서 발생한 적군파의 테러와, 이에 대한 독일 최대의 언론 콘체른 악셀 슈프링어 사의 폭력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뚜렷한 증거 없이 테러의 배후 세력으로 '바더-마인호프'를 지목한 언론의 그릇된 보도 태도와 결국 이와 같은 '명예(소문) 살인'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위험성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오늘날 하인리히 뵐에게서 어떠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이는 '뵐처럼 현대 사회의 문제를 그토록 선구적으로 다룬 작가가 또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볼 수 있다. 뵐은 초기 문학에서 전쟁과 그 비인간적 상황의 문제를, 또 인간 개인을 억압하는 기구나 제도의 폭력성과 교회와 신앙의 관계를, 그리고 외국인(이민) 문제, 현대인이 겪는 업적(성과) 지상주의를 다루었다. 그리고 중기를 넘어서면서 언론의 폐해, 테러와 핵 문제와 같은 거대 담론은 선제적으로 다루고 있다.뵐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 말하면서 전쟁의 부조리함, 전후 상황에서 상실한 인간성, 점차 업적 혹은 성과 위주로 흘러가는 경쟁 사회, 국적이나 인종으로 인간을 가르는 폐행, 기구나 조직으로 인간의 자유를 옥죄는 상황 등을 작품 속에 선구적으로 내비추고 있다. 이런 점에서 뵐은 '살 만한 나라' '살 만한 언어'를 꿈꾸며, 글쓰기와 실천의 일치를 주장한 현대 대표적 앙가주망 작가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정인모 교수 (부산대)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부산대 독어교육과 교수. 한국 독일언어문학회 회장, 한국 하인리히 뵐 학회 회장, 부산대 사범대학 학장 및 교양교육원장 역임. 현재 DAAD 리서치 앰버서더로 활동.주요 저서로는, '독일문학 감상'(새문사, 2012), '하인리히 뵐의 문학세계'(부산대학교 출판부2007), '인공지능시대 문학과 예술'(공저·부산대 출판부 2020), '호모 미그란스'(공저·역락, 2022)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계몽과 경건의 변증법- 18세기 독일 사상의 지형도'(기독교학문연구회, 2018), '하인리히 뵐의 타자에 관한 이해 - 여인과 군상을 중심으로'(한국독어독문학교육학회, 2020), '애완에서 반려로 - 모니카 마론 작품에 나타난 피조물성'(한국독일언어문학회, 2022) 등이 있음. 주요 관심사는, 이민(난민) 문제, 융복합 시대의 통섭적 사유, 노년 및 생태 문학 등이다.정인모(왼쪽) 교수와 하인리히 뵐 아들 르네 뵐.하인리히 뵐(Heinrich Boll) 정인모 교수 제공정인모 교수 (부산대)
2023.09.01
[노벨문학상 산책]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오지 않는 구원자를 기다리며… 그래도 그들은 웃는다
1949년에 완성되었으나 1952년에 출판되고, 1953년에 파리에서 초연된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명 작가였던 사뮈엘 베케트를 하룻밤 사이에 유명 작가로 부상시켰으나 이 극이 쉽게 대중과 만난 것은 아니었다. 이 작품은 텅 빈 시골길 초라한 관목 옆에서 오지 않는 구원자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떠돌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여러모로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워 출판사, 연출가, 배우, 극장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아방가르드의 선두주자였던 로저 블랭이 연출뿐 아니라 포조 역을 맡기로 하면서 공연이 성사되고, 바빌론느 극장서 초연 후에는 비로소 폭발적인 대중의 반응과 접하게 된다. 이 작품은 바빌론느 극장에서만 400회 공연되었다.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 집필이 소설 쓰기의 고통을 잊기 위한 기분전환용이었다고 토로했지만 꼭 필요한 부분만 남겨놓고 제거해 버린 듯한 미니멀한 스타일과 주제의 심오함은 전 세계 연극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장소 모호인물들 대화 오가지만 오해 반복부조리한 상황·의사소통 한계 강조이해하기 어려운 삶 용기있게 직면현대인의 궁핍함 고양감 얻는 순간이 작품은 여러모로 획기적이다. 인물들이 직면한 문제는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고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어디에, 왜 있는지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베케트는 자신의 작품을 부조리극이라고 부른 적은 없지만 에슬린이 저서 '부조리극'(1961)을 발표한 이후 그렇게 분류되고 있다. 에슬린은 부조리란 용어를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에서 가져온다. '부당한 이유를 가지고라도 설명할 수 있는 세계는 친근한 세계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환상과 이성의 빛을 빼앗긴 우주 속에서 인간은 이방인으로 느낀다. 이 망명지에는 구원이 없다…. 인간과 그의 삶, 배우와 그의 무대 사이의 단절, 이것이 바로 부조리의 감정이다.''고도를 기다리며'는 여러모로 카뮈가 말한 부조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늙은 방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왜 자신들이 이 쓸쓸한 시골길에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한다. 이 불확실한 장소에서 그들은 영원한 이방인이다. 자신의 과거도 현재도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은 자신의 삶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다.'고도를 기다리며'는 2막으로 구성되는데 시간과 공간 배경은 동일하게 저녁 무렵, 시골길이다. 저녁 무렵이 되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시골길에 있는 나무 곁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올지 안 올지도, 자신이 맞는 장소에서 기다리는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그들은 고도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으로 믿으며 나무 옆에서 기다린다. 부조리한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극은 사실주의 극에서 볼 수 있는 현실의 시간과 공간과의 연결 고리를 차단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살고 있는 시점도 불분명하고 장소도 확실하지 않다. 텅 비어있는 길과 잎이 몇 개 달린 나무는 특정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은유가 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전기적 정보도 제한된다. 그들의 과거 행적에 대한 정보도 파편적이다. 시간이 경과해도 구원자는 오지 않지만, 인물들은 노쇠해간다. 1막에서 당당하던 포조는 2막에서는 눈이 먼 채 하인인 럭키에게 끌려다닌다. 1막에서는 장시간 장광설을 내뱉던 럭키는 벙어리가 된다. 1, 2막 모두 소년이 등장해서 고도가 오지 않는다고 전한다. 소년이 나가자마자 달이 뜨고 밤이 온다. 고도가 오지 않았음을 확인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자살을 할까 생각하지만 결국 자살에도 실패한다. 이 연극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처한 상황의 부조리함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한계를 강조한다. 둘은 서로의 말을 오해하기 일쑤다. 언어는 두 친구에게는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기보다는 기다리는 지루함을 덜어주는 도구, 유희의 방편이 된다. 언어 희화화의 가장 극단적 사례는 럭키의 장광설이다. 럭키의 장광설에서는 철학적, 신학적 용어들이 변형되고 파편화되어 나열된다. 이는 언어가 진리를 전달하는 기능을 상실했음을 시사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느끼는 지루한 절망감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극은 1막과 거의 유사한 내용을 2막에서 반복한다. 뿐만 아니라 2막의 끝에서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을 암시한다. 즉 기다림은 무한히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막이 반복될 뿐 아니라 대사도 빈번하게 반복된다. 포조와 럭키의 등장 또한 반복되고, 소년의 등장 또한 그러하다. 1, 2막의 마지막에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전하는 소년은 동일인이다. 하지만 그는 블라디미르에게 그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블라디미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며 그의 존재를 위협한다. 반복이 때로는 위협이 된다.1969년 노벨상 위원회는 베케트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면서 선정 취지를 "소설과 연극에 있어서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그의 글 속에서 현대인의 궁핍함이 고양감을 획득하게 된다"라고 설명한다. 얼핏 보면 베케트의 작품이 고양감을 준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베케트는 대담록 '세 가지 대화'(1949)에서 미술에 대해 언급하면서 "표현할 것이 없으며, 표현의 도구도 없고, 표현의 근원도 없으며, 표현할 힘도, 욕망도 없으나, 표현의 의무만 있는 것의 표현"을 선호한다고 말한 바 있다.베케트는 전달 능력도 없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서 말할 거리도 없는 초라한 인간 세상에 대한 표현 의무를 완수한다. 인용문은 작가의 상황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그의 인물들의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노벨상 위원회가 지적한 '고양감'이 배어 나온다. 구원자 고도가 오지 않더라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나무 곁을 떠나지 않으며 어떻게든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전달하려고 애쓴다. 따라서 그들은 나름의 영웅성을 지닌다. 그들은 또한 삶이 아무리 이해 불가하고 부조리할지라도 매우 자주 웃음의 원천을 찾아낸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연금술사와 같다. 절망과 패배의 징후가 농후한 세상에서 그들이 웃음의 원천을 찾아낸다는 것은 부족한 인지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겉과 속의 다름을, 인간의 정체성의 균열을, 꿈과 현실의 차이를, 육체와 정신의 간극을 간파해내고 그것을 웃음으로 피어 올린다. 그런 점에서 베케트뿐 아니라 그의 인물들도 어두운 현실을 직면해내는 용감한 현대인이다.김소임 교수 (건국대 영어문화학과)공동기획: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김소임 교수는 건국대 영어문화학과에서 '영미 드라마' '미국의 이해' '영화이론의 이해' 등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에머리 대학교에서 '사뮈엘 베케트 연극의 공간 연구'로 박사학위로 받았으며 인문과학대학장, 현대 영미드라마 학회장, 동화와 번역 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베케트의 독특한 가치관과 연극적 구현뿐 아니라 현대 드라마 전반에 나타난 남녀 간의 갈등, 인종 갈등, 신화의 현대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대 연극뿐 아니라 고전 연극, 르네상스 연극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최근에는 영화와 페미니즘으로 연구의 폭을 넓혀 다수의 책의 기획과 편집에 참여하였다. 저서로는 '베케트읽기' '아일랜드, 아일랜드'(이하 공저), '퓰리처 상을 통해 본 현대 미국 연극' '영화로 보는 미국 역사' '문화로 읽는 페미니즘' '우리 안의 나쁜 여자' '영화로 보는 영국 역사'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부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존 왕'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사무엘 베케트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드라마' 'Krapp's Last Tape, 베케트 그리고 아일랜드' 외 다수가 있다.김소임 교수 (건국대 영어문화학과)
2023.08.04
[노벨문학상 산책] 가와바타 야스나리의'설국'…허무주의가 그려낸 선명한 아름다움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선정이유로 "일본인의 마음 정수를 뛰어난 감수성으로 표현하는 그 서술의 능숙함"을 꼽았다. 이러한 선정이유는 당시 69세였던 가와바타 문학 전체를 통괄하는 평가였기에 상당히 의미 있다고 하겠다. 이 평가에 부합하는 작품은 여럿 있을 터인데, '설국'은 첫 번째로 꼽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가와바타 자신도 '설국'에 대해 "해외에서 읽으면 회향의 마음을 가지게 한다"('독영자명')고 평하고 있어 일본적 분위기, 전통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와바타의 모든 작품이 '일본적'으로 평가해도 좋은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초기에 가와바타는 신감각파 작가로 활동했다. 신감각파의 목표는 표현의 혁신이었는데, 그 방법으로 서구문예에 의지하는 바가 컸다. 또한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영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시각이미지의 활자표현에도 다양한 관심이 많았고, 영화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1921년에 문단에 등단한 가와바타는 1926년에는 '이즈의 무희'로 대중적인 인기도 얻었다. 1931년에는 신심리주의 작가로도 활동했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와 모색을 거친 후 1935년부터 발표하게 된 것이 '설국'이고, 완성은 1947년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설국'은 그때까지의 가와바타의 문학적 경험의 축적을 자양분으로 삼아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마무라의 허무, 비현실적인 미 '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자 설국이었다'라는 일본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설국'의 서두 문구로, 현재에도 끊임없이 패러디되어 재생산되고 있다. 여기에서 터널은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인 설국의 경계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경계는 시마무라(島村)의 생활의 공간 도쿄와 설국을 나누는 것이며 일상과 비현실의 세계, 도시화와 전통의 세계를 구분한다. '설국'은 시마무라가 '설국'을 세 번 방문하며, 게이샤 고마코(駒子)와의 사랑, 신비로운 소녀 요코(葉子) 등과의 관계가 그려진 소설이다. 설국을 들어서며 묘사되는 차창에 그려지는 신비로운 소녀의 모습은 이 소설이 그려낼 미적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두운 차창에 비치는 환영 같은 비현실적 상징 미를 찾아 떠나는 것이 설국으로의 여행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마무라는 부모의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의 일은 서양무용에 대한 평론을 쓰는 것이었는데, 직접 무용을 보는 것이 아닌 사진, 그림을 보며 글을 썼다. 그는 원래는 일본무용계에서 활동하였는데, 무용계의 혁신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서양 무용계로 터를 옮겼다. 즉, 시마무라는 현실적인 움직임, 타인에 영향을 끼쳐야 하는 무게를 거부하며 생활하는 환영을 좇는 허무주의자인 것이다. 그의 생에 대한 그러한 태도는 '설국'에서 고마코를 대한 자세에도 드러난다. 고마코를 만나러 설국을 방문하였음에도 정작 그녀의 열정이 그를 향해 달려옴을 느끼면 설국을 떠나고 만다. 현실의 일상을 떠나 비현실의 세계를 찾아온 시마무라였지만, 설국에서의 관계에 충족하고 그것이 넘쳐 또 하나의 자신을 얽어맬 일상이 될 여지가 있으면 떠나버리는 것이다. ◆'헛수고'이기에 아름답다작품 첫 부분에서 시마무라가 '설국'을 향하는 목적은 '손가락이 기억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 여인은 고마코였다. 고마코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게이샤가 아니었다. 두 번째 방문하니 그녀는 게이샤가 되어 있었다. 시마무라와의 관계는 첫 번째 방문부터였는데, 방문횟수를 거듭할수록 그녀는 시마무라에게 열정적으로 다가온다. 고마코는 정혼자인 유키오(行男)를 위해 게이샤로 나섰다고 한다. 우연히 들른 그녀의 집에서 고마코의 담담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일기장을 본다. 관심 있는 공연, 하루하루의 일상들을 꼼꼼히 적어 내려 간 것인데 그것을 보며 시마무라는 '헛수고'임을 느낀다. 자신의 헌신적인 행위, 삶과 사랑에 열정적인 모든 것이 헛수고임을 알았을 터인 고마코를 보며 그녀의 삶이 헛수고이기에 아름답다고 감동하고 만다. 그녀의 시마무라에 대한 사랑 또한 '헛수고'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자신을 향해 뜨겁게 달려오는 그녀의 마음을 느낄 때 시마무라는 설국을 떠나버린다.◆'은폐'의 세상 '설국''설국'은 철저하게 시마무라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시마무라가 보고, 듣고, 느낀 것, 그가 알고 있는 것만이 그려진다. 예를 들어 시마무라가 설국을 떠나있을 때 설국의 상황은 독자들에게는 전혀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전지적 입장을 거부당하며, 독자들은 시마무라의 눈과 심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고마코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고마코와 요코, 유키오의 관계는 사실은 어떠한지 알 수가 없고 추측에 의존하게 만든다. 작품 속에 그려지는 것은 시마무라가 설국에 와서 본 고마코, 요코 그리고 설국의 자연과 풍속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설국'이라는 이야기는 반쪽이 숨겨진 모습으로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그런데 이 '숨김'의 방법은 서술 시점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의 창작 시기는 1935년부터 1947년에 걸쳐져 있는데, 그 시기는 일본의 전쟁 확장기 그리고 패전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시대상이라는 일상이 제거되어 있고, 지명조차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소설 창작에 관해 가와바타는 소설의 창작지와 배경이 니가타현의 '에치고 유자와(越後湯澤 )'임을 밝히고 있고, 작품에 그 지역의 자연과 풍속을 세세하게 그려냈다. 그러면서도 지명이 아닌 '설국'이라는 일반명사로 일관하고 있다. 이것은 시마무라의 일상제거와 같은 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서, 당시 질곡의 시간을 거쳤던 사회상을 '은폐'하는 것에도 유효하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설국'은 현실 세계의 에치고유자와 온천이면 안 되는 것이었다. 눈이 많이 쌓인 '설국'이라면 어디나 괜찮은 것이었고,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그 눈 속에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삶도 사랑도 시대도 모든 것이 뒤덮여 흰 눈의 세계로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뒤덮인 눈 속에서 시마무라의 눈과 심리를 통해 고마코의 사랑도, 요코의 신비스러움도 그리고 설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풍속도 선명하게 그려낸 것이 '설국'인 것이다. 정향재 교수 (한남대) 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현재 한남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일본 근현대문학을 전공했다. 세부전공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이다. 가와바타를 전공으로 삼은 것은 가와바타의 서정적이면서도 처연한 슬픔이 느껴지는 문장, 죽음을 다루는 독특한 시선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연구분야는 가와바타 문학과 주변예술, 특히 영화와 무용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그 외 일본 패전기의 문학자들의 인식, 원폭문학에 대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문학연구, 교육 이외에 좋은 일본문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번역자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할 희망을 가지고 있다.대표논문으로 '1930년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상-영화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설국과 그 시대 -은폐된 배경으로서의 공간과 시대성' '일본 현대문학에 있어서의 패전' 등이 있다. 번역으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원작 '잠자는 미녀'(현대문학), 하라 다미키의 '하라 다미키 단편집' 외 다수가 있다.
2023.07.07
[노벨문학상 산책] 아나톨 프랑스의 '페도크 여왕의 통닭구이 집'
서울대 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부르고뉴 대학에서 철학 D. E. A.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가톨릭대 강사로 서울대, 덕성여대 등에서 강의했다. 지은 책으로 '미셸 푸코, 말과 사물' '검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아프리카'(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헤르메스' '알코올' '카뮈를 추억하며' '광기의 역사' '유럽의 탄생' '성의 역사 1: 지식의 의지' '삼총사' '말과 사물'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 등이 있다.작가의 자아 쪼개 작중 인물 창조이상야릇 인물 통해 제도·도덕 비판소설 속 쾌락주의·회의주의 공존삶의 양면성과 균형감각 핵심주제1844년 4월16일 파리에서 태어나 1924년 10월12일 생시르쉬르루아르에서 죽은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1921년) 작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본명 프랑수아 아나톨 티보(Francois Anatole Thibault)는 무엇보다도 먼저 지칠 줄 모르는 독서가이다. 이는 서적상의 아들로 태어나 서점에서 자란 탓이다. 하지만 그의 폭넓은 독서와 박학은 창작에 약이 되면서도 동시에 독이 된 측면도 없지 않다. 다음으로 그는 참여 지식인이다. 드레퓌스 사건에 즈음하여 에밀 졸라와 함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의 대열에 합류한다. 그의 정치적 신조는 사회주의이다. 이는 그의 빈한한 출신에 비추어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끝으로 그는 1896년에 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주지하다시피 192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는 등 작가로서 출세하고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이다. 하지만 빛과 함께 그림자가 드리우듯이 살아생전에는 이상적인 프랑스 문인으로 추앙받았지만 20세기 초부터는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기는커녕 비꼼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 낮은 평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폭넓은 박학, 재치와 비꼼, 사회 정의에 대한 열정, 명료한 고전적 문체 등은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페도크 여왕의 통닭구이 집'은 아나톨 프랑스의 중기를 대표하는 소설이다. 물론 이야기 자체는 몹시 이상야릇하다. 우스꽝스러운 장면들과 특이하고 엉뚱한 인물들의 연속이다. 이런 것들이 정말로 진지하게 이야기되는 만큼 도리어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작중인물들 사이의 대화를 매개로 아나톨 프랑스는 특히 제도와 도덕, 또한 탐욕스러운 성직자, 수다스러운 학자 등을 비꼬고 조롱한다. 이 작품은 그가 삶의 전환기에 쓴 까닭에 이 작품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가 유난히 두드러진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아나톨 프랑스의 문학으로 들어가는 훌륭한 입구이다.1891년부터 카바예 부인이 자신의 살롱에 더욱더 열렬히 아나톨 프랑스를 맞아들이면서 아나톨 프랑스의 부부관계는 파탄에 이른다. 1893년 8월2일 이혼 판결이 나지만 그 전에 이미 아나톨 프랑스는 카야베 부인의 저택으로 옮겨와 살면서 그를 위해 쾌적하게 개조된 2층 서재에서 작업한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열정적으로 소설을 집필하여 1892년 10월부터 '에코 드 파리'지의 문예란에 연재하기 시작하는데, 이 소설이 바로 '페도크 여왕의 통닭구이 집'이다. 이듬해인 1893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 작품은 우선 아나톨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남자와 작가로서 맞이한 이중의 실존적 위기가 이 소설의 탄생 배경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자신에게 자기성찰의 거울이 된다. 아나톨 프랑스는 이 거울 속의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성찰한다. 다음으로 이 작품은 아나톨 프랑스의 창작 방법이 여실히 구현된 소설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소설들은 대체로 그의 박학, 책에서 얻은 지식, 막대한 교양으로부터 구상된다. 이 소설에서도 신비주의에 관한 많은 자료가 비춰 보인다. '질 블라스' '마농 레스코' 등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도 엿보인다. 그렇지만 자료가 상상력에 의해 변형하고 작품의 틀이나 뜻에 맞게 변용된 것이다.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상상하는 것이 전부다"라는 그의 말은 박학에 기초한 구상을 무조건 모방이나 표절로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을 밑받침한다. 끝으로 이 소설의 주요한 작중인물들이 모두 아나톨 프랑스의 초상을 구성한다. 달리 말하자면 아나톨 프랑스는 자기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각 부분을 하나의 작중인물로 만들어 제시한 것이다. 이처럼 자아를 쪼개서 작중인물을 창조하는 방법이 이 소설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난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가장 아나톨 프랑스다운 소설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 작품을 전후로 그의 삶과 글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아나톨 프랑스의 모든 작품에서 중간축이 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소설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넉넉히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페도크 여왕의 통닭구이 집'에서도 그의 다른 소설들에서처럼 삶이 행복하다는 시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삶에 대한 아나톨 프랑스의 이해 방식을 알려면, 다스타락과 쿠아냐르라는 두 대조적인 인물을 참조하는 것이 적절하다. 아나톨 프랑스는 언제나 야릇한 것에 끌림과 동시에 맞서 싸웠다. 반대 방향의 두 감정이 공존한 셈인데, 이것들이 두 작중인물로 구현된 것이다. 이처럼 아나톨 프랑스는 삶의 모든 측면을 양면성의 연속으로 지각한다. 어느 주제에서나 양면성의 논리를 펼친다. 이러한 양면성의 논리가 바로 회의주의의 핵심이다. 그의 소설 세계는 늘 양면성을 내보인다. 논리성과 합리성을 지향하면서도 많은 환상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어떤 주제에서건 양면이 있다. 그 양면 사이에서 아나톨 프랑스는 늘 균형감각을 유지한다. 이로부터 그의 세련되고 열정적인 회의주의와 계몽되고 차분한 쾌락주의가 빚어져 나온다. 이처럼 삶과 꿈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그의 문학은 진부해 보이기는 하지만 가장 덜 기만적인 것도 사실이다.그렇지만 아나톨 프랑스에 대한 사후의 평가는 박하다. 그는 고전적이고 피상적인 문체의 관변 작가, 이성적이고 타협적이며 자기 만족적이고 득의양양한 작가라는 선입견이 단단히 자리 잡은 듯하다.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그가 아카데미 회원이 된 점이나 노벨문학상을 받은 점에 대한 반작용일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 직후에 기존의 가치와 관습을 뒤집어엎으려는 젊은 초현실주의자들의 눈에 아나톨 프랑스는 전형적인 구시대 작가로 비친 것이다. 그 이후로도 이러한 평가절하는 계속되고 심지어 격화된다. 가령 창조적 상상력이 부족하고 모방이나 표절이 눈에 띈다는 비판도, 감수성의 깊이가 없고 문체가 너무 반질거린다는 평가도 근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아나톨 프랑스의 문체는 때로는 부드럽고 상냥하며 때로는 음울하다. 잔혹한 반어와 해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인간성, 지식, 역사에 관해 그가 내보이는 근본적인 회의주의의 소산으로서 삶의 양면성 사이에서 그가 줄곧 유지하는 균형감각과 함께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장점이다.이규현 교수 (가톨릭대)공동기획: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윤아 기자 baneulha@yeongnam.com이규현 교수 (가톨릭대)
2023.06.09
[노벨문학상 산책] 테오도어 몸젠의 '로마사'
카이사르는 두 명의 작가를 통해 세상에 더 널리 알려졌다. 첫 번째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면, 두 번째는 독일의 역사가 테오도어 몸젠(1817∼1903)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줄리어스 시저'가 카이사르를 권력욕의 화신으로 그려냈던 것과 달리 몸젠의 '로마사'는 카이사르를 역사적 사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세계정신의 집행인으로 묘사했다. '로마사'의 파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험과학으로서 역사학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자기 시대의 역사가들과 다르게 몸젠은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었다.1902년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발표는 그 자체로 스캔들이 되었다. 세간의 예측과 달리 톨스토이가 아닌 역사가 몸젠이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됐기 때문이다. 일부 문인은 격하게 반발했다. 바로 전 해인 1901년 제1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프랑스의 시인 쉴리프뤼돔으로 결정된 직후 스웨덴 예술학술위원회에 소속된 42명의 회원이 톨스토이에게 공개 사과 서한을 발송한 터였기 때문에 파장이 더 컸다. 34명의 후보자 중에는 톨스토이 외에도 마크 트웨인, 에밀 졸라,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윌리엄 예이츠 같은 거장들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위원회는 몸젠을 선택하면서 그의 '로마사'가 "역사서술의 예술적 경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탁월한 거작"이라고 밝혔다. 몸젠을 후보로 추천한 독일의 베를린학술원은 그가 "풍요로운 정신을 보유한 개인, 예술가적 경지의 문필가, 생동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조각가의 생생하고 예리한 특질을 매력적인 형식을 통해 보여주었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했다. 몸젠의 '로마사'는 내용의 완결성만이 아니라 특유의 형식미에서도 인정받은 것이다. 문학과 중첩되지만 동시에 문학과는 구별되어야 하는 역사 내러티브의 강점을 한껏 살렸다는 뜻이다.몸젠은 문학 소년이었고, 자기 시대의 직업적 역사가들과 달리 문학적 수사의 활용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문학과의 친연성이 노벨상 수상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역사의 문학화나 역사의 정치-도덕화만으로는 몸젠이 누렸던 인기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역사책을 찾는 사람들의 기대가 역사소설 독자들의 기대와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독자는 몸젠에게서 귀스타브 플로베르나 월터 스콧의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무엇을 느꼈다. 몸젠은 독자가 역사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사실보다 사실효과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원문 인용과 각주를 통해 복잡한 사실관계를 빼곡하게 배치하는 데 힘쓰지 않았다. 그 대신 몇 개의 원칙을 서술 속에서 뚜렷하게 구현했다.몸젠의 로마사서 묘사한 카이사르역사적 사명을 위해 희생한 인물로마 공화정의 위기·변화에 주목 역사·문학의 경계 넘나들며 서술무엇보다 역사를 관통하는 법칙을 독자들에게 반복적으로 환기시켰다. 몸젠은 "올바른 역사연구란 높은 곳에 올라서서… 필연적인 것의 불변하는 법칙들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복잡한 사태를 원리적으로 명료하게 파악하려는 독자의 욕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나 칸트의 도덕률을 연상케 하는 역사 진행의 법칙, 곧 변화의 정률을 제시했다. 둘째, 몸젠은 변화의 동인들을 다양한 시간의 언어들을 통해 재현했다. 500년의 로마 역사에서 그가 가장 주목한 것은 공화정의 위기였다. 급변과 위기는 폭풍 같은 자연현상의 비유로 재현했다. 변화의 시점과 계기는 탄생과 단초를 통해, 질적 변화는 전환점과 분수령 같은 단어를 통해 묘사했다. 변화의 범위와 수준, 속도와 방향을 판단할 때는 개혁과 혁명, 발전과 진보가 교차하면서 등장했다. 이처럼 시간과 연계된 언어들이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용어들과 결합되어 역사의 교직(交織)을 표현했다. 저항, 대립, 갈등, 내전이 바로 그것이다. 다루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사건의 특수성이나 지역적 특성 또는 시간적 변화가 소거된 추상적 성격의 개념어 출현이 잦아졌다. 계급, 신분, 농업경제, 화폐경제, 장원경제 같은 표현이 그런 경우다.셋째, 시간의 계기 표현과는 거리가 먼 언어들도 종종 활용했다. 매우 낮은 수준의 변화, 또는 변화의 부재를 환기시키는 표현들이 등장했다. '로마사' 제1권 후반부에서 몸젠은 로마의 민중이 "통치 세력의 개선 불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몸젠은 공화정의 몰락 원인을 강하게 고발했다. '개선 불가능성'은 좀처럼 변하기 어려운 구조(structure)의 존재를 암시한다.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은 지중해 세계의 지리환경만이 아니었다. 가내경제 같은 경제적 생활양식, 사람들의 집단적 심성 역시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도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젠은 잘 알고 있었다.몸젠의 '로마사'에는 세 종류의 시간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지리와 심성을 다루는 거시적 내러티브에서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심층의 세계를 건축과 지질학의 용어로 묘사했다. 수세대 이상의 시간 범위를 취급하는 중간 수준의 내러티브에서는 변화의 원인과 양상, 영향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구체적 인물들의 의도와 행위를 다루는 미시적 내러티브의 차원에서는 이렇게 서술했다. "카이사르는 전위부대의 최선봉에 서서… 그 작은 개천(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는 9년 동안 떠나 있던 조국 땅을 다시 밟는 것과 동시에 혁명의 길에 발을 디뎠다." "주사위가 던져졌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카이사르에 관한 몸젠의 서술은 사건사 기술로 끝나지 않는다. '로마사' 전체에서 사실상의 주인공인 카이사르는 미시-중간-거시 내러티브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서술의 핵심 장치다. 몸젠에게 카이사르는 한갓 로마의 숙원을 해결한 민족사적 위인이 아니었다. 그 어떤 탁월한 개인과 민족도 실현하지 못한 지중해 세계의 염원을 해결하고자 했던 세계사적 개인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몸젠은 카이사르에 대한 몸젠의 상찬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의 절반도 안 되는 5년 반 동안 로마의 왕으로서 변속장치를 가동했다. … 카이사르는 현재와 미래를 위해 세계의 운명을 정돈했다."최호근 교수 (고려대 사학과)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최호근은 고려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독일 근현대사와 역사이론을 전공했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교에서 막스 베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제노사이드와 홀로코스트에 관한 비교연구를 수행했고, 부담스러운 과거사 교육을 위해 힘썼다. 국내외의 역사적 장소들을 탐사하면서 기억문화와 기념문화에 관한 비교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는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의 문화적 영향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트랜스내셔널 접근을 시도하면서 한국 민족주의의 문화적 형성과정을 탐색하고 있다. '사총' '독일연구' '서양사론' 등 여러 학술지의 편집을 담당했다. 주요 저서로 '막스 베버와 역사주의'(독문, 2000), '서양 현대사의 블랙박스 나치 대학살'(2006), '독일의 역사교육'(2009), '기념의 미래'(2019), '역사 문해력 수업'(2023)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독일 역사주의'(1992), '원치 않은 혁명 1848'(2006),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공역, 2007),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2020) 등이 있다.게티이미지뱅크최호근 교수 (고려대 사학과)
2023.05.12
[노벨문학상 산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스페인어권 넘어 20세기 후반 세계 문학 대표 작가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세월호가 침몰한 이튿날인 2014년 4월17일 성목요일에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곧 서거 9주년이 되는 그는 20세기의 세르반테스라고 불렸으며,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현대 예술 사조의 효시이자 백미였다. 그는 유명 운동선수나 영화배우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며 세계의 독자를 사로잡았고 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작가였다. 그러나 그가 평생 추구한 것은 인기나 명예가 아니었고, 노벨문학상도 아니었으며, 불후의 명작을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글을 쓴 작가였다.최근 60년 동안 세계 문학을 살펴보면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명성에 도전할 수 있는 작가는 그 어느 나라에도 없었다. 20세기 문학을 살펴보면 이런 현상은 쉽게 확인된다. 문학계가 이의를 달지 않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조이스, 프루스트, 카프카, 포크너, 울프 등은 모두 20세기 전반의 작가들이다. 20세기 후반에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유일하다. 그래서 1967년에 출간된 그의 대표작 '백년의 고독'은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세계화'된 소설이자 현대의 고전으로 여겨진다.◆마술적 사실주의 : 상상 초월하는 실제 현실 기록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썩은 잎'(1955)을 시작으로 마지막 작품인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2004)까지 모두 10권의 소설과 4권의 단편소설집을 발표했다. 이 중에서 세계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소설은 '백년의 고독'(1967)과 '족장의 가을'(1975) 그리고 '콜레라 시대의 사랑'(1985)이다. '백년의 고독'은 가장 널리 알려졌고, 가장 높이 평가받으며, 가장 많이 모방되고, 가장 많은 찬사를 받는다. 한편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세계 문학에서 가장 훌륭한 러브스토리 중의 하나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족장의 가을'은 가장 읽기 어렵고 가장 이해하기 힘들지만 시적인 소설의 대표라는 평가를 받는다.'백년의 고독'은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그를 하루아침에 유명작가로 바꿔준 작품이다. 20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6세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과 마콘도라는 허구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문체를 구사하고, 훌륭한 문학작품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100년의 역사가 흐르는데,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묘사하는 사건들은 대부분 부엔디아 가문의 삶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이루는 탄생이나 죽음, 혹은 결혼이나 사랑들이다. 부엔디아 가문의 몇몇 남자들은 거칠고 방탕하며 사창가를 전전하면서 불륜의 애인을 갖기도 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조용하고 고독하다. 그들은 방에 틀어박혀 조그만 황금 물고기를 만들거나 오래된 원고를 열심히 연구한다. 이 작품에서 부엔디아 가문뿐만 아니라 마콘도는 근대라는 힘에 파괴된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마콘도에 도착하고, 바나나 농장은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결국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은 미국인들의 비인간적 대우에 분노하여 파업하고, 바나나 농장 지주 편을 들던 군부는 수천 명의 노동자를 학살한다. 그들의 시체는 바다에 버려지고, 4년 11개월 2일 동안 끊임없이 비가 내리면서 마콘도의 멸망을 재촉한다. 이제 살아남은 부엔디아 가족들은 외부세계와 고립된 채 근친상간을 범한다. 1982년 10월21일에 스웨덴 아카데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선정하고, 그해 12월에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스톡홀름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이란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을 읽는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문학 표현 양식뿐만 아니라 가공할 만한 현실 때문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자기 작품은 종이 위의 현실이 아니라 불행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창조물의 실제 현실이며, 그것이 창작의 샘물이라서 상상력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미국과 유럽 비평가들은 마술적 사실주의를 현실과 환상의 혼합이라고 정의하지만, 그것은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 그 자체라는 것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열광하는 이유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대부분의 우리 독자들에게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항상 그의 대표작인 '백년의 고독'을 통해 연상된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아직도 우리에게 생경한 '마술적 사실주의'의 작가, 혹은 환상과 현실을 적절히 배합한 우리의 현실과는 무관한 외국 작가로만 다가올 뿐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종종 한국이 등장한다. 특히 그가 1954년 12월에 쓴 '한국에서 현실로'란 기사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콜롬비아 병사들의 고통과 그 고통의 이미지를 다룬다. 이것은 '백년의 고독'에서 문제적 인물로 등장하는 대령의 완고함이나 뿌연 먼지로 뒤덮인 기차의 이미지가 한국전쟁 참전 용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글이다.가르시아 마르케스는 20세기 현대 문학사에 여러 족적을 남겼다. 특히 현실과 환상의 혼합보다 상상이 때론 현실보다 정확하며, 현실이 때론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백년의 고독' 후반부에 나오는 바나나 농장 대학살 사건이다. 작가는 그 일화를 구체적인 자료 없이 상상으로 썼지만, 이후 콜롬비아 정부가 이 사건을 재조사하면서 작가가 상상으로 제시한 수치와 내용이 현실에 매우 근접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또한 이 사건은 현실이 너무나 가공할 만하기에 비현실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인들이 '소설'을 '거짓말'과 동일시하는 지금,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소설이야말로 거짓으로 은폐된 현실의 가면을 벗길 수 있는 도구임을 보여준다. 그것이 아직도 그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송병선 교수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에서 라틴아메리카 소설과 스페인어 통번역 관련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여러 소설을 번역했으며, 그의 작품에 관한 많은 글을 학술지와 문학잡지에 발표했다. 또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마누엘 푸익의 주요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은 책으로 '보르헤스의 미로에 빠지기' '영화 속의 문학 읽기'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한국 전쟁' '붐 소설을 넘어서' 등이 있다. 제11회 한국문학번역상을 받았다.현재 1980년 이후의 라틴아메리카 소설과 연극이 남아메리카에서 벌어진 '더러운 전쟁'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리고 21세기 문학의 사회적, 정치적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다.송병선 교수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2023.04.14
[노벨문학상 산책] 오에 겐자부로 '만엔 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1935~)는 1994년 일본문학사상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열살이 되던 해에 패전을 맞이한 오에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접한 민주주의 교육을 통해 '주권재민'과 '전쟁 포기'의 약속이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는 기본 모럴이 되었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전후 민주주의자'로 규정하고 평화헌법에 역행하는 움직임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해온 오에인 만큼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일왕이 수여하는 문화훈장과 공로상을 거부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이러한 오에의 정치적 자세는 노년기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헌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한 모임, 핵무기와 핵 폐기, 반원자력발전소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도쿄대 불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부터 작품활동을 해온 오에는 '만년양식집(晩年樣式集)'(2013)을 마지막으로 현재 소설 집필은 중단한한 상태다. 초기에는 점령된 일본의 상황과 전후 청년들의 내면을 보이지 않는 벽에 감금된 상태로 보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무기력한 청년상을 주로 그려냈다.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난 장남과 피폭지 히로시마와 미군기지 섬 오키나와 취재는 오에 문학에 커다란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그의 문학의 근간에는 국가주의와 천황제 문제, 핵 문제, 히로시마와 오키나와, 장남과의 공생문제, 미래사회의 환경문제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장남의 출생 이후 개인적인 일상에 대한 서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지만, 그의 작품은 언제나 현실적인 문제와 결부되어 있고, 현대사회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문제로 연결되어 인간 회복과 인류구원의 비전을 제시한다. 패전 이후 혼란한 日 근현대사 함축…폭력으로 점철된 역사 속 처절한 갈등미쓰사부로·다카시 형제 중심으로 다양한 지옥 그리며 구원의 가능성 질문'만엔 원년의 풋볼(万延元年のフットボ一ル)'(1967)은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에서 대표작으로 꼽은 작품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시코쿠의 숲속 골짜기마을'은 오에의 고향이 모델이 되고 있고, 단절과 고립의 공간이었던 초기작과 달리 '만엔 원년의 풋볼'에서는 100년간의 일본 근현대사를 담은 역사적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이후 독특한 지형적 구조와 함께 일왕 중심의 신화체계를 상대화시키는 독자적인 신화공간으로 형상화되는 등 윌리엄 포크너의 가상의 공간 요크나파토파 카운티와 같이 오에문학의 주요 토포스로 기능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지향하며 고향으로 돌아온 네도코로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의 이야기는 만엔 원년의 농민봉기를 주도한 증조부 동생의 봉기 후의 삶을 둘러싸고 그 진상을 밝히는 형태로 전개된다. 다카시는 증조부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봉기의 주동자였던 동생을 살해한 것으로, 미쓰사부로는 증조부가 그의 동생이 고치현으로 도망치도록 도와주었고, 도쿄로 간 증조부의 동생은 개명하여 메이지 신정부의 고관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두 사람의 기억은 둘째 형 S의 죽음에 관해서도 어긋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큰형은 자발적으로 입대해 전사했고, 예과연습생에 지원한 S형은 전쟁이 끝난 후 귀환하지만, 패전 직후의 혼란 속에 발생한 조선인부락 습격 사건에 휘말려 죽고 만다. 다카시는 이런 S형에 대해 습격을 주도하다가 죽은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고, 미쓰사부로는 조선인부락 습격에 동참한 무법자들이 조선인을 죽이자,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체구도 작고 가장 약한 S형이 희생양이 된 것이라 믿고 있다. 이와 같이 상반되는 기억을 둘러싸고 전개된 두 사람의 논쟁 과정을 통해 소환되는 것은 네도코로 집안의 100년의 역사 속에 죽어간 자들, 즉 100년 전 농민봉기의 지도자였던 증조부 형제, 일본제국의 아시아 침탈기에 만주에서 정체 모를 일을 하다가 죽은 아버지,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필리핀에서 전사한 맏형, 패전 직후 조선인부락을 습격하다가 죽은 S형, 자살한 여동생, 광기에 사로잡혀 죽은 어머니다. 그리고 다카시가 증조부의 동생과 S형에 자기동일화함으로써 증조부의 동생-S형-다카시로 연결되는 네도코로 집안의 계보는 1860년(만엔 원년의 농민 봉기)-1945년(태평양전쟁)-1960년(60년 안보투쟁)이라는 역사적 분기점을 새기고 있다. 이 100년의 역사는 '폭력적인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역사 속에 죽어간 자들은 물론 안보조약개정 반대투쟁 현장에서 진압하는 경관대가 아닌 시위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며, 귀향한 후에는 조선인이 경영하는 슈퍼마켓 약탈을 주도하고 약탈의 책임을 지듯 자살해 버린 다카시의 삶 또한 폭력 그 자체이다. 그리고 초등학생 무리가 던진 돌멩이에 맞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미쓰사부로, 머리에 혹을 달고 태어나 절개수술을 받아야 했던 신생아, 그런 아기를 출산한 충격으로 고통받는 나쓰코, 안보투쟁 현장에서 머리를 다친 후 경증의 정신이상을 앓다가 결국 기괴한 형태의 자살을 해버린 친구와 같이 비폭력·반폭력적인 인간도 "폭력적인 것"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폭력을 행사하는 입장이건 당하는 입장이건 저마다 폭력으로 인해 "내부의 지옥을 견디고 있는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오에는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에게 각각 반폭력적이고 비행동적이며 방관자적인 인물(사회에 용인되는 인물)과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행동형 인간(사회에서 배제되는 인물)이라는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이들이 골짜기마을에서 갈등하고 충돌하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인간사회의 양상을 노정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상반되는 두 성향을 함께 지닌 한 인간의 내면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카시의 경우 폭력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욕구와 자기처벌의 욕구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한다. 그가 폭력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동생과의 근친상간과 그런 여동생을 자살로 몰고 간 죄의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죄, 즉 숨겨왔던 '진실'을 폭로한 후 다카시가 선택한 길은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스스로를 처벌하는 것이었다. 증조부 동생의 봉기 후의 삶에 대한 전모가 드러나는 것은 네도코로 집안의 100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다. 증조부의 동생은 봉기 후 동지들을 저버리고 혼자 도망친 것이 아니라 곳간 지하에서 유폐생활을 해왔고, 일생 전향하지 않고 메이지 초기의 두 번째 폭동을 성공시킨 후에도 20년 넘는 유폐생활 끝에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다카시는 증조부의 동생이 에도막부의 과도한 세금과 부역에 저항하여 일으킨 농민봉기를 지도한 것처럼, 마을의 경제적 지배자인 '슈퍼마켓 천황'에 맞서 '상상력의 폭동'을 일으켰고, 슈퍼마켓 약탈에 대한 책임을 지듯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러한 다카시에 대해 미쓰사부로는 '진실'을 외치고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관철한 다카시는 자신의 '지옥'을 극복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증조부의 동생과 다카시에 대한 자신의 '판결'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모든 사태를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관조하기만 해왔던 자신이 이제 '재심'을 받을 차례라 생각한다. '재심'의 판결은 네도코로 집안의 살아남은 혈족으로서 미쓰사부로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소설이 발표된 1967년은 일본의 원호가 메이지로 개원한 지 100년을 맞이하는 1968년, 즉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인 근대화에 성공한 메이지유신을 기념하기 위한 '메이지 백년제' 준비로 술렁이던 시기다. 과거의 찬란했던 제국의 영광에 열광하던 1967년, 오에는 네도코로 혈족의 100년의 역사를 통해 독자의 시선을 부(負)의 역사로 향하게 하고, 그러한 역사를 살아가는 현대 일본인의 구원의 가능성을 독자 스스로 모색하도록 하고 있다. 현대 일본인의 구원의 가능성은 그들이 폭력으로 점철된 그들의 근대사와 어떤 식으로 마주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소명선 교수 (제주대 일어일문학과) 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소명선 교수는? 부산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일본 규슈대학 대학원에서 오에 겐자부로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일본근현대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한 일본현대문학을 연구의 중심축으로 하면서 오키나와문학과 재일조선인문학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재일조선인 관련 외교문서와 일본문학 속의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오에 겐자부로론: '신화형성'의 문학세계와 역사인식', 역서로는 '일본 근현대 여성문학선집 5 노가미 야에코', 공저로는 '해방 이후 재일한인 외교문서 해제집' '재일조선인 마이너리티 미디어 해제 및 기사명 색인' '재일조선인 미디어와 전후 문화담론'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1950년대의 일본열도가 본 한국전쟁' '오에 겐자부로의 '치료탑'과 '치료탑 혹성론' '현월 문학의 토포스에 관한 연구' '사키야마 다미론-동아시아 여성서사를 연결하는 문학적 상상력' '오키나와문학 속의 일본군 위안부 표상에 관해' 등이 있다.소명선 교수 (제주대 일어일문학과)
2023.03.17
[노벨문학상 산책]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돼지머리 악마에서 미지의 신으로
윌리엄 골딩은 1983년에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상은 보편적 대상에게 포괄적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윌리엄 골딩이 보편적 인간을 위해 얼마만큼이나 보편적 관조를 유발했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존 밀턴이 '실낙원'의 사탄을 통해 '악이 나의 선'이라고 말함으로써 보편인간 안에 내재된 보편적 현상을 묘사했다면, 골딩은 그 보편적 양태를 문학적으로 잘 구상화한 작가이다. 대가들이 수행하는 역작이 일견 용이한 작업과정을 통해 태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상 그것은 지난한 세월을 통해 얻어진 농축된 능력의 산물이다. 골딩에게도 42세에 첫 작품이 출판되기까지, 어렵사리 교사로 취업했다가 사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장교로 제대하여 다시 교사로 복직한 후 불편한 교사 생활을 하면서 거쳐 온 긴 습작의 기간이 있었다. 전쟁의 참상 피해 런던 떠난 소년들무인도에 불시착하면서 고립돼전쟁보다 더 큰 절망감·두려움명분없이 서로를 죽이게 만들어소설 통해 인간의 악성 구체화이성·神마저 무력해지는 현실악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지근원적 질문 독자들 몫으로 남겨그러나 인간의 보편 악성을 구상화하는 작업이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힘겨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분투하며 제어해야 하는, 그를 괴롭혀 왔던 그 자신의 악성을 분출하듯이, 혀(tongues)가 달린 타자기를 두들겼다. '파리대왕'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악성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 알고 싶었고, 그 극점까지 다다르면 혹 중화될 수 있는 것인지, 거기에 버려두고 올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하였다. 그 후, 골딩은 계속해서 어두운 존재들을 만들어 내어 자신을 투영하였다. '파리대왕' 이후 전대미문의 폭력성을 지닌 호모사피엔스 집단을 '상속자 (The Inheritors)'에서 내보였고, '자유낙하 (Free Fall)'의 새미(Sammy)를 통해 기질대로 사는 것은 인간의 어두움에 대한 반영이며 자유를 상실한 삶이라는 것을 묘사했고, '보이는 것은 어두움 (Darkness Visible)'에서는 마티(Matty)를 중심으로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인간 군상들이 편재하고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1983년 그의 노벨상 수상은 그의 소설 경향이 보편인간의 어두운 보편현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 근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 1963년에 영화로 상영된 '파리대왕'의 시각적 잔상이 그의 수상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노벨상 위원회는, 골딩이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신화의 다양성과 보편성으로 당대의 인간조건을 조명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노벨상 수상의 근거로 설명하였다. 골딩은 자신이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것을 인지하였다. 그는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그 사실을 언급했고 자신은 사실 낙천가라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골딩은 자신이 이해하는 한 인간에게 있는 보편적인 결정론적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의 사후 발표작인 '더블텅 (The Double Tongue)'에서 골딩은 자신을 귀찮게 한 신에 대해 존재론적 질문을 한다. 가족 내에서 온갖 천시를 받아 오던 아리카(Arieka)는 아폴로 여사제가 된 후에 사제로서 신의 말을 전달하는 직임을 맡게 된다. 그러나 '더블텅'은 신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암시한다. 아리카가 '신의 혀'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두움이 난무하는 내면세계를 가진 사람들은 여사제 아리카에게 집중하고 제단들 사이에 그녀의 석상을 만들어 세우려 한다. 당시 집필 경향상 골딩은 이 미완의 작품을 200페이지로 마무리 지을 계획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이는 것은 어두움' 처럼 2~3부작으로 집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혹 100페이지 이상 더 집필할 수 있었다면 어떤 전개를 했을까? 골딩은 그의 독자들을 어디로 데려가려고 했을까? '파리대왕'에서, 전쟁의 참상을 피해 런던을 떠난 13세 이하의 소년들이 낙원을 상징하는 산호초 섬에 떨어진다. 그러나 근거 없는 집단적 두려움에 몰입되어 소년들은 그들이 만든 나무창으로 동료 소년 샘을 찔러 죽이고,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성 증오에 몰입된 소년들이 바윗돌을 굴려 동료 소년 피기를 죽인다. 그리고 명분이 분명해지지 않은 채로 떼를 지어 동료 소년 랄프를 죽이려 달려든다. 랄프는 어디로 도주해야 할까? 악마를 상징하는 돼지머리 파리대왕이 '어디로 가든 소용이 없다'며 샘을 다그친다. 샘은 어두움을 벗어나고 싶지만 돼지머리 때문에 소용이 없는 일이다. 랄프가 사력을 다해 도주하던 중 해변에서 만난 흰색 제복의 해군 장교는 불바다가 된 산호초 섬을 단지 구경거리로만 여기고, 이 섬에서 야만인이 되어버린 소년들의 행동을 그저 전쟁놀이의 표현 방식쯤으로 이해한다. 랄프는 갑작스러운 긴장해소와 함께 죽음을 당한 피기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다른 소년들도 덩달아 흐느낀다. 화염이 혀처럼 치솟고 돼지머리가 있는 무인도에서 바라볼 대상은 흰색 복장의 장교뿐이다. 그러나 흰옷의 해군 장교는 이들의 안녕문제, 상황파악, 자초지종을 알아봐야 할 장교로서의 책무에 관심이 없다. 그에게는 소년들을 쳐다보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할 뿐이다. 못 본 체하고 싶다. 골딩은 인간들의 시선을 어디로 가져가려는 것일까? '더블텅'에서 인간들은 눈에 보이는 아리카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자신이 신의 말을 전달하는 일(oracle)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골딩은 '파리대왕'에서의 해군장교도 소용이 없는 존재라고 제시해 놓았다. 아리카 스스로도 자신이 소용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두운 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골딩의 인간은 시선을 어디로 향해야 하나? 결국 아리카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신에게 시선을 돌리라고 요청한다(TO THE UNKNOWN GOD). 골딩은 1993년 그의 최종작품에서 이 미지의 신을 독자들에게 밀어 놓았다. 이것이 보편인간들이 처한 보편조건인가? 악성에 시달리거나 악성을 자가당착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편이 되어버린 21세기의 보편인간은 이 보편조건에서 어디로 시선을 향해야 할까? 이석광 경상국립대 영어영문학부 교수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이석광 교수는? 이석광 교수는 경상국립대 영어영문학부에서 20세기 21세기 영국소설, 영미비평이론, 영미문화, 고대중세근세 영국문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영어로 출판된 문학작품을 주제별로 접근한다. 비평이론을 인식하되 주로 사회, 역사, 문화, 정치, 철학, 장애인 인권, 환경, SDGs 이슈 등의 관점으로 비평논문을 기고한다. 주요 경력은 영미어문학회 회장, 동서비교문학회 부회장(현 평의원), 현대영미어문학회 부회장, 경상국립대 국제어학원장, 경상국립대 인문학연구소장(차기) 등이다. 최근 논문으로는 'A Neurotic Narrator in Julian Barnes' The Sense of an Ending: Time You Wear on the Inside of Your Wrist', 'Reading a Novel, Speechless: Becoming Harriet, a Girl with Cerebral Palsy; through the Lens of Irritation and Nussbaum's Capabilities, Children's Literature in Education' 등이 있다.이석광 교수 (경상국립대 영어영문학부)
2023.02.17
[노벨문학상 산책] 가즈오 이시구로 '지난날의 잔재'...'달링턴 홀'에 바친 한 집사의 인생…그의 삶은 가치 있었을까
이시구로에게 부커상을 안겨준 이 소설의 원제는 'The Remains of the Day'이다. 송은경은 2009년 '남아 있는 나날'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번역서를 발간하였다. 필자는 본 소설을 논의한 학술논문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소설의 형식 및 자기기만과 성찰로 이어지는 과거에 대한 향수라는 소설의 정조에 주목하여 '지난날의 잔재'로 제목을 옮겼다. 이 글에서는 국내에서 출간된 역서의 제목으로 이시구로의 소설을 지칭하기로 한다.부친 임종때도 주인 시중 들던 스티븐스그의 기억 속 자랑스럽던 주인의 모습6일간의 여행 통해 다시 돌아보게 돼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깊은 성찰 돋보여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인종·언어적 정체성 뛰어넘는 문체 '백미'가즈오 이시구로(1954~)는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계 영국 작가이다. 이시구로의 소설은 "위대한 정서적인 힘"으로 우리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환상과 "그 아래의 심연을 드러낸다"고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를 밝혔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났으나 1960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던 이시구로는 일본계 영국 작가라는 이국성으로 처음 주목받았으나 점차 인종적 정체성과 언어의 국지성을 넘어서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로 세계 문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1982년 첫 소설 '희미한 언덕 풍경(A Pale View of Hills)'부터 2021년 발간된 '클라라와 태양(Klara and the Sun)'에 이르기까지 이시구로는 폭력적인 역사와 불안정한 삶의 조건 앞에 선 개인이 감당해야 할 불안과 고통, 희망과 좌절, 우정과 사랑에 대해 삶의 조건을 수용하거나 이에 저항하는 선택에 대해 깊이 숙고한다. 대체로 간결하고 정돈된 문체를 구사하는 이시구로는 이러한 문체 아래 숨겨진 복잡하게 얽힌 감정의 타래를 탁월하게 펼쳐낸다. 일본계 영국 작가라는 특이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이시구로는 "영국보다 더 영국적"인 소재를 다룬 그의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로 잘 알려져 있다. '남아 있는 나날'은 영국의 전통적인 장원저택 달링턴 홀을 배경으로 전형적인 영국 신사인 달링턴 경에게 헌신한 영국인 노집사 스티븐스의 회고록 형식을 띠고 있다. 1956년 7월로 설정된 프롤로그에서부터 달링턴 홀과 스티븐스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맞이한다. 달링턴 경의 죽음 이후 달링턴 홀은 경매에 부쳐지고, 스티븐스는 부유한 미국인의 소유가 된 달링턴 홀에서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소설은 새 주인의 권유로 6일간의 여행길에 오른 노집사의 여정을 따라간다. 스티븐스는 1930년대 초 달링턴 경의 친구에게서 물려받은 신사복을 여행 가방에 담고 역시 1930년대에 쓰인 여행 안내서를 들고 길을 떠난다. 1956년 달링턴 홀의 매각에서 암시되는 세계질서의 급격한 변화 속에 1930년대에서 멈춰버린 듯한 스티븐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면서도 역설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속절없이 드러낸다. 오래전에 결혼하며 달링턴 홀을 떠난 가정부 켄턴을 찾아가는 그의 여행은 곧 달링턴 경을 헌신적으로 섬겼던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기억의 미로를 더듬어가는 여정이기도 하다."진정한 집사는 오로지 영국에만 존재하며 진정한 집사는 영국인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스티븐스는 집사의 '위대함'이란 '품위'를 잃지 않는 데에 있다고 믿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절제하는 능력이 곧 품위라고 여기는 스티븐스는 평생 사적인 감정과 욕망을 억누르고 달링턴 경의 뜻을 살펴 시중을 듦으로써 진정한 집사라는 소명을 이루고자 했다. 스티븐스는 달링턴 경이 달링턴 홀에서 주최했던 1923년의 국제회담과 1930년대 비밀회담을 자신이 집사로서 위대함을 성취한 분수령이라고 회고한다. 이 두 회담에서 그는 삶의 사적 면모들과 감정을 철저하게 억제하고 주어진 직무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성기를 지난 부친이 달링턴 홀에 부집사로 부임 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임종을 맞는 순간에도 스티븐스는 국제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달링턴 경의 손발이 되어 활약한다. 부친의 임종을 지키는 대신 만찬 시중을 완벽하게 들었다고 칭찬 세례를 받았던 그날 저녁을 떠올리며 스티븐스는 "가슴 아픈 기억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집사로서 위대함에 도달했다는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노라고 자부한다.스티븐스의 성취감은 단순히 집사로서의 일상적인 직무를 다했다는 만족감에 기인하지 않는다. 그는 달링턴 경이 신사 중의 신사, "도덕적 의무에 대한 깊은 자각"을 가지고 있는 신사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티븐스는 달링턴 경에게 헌신함으로써 그 자신도 올바른 역사의 흐름에 기여했다고 믿는다. 달링턴 홀에서 신사들의 시중을 들며 스티븐스는 "유럽 최고의 실력자들이 우리 대륙의 운명을 논"하는 자리에 자신이 함께 있었고 자신의 "직위에 상응하는 품위"를 지켜내면서 "세상의 저 위대한 중심축에 거의 도달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했을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에 취해진 베르사유 조약을 비신사적이라고 여긴 달링턴 경은 독일을 도울 방안을 찾고자 비공식적 국제회담을 개최했고, 이 회담의 여파로 히틀러의 외교사절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고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무렵 독일 친화적인 외교 행보를 이어간다. 스티븐스의 기억 속에 달링턴 경은 유럽의 평화 유지라는 숭고한 목표를 이루고자 했던 진정한 영국 신사이지만, 훗날 달링턴 경은 나치의 협력자이자 꼭두각시로 전락했다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스티븐스는 여행의 중반에 이르러 기억의 어지러운 미로를 헤쳐 나오면서 스스로 편치 않은 기억의 편린들을 발견한다. 영국 내 파시스트 정당과 친분을 맺은 달링턴 경이 두 명의 하녀를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해고했던 사건을 회고하면서 주인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기만 했던 자신과는 달리 그 부당함에 항의했던 켄턴을 떠올린다. 당시 켄턴이 불의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스티븐스는 전혀 공감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공감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이 일화는 스티븐스가 달링턴 경의 도덕적 우월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였음을 보여준다. 대신 스티븐스는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 켄턴을 외면하고 그녀를 향하는 자신의 마음 또한 모른 체하며 기꺼이 자신의 감정을 희생하고 집사로서의 직무에 충실했을 때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여행 초반 스티븐스는 달링턴 홀에서의 자신의 삶을 자부심과 만족감을 가지고 회고하지만, 차츰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삶의 공허함을 깨닫게 된다. 여행 마지막 날 켄턴을 마주한 후 스티븐스는 "인제 와서 뭘 숨기겠는가? 실제로 그 순간, 내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스티븐스는 바닷가의 어느 부두에서 처음 만난 낯선 이 앞에서 눈물을 터트리며 씁쓸하게 털어놓는다. "난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그 긴 세월 그분을 모시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행의 끝에서 달링턴 홀에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뼈아픈 자각을 얻은 스티븐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세계질서 속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떠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남아 있는 나날'을 통해 이시구로는 격변하는 역사의 회로에 매몰된 한 개인이 자신이 살아낸 삶의 윤리적 정당성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스티븐스의 이야기는 의미를 드러내는 동시에 숨기는 언어의 긴장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한다. 굴절된 기억의 미로를 따라가는 스티븐스의 이야기에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의심이 동시에 드러나고, 자기기만과 자기성찰의 순간들이 교차한다. 역사의 흐름을 벗어나 거리 두기를 할 수 없다는 면에서 우리 모두가 스티븐스와 같은 집사라고 말하는 이시구로는 역사의 무게를 직시하고 그 시공간이 제시한 삶의 조건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고도 예리하게 펼쳐낸다.김영주 <서강대 영미어문전공 교수>공동기획: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김영주 교수는?서강대 영문학부 영미어문전공 교수로 20세기 영국 소설 및 여성문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텍사스A&M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영국 소설에 나타난 문화지리학적 상상력: 가즈오 이시구로의 '지난날의 잔재'와 그레이엄 스위프트의 '워터랜드'를 중심으로' ''가슴속의 이 빛이': 버지니아 울프와 고딕미학의 현대적 변용' '잔혹과 매혹의 상상력: 안젤라 카터의 동화 다시 쓰기'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영국문학의 아이콘: 영국신사와 영국성' '20세기 영국 소설의 이해 II'(공저), '여성의 몸: 시각, 쟁점, 역사'(공저), '영미문화를 읽는 세 가지 키워드 : 공간·윤리·권력'(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이 있으며,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와 함께 울프의 단편과 에세이 공동번역에 참여했다.김영주 교수 (서강대 영미어문전공)
2023.01.20
[노벨문학상 산책]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사회주의 혁명 속 방황하는 카자크인 그리고리의 삶과 사랑
러시아 독자에게도 생소한 카자크돈강 장대하게 감싸흐르는 초원서자유롭게 살았던 민족의 비극 표현혁명과 내전 어느 쪽에도 못 섞인 채모두 따뜻하게 살아갈 진실마저 상실그리고리의 내면 파노라마처럼 표현격동의 역사 빠짐없이 그려낸 대서사시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나이 어린 여주인공 나타샤를 문득 '귀여운 카자크'라 불러놓고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이전에 톨스토이는 카자크에 관한 중편소설 '카자크 사람들'을 집필한 바 있다. 19세기에만 해도 고골의 '타라스 불바'에서처럼 카자크인들은 러시아 민족의 자유 애호와 낭만적 이상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에서 그려진 카자크는 유사한 전통을 공유하기는 해도 역사적, 공간적 배경을 달리하는 두 집단이다. 이처럼 러시아인들은 대략 15세기경부터 우크라이나의 자포로제를 시작으로 변경 지역 이곳저곳의 대규모 강을 끼고 살던 카자크인들에 대한 일종의 신화적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었다.미하일 숄로호프(1905~1984)의 '고요한 돈강'(1925~1940)은 20세기 초반 세계사적 변혁이 일어나던 시기 당시 러시아 독자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던 돈강 카자크 집단을 그려냈다.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러시아 남부의 돈강 북부 카자크 마을 뵤셴스카야에서 태어난 작가는 앞서 언급한 두 거인의 어깨에 올라앉아 백 년 전 돈강 카자크 세계에 관한 대서사를 펼쳤다. 돈강이 장대하게 감싸 흐르는 야생의 초원 지역은 돈 카자크 집단이 오백 년을 살아온 곳이다. 그들은 기마병으로 러시아 제국에 장기간 복무하는 대신 토지를 자체 분배하는 등 얼마간의 자치권을 특권으로 누리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이곳 변경 지역의 독특한 자치 질서와 문화는 제국의 중심부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숄로호프는 카자크는 아니었고, 이주민의 자손인 만큼 카자크 사회를 직접 겪으며 그들을 대상화하지 않고 치우침 없이 관찰할 수 있는 처지에서 성장했다. '고요한 돈강'은 1차 세계대전과 사회주의 혁명, 그 뒤를 이은 내전이 자유를 애호하며 자유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을 뿌리째 흔들어, 신생 혁명 정권에 얼마나 잔인하게 종속시켰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돈강 카자크식 '평화와 전쟁'에는 내전 시기 자행된, 이른바 카자크 해체 정책의 비극이 짙게 스며있다.소설은 돈강 상류 초원의 타타르스키 마을의 뭔가 심상찮은 멜레호프 농가를 묘사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대가족 농가는 마을 끄트머리 돈강 언덕배기에 위치한다. 낯선 튀르크 여인의 피가 섞여든 이 집의 아버지를 닮은 다혈질의 청년 그리고리는 이웃집 스테판이 군사훈련을 떠난 사이 그의 아내 악시냐와 떠들썩한 애정행각을 벌인다. 앞날에 등장인물들이 겪게 될 파국적인 역사의 소용돌이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리고리는 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마을 부농의 딸 나탈리야와 결혼하지만, 그녀와 원만한 결혼을 이어가지 못한다. 더 나아가 그가 입대한 뒤 벌어지는 서사시적 규모의 역사적 시련의 모험에 나서는 이야기가 소설의 큰 줄기다. 멜레호프네는 당시 카자크 사회에서 중간자에 가까운 중농이며, 그리고리는 둘째에다 왼손잡이, 정확히는 양손잡이이다. 이러한 조건은 그리고리가 나중에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그 후 벌어진 혁명과 내전 과정에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깃들지 못하는 주인공의 상황을 암시한다. 소설 초반의 교차 지점이라는 공간 설정은 카자크 집단의 역사를 대변한다. 이로써 주인공 그리고리는 한 사람의 개인인 동시에 카자크 집단의 길 찾기와 방황을 상징하는 인물로 나아간다. 그는 초원에서 풀 베기를 하던 날 낫질에 걸려 죽은 새끼오리에게 연민을 느끼고 전선에서 앳된 적군 병사를 찔러 죽인 후 번민을 거듭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와의 전선에서 기마병으로 복무하다가 타고난 자질과 재능에다 냉혹함까지 발휘해 훈장을 휩쓸어 장교의 지위에 오른다. 이어서 혁명 후 적위군에 남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적위군에 맞선 카자크 반란군 사단장이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반란군이 백위군과의 피치 못할 협력으로 내몰리자 그는 이들과 협력할 근거를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백군 장교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흰 까마귀' 같은 존재라고 느낀다. 이리하여 그는 '한 날개 아래서 모두가 따습게 살아갈 진실' 찾기에 회의하고, 결국에는 길을 완전히 상실하는 상황에 빠져든다. 하지만 전쟁이 모두의 야수화를 촉발하고 온갖 시련에 부닥치면서도 그는 내면적 자유의 영역만은 지키는 인물이다. 혁명사의 굵직한 줄기가 여러 갈래로 펼쳐지는 소설의 서사적 중심에는 각양각색의 타타르스키 마을 사람들을 비롯한 카자크 민중의 삶의 현장이 파노라마처럼 실감 나게 펼쳐진다. 돈강을 둘러싼 자연의 법칙과 감각에 공고하게 뿌리내린 그들은 특히 어디서나 노래와 춤을 즐기고 고단한 삶이 녹아든 농담을 주고받을 줄 아는 유쾌하고 낙천적인 사람들이다. 더불어 이 작품의 어떤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는 풍경묘사, 웃음과 유머 외에 작품 곳곳에 내장된 구전문학의 요소들은 주목할 만하다. 전승되던 구전문학이 때로는 등장인물이 부르는 노래로, 때로는 그들의 대화와 저자의 서정적 일탈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저자는 지역 사투리를 자신의 문체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눈 덮인 겨울날 초원에 부는 바람을 '동풍이 고향 초원을 따라 카자크짓을 한다'고 묘사한다. '카자크짓'은 제멋대로 바람이 이동하는 모양새를 의인화한 표현이다. 앞에서 언급한 톨스토이의 '귀여운 카자크'는 이런 카자크짓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작품 제목 '고요한 돈강'은 작품에 인용된 민요 등에서 널리 쓰였던 표현을 활용한 것이다.모스크바 중심가의 아름드리나무가 늘어선 고골 가로수길에 들어서면 중간 어디쯤서 강에서 배를 젓다가 잠시 한숨 돌리는 숄로호프를 형상화한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배 주변에는 강을 건너는 말들의 머리만 드러나 있는데, 이 말들 무리는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쪽을 향하고 있다. 이 기념비는 이념을 앞세워 잔인한 전투를 불사한 세력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위대한 작품을 창작해 낸 작가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은 것이다. 사실상 모순적인 작가라고 할만한 숄로호프는 이 작품 전반부가 출판되자마자 '붉은 톨스토이'라 칭송받았고, 1965년 노벨문학상을 받음으로써 공산주의자로서 그의 문학적 성취는 세계적 냉전에도 불구하고 양 진영의 공인이라는 보기 드문 결실을 얻었다. 변춘란 <번역가>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경북대와 모스크바사범대학에서 숄로호프의 소설을 연구했다. 러시아 전문 번역가로 러한, 한러 번역을 하며, 2017년부터 러시아인과 번역팀 '미래짓'을 운영하며 온라인상에서 주기적인 번역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언어의 장벽을 걷어내는 다시 쓰기로서의 번역 역량 강화와 그 저변 확대에 관심이 많다. 지금은 모스크바에서의 박사과정 시절 완역해 둔 '고요한 돈강'의 출간을 준비하는 중이다.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지원 공모사업에 선정(2019년)돼 소설가 현기영 단편집('순이 삼촌' 등 5편)을 러시아어로 번역했고, 한국어 번역서로는 '한국 학습자를 위한 러시아어 수업 연구'(공역·2019), 톨스토이 사상집 '죽이지 마라'(2021), '학교는 아이들의 실험장이다'(2022)가 있다. 이와 더불어 공저 '노벨문학상 수상작 산책'(2022)이 최근 출간됐다.작가의 고향 저택박물관 앞 돈강가의 그리고리와 악시냐의 등신대. 변춘란 번역가
2022.12.23
[노벨문학상 산책] 장 폴 사르트르 '구토'…삶에 이유는 없지만 희망은 존재…위선자들에 보내는 영원한 작별인사
소설가, 극작가, 비평가이면서 철학자였고 사회적 발언을 그치지 않은 지식인이었던 사르트르는 글쓰기와 진정한 자유의 추구라는 두 궤적을 따라 평생 모든 분야에서 펜을 휘둘렀다.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지만 '작가는 제도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따르겠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소설 '구토'(1938)는 사르트르가 첫 번째로 출간한 문학작품이자 그를 단번에 문제적 작가의 반열에 올린 글이다. '구토'를 이야기로 정리하자면 줄거리는 단순하다. 앙투안 로캉탱이라는 사람이 부빌이라는 지방 도시에서 도서관, 카페, 공원 등을 전전하며 책을 한 권 쓰려다가 포기하고 부빌시를 떠나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로캉탱의 일기로 구성된다. 그가 일기를 쓰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무심히 보고 지나치던 문손잡이, 의자, 거울 속 자기 얼굴,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수상하고 두렵게 여겨지고 구역이 치밀어오르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물들을 만지기가 어려워진다. 물수제비를 뜨려다가 돌멩이를 떨어뜨리고, 길가에 굴러다니는 종이를 주우려다가 줍지 못한다. 어느 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로캉탱의 눈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진다."나무뿌리, 공원의 철책, 벤치, 잔디밭의 듬성듬성 자란 잔디,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꺼져버렸다. 사물들의 다양성, 그들의 개아성(個我性)은 외관, 반들거리는 표면일 뿐이었다. 이 반들거리는 표면이 녹아내리며, 흉측하고, 물렁물렁하고, 무질서한-벌거벗은, 그 소름 끼치는 음란한 나신의-덩어리들만 남았다." 사람들이 정해놓은 사물들의 이름과 사용법이 사라져버리자 존재의 속살이 드러난다. 자기 마음대로 흘러넘치는 존재들 앞에서 생각과 말은 힘이 없다. 이렇게 세계의 질서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 '구토'가 치민다. 존재란 그저 거기 있는 것일 뿐이며 모든 존재는 쓸데없이 더해진 잉여라면, 나라는 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존재에 대한 환상 깨지며 구토 치밀어선망받는 의사·위인들 양면성에 혐오권력에 의존하는 '개자식'이라며 비난우연히 발견한 '또 다른 세계' 통해 구원로캉탱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존재에 근거와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확고한 자기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과 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 두 부류가 있다. 카페에 앉아 있던 로캉탱은 백발이 멋진 의사 로제씨가 당당한 태도로 카페에 들어서다가 거기 있던 아실씨라는 부랑자를 보고 저런 미친 노인네를 손님으로 받느냐며 불평하는 모습을 본다. 연륜과 지혜라는 말로 포장되는 과거를 가진 의사 로제 같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남들을 판단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반면에 자기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아실씨는 누구에게나 무시당하면서도 반발하기는커녕 동조하고 비굴하게 군다. 현재의 개인은 과거 시간의 집적이며 그 과거는 명백히 의미가 정해져 있다는 믿음을 양쪽 다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집약된 곳이 박물관이다. 어느 날 로캉탱은 부빌시 명사들의 초상화를 모아 놓은 박물관을 방문한다. 지혜와 경험의 표상인 모범적인 위인들의 얼굴이 관람객들을 내려다본다. 이 얼굴의 주인인 지역 유지들은 건물을 세우고, 돈을 벌고, 파업을 분쇄하고,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느라 바빴다. 전시실에서 등을 돌리고 걸어 나오면서 로캉탱은 "잘 있어라, 이 개자식들아.(아듀, 살로.)" 하고 작별 인사를 보낸다. '개자식들'로 번역된 '살로(salauds)'는 도덕적으로 혐오스러운, 경멸할 만한 사람들을 말하는 욕이다. 이들은 왜 살로인가? 자신이 수용한 그리고 자기에게 유리한 사회적 가치가 객관적이라 굳게 믿으며, 그것으로 자기 존재의 우연성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삶의 우연성이 어렴풋이 느껴질 때 권력과 전통에 의존함으로써 도피하려는 '살로'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연성을 돌파하려고 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로캉탱이 도서관에서 자주 마주치는 '독학자'는 지식과 교양 그리고 휴머니즘을 이정표로 삼은 사람이다. 책을 대할 때 "뼈다귀를 찾아낸 개 같은 표정으로" 다루는 듯 보일 만큼 그의 지식욕은 맹렬하다. 서가에 꽂힌 책을 알파벳 순으로 모조리 읽을 정도로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무조건 존중하던 그는, 인간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어린 학생의 손을 어루만지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결국 도서관에서 쫓겨난다. 로캉탱의 연인이었던 안니는 일상에서 '완벽한 순간'을 만들어내려는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에 집중해 그 시간에 엄격한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소설이나 영화처럼 살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완벽한 순간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달은 안니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남자에게 의존해 사는 통속적 삶을 이어간다. 이들의 실패를 보며 로캉탱은 자신이 매달리던 역사책을 쓰는 일 역시 존재를 느끼지 않기 위해 부여잡았던 환상임을 인정한다. 책도 포기하고 독학자와 안니와의 관계까지 모두 끝난 로캉탱 앞에 남은 삶은 죽음과도 비슷한 '버섯 같은 삶'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부빌시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단골 카페에 들른 로캉탱은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을 듣다가 한순간 어떤 다른 세계를 엿보았다고 느낀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절정으로 치닫는 완결된 세계, 실재하지 않지만 현실의 어떤 것도 방해할 수 없는 세계이다. 그리고 음악을 만든 작곡가와 가수가 '구원받았다'고 느낀다. 누군가가 이 음악을 듣고 창작자를 생각해 주었기 때문이다. 로캉탱은 가족도 직업도 친구도 없는 홀로 있는 인간이어서 진리를 은폐하려는 사람들과 거리를 둘 수 있었고 그래서 존재의 우연성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혼자 있다는 것은 삶을 텅 비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재즈음악을 들으며 그것을 만든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 사이에 무언가 오간다는 느낌을 받은 로캉탱은, 자신도 무언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의 불씨를 다시 얻는다. 작품이라는 매개를 둘러싸고 작동하는 새로운 관계의 경험이 다른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것이다. 이 구도는 훗날 사르트르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설명한 '수용자에 대한 호소로서의 작품'이라는 문학론을 예견케 한다. 우리가 지리멸렬하게 살아가는 이 삶에는 이유가 없다. 이유가 있다고 믿는 것은 기만이다. 그렇지만 그 삶에는 재즈음악이 로캉탱에게 준 희열 같은 짧은 구원이 깃들기도 한다. 오은하 교수(연세대 불어불문학과)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오은하 교수는?연세대 불어불문학과에서 프랑스 현대문학과 근대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서울대와 파리3대학에서 공부했다."세상의 모든 사람으로 이루어지며, 모든 사람만큼의 가치가 있고 또 누구보다도 잘나지 않은 한 진정한 인간"을 말하는 사르트르의 자서전 '말'을 읽고 매료되어서 그의 문학을 전공했다. 사르트르를 중심으로 폴 니장, 알베르 카뮈, 빅토르 위고, 아니 에르노 등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한 작가들의 글을 주로 연구한다. 현재 관심 분야는 알제리전쟁 시기 사르트르의 반식민 글쓰기를 통해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재조명하는 일이다. 최근 논문으로 「되살아난 죽은 자의 폭소: 사르트르, 「벽」에서 '웃음'의 중첩적 의미」, 「폭력 없는 증여라는 꿈: 사르트르, '악마와 선한 신'의 괴츠와 힐다」, 「수치는 어디서 오는가: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 「바리케이드 위에서 보는 지평선: '레 미제라블'의 프라테르니테」 등이 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인간의 재구성' '사르트르의 미학' '카페 사르트르' '검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아프리카' 등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오은하 교수(연세대 불어불문학과)
2022.10.28
[노벨문학상 산책]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美 노예제 반성을 통한 인종적 화해 모색
토니 모리슨(1931~2019)은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대표적 현대작가이다. 오하이오주에서 출생한 모리슨은 고등학교까지는 로레인이라는 도시에서 다니다 대학은 흑인의 하버드로 알려진 하워드대학에 진학하였다. 코넬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그녀의 석사학위 논문은 윌리엄 포크너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에 대한 연구이다. 모리슨은 랜덤하우스 출판사에도 근무하고 또 오랫동안 프린스턴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도 근무했다. 1987년도에 출판된 '빌러비드'는 '뉴욕 타임스'에서 소설가와 비평가를 대상으로 지난 25년간 출판된 소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소설을 꼽으라는 설문에서 1위에 오른 작품으로 문학성, 사회성, 시의성을 갖춘 명작이다.'빌러비드'의 시대적 배경은 1855년에서 1873년으로 이때는 남북전쟁(1861∼1865) 전후이며 특히 재건시대로 알려진 시기다. 오하이오에 사는 흑인 노예가 자신의 딸이 노예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아 살해한 이야기인 마가렛 가너라는 여인에 관한 신문기사를 바탕으로 쓴 '빌러비드'는 마가렛 가너 이야기에 상상력을 발휘해 새롭게 쓴 작품으로 노예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다루고 있다.'빌러비드'는 미국 노예제 동안 생긴 상흔이 노예제가 끝난 후에도 지속돼 그 희생자뿐만 아니라 그 선조들의 고통을 다시 소환하는 복잡하고 스펙트럼이 넓은 시대적 배경을 보여준다. 즉 작품은 노예제가 끝난 후 피해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다시 노예제 시기의 재기억을 보여주고 또 노예제 이전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들의 이야기까지 제시되면서 미국 노예제뿐만 아니라 유럽의 노예무역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묘사한다.3부 28장으로 구성된 '빌러비드' 의 시간적·공간적 배경은 1873년 오하이오강 건너 신시내티다. 1부의 시작 문장은 "124번지는 원한이 가득했다"이다. 124번지 블루스톤 로드에서 딸 덴버와 사는 세스에게 갑자기 18년 전 켄터키주 농장 동료 폴 디가 찾아온다. 18년 만에 갑자기 찾아온 폴 디를 만나 반가운 것도 잠시 귀신들린 집은 폴 디를 괴롭힌다. 폴 디가 강하게 저항하며 귀신을 쫓아내자 집은 조용해진다. 곧 124번지에는 또 다른 손님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빌러비드가 사람으로 육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빌러비드는 정상적인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마치 물속에서 살아나온 여자인 것처럼 숨이 가쁘며 기력이 빠져 있다. 20세 정도로 보이지만 말하는 방식과 행동은 어린애 같은 빌러비드는 세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세스는 이런 질문들이 신선했지만 점차 빌러비드가 마을공터에서 세스의 목을 조르는 등 괴롭히자 세스도 견디기 힘들어한다.인간이하의 삶 살던 세스…노예의 숙명 물려주기 싫어 갓난 딸 죽이게 돼18년 뒤 나타난 딸의 망령 '빌러비드' 통해 다시금 삶이 무너지는 경험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한 '빌러비드' 많은 흑인노예 대변하듯 이야기 전개다시는 반복돼선 안될 역사…비극적 가족사와 그 극복의 서사로 표현한편 이야기는 세스와 폴 디와의 대화를 통해 참혹했던 켄터키주 농장 생활이 드러난다. 폴 디와의 대화에서 행방불명되었던 남편 핼리의 당시 상황을 알게 되었고, 폴 디가 수탉보다 못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동안 세스와 폴 디는 서로 동병상련을 느낀다. 사실 폴 디는 세스만큼이나 고통을 겪었는데 학교 선생이라 명명된 노예주에게 팔린 후, 새 주인을 죽이려 한 죄로 조지아 알프레드 수용소에 감금되어 인간 이하의 고통을 받다가 다른 죄수들과 탈출하여 북쪽으로 갔다. 글을 읽지 못하는 폴 디는 동료 스탬 페이드가 보여준 신문기사를 본 후 세스에게 아이를 죽인 것이 사실인지 확인한다. 세스는 한참 고민하다가 그때 있었던 일에 대해서 할 일을 했다는 듯이 말하자 폴 디는 동정이나 위로가 아닌 치명적인 말을 남기고 세스를 떠나는데, 그 말은 "세스, 너의 사랑은 너무 짙어 … 너는 발이 두 개이지 네 개가 아니야"였다. 모리슨의 재기억 전략은 2부에서 잘 나타나는데 그것은 20장부터 23장까지 각각 세스, 덴버, 빌러비드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는 모놀로그이다. 그런데 23장에서는 세 모녀가 한목소리가 되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이한 것은 빌러비드의 독백은 정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마침표 혹은 따옴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문장이 엉성해 마치 어린애가 만든 문장처럼 보인다. 이것은 빌러비드가 두 살 때 죽어서 유아의 독백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빌러비드는 이미 단순한 죽은 두 살의 딸을 넘어서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에서 죽어간 모든 흑인을 대변하는 존재가 된다. 3부의 시작은 "124번지는 조용했다"이다. 빌러비드는 지속적으로 많은 것을 요구하고 세스는 그것을 들어주려 한다. 남은 38달러의 전 재산을 다 쓰면서까지 빌러비드가 좋아하는 물품을 사서 딸의 요구를 들어주던 세스는 점점 몸이 쇠약해지고 작아진다. 반면 세스의 기를 뺏은 빌러비드는 몸이 비대해지고 배까지 불쑥해진다. 집이 혼란에 빠진 것을 목격한 덴버는 드디어 여러 해 만에 집 밖을 나가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최초로 찾아간 사람은 주일학교 선생님인 레이디 존스이다. 레이디 존스의 주선으로 마을 여인들로부터 음식을 받은 덴버는 무척 고마워하며 나중에 보드윈씨 집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도 한다. 보드윈씨는 평생을 흑인을 위해 살아온 사람으로 부친의 선한 영향으로 백인들이 행한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했다. 한편 마을 여인들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세스를 돕기 위해 모인다. 124번지 앞에서 기도를 하는 여인들 앞에 나타난 세스와 빌러비드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빌러비드는 커진 덩치와 함께 마치 임신한 것처럼 배가 불러 있었기 때문이다. 세스는 덴버를 태우러 온 보드윈씨의 모자를 본 후 얼음을 깨던 송곳을 들고 보드윈씨에게 달려드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저지한다. 멀리서 하얀 모자를 쓰며 다가오는 보드윈씨를 학교 선생이라고 여긴 세스가 이번에는 딸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한 것이다. 엄마의 이런 행동을 본 빌러비드는 만족한듯 사라지고 124번지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또한 세스를 떠났던 폴 디도 다시 124번지에 오게 된다. 폴 디는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던 세스를 어루만져주며 그녀에게 "당신하고 나, 우리한테는 누구보다 어제가 많아. 이제 어떤 식으로든 내일이 필요해"라고 말하며 다정하게 다가간다. 작품의 마지막 장은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다루며 작가는 독자에게 "이 이야기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재기억의 문제를 환기한다. 즉, 이 이야기는 너무 비참해서 더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이런 참혹한 역사는 다시는 반복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재기억의 사례는 집이 불타 사라져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재기억이다. 재기억은 점차 의미를 확장하게 되는데, 즉 나쁜 기억들이 불현듯 떠올라서 당사자들을 괴롭히는 트라우마적 재기억 그리고 흩어진 몰랐던 기억들이 다시 합쳐지고 정리되는 통합적 재기억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재기억은 소설의 마지막 장에 제시되듯이 기억과 망각에 관한 재기억으로 옳지 못한 역사적 과오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리슨은 이 소설을 "6천만명 그리고 그 이상"에게 바친다고 했다. 6천만명은 단순하게 노예제로 죽은 흑인이 아니다. 그 숫자는 노예선에 실리기 전에 아프리카 땅에서 포획되면서 저항하다 죽은 아프리카인에서부터 배 위에서 저항하다 죽은 흑인, 배 안에서 굶어서 죽거나 뛰어내린 흑인 그리고 미국 땅에 도착하여 노예로 살다가 여러 형태의 가혹 행위에 의해 죽은 모든 흑인을 포괄한다. '빌러비드'는 한 번 읽어서 이해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독자는 이 소설을 여러 번 읽어서 모리슨이 던진 복합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모리슨은 잘못된 제도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요구한다. 한재환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한재환 교수는 경북대 영어영문학과에서 '20세기 영국소설' '20세기 미국소설', 대학원에서 '20세기 영미소설'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소수인종문학에 관심이 많으며, 특히 흑인문학과 흑인문화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경북대 인문대학 부학장과 영어영문학과 학과장을 지냈다. 또 한국현대영미소설학회 편집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영어영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토니 모리슨의 삶과 문학' '세계문학 속의 여성'(공저) 등이 있고, 주요논문으로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지하철도에 나타난 폭력의 양상과 자유를 향한 여정' '모리슨의 고향: 인종주의, 트라우마, 공동체' 외 다수가 있다.한재환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20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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