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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명작']
[노벨문학상 산책]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돼지머리 악마에서 미지의 신으로
윌리엄 골딩은 1983년에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상은 보편적 대상에게 포괄적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윌리엄 골딩이 보편적 인간을 위해 얼마만큼이나 보편적 관조를 유발했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존 밀턴이 '실낙원'의 사탄을 통해 '악이 나의 선'이라고 말함으로써 보편인간 안에 내재된 보편적 현상을 묘사했다면, 골딩은 그 보편적 양태를 문학적으로 잘 구상화한 작가이다. 대가들이 수행하는 역작이 일견 용이한 작업과정을 통해 태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상 그것은 지난한 세월을 통해 얻어진 농축된 능력의 산물이다. 골딩에게도 42세에 첫 작품이 출판되기까지, 어렵사리 교사로 취업했다가 사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장교로 제대하여 다시 교사로 복직한 후 불편한 교사 생활을 하면서 거쳐 온 긴 습작의 기간이 있었다. 전쟁의 참상 피해 런던 떠난 소년들무인도에 불시착하면서 고립돼전쟁보다 더 큰 절망감·두려움명분없이 서로를 죽이게 만들어소설 통해 인간의 악성 구체화이성·神마저 무력해지는 현실악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지근원적 질문 독자들 몫으로 남겨그러나 인간의 보편 악성을 구상화하는 작업이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힘겨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분투하며 제어해야 하는, 그를 괴롭혀 왔던 그 자신의 악성을 분출하듯이, 혀(tongues)가 달린 타자기를 두들겼다. '파리대왕'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악성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 알고 싶었고, 그 극점까지 다다르면 혹 중화될 수 있는 것인지, 거기에 버려두고 올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하였다. 그 후, 골딩은 계속해서 어두운 존재들을 만들어 내어 자신을 투영하였다. '파리대왕' 이후 전대미문의 폭력성을 지닌 호모사피엔스 집단을 '상속자 (The Inheritors)'에서 내보였고, '자유낙하 (Free Fall)'의 새미(Sammy)를 통해 기질대로 사는 것은 인간의 어두움에 대한 반영이며 자유를 상실한 삶이라는 것을 묘사했고, '보이는 것은 어두움 (Darkness Visible)'에서는 마티(Matty)를 중심으로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인간 군상들이 편재하고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1983년 그의 노벨상 수상은 그의 소설 경향이 보편인간의 어두운 보편현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 근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 1963년에 영화로 상영된 '파리대왕'의 시각적 잔상이 그의 수상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노벨상 위원회는, 골딩이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신화의 다양성과 보편성으로 당대의 인간조건을 조명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노벨상 수상의 근거로 설명하였다. 골딩은 자신이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것을 인지하였다. 그는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그 사실을 언급했고 자신은 사실 낙천가라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골딩은 자신이 이해하는 한 인간에게 있는 보편적인 결정론적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의 사후 발표작인 '더블텅 (The Double Tongue)'에서 골딩은 자신을 귀찮게 한 신에 대해 존재론적 질문을 한다. 가족 내에서 온갖 천시를 받아 오던 아리카(Arieka)는 아폴로 여사제가 된 후에 사제로서 신의 말을 전달하는 직임을 맡게 된다. 그러나 '더블텅'은 신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암시한다. 아리카가 '신의 혀'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두움이 난무하는 내면세계를 가진 사람들은 여사제 아리카에게 집중하고 제단들 사이에 그녀의 석상을 만들어 세우려 한다. 당시 집필 경향상 골딩은 이 미완의 작품을 200페이지로 마무리 지을 계획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이는 것은 어두움' 처럼 2~3부작으로 집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혹 100페이지 이상 더 집필할 수 있었다면 어떤 전개를 했을까? 골딩은 그의 독자들을 어디로 데려가려고 했을까? '파리대왕'에서, 전쟁의 참상을 피해 런던을 떠난 13세 이하의 소년들이 낙원을 상징하는 산호초 섬에 떨어진다. 그러나 근거 없는 집단적 두려움에 몰입되어 소년들은 그들이 만든 나무창으로 동료 소년 샘을 찔러 죽이고,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성 증오에 몰입된 소년들이 바윗돌을 굴려 동료 소년 피기를 죽인다. 그리고 명분이 분명해지지 않은 채로 떼를 지어 동료 소년 랄프를 죽이려 달려든다. 랄프는 어디로 도주해야 할까? 악마를 상징하는 돼지머리 파리대왕이 '어디로 가든 소용이 없다'며 샘을 다그친다. 샘은 어두움을 벗어나고 싶지만 돼지머리 때문에 소용이 없는 일이다. 랄프가 사력을 다해 도주하던 중 해변에서 만난 흰색 제복의 해군 장교는 불바다가 된 산호초 섬을 단지 구경거리로만 여기고, 이 섬에서 야만인이 되어버린 소년들의 행동을 그저 전쟁놀이의 표현 방식쯤으로 이해한다. 랄프는 갑작스러운 긴장해소와 함께 죽음을 당한 피기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다른 소년들도 덩달아 흐느낀다. 화염이 혀처럼 치솟고 돼지머리가 있는 무인도에서 바라볼 대상은 흰색 복장의 장교뿐이다. 그러나 흰옷의 해군 장교는 이들의 안녕문제, 상황파악, 자초지종을 알아봐야 할 장교로서의 책무에 관심이 없다. 그에게는 소년들을 쳐다보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할 뿐이다. 못 본 체하고 싶다. 골딩은 인간들의 시선을 어디로 가져가려는 것일까? '더블텅'에서 인간들은 눈에 보이는 아리카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자신이 신의 말을 전달하는 일(oracle)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골딩은 '파리대왕'에서의 해군장교도 소용이 없는 존재라고 제시해 놓았다. 아리카 스스로도 자신이 소용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두운 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골딩의 인간은 시선을 어디로 향해야 하나? 결국 아리카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신에게 시선을 돌리라고 요청한다(TO THE UNKNOWN GOD). 골딩은 1993년 그의 최종작품에서 이 미지의 신을 독자들에게 밀어 놓았다. 이것이 보편인간들이 처한 보편조건인가? 악성에 시달리거나 악성을 자가당착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편이 되어버린 21세기의 보편인간은 이 보편조건에서 어디로 시선을 향해야 할까? 이석광 경상국립대 영어영문학부 교수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이석광 교수는? 이석광 교수는 경상국립대 영어영문학부에서 20세기 21세기 영국소설, 영미비평이론, 영미문화, 고대중세근세 영국문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영어로 출판된 문학작품을 주제별로 접근한다. 비평이론을 인식하되 주로 사회, 역사, 문화, 정치, 철학, 장애인 인권, 환경, SDGs 이슈 등의 관점으로 비평논문을 기고한다. 주요 경력은 영미어문학회 회장, 동서비교문학회 부회장(현 평의원), 현대영미어문학회 부회장, 경상국립대 국제어학원장, 경상국립대 인문학연구소장(차기) 등이다. 최근 논문으로는 'A Neurotic Narrator in Julian Barnes' The Sense of an Ending: Time You Wear on the Inside of Your Wrist', 'Reading a Novel, Speechless: Becoming Harriet, a Girl with Cerebral Palsy; through the Lens of Irritation and Nussbaum's Capabilities, Children's Literature in Education' 등이 있다.이석광 교수 (경상국립대 영어영문학부)
2023.02.17
[노벨문학상 산책] 가즈오 이시구로 '지난날의 잔재'...'달링턴 홀'에 바친 한 집사의 인생…그의 삶은 가치 있었을까
이시구로에게 부커상을 안겨준 이 소설의 원제는 'The Remains of the Day'이다. 송은경은 2009년 '남아 있는 나날'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번역서를 발간하였다. 필자는 본 소설을 논의한 학술논문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소설의 형식 및 자기기만과 성찰로 이어지는 과거에 대한 향수라는 소설의 정조에 주목하여 '지난날의 잔재'로 제목을 옮겼다. 이 글에서는 국내에서 출간된 역서의 제목으로 이시구로의 소설을 지칭하기로 한다.부친 임종때도 주인 시중 들던 스티븐스그의 기억 속 자랑스럽던 주인의 모습6일간의 여행 통해 다시 돌아보게 돼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깊은 성찰 돋보여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인종·언어적 정체성 뛰어넘는 문체 '백미'가즈오 이시구로(1954~)는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계 영국 작가이다. 이시구로의 소설은 "위대한 정서적인 힘"으로 우리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환상과 "그 아래의 심연을 드러낸다"고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를 밝혔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났으나 1960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던 이시구로는 일본계 영국 작가라는 이국성으로 처음 주목받았으나 점차 인종적 정체성과 언어의 국지성을 넘어서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로 세계 문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1982년 첫 소설 '희미한 언덕 풍경(A Pale View of Hills)'부터 2021년 발간된 '클라라와 태양(Klara and the Sun)'에 이르기까지 이시구로는 폭력적인 역사와 불안정한 삶의 조건 앞에 선 개인이 감당해야 할 불안과 고통, 희망과 좌절, 우정과 사랑에 대해 삶의 조건을 수용하거나 이에 저항하는 선택에 대해 깊이 숙고한다. 대체로 간결하고 정돈된 문체를 구사하는 이시구로는 이러한 문체 아래 숨겨진 복잡하게 얽힌 감정의 타래를 탁월하게 펼쳐낸다. 일본계 영국 작가라는 특이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이시구로는 "영국보다 더 영국적"인 소재를 다룬 그의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로 잘 알려져 있다. '남아 있는 나날'은 영국의 전통적인 장원저택 달링턴 홀을 배경으로 전형적인 영국 신사인 달링턴 경에게 헌신한 영국인 노집사 스티븐스의 회고록 형식을 띠고 있다. 1956년 7월로 설정된 프롤로그에서부터 달링턴 홀과 스티븐스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맞이한다. 달링턴 경의 죽음 이후 달링턴 홀은 경매에 부쳐지고, 스티븐스는 부유한 미국인의 소유가 된 달링턴 홀에서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소설은 새 주인의 권유로 6일간의 여행길에 오른 노집사의 여정을 따라간다. 스티븐스는 1930년대 초 달링턴 경의 친구에게서 물려받은 신사복을 여행 가방에 담고 역시 1930년대에 쓰인 여행 안내서를 들고 길을 떠난다. 1956년 달링턴 홀의 매각에서 암시되는 세계질서의 급격한 변화 속에 1930년대에서 멈춰버린 듯한 스티븐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면서도 역설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속절없이 드러낸다. 오래전에 결혼하며 달링턴 홀을 떠난 가정부 켄턴을 찾아가는 그의 여행은 곧 달링턴 경을 헌신적으로 섬겼던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기억의 미로를 더듬어가는 여정이기도 하다."진정한 집사는 오로지 영국에만 존재하며 진정한 집사는 영국인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스티븐스는 집사의 '위대함'이란 '품위'를 잃지 않는 데에 있다고 믿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절제하는 능력이 곧 품위라고 여기는 스티븐스는 평생 사적인 감정과 욕망을 억누르고 달링턴 경의 뜻을 살펴 시중을 듦으로써 진정한 집사라는 소명을 이루고자 했다. 스티븐스는 달링턴 경이 달링턴 홀에서 주최했던 1923년의 국제회담과 1930년대 비밀회담을 자신이 집사로서 위대함을 성취한 분수령이라고 회고한다. 이 두 회담에서 그는 삶의 사적 면모들과 감정을 철저하게 억제하고 주어진 직무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성기를 지난 부친이 달링턴 홀에 부집사로 부임 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임종을 맞는 순간에도 스티븐스는 국제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달링턴 경의 손발이 되어 활약한다. 부친의 임종을 지키는 대신 만찬 시중을 완벽하게 들었다고 칭찬 세례를 받았던 그날 저녁을 떠올리며 스티븐스는 "가슴 아픈 기억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집사로서 위대함에 도달했다는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노라고 자부한다.스티븐스의 성취감은 단순히 집사로서의 일상적인 직무를 다했다는 만족감에 기인하지 않는다. 그는 달링턴 경이 신사 중의 신사, "도덕적 의무에 대한 깊은 자각"을 가지고 있는 신사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티븐스는 달링턴 경에게 헌신함으로써 그 자신도 올바른 역사의 흐름에 기여했다고 믿는다. 달링턴 홀에서 신사들의 시중을 들며 스티븐스는 "유럽 최고의 실력자들이 우리 대륙의 운명을 논"하는 자리에 자신이 함께 있었고 자신의 "직위에 상응하는 품위"를 지켜내면서 "세상의 저 위대한 중심축에 거의 도달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했을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에 취해진 베르사유 조약을 비신사적이라고 여긴 달링턴 경은 독일을 도울 방안을 찾고자 비공식적 국제회담을 개최했고, 이 회담의 여파로 히틀러의 외교사절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고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무렵 독일 친화적인 외교 행보를 이어간다. 스티븐스의 기억 속에 달링턴 경은 유럽의 평화 유지라는 숭고한 목표를 이루고자 했던 진정한 영국 신사이지만, 훗날 달링턴 경은 나치의 협력자이자 꼭두각시로 전락했다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스티븐스는 여행의 중반에 이르러 기억의 어지러운 미로를 헤쳐 나오면서 스스로 편치 않은 기억의 편린들을 발견한다. 영국 내 파시스트 정당과 친분을 맺은 달링턴 경이 두 명의 하녀를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해고했던 사건을 회고하면서 주인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기만 했던 자신과는 달리 그 부당함에 항의했던 켄턴을 떠올린다. 당시 켄턴이 불의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스티븐스는 전혀 공감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공감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이 일화는 스티븐스가 달링턴 경의 도덕적 우월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였음을 보여준다. 대신 스티븐스는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 켄턴을 외면하고 그녀를 향하는 자신의 마음 또한 모른 체하며 기꺼이 자신의 감정을 희생하고 집사로서의 직무에 충실했을 때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여행 초반 스티븐스는 달링턴 홀에서의 자신의 삶을 자부심과 만족감을 가지고 회고하지만, 차츰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삶의 공허함을 깨닫게 된다. 여행 마지막 날 켄턴을 마주한 후 스티븐스는 "인제 와서 뭘 숨기겠는가? 실제로 그 순간, 내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스티븐스는 바닷가의 어느 부두에서 처음 만난 낯선 이 앞에서 눈물을 터트리며 씁쓸하게 털어놓는다. "난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그 긴 세월 그분을 모시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행의 끝에서 달링턴 홀에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뼈아픈 자각을 얻은 스티븐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세계질서 속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떠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남아 있는 나날'을 통해 이시구로는 격변하는 역사의 회로에 매몰된 한 개인이 자신이 살아낸 삶의 윤리적 정당성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스티븐스의 이야기는 의미를 드러내는 동시에 숨기는 언어의 긴장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한다. 굴절된 기억의 미로를 따라가는 스티븐스의 이야기에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의심이 동시에 드러나고, 자기기만과 자기성찰의 순간들이 교차한다. 역사의 흐름을 벗어나 거리 두기를 할 수 없다는 면에서 우리 모두가 스티븐스와 같은 집사라고 말하는 이시구로는 역사의 무게를 직시하고 그 시공간이 제시한 삶의 조건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고도 예리하게 펼쳐낸다.김영주 <서강대 영미어문전공 교수>공동기획: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김영주 교수는?서강대 영문학부 영미어문전공 교수로 20세기 영국 소설 및 여성문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텍사스A&M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영국 소설에 나타난 문화지리학적 상상력: 가즈오 이시구로의 '지난날의 잔재'와 그레이엄 스위프트의 '워터랜드'를 중심으로' ''가슴속의 이 빛이': 버지니아 울프와 고딕미학의 현대적 변용' '잔혹과 매혹의 상상력: 안젤라 카터의 동화 다시 쓰기'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영국문학의 아이콘: 영국신사와 영국성' '20세기 영국 소설의 이해 II'(공저), '여성의 몸: 시각, 쟁점, 역사'(공저), '영미문화를 읽는 세 가지 키워드 : 공간·윤리·권력'(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이 있으며,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와 함께 울프의 단편과 에세이 공동번역에 참여했다.김영주 교수 (서강대 영미어문전공)
2023.01.20
[노벨문학상 산책]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사회주의 혁명 속 방황하는 카자크인 그리고리의 삶과 사랑
러시아 독자에게도 생소한 카자크돈강 장대하게 감싸흐르는 초원서자유롭게 살았던 민족의 비극 표현혁명과 내전 어느 쪽에도 못 섞인 채모두 따뜻하게 살아갈 진실마저 상실그리고리의 내면 파노라마처럼 표현격동의 역사 빠짐없이 그려낸 대서사시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나이 어린 여주인공 나타샤를 문득 '귀여운 카자크'라 불러놓고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이전에 톨스토이는 카자크에 관한 중편소설 '카자크 사람들'을 집필한 바 있다. 19세기에만 해도 고골의 '타라스 불바'에서처럼 카자크인들은 러시아 민족의 자유 애호와 낭만적 이상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에서 그려진 카자크는 유사한 전통을 공유하기는 해도 역사적, 공간적 배경을 달리하는 두 집단이다. 이처럼 러시아인들은 대략 15세기경부터 우크라이나의 자포로제를 시작으로 변경 지역 이곳저곳의 대규모 강을 끼고 살던 카자크인들에 대한 일종의 신화적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었다.미하일 숄로호프(1905~1984)의 '고요한 돈강'(1925~1940)은 20세기 초반 세계사적 변혁이 일어나던 시기 당시 러시아 독자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던 돈강 카자크 집단을 그려냈다.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러시아 남부의 돈강 북부 카자크 마을 뵤셴스카야에서 태어난 작가는 앞서 언급한 두 거인의 어깨에 올라앉아 백 년 전 돈강 카자크 세계에 관한 대서사를 펼쳤다. 돈강이 장대하게 감싸 흐르는 야생의 초원 지역은 돈 카자크 집단이 오백 년을 살아온 곳이다. 그들은 기마병으로 러시아 제국에 장기간 복무하는 대신 토지를 자체 분배하는 등 얼마간의 자치권을 특권으로 누리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이곳 변경 지역의 독특한 자치 질서와 문화는 제국의 중심부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숄로호프는 카자크는 아니었고, 이주민의 자손인 만큼 카자크 사회를 직접 겪으며 그들을 대상화하지 않고 치우침 없이 관찰할 수 있는 처지에서 성장했다. '고요한 돈강'은 1차 세계대전과 사회주의 혁명, 그 뒤를 이은 내전이 자유를 애호하며 자유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을 뿌리째 흔들어, 신생 혁명 정권에 얼마나 잔인하게 종속시켰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돈강 카자크식 '평화와 전쟁'에는 내전 시기 자행된, 이른바 카자크 해체 정책의 비극이 짙게 스며있다.소설은 돈강 상류 초원의 타타르스키 마을의 뭔가 심상찮은 멜레호프 농가를 묘사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대가족 농가는 마을 끄트머리 돈강 언덕배기에 위치한다. 낯선 튀르크 여인의 피가 섞여든 이 집의 아버지를 닮은 다혈질의 청년 그리고리는 이웃집 스테판이 군사훈련을 떠난 사이 그의 아내 악시냐와 떠들썩한 애정행각을 벌인다. 앞날에 등장인물들이 겪게 될 파국적인 역사의 소용돌이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리고리는 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마을 부농의 딸 나탈리야와 결혼하지만, 그녀와 원만한 결혼을 이어가지 못한다. 더 나아가 그가 입대한 뒤 벌어지는 서사시적 규모의 역사적 시련의 모험에 나서는 이야기가 소설의 큰 줄기다. 멜레호프네는 당시 카자크 사회에서 중간자에 가까운 중농이며, 그리고리는 둘째에다 왼손잡이, 정확히는 양손잡이이다. 이러한 조건은 그리고리가 나중에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그 후 벌어진 혁명과 내전 과정에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깃들지 못하는 주인공의 상황을 암시한다. 소설 초반의 교차 지점이라는 공간 설정은 카자크 집단의 역사를 대변한다. 이로써 주인공 그리고리는 한 사람의 개인인 동시에 카자크 집단의 길 찾기와 방황을 상징하는 인물로 나아간다. 그는 초원에서 풀 베기를 하던 날 낫질에 걸려 죽은 새끼오리에게 연민을 느끼고 전선에서 앳된 적군 병사를 찔러 죽인 후 번민을 거듭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와의 전선에서 기마병으로 복무하다가 타고난 자질과 재능에다 냉혹함까지 발휘해 훈장을 휩쓸어 장교의 지위에 오른다. 이어서 혁명 후 적위군에 남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적위군에 맞선 카자크 반란군 사단장이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반란군이 백위군과의 피치 못할 협력으로 내몰리자 그는 이들과 협력할 근거를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백군 장교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흰 까마귀' 같은 존재라고 느낀다. 이리하여 그는 '한 날개 아래서 모두가 따습게 살아갈 진실' 찾기에 회의하고, 결국에는 길을 완전히 상실하는 상황에 빠져든다. 하지만 전쟁이 모두의 야수화를 촉발하고 온갖 시련에 부닥치면서도 그는 내면적 자유의 영역만은 지키는 인물이다. 혁명사의 굵직한 줄기가 여러 갈래로 펼쳐지는 소설의 서사적 중심에는 각양각색의 타타르스키 마을 사람들을 비롯한 카자크 민중의 삶의 현장이 파노라마처럼 실감 나게 펼쳐진다. 돈강을 둘러싼 자연의 법칙과 감각에 공고하게 뿌리내린 그들은 특히 어디서나 노래와 춤을 즐기고 고단한 삶이 녹아든 농담을 주고받을 줄 아는 유쾌하고 낙천적인 사람들이다. 더불어 이 작품의 어떤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는 풍경묘사, 웃음과 유머 외에 작품 곳곳에 내장된 구전문학의 요소들은 주목할 만하다. 전승되던 구전문학이 때로는 등장인물이 부르는 노래로, 때로는 그들의 대화와 저자의 서정적 일탈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저자는 지역 사투리를 자신의 문체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눈 덮인 겨울날 초원에 부는 바람을 '동풍이 고향 초원을 따라 카자크짓을 한다'고 묘사한다. '카자크짓'은 제멋대로 바람이 이동하는 모양새를 의인화한 표현이다. 앞에서 언급한 톨스토이의 '귀여운 카자크'는 이런 카자크짓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작품 제목 '고요한 돈강'은 작품에 인용된 민요 등에서 널리 쓰였던 표현을 활용한 것이다.모스크바 중심가의 아름드리나무가 늘어선 고골 가로수길에 들어서면 중간 어디쯤서 강에서 배를 젓다가 잠시 한숨 돌리는 숄로호프를 형상화한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배 주변에는 강을 건너는 말들의 머리만 드러나 있는데, 이 말들 무리는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쪽을 향하고 있다. 이 기념비는 이념을 앞세워 잔인한 전투를 불사한 세력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위대한 작품을 창작해 낸 작가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은 것이다. 사실상 모순적인 작가라고 할만한 숄로호프는 이 작품 전반부가 출판되자마자 '붉은 톨스토이'라 칭송받았고, 1965년 노벨문학상을 받음으로써 공산주의자로서 그의 문학적 성취는 세계적 냉전에도 불구하고 양 진영의 공인이라는 보기 드문 결실을 얻었다. 변춘란 <번역가>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경북대와 모스크바사범대학에서 숄로호프의 소설을 연구했다. 러시아 전문 번역가로 러한, 한러 번역을 하며, 2017년부터 러시아인과 번역팀 '미래짓'을 운영하며 온라인상에서 주기적인 번역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언어의 장벽을 걷어내는 다시 쓰기로서의 번역 역량 강화와 그 저변 확대에 관심이 많다. 지금은 모스크바에서의 박사과정 시절 완역해 둔 '고요한 돈강'의 출간을 준비하는 중이다.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지원 공모사업에 선정(2019년)돼 소설가 현기영 단편집('순이 삼촌' 등 5편)을 러시아어로 번역했고, 한국어 번역서로는 '한국 학습자를 위한 러시아어 수업 연구'(공역·2019), 톨스토이 사상집 '죽이지 마라'(2021), '학교는 아이들의 실험장이다'(2022)가 있다. 이와 더불어 공저 '노벨문학상 수상작 산책'(2022)이 최근 출간됐다.작가의 고향 저택박물관 앞 돈강가의 그리고리와 악시냐의 등신대. 변춘란 번역가
2022.12.23
[노벨문학상 산책] 장 폴 사르트르 '구토'…삶에 이유는 없지만 희망은 존재…위선자들에 보내는 영원한 작별인사
소설가, 극작가, 비평가이면서 철학자였고 사회적 발언을 그치지 않은 지식인이었던 사르트르는 글쓰기와 진정한 자유의 추구라는 두 궤적을 따라 평생 모든 분야에서 펜을 휘둘렀다.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지만 '작가는 제도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따르겠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소설 '구토'(1938)는 사르트르가 첫 번째로 출간한 문학작품이자 그를 단번에 문제적 작가의 반열에 올린 글이다. '구토'를 이야기로 정리하자면 줄거리는 단순하다. 앙투안 로캉탱이라는 사람이 부빌이라는 지방 도시에서 도서관, 카페, 공원 등을 전전하며 책을 한 권 쓰려다가 포기하고 부빌시를 떠나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로캉탱의 일기로 구성된다. 그가 일기를 쓰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무심히 보고 지나치던 문손잡이, 의자, 거울 속 자기 얼굴,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수상하고 두렵게 여겨지고 구역이 치밀어오르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물들을 만지기가 어려워진다. 물수제비를 뜨려다가 돌멩이를 떨어뜨리고, 길가에 굴러다니는 종이를 주우려다가 줍지 못한다. 어느 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로캉탱의 눈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진다."나무뿌리, 공원의 철책, 벤치, 잔디밭의 듬성듬성 자란 잔디,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꺼져버렸다. 사물들의 다양성, 그들의 개아성(個我性)은 외관, 반들거리는 표면일 뿐이었다. 이 반들거리는 표면이 녹아내리며, 흉측하고, 물렁물렁하고, 무질서한-벌거벗은, 그 소름 끼치는 음란한 나신의-덩어리들만 남았다." 사람들이 정해놓은 사물들의 이름과 사용법이 사라져버리자 존재의 속살이 드러난다. 자기 마음대로 흘러넘치는 존재들 앞에서 생각과 말은 힘이 없다. 이렇게 세계의 질서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 '구토'가 치민다. 존재란 그저 거기 있는 것일 뿐이며 모든 존재는 쓸데없이 더해진 잉여라면, 나라는 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존재에 대한 환상 깨지며 구토 치밀어선망받는 의사·위인들 양면성에 혐오권력에 의존하는 '개자식'이라며 비난우연히 발견한 '또 다른 세계' 통해 구원로캉탱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존재에 근거와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확고한 자기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과 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 두 부류가 있다. 카페에 앉아 있던 로캉탱은 백발이 멋진 의사 로제씨가 당당한 태도로 카페에 들어서다가 거기 있던 아실씨라는 부랑자를 보고 저런 미친 노인네를 손님으로 받느냐며 불평하는 모습을 본다. 연륜과 지혜라는 말로 포장되는 과거를 가진 의사 로제 같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남들을 판단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반면에 자기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아실씨는 누구에게나 무시당하면서도 반발하기는커녕 동조하고 비굴하게 군다. 현재의 개인은 과거 시간의 집적이며 그 과거는 명백히 의미가 정해져 있다는 믿음을 양쪽 다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집약된 곳이 박물관이다. 어느 날 로캉탱은 부빌시 명사들의 초상화를 모아 놓은 박물관을 방문한다. 지혜와 경험의 표상인 모범적인 위인들의 얼굴이 관람객들을 내려다본다. 이 얼굴의 주인인 지역 유지들은 건물을 세우고, 돈을 벌고, 파업을 분쇄하고,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느라 바빴다. 전시실에서 등을 돌리고 걸어 나오면서 로캉탱은 "잘 있어라, 이 개자식들아.(아듀, 살로.)" 하고 작별 인사를 보낸다. '개자식들'로 번역된 '살로(salauds)'는 도덕적으로 혐오스러운, 경멸할 만한 사람들을 말하는 욕이다. 이들은 왜 살로인가? 자신이 수용한 그리고 자기에게 유리한 사회적 가치가 객관적이라 굳게 믿으며, 그것으로 자기 존재의 우연성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삶의 우연성이 어렴풋이 느껴질 때 권력과 전통에 의존함으로써 도피하려는 '살로'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연성을 돌파하려고 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로캉탱이 도서관에서 자주 마주치는 '독학자'는 지식과 교양 그리고 휴머니즘을 이정표로 삼은 사람이다. 책을 대할 때 "뼈다귀를 찾아낸 개 같은 표정으로" 다루는 듯 보일 만큼 그의 지식욕은 맹렬하다. 서가에 꽂힌 책을 알파벳 순으로 모조리 읽을 정도로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무조건 존중하던 그는, 인간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어린 학생의 손을 어루만지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결국 도서관에서 쫓겨난다. 로캉탱의 연인이었던 안니는 일상에서 '완벽한 순간'을 만들어내려는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에 집중해 그 시간에 엄격한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소설이나 영화처럼 살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완벽한 순간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달은 안니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남자에게 의존해 사는 통속적 삶을 이어간다. 이들의 실패를 보며 로캉탱은 자신이 매달리던 역사책을 쓰는 일 역시 존재를 느끼지 않기 위해 부여잡았던 환상임을 인정한다. 책도 포기하고 독학자와 안니와의 관계까지 모두 끝난 로캉탱 앞에 남은 삶은 죽음과도 비슷한 '버섯 같은 삶'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부빌시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단골 카페에 들른 로캉탱은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을 듣다가 한순간 어떤 다른 세계를 엿보았다고 느낀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절정으로 치닫는 완결된 세계, 실재하지 않지만 현실의 어떤 것도 방해할 수 없는 세계이다. 그리고 음악을 만든 작곡가와 가수가 '구원받았다'고 느낀다. 누군가가 이 음악을 듣고 창작자를 생각해 주었기 때문이다. 로캉탱은 가족도 직업도 친구도 없는 홀로 있는 인간이어서 진리를 은폐하려는 사람들과 거리를 둘 수 있었고 그래서 존재의 우연성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혼자 있다는 것은 삶을 텅 비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재즈음악을 들으며 그것을 만든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 사이에 무언가 오간다는 느낌을 받은 로캉탱은, 자신도 무언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의 불씨를 다시 얻는다. 작품이라는 매개를 둘러싸고 작동하는 새로운 관계의 경험이 다른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것이다. 이 구도는 훗날 사르트르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설명한 '수용자에 대한 호소로서의 작품'이라는 문학론을 예견케 한다. 우리가 지리멸렬하게 살아가는 이 삶에는 이유가 없다. 이유가 있다고 믿는 것은 기만이다. 그렇지만 그 삶에는 재즈음악이 로캉탱에게 준 희열 같은 짧은 구원이 깃들기도 한다. 오은하 교수(연세대 불어불문학과)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오은하 교수는?연세대 불어불문학과에서 프랑스 현대문학과 근대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서울대와 파리3대학에서 공부했다."세상의 모든 사람으로 이루어지며, 모든 사람만큼의 가치가 있고 또 누구보다도 잘나지 않은 한 진정한 인간"을 말하는 사르트르의 자서전 '말'을 읽고 매료되어서 그의 문학을 전공했다. 사르트르를 중심으로 폴 니장, 알베르 카뮈, 빅토르 위고, 아니 에르노 등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한 작가들의 글을 주로 연구한다. 현재 관심 분야는 알제리전쟁 시기 사르트르의 반식민 글쓰기를 통해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재조명하는 일이다. 최근 논문으로 「되살아난 죽은 자의 폭소: 사르트르, 「벽」에서 '웃음'의 중첩적 의미」, 「폭력 없는 증여라는 꿈: 사르트르, '악마와 선한 신'의 괴츠와 힐다」, 「수치는 어디서 오는가: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 「바리케이드 위에서 보는 지평선: '레 미제라블'의 프라테르니테」 등이 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인간의 재구성' '사르트르의 미학' '카페 사르트르' '검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아프리카' 등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오은하 교수(연세대 불어불문학과)
2022.10.28
[노벨문학상 산책]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美 노예제 반성을 통한 인종적 화해 모색
토니 모리슨(1931~2019)은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대표적 현대작가이다. 오하이오주에서 출생한 모리슨은 고등학교까지는 로레인이라는 도시에서 다니다 대학은 흑인의 하버드로 알려진 하워드대학에 진학하였다. 코넬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그녀의 석사학위 논문은 윌리엄 포크너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에 대한 연구이다. 모리슨은 랜덤하우스 출판사에도 근무하고 또 오랫동안 프린스턴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도 근무했다. 1987년도에 출판된 '빌러비드'는 '뉴욕 타임스'에서 소설가와 비평가를 대상으로 지난 25년간 출판된 소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소설을 꼽으라는 설문에서 1위에 오른 작품으로 문학성, 사회성, 시의성을 갖춘 명작이다.'빌러비드'의 시대적 배경은 1855년에서 1873년으로 이때는 남북전쟁(1861∼1865) 전후이며 특히 재건시대로 알려진 시기다. 오하이오에 사는 흑인 노예가 자신의 딸이 노예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아 살해한 이야기인 마가렛 가너라는 여인에 관한 신문기사를 바탕으로 쓴 '빌러비드'는 마가렛 가너 이야기에 상상력을 발휘해 새롭게 쓴 작품으로 노예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다루고 있다.'빌러비드'는 미국 노예제 동안 생긴 상흔이 노예제가 끝난 후에도 지속돼 그 희생자뿐만 아니라 그 선조들의 고통을 다시 소환하는 복잡하고 스펙트럼이 넓은 시대적 배경을 보여준다. 즉 작품은 노예제가 끝난 후 피해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다시 노예제 시기의 재기억을 보여주고 또 노예제 이전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들의 이야기까지 제시되면서 미국 노예제뿐만 아니라 유럽의 노예무역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묘사한다.3부 28장으로 구성된 '빌러비드' 의 시간적·공간적 배경은 1873년 오하이오강 건너 신시내티다. 1부의 시작 문장은 "124번지는 원한이 가득했다"이다. 124번지 블루스톤 로드에서 딸 덴버와 사는 세스에게 갑자기 18년 전 켄터키주 농장 동료 폴 디가 찾아온다. 18년 만에 갑자기 찾아온 폴 디를 만나 반가운 것도 잠시 귀신들린 집은 폴 디를 괴롭힌다. 폴 디가 강하게 저항하며 귀신을 쫓아내자 집은 조용해진다. 곧 124번지에는 또 다른 손님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빌러비드가 사람으로 육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빌러비드는 정상적인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마치 물속에서 살아나온 여자인 것처럼 숨이 가쁘며 기력이 빠져 있다. 20세 정도로 보이지만 말하는 방식과 행동은 어린애 같은 빌러비드는 세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세스는 이런 질문들이 신선했지만 점차 빌러비드가 마을공터에서 세스의 목을 조르는 등 괴롭히자 세스도 견디기 힘들어한다.인간이하의 삶 살던 세스…노예의 숙명 물려주기 싫어 갓난 딸 죽이게 돼18년 뒤 나타난 딸의 망령 '빌러비드' 통해 다시금 삶이 무너지는 경험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한 '빌러비드' 많은 흑인노예 대변하듯 이야기 전개다시는 반복돼선 안될 역사…비극적 가족사와 그 극복의 서사로 표현한편 이야기는 세스와 폴 디와의 대화를 통해 참혹했던 켄터키주 농장 생활이 드러난다. 폴 디와의 대화에서 행방불명되었던 남편 핼리의 당시 상황을 알게 되었고, 폴 디가 수탉보다 못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동안 세스와 폴 디는 서로 동병상련을 느낀다. 사실 폴 디는 세스만큼이나 고통을 겪었는데 학교 선생이라 명명된 노예주에게 팔린 후, 새 주인을 죽이려 한 죄로 조지아 알프레드 수용소에 감금되어 인간 이하의 고통을 받다가 다른 죄수들과 탈출하여 북쪽으로 갔다. 글을 읽지 못하는 폴 디는 동료 스탬 페이드가 보여준 신문기사를 본 후 세스에게 아이를 죽인 것이 사실인지 확인한다. 세스는 한참 고민하다가 그때 있었던 일에 대해서 할 일을 했다는 듯이 말하자 폴 디는 동정이나 위로가 아닌 치명적인 말을 남기고 세스를 떠나는데, 그 말은 "세스, 너의 사랑은 너무 짙어 … 너는 발이 두 개이지 네 개가 아니야"였다. 모리슨의 재기억 전략은 2부에서 잘 나타나는데 그것은 20장부터 23장까지 각각 세스, 덴버, 빌러비드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는 모놀로그이다. 그런데 23장에서는 세 모녀가 한목소리가 되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이한 것은 빌러비드의 독백은 정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마침표 혹은 따옴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문장이 엉성해 마치 어린애가 만든 문장처럼 보인다. 이것은 빌러비드가 두 살 때 죽어서 유아의 독백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빌러비드는 이미 단순한 죽은 두 살의 딸을 넘어서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에서 죽어간 모든 흑인을 대변하는 존재가 된다. 3부의 시작은 "124번지는 조용했다"이다. 빌러비드는 지속적으로 많은 것을 요구하고 세스는 그것을 들어주려 한다. 남은 38달러의 전 재산을 다 쓰면서까지 빌러비드가 좋아하는 물품을 사서 딸의 요구를 들어주던 세스는 점점 몸이 쇠약해지고 작아진다. 반면 세스의 기를 뺏은 빌러비드는 몸이 비대해지고 배까지 불쑥해진다. 집이 혼란에 빠진 것을 목격한 덴버는 드디어 여러 해 만에 집 밖을 나가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최초로 찾아간 사람은 주일학교 선생님인 레이디 존스이다. 레이디 존스의 주선으로 마을 여인들로부터 음식을 받은 덴버는 무척 고마워하며 나중에 보드윈씨 집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도 한다. 보드윈씨는 평생을 흑인을 위해 살아온 사람으로 부친의 선한 영향으로 백인들이 행한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했다. 한편 마을 여인들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세스를 돕기 위해 모인다. 124번지 앞에서 기도를 하는 여인들 앞에 나타난 세스와 빌러비드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빌러비드는 커진 덩치와 함께 마치 임신한 것처럼 배가 불러 있었기 때문이다. 세스는 덴버를 태우러 온 보드윈씨의 모자를 본 후 얼음을 깨던 송곳을 들고 보드윈씨에게 달려드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저지한다. 멀리서 하얀 모자를 쓰며 다가오는 보드윈씨를 학교 선생이라고 여긴 세스가 이번에는 딸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한 것이다. 엄마의 이런 행동을 본 빌러비드는 만족한듯 사라지고 124번지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또한 세스를 떠났던 폴 디도 다시 124번지에 오게 된다. 폴 디는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던 세스를 어루만져주며 그녀에게 "당신하고 나, 우리한테는 누구보다 어제가 많아. 이제 어떤 식으로든 내일이 필요해"라고 말하며 다정하게 다가간다. 작품의 마지막 장은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다루며 작가는 독자에게 "이 이야기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재기억의 문제를 환기한다. 즉, 이 이야기는 너무 비참해서 더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이런 참혹한 역사는 다시는 반복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재기억의 사례는 집이 불타 사라져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재기억이다. 재기억은 점차 의미를 확장하게 되는데, 즉 나쁜 기억들이 불현듯 떠올라서 당사자들을 괴롭히는 트라우마적 재기억 그리고 흩어진 몰랐던 기억들이 다시 합쳐지고 정리되는 통합적 재기억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재기억은 소설의 마지막 장에 제시되듯이 기억과 망각에 관한 재기억으로 옳지 못한 역사적 과오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리슨은 이 소설을 "6천만명 그리고 그 이상"에게 바친다고 했다. 6천만명은 단순하게 노예제로 죽은 흑인이 아니다. 그 숫자는 노예선에 실리기 전에 아프리카 땅에서 포획되면서 저항하다 죽은 아프리카인에서부터 배 위에서 저항하다 죽은 흑인, 배 안에서 굶어서 죽거나 뛰어내린 흑인 그리고 미국 땅에 도착하여 노예로 살다가 여러 형태의 가혹 행위에 의해 죽은 모든 흑인을 포괄한다. '빌러비드'는 한 번 읽어서 이해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독자는 이 소설을 여러 번 읽어서 모리슨이 던진 복합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모리슨은 잘못된 제도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요구한다. 한재환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한재환 교수는 경북대 영어영문학과에서 '20세기 영국소설' '20세기 미국소설', 대학원에서 '20세기 영미소설'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소수인종문학에 관심이 많으며, 특히 흑인문학과 흑인문화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경북대 인문대학 부학장과 영어영문학과 학과장을 지냈다. 또 한국현대영미소설학회 편집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영어영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토니 모리슨의 삶과 문학' '세계문학 속의 여성'(공저) 등이 있고, 주요논문으로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지하철도에 나타난 폭력의 양상과 자유를 향한 여정' '모리슨의 고향: 인종주의, 트라우마, 공동체' 외 다수가 있다.한재환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2022.09.30
[노벨문학상 산책]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억울한 감옥살이 속 햇살처럼 스며드는 '인류애'
◆고난의 생애와 진실의 문학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은 '러시아 문학의 불굴의 전통인 도덕적 힘을 계승했다'는 찬사와 함께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노벨상을 기점으로 작가는 소련에서는 반역자로, 서구에서는 사회주의 체제를 고발하는 양심과 저항의 상징으로 양극단의 운명에 처해 진다. 솔제니친의 문학은 자신의 삶과 역사적 체험에 근거한 생생한 육필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암병동'은 8년에 걸친 작가의 수용소 체험을 바탕으로, '붉은 수레바퀴'와 '수용소 군도'는 자신의 체험과 다른 사람들의 역사적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창작되었다.1962년 솔제니친은 가까스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할 수 있었는데,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1960년대 자유화를 알리는 일대 사건이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그는 작품 출판금지와 작가동맹 제명이라는 가혹한 탄압을 받아야 했다. 솔제니친은 공개서한을 통해 정부와 작가동맹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그 서한들이 서구에 전해지면서 그는 세계적인 저항의 지식인으로 부상한다. 죽 한그릇 더 먹는 일에 일희일비20세기 러시아 역사 생생히 그려내현실비판 소설로만 해석땐 아쉬움이기적인 주인공이 나눔 시작하며수용소 안에서 자라나는 희망의 싹 그 위대한 순간 문학적 구현한 소설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를 몰래 해외에서 출판했다는 이유로 1974년 마침내 반역죄로 체포돼 해외로 추방당한다. 이후 미국에 정착한 솔제니친은 이데올로기 선전전의 훌륭한 상징물로 활용되었지만, 다른 한편 서구 자본주의에 대해 차가운 태도를 견지하며 한적한 버몬트주 산골에 칩거한 채 러시아어와 러시아적 생활을 고집하는 등 다소 괴짜라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1994년 솔제니친의 귀국길에는 수천 명의 열렬한 환영 인파가 뒤따랐다. 이후 솔제니친은 국수적 애국주의를 주창하고 서구의 간섭과 이데올로기적 침투를 비난하는 등 다소 극우적일 정도의 정치적 행보를 보였고, 2008년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이반 데니소비치의 '행복한' 하루와 역사의 불안'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하루를 통해 20세기 역사의 비극적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아마 모든 문학서가 바로 이렇게 이 작품을 요약하고 소개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런 독법에만 머문다면, 간단한 요약본으로 이 작품을 읽는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오늘날 새롭게 이 소설을 손에 든다면 우리는 도식적 독서가 아니라, 보다 깊은 소설의 재미와 진경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장면을 발견하고 단순한 사실 폭로나 현실 비판을 넘어 삶과 문학의 본성에 닿아 있는 솔제니친 문학의 정수를 느껴보아야 할 것이다.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했는데, 독일군 첩자라는 부조리한 혐의로 10년 형을 받고 현재 8년째 복역 중이다. 그는 그저 죽 한 그릇을 더 먹거나, 약간 유리한 작업 부서에 배치를 받는 등 약삭빠르게 약간의 편익을 도모하는 일에만 열중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그런 하루가 슈호프에겐 운이 좋고 행복한 하루이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에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 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새벽부터 일어나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기껏해야 죽 한 그릇을 더 얻어먹을 수 있었던 슈호프의 하루, 이런 하루가 '행복'했다니?! 분명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감옥을 묘사할 때 비참한 상황을 극대화하기보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 오히려 더욱 공포를 느끼게 되는 솔제니친의 냉엄한 리얼리즘을 목도한다.하지만 작가는 비참한 수용소 생활의 묘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벽돌 쌓는 작업을 배정받은 슈호프와 동료들은 각자 편하고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다. 그러나 막상 일이 시작되자 슈호프는 오직 일 자체에 빠져든다. '이제 슈호프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 슈호프는 오직, 이제부터 쌓아 올릴 벽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일에 열중한 슈호프의 모습에서 강제노동이라는 비극적 분위기는 사뭇 사라지고 일 자체에 대한 희열까지 느껴진다. 모르타르를 빗고 벽돌을 나르며 함께 일하는 반원들도 어느새 자발적으로 빠져든다. 마치 신나는 잔치와도 같은 분위기다. 이렇게 노동의 기쁨을 맛본 후 슈호프는 평소와 다르게 반장에게 대등하게 말을 건네는가 하면 금지된 줄칼을 몰래 반입하는 용기를 내고 남에게 얻은 '소중한' 비스킷 하나를 옆 침상의 알료쉬카에게 나누어주며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저 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하던 슈호프가 이젠 가장 약하고 선량한 알료쉬카에게 적선을 베풀고 있지 않은가. 이 역시 오늘 하루 노동의 기쁨을 맛본 자의 고양된 내면의 효과가 아닐까. 이런 장면은 견고한 일상의 벽에 균열을 일으키는, 그 균열의 틈새를 인간의 생명이 파고 들어가는 희망의 싹틔우기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삶을 희망으로 일깨워 가는 작은 자유의 몸짓이며,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힘이라고 해석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20세기, 사회정치 혁명이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었던 것은, 아니 그 몰락의 분명한 원인 중 하나는 인간 활동의 이러한 미세한 생성의 계기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는 이 장면을 비참한 일상을 돋보이게 하려고 그렸을지 몰라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 위대한 순간을 문학적으로 구현해 낸 것은 아닐까.이강은 교수 (경북대 노어노문학과)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경북대 인문대학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러시아 소설론'과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등을 강의하고 있다. 소설을 인간과 문화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하고, 소설 속 인물이 주이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보여주는 사소하면서도 위대한 움직임에 주목하길 좋아한다. 경북대 기초교육원장과 교무처장을 역임한 바 있고, 우리 사회의 인문사회 역량을 제고하고자 설립된 <사>인문사회연구소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혁명의 문학 문학의 혁명 막심 고리끼' '변혁기 러시아 문학의 윤리와 미학' '러시아 소설의 형식적 불안정과 화자' '반성과 지향의 러시아 소설론' '미하일 바흐친과 폴리포니야' 등이 있고, 역서로 '인생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은둔자' '레프 톨스토이' 등이 있다.이강은 교수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2022.09.02
[노벨문학상 산책] 이오시프 브로드스키의 '존 던에게 헌정하는 大 비가'
창작의 자유 외치던 문학청년소련 추방 15년 뒤 노벨상 수상모국의 정체성 평생 잊지 않고망명문학 독창적 창작세계 구축건조한 시어로 감정의 과잉 억제삶·죽음·운명에 관한 성찰 전달러시아 최고의 서정 시인 평가198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오시프 알렉산드로비치 브로드스키(1940~1996)는 유대계 출신이며, 러시아 시인이자, 미국의 에세이 작가이다. 그는 소련에서 추방된 지 15년 만에 미국 시민권자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국회도서관으로부터 '올해의 시인'(1991)으로 선정되기도 하면서 이주작가 혹은 망명작가로서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가까운 친구이자 시인의 전기를 집필한 알렉세이 로세프는 "브로드스키가 영어로 시를 쓰면서도 자신을 이중 언어의 시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영작 시를 차라리 하나의 게임처럼 여겼다. 그는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러시아인이었으며, 중년이 되어서도 그런 자신의 입장을 반복했다"며 그의 복잡한 경계인적 입장을 설명한 바 있다. 실제로도 그는 자신의 시 대부분은 러시아어로 썼으며, 영어로는 주로 에세이를, 그것도 레닌그라드 시절의 경험과 기억을 회고하는 자전적 에세이와 시론을 쓰는 데 몰두했다. 이처럼 브로드스키의 창작 양태가 보여주듯 그는 소비에트 망명문학이라는 기이한 문학 현상에 나타난 희생자이자 대표작가로 상징되고 있다. 1940년 레닌그라드(오늘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브로드스키는 열다섯 살에 중학교를 중퇴한 이후, 병기창 견습생, 보일러공, 등대지기, 병원 시체안치실 보조원 등의 막일을 전전하며 정규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으며 심각한 대인공포증과 말더듬증을 앓을 정도로 사회 적응을 하지 못하던 문제아였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스무 살의 문학청년 브로드스키는 사미즈다트(지하출판) 시 잡지 '문장'에서 비공식적으로 문학 데뷔를 하였고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할 정도의 미미한 창작 생활을 겨우 이어가던 문학 초년병에 불과했다. 그러나 1963년 11월29일 석간지 '저녁의 레닌그라드'의 '유사 문학을 행하는 기생충'이라는 기사를 통해 브로드스키가 사회적 공적으로 비판받고 재판에 회부되자, 역설적이게도 그의 재판은 '시인은 직업인가?' '소련에는 창작의 자유가 있는가?'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세계적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덩달아 그의 작품세계도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결국 그는 법정 최고형인 5년간의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으며 아르한겔스크의 한 벌목장으로 추방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직업 활동을 기피하는 반사회적인 인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사회적 분위기를 추스르려고 했던 소련 정부의 의도는 빗나가고 공연히 불필요한 논란만 키운 꼴이 되고 말았다.사실 브로드스키라는 시인의 등장과 그에 대한 재판은 소위 '해빙'이라는 스탈린 사후의 탈권위주의적 사회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5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해빙의 사회적 분위기는 강압적 스탈린주의에 대한 반대, 정통 레닌주의로의 회귀, 개인과 창작의 자유 보장 등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며 사회적 긴장이 이완되고 있었다. 이러한 해빙의 분위기를 주도한 사람들은 문학, 음악, 영화 등의 문화 전반에서 그간 숨죽이던 예술가이었는데, 그들은 스탈린 시대를 거치며 끊어진 러시아 모더니즘의 다양한 창작적 실험을 다시 재현하고 있었다. 브로드스키 역시 시대의 변화에 호응하며 숨겨진 자신의 시적 재능을 통해 아크메이즘(아담주의)의 문학적 전통을 이어가고자 했다. 브로드스키의 시 세계는 '마치 아담처럼 지상적 존재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껴야 하며, 시선에 들어오는 최초의 인상을 표현해야 한다'는 아크메이즘 창작 원칙 아래 세계를 선입견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명료한 시어를 추구하며 시작된다. 그러나 아크메이스트적 입장에 안주하지 않고 그는 이십 대 중반부터는 영국 시인 존 던과 위스턴 휴 오든(1907∼1972)의 형이상학 시에서 자극을 받으며 죽음, 불멸, 시간과 공간, 형제애 등의 철학적 명제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시적 주제를 확장한다. 이 과정을 통해 시인 브로드스키는 러시아적 요소와 비러시아적 요소가 혼합된 자신만의 독창적인 창작 세계를 구축한다. '존 던에게 헌정하는 대(大) 비가 Большая элегия Джону Донну'(1963)는 그의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서 브로드스키의 시학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존 던이 잠들자, 주변 사물이 모두 잠들었다.사방의 벽이, 마루가, 침대가, 그림들이 잠들었고탁자, 양탄자, 빗장, 걸쇠,옷걸이, 찬장, 양초, 커튼이 잠들었다.'208행에 달하는 이 대(大) 비가에서 단어 나열은 무려 91행에 걸쳐 계속되며 브로드스키의 시선은 존 던의 침실로부터 시작해 집 안 구석구석으로, 창문 너머의 도시로, 자연의 세계로, 다시 신도 악마도 모두 잠들어 있는 천상의 세계로 계속 이동한다. 시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한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가에 통상적인 슬픔을 자극하는 정서적 단어들은 일절 등장하지 않고 단지 건조하고 사실적인 시어만이 사용되며 철저히 감정의 과잉이 억제된다. 이는 브로드스키가 시간의 본질과 현상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모색하면서도 삶, 죽음, 수난, 운명, 공간 등을 시간의 변주가 낳은 하위 테마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브로드스키는 어떤 시인보다도 철학자적 면모를 보이는 형이상학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로드스키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에 자신의 오랜 굴레였던 유죄판결에서 25년 만에 완전히 복권되고 페테르부크그 명예시민으로 위촉되면서 러시아 시민의 권리를 회복했다. 그러나 그는 부모가 이미 사망한 러시아를 방문하지 않았고 미국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그는 미국에서 문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되기도 하고 여러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인으로 또 에세이 작가로 최고의 영예를 누리던 1996년 브로드스키는 56세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했다. 1964년 투옥 당시 처음 발병하기 시작한 심장병이 다시 재발한 것이다. 소비에트 체제가 붕괴하자 해외 망명문학이 러시아 문학에 공식적으로 편입되는데 이때 브로드스키에 대한 재평가도 함께 이루어졌다. 한때 조국에서 수모를 겪고 추방당했던 브로드스키는 오늘날 러시아 문단에서 20세기 후반 러시아 최고 서정시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이대우 교수<경북대 노어노문과>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현재 경북대학교 인문대 노어노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대 노어노문과 및 동대학원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했으며, 프로방스 대학 및 파리 8대학 박사과정에서 DEA를 취득한 후,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에서 세르게이 예세닌의 신농미시와 한국농민문학으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 '러시아문학개론'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 등과 역서 '부활'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네네츠의 신화-설화' 등이 있다.이대우 교수(경북대 노어노문과)
2022.08.05
[노벨문학상 산책] 세이머스 히니의 첫 시집…'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
1972년 1월30일 데리의 보그사이드 지역에서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라 불리는 역사적 사건이 발발한다. 북아일랜드 시민권 협회가 재판없는 구금에 반대하기 위해 조직했던 행진에서 영국군의 낙하산병들이 비무장 시민운동가 13명을 살해하고 12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모두 가톨릭 신자였다. 이 사건의 문맥은 아일랜드 독립전쟁 기간인 1920년 11월21일에 일어났던 원조 '피의 일요일'과 관련해 소위 IRA가 더블린에서 더블린성의 정보부 소속 무장 영국장교 11명을 살해했을 때, 그 보복으로 영국군은 더블린의 크로크 파크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 21명을 사살한 역사적 사건과 맞물린다. 북아일랜드 분쟁(The Troubles)이라 불린 이러한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동요의 상황 속에서, 벨파스트에 거주하던 세이머스 히니는 마침내 퀸즈대학의 강사직을 사임하고, 1972년 11월 가족과 함께 북아일랜드를 떠나 남쪽 아일랜드 공화국의 위클로 카운티의 글랜모어 카티지로 이주한다. 북아일랜드 '피의 일요일' 사건 후 남아일랜드공화국으로 떠난 히니총과 폭력에 대한 공포 극복하며 자연 속 서정적 아름다움 그려내23년 뒤 '일상의 기적과 살아있는 과거를…'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진심·희망 주는 밝은 어조 눈길…작품속에서 숭고한 삶의 비전 제시23년 뒤 히니는 '일상의 기적과 살아있는 과거를 찬양하는 서정적 아름다움과 윤리적 깊이의 작품'으로 199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아일랜드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판테온에 W. B. 예이츠, 조지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켓과 함께 나란히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 것에 대한 소감을 묻자, 히니는 "산맥 아래 작은 산기슭에 있는 것과 같다"라고 겸손히 대답한다. 조그마한 나라 아일랜드 문학의 산맥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4명이나 있다는 사실은 남북의 문제가 공통분모인 한국에서 숙고해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최초의 시집인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에 처음 등장하고 히니의 시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시 '땅파기'에서 시인인 화자는 펜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삽으로 작업한다. 시인은 탐구가이자 고고학자로서 자신의 땅의 도면을 그리고 전통을 발굴하며 다시 써내려 간다. '내 검지와 엄지손가락 사이에펜촉 만년필이 놓여있다. 총의 방아쇠를 쥔 듯 가지런히.창문 아래에서는 자갈밭에 꽂히는깔끔하면서도 거친 삽질 소리가 들린다.아버지가 땅을 파고 계신다. 나는 내려다본다. (DN 3)'감자 이랑과 늪지의 어두운 땅속을 파내려 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현실적 작업에서, 히니는 고고학적 상상력으로 북아일랜드 정신적·역사적·문화적·영성적 공동체의 현실적 토착 토양을 펜으로 파내려 가고자 하는 욕망과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펜과 총의 이미지가 독자의 뇌리에 남는다. 펜과 총의 이미지로 시작하는 히니의 의식 속에는 총의 비유가 전하는 폭력적인 위험이 잠재해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지뢰와도 같이 단편적으로 폭발적인 이미지로 시집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에 여기저기 심어져 있다.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에서는 어린 시절의 자연현상은, 더 이상 목가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다. '땅파기'에서 언급된 총은 방아쇠가 당겨지면 폭력적인 위험을 상징하여 공포와 두려움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초기의 시인 히니는 폭력의 이미지가 지배하는 북아일랜드 데리에 살면서 자신도 모르는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자연은 현실적인 체험에서 생경하고도 낯설게 위협과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이제 낭만주의적 자연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자연주의의 종말' '현실의 비전'을 가져다준다. 습지에서 개구리를 보는 시각뿐 아니라 곡식 창고에서, 강둑에서, 우물에서, 개울에서, 그리고 모스반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포가 다가온다. 목가적이라고 생각했던 데리의 모스반의 곳곳의 공간에서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어린 시절의 경험은 시인에게 여러 형태의 관찰을 통해 무의식적인 공포증의 원인을 엿보게 해준다. 공포에서 벗어나면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공포의 대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은, '배움의 진전'에서 제시한 쥐 공포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것이다. "신중하고도 소름이 돋는 주의를 기울이며" "뚫어지게 바라보는" 새로운 응시의 현실감각을 초기 시에서 구현한 것이다. '블랙베리 따기'와 '버터 만드는 날'에서도 시인은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응시의 현실감각을 체득한다. 이제 독자들도 시인 히니가 익숙하게 연단 시킨 동식물에 대한 집중력으로 사물을 응시할 수 있다.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연단된 응시로 독자의 상상력을 일깨워 자연현상과 인간, 물고기, 폭포에 대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응시와 연단을 통한 예술적 재현의 사례를 '아란섬의 싱' '성 프란체스코와 새들' '조그마한 마을에서' 3편의 시에서 찾아본다. '아란섬의 싱'에는 아란 섬의 사방의 바람이 소금으로 그 날카로움이 더해지고, 땅을 깎아 내려가며, 절벽을 깎기도 한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존 밀링톤 싱(John Millington Synge·1871~1909)은 아란 섬의 '영감'의 바람과 함께하며 항상 머릿속에는 작품을 구상하며 '소금 바람으로 다듬어지고' 연마되고 감정의 격동 속에서 '통곡하는 바다에 담긴 펜촉'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천재적이고 날카로운 비평적 시각을 지닌 작가가 된다. '성 프란체스코와 새들'에서는 1209년 가톨릭 프란시스칸 수도회의 설립자인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1191~1226)가 새들에게 사랑을 전파하는 언어는 새로운 신비로운 의사소통의 선물로 재창조되어, '날개로 춤을 추고, / 투명한 기쁨을 위해 놀며 노래하는' 날개 달린 단어가 되어 새와 함께 춤을 춘다. 사랑의 믿음을 가진 이들의 진심과 희망을 주는 빛나는 밝은 어조가 바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조그마한 마을에서'에서 반 고흐(Van Gogh)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풍의 독특한 스타일로 풍경화를 그리는 초현실주의 화가 콜린 미들톤(Colin Middleton·1910~1983)은 총처럼 장전된 돼지털 쐐기로 큰 브러시 윤곽선과 세척을 사용하여 바위 안의 수정이 나타날 때까지 화강암과 점토를 구별하여 쪼개어, 석재의 그라운드가 더 선명하게 정의되고 배경이 고정될 때까지 가장자리를 연마한다. 마지막에 위치한 프레임 시 '나만의 헬리콘산'에서 우물은 화자에게 시적 영감의 원천을 제시한다. V자 모양으로 두 갈래로 갈라진 개암나무 막대로, 목표장소를 빙빙 돌다가 가야금 줄을 퉁기듯 개암나무 가지의 떨림으로 물소리의 튕김을 감지하는 '수맥 탐지자(The Diviner)'처럼, 안나 스위르(Anna Swir)의 '세상의 목소리를 포착하는 안테나'처럼, 시인 히니는 자신의 잠재의식과 집단적 잠재의식 사이(in-between)의 안테나가 되어 영감의 물줄기를 찾아낸다. 이제 히니의 시는 우물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증폭된 소리와 같이 자신의 시적 목소리로 '어둠을 메아리치는' 시적 소명을 결단한다. 이후 수십 년 동안 북아일랜드의 사회적, 정치적인 동요와 소용돌이를 목격하고 시적인 현실의 비전을 재현하여 아일랜드 전역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숭고한 어둠을 파헤쳐 메아리쳐 울려 퍼지게 할 것이다. 김영민 (동국대 명예교수)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김영민 교수는 동국대 영어영문학부에서 '현대영미시' '아일랜드 문학' '캐나다 문학' '정신분석학' '비평이론' '포스트모더니즘' '초국가주의' '비교문학' '세계문학' '디지털 인문학' 등을 강의해왔으며, 1998년에는 미국 코넬대 강의 교수로 한국학을, 2011~2014년에는 버지니아대학 객원교수로 동아시아 관련 연구를 했다. 2016년에는 동국대 연구 우수 교수, 2019년부터는 동국대 명예교수로서, 2019년부터 현재까지(2022) 중국 항주사범대의 Jack Ma Chair Professor로 영문학, 비교문학과 세계문학, 트랜스 미디어와 디지털 인문학의 융합과 통섭의 문맥에서 미래인문학에 관한 강의와 연구를 해오고 있다. 동국대 국제교육원장, 인문대학장, 한국사립대인문대학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트랜스미디어세계문학연구소와 디지털인문학 LAB을 설립해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초국가주의와 문화번역'(2009~2011), '트랜스미디어, 디지털인문학, 세계문학의 융합의 미학'(2017~2020),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의 미학과 통섭의 윤리'(2020~2022) 등 미래인문학에 관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또 교육부·한국연구재단에서 세계인문학포럼 추진위원 및 운영위원, 인문학대중화사업 운영위원, 학술지발전위원회 발전위원 등을 수행하였고, 대산문화재단 자문위원, 부산영화제(BIFF)콘퍼런스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영어영문학회, 한국라깡과 현대정신분석학회, 한국예이츠학회의 회장, 한국영어영문학회 저널 편집위원장(2013~2021), 한국동서비교학회 편집위원장(2022~)을 역임했다. 국제윤리비평문학협회(IAELC), 국제아일랜드문학협회(IASIL) 부회장, 국제비교문학협회(ICLA), 국제번역과문화간연구협회(IATIS), 국제W.B.예이츠학회, 국제에즈라파운드학회의 집행이사직을 수행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에즈라 파운드: 포스트모던 오디세이아', '예이츠, 아일랜드, 그리고 문학'(공저)등이 있다.2009년 예이츠 서머스쿨에서 아일랜드 노벨문학상 수상자 세이머스 히니(오른쪽)와 함께.김영민 (동국대 명예교수)
2022.07.08
[노벨문학상 산책]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호수의 섬 이니스프리'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1865 ~ 1939년)의 작품과 생애는 블루베리의 과육과 껍질처럼 쉽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예이츠의 생애는 고기압과 저기압의 부딪힘에서 그 힘을 얻는 태풍마냥, '초월적 상승'과 '지상에 뿌리박기'라는 강력한 두 경향성의 맞부딪힘으로 가득하다. 그는 초월적 존재들과 영적 교류를 시도함으로써 시공을 뛰어넘는 초월적 상징체계를 구축하려는가 하면, 아일랜드의 전통과 역사적 현재와 영웅들의 행적을 꼼꼼히 담아내려 한다. 예이츠의 초월적 성향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형성된 것처럼 보인다. 예이츠가 어린 시절과 학교 방학의 대부분을 조부모와 함께 지냈던 슬라이고 지방은 신화와 민담과 전설이 가득했던 곳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들 이야기를 접하면서 초월세계가 단순히 상상이 아니라 실재하며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청년 예이츠는 과학과 현실을 초월하여 심령의 세계로 들어가 신과 우주의 신비를 표현하는 것에 매료된다. 1885년 그는 조지 윌리엄 러셀, 찰스 존스턴과 함께 '더블린 신지회'를 설립하여, 태고 이후 우주와 인간의 기원을 둘러싼 비밀의 중요한 부분을 공유하고 다시 근원적인 신적 예지에 접근하기를 희망한다. 신화·민담 가득한 슬라이고 지방서 어린시절…신·우주의 신비에 매료생활 터전인 도시 떠나지 못한채 이니스프리 섬으로 떠나는 날 염원작은 오두막 짓고 명상하며 생활…꿈꾸던 소박한 삶 하나하나 나열아침 안개 '면사포'·한밤중 '타는 보랏빛' 등 몽환적 시적 표현 '백미'1889년 1월 예이츠는 민족주의 독립투사인 미모의 여배우 모드 곤을 만난다. 예이츠는 그녀를 만난 이래 10여 년을 줄곧 구혼하고 수많은 시를 바쳤으나 모두 허사였다. 그에게 모드 곤은 열렬한 숭배의 대상, 아일랜드 민족운동의 동지, 불멸의 뮤즈이지만, 또한 희망 없는 사랑으로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모순의 존재이다. 예이츠가 최소 네 차례 청혼을 하지만 모두 거절한 모드 곤은 1903년 아일랜드 독립투사인 존 맥브라이드 소령과 결혼한다. 이 결혼은 예이츠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힌다. 예이츠는 민족주의자로서 문학과 예술을 통해 아일랜드를 통합하고 계층과 종교와 종족 간의 연대를 고취하려 한다. 이 일환으로 그는 레이디 그레고리, 더글라스 하이드, 조지 무어, 조지 러셀 등과 함께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을 시작한다. 이들 작가는 아일랜드의 독립에 이바지하기 위해 민중에게 아일랜드의 소중한 자산을 계몽하고 아일랜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다. 또한 가톨릭 소작 농민의 삶 속에 신화, 전설, 민담을 문학으로 표현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과 통합을 가져오려 한다. 한편 1910년과 1920년대는 아일랜드가 영국 제국주의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탈식민의 빛으로 나오는 때이다. 1916년 부활절 봉기와 1919년에 시작되어 2년 동안 지속된 영국-아일랜드 전쟁을 치른다. 1921년 1월 아일랜드의회가 논란 끝에 단 7표 차로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인준함으로써 마침내 아일랜드자유국이 탄생한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자유국에서 상원으로 6년을 봉사한다. 1923년 예이츠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1937년, 이미 일흔두 살이 된 예이츠는 호흡과 보행이 곤란할 정도로 노쇠했다. 그는 요양차 남부 프랑스로 떠난다. 이듬해인 1938년 겨울 그의 병세는 악화된다. 멀리 고향인 더블린을 그리워하며 예이츠는 1939년 1월28일 숨을 거둔다. 예이츠는 1938년 9월에 탈고한 작품 '불벤 산 아래'에서 자기의 영면(永眠)의 장소와 비문을 손수 지정한 바 있다. 비문에는 "차가운 눈길을,/ 삶과 죽음 위에 던지며,/ 지나가라, 말탄 자여!"가 새겨져 있다. 비문은 삶과 죽음, 지상과 초월을 모두 포괄하려는 예이츠의 열망을 깊은 여운으로 남겨놓는다.예이츠는 '호수의 섬 이니스프리(The Lake Isle of Innisfree)'를 "내 자신의 음악적 리듬으로 쓴 첫 서정시"라고 설명하면서 이니스프리가 힘든 순간마다 제자리를 찾게 해주는 사색과 치유의 공간이라고 토로한다. 이 서정시에서 시인은 도시의 문명 생활, 소음, 군중으로부터 벗어나 이니스프리의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평화와 지혜를 얻고자 염원한다. 이 염원은 물욕과 인습으로부터 탈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시는 이니스프리로 떠나고 싶다는 소망으로 시작된다. "나는 일어나 이제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거기 흙과 욋가지로 조그마한 오두막 짓고,/ 아홉이랑 콩을 심고 꿀벌 통은 하나,/ 숲 가운데 빈터에 벌 잉잉거리는 곳, 나 홀로 게서 살리라." 시인은 자연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이니스프리에 도착했을 때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나열한다. 그는 '흙과 욋가지'로 은신처인 조그마한 오두막 짓고 '아홉이랑 콩'을 심을 것이다. 또한 벌집 한 통을 마련하여 꿀을 딸 것이다. 시인은 탈문명의 불편함을 손수 행하는 고된 노동으로 채우고 소박하고 명상적인 생활을 해나갈 것이다. 2연은 시인이 꿈꾸는 평화를 아름다운 자연의 이미지로 그려낸다. "거기서는 나도 얼마쯤 평화를 가지리, 평화는 천천히 흘러내려,/ 아침 면사포에서 귀뚤개미 우는 데로 흘러내리나니./ 거긴 한밤중에도 환한 미광, 한낮엔 타는 보랏빛,/ 해질녘엔 가득한 홍방울새 나래 소리." 평화는 참을성 있게 노동을 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적 삶을 추구할 때 서서히 내려온다. 그곳에서 누릴 평화는 여러 얼굴이다. 아침 안개에 가려 어렴풋이 드러냈던 평화는 한나절 타는 보랏빛으로 바뀌더니 황혼녘에 홍방울새의 날갯짓마냥 솟아올라 찬란한 영적인 위엄을 드러낸다. 아침 안개가 종교 의식에서 쓰는 '면사포'에 비유되어 영적인 의미가 환기된다. 또한 '한밤중에도 환한 미광'이나 '타는 보랏빛'은 이 평화가 지닌 몽환적이고 초자연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현실로 되돌아온다. "나는 일어나 이제 가리라. 언제나 밤낮으로/ 내 귀에 들리나니, 그 호수의 언덕에 나직이 철썩거리는 물소리,/ 차로에서나 회색 인도에 서있을 제,/ 내 맘의 깊은 곳에 들려오나니." 이니스프리의 호수 물소리는 시인을 밤낮으로 부르며 손짓한다. "가리라"는 말을 반복하며 굳건한 의지를 강조하지만 시인은 무감각하고 병들고 우울한 도시의 회색 인도를 좀처럼 떠나지 못한다. 그곳은 황량하지만 생활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도시에서 머물며 밤낮으로 이니스프리를 그리워한다. 그의 갈망은 좀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과 같다. 하지만 짝사랑의 마법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호수의 물소리가 맘 깊은 곳에서 철썩이며 귓전에 맴돌 것이기에. 윤일환 교수 (한양대 영어영문학과)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윤일환 교수는 한양대 인문과학대학 영어영문학과에서 '영미문학읽기' '현대영미역사와시,' 대학원에서 '19세기 영미시 세미나' '20세기 영미시 세미나' 등을 강의하고 있다.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에 나타난 억압적인 미적-도덕적 규율의 해체, 메시아적인 정의 및 욕망의 흐름의 재형상화 등을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한양대 인문과학대학 부학장, 영어영문학과 학과장, 하버드 엔칭연구소 방문교수를 지냈다. 또 한국예이츠학회 회장과 한국영어영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교양으로 읽는) 영미문학'(공저), '예이츠, 아일랜드, 그리고 문학: 이니스프리에서 델피까지'(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번역, 권력, 전복'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크리스타벨과 타자의 애도 윤리학' '예이츠의 사랑의 시: 잃은 여인과 얻은 시' '자본주의, 정의, 그리고 욕망-생산-데리다와 들뢰즈, 그리고 마르크스의 유산' 외 다수가 있다.윤일환 교수 (한양대 영어영문학과)
2022.06.10
[노벨문학상 산책] 펄 벅 '대지'…중국 농민의 삶 재현한 '대서사시'…포용의 시선 느껴져
펄 벅의 삶의 궤적은 세계 문단에 유례가 없을 만큼 독특하다. 1892년 미국에서 태어나 기독교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생후 3개월에 중국으로 가 약 40년을 중국에서, 그리고 약 40년을 미국에서 보낸 그녀는 미국인 혹은 중국인이라고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중의 정체성을 가진 '정신적인 혼혈인'이다. 펄 벅이 중국에서 살았던 40년 동안 중국은 왕조 시대의 몰락과 1900년 의화단 운동, 1911년 신해혁명, 1920년대와 30년대 국공내전, 1931년 일본의 만주 침략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격랑 속에 있었다. 그녀는 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의 속살과 문화와 철학을 온몸으로 생생하게 체득한 결과를 글로 씀으로써 후에 중국에 관한 전문가로 성장하게 된다. 펄 벅은 1931년 '대지'를 발표하고 나서 미국 최고의 작가에게 수여하는 퓰리처상과 하우얼즈상뿐만 아니라 미국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로, 미국 작가로서는 세 번째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으며, 국립문예학술원 회원으로 선정되는 명예를 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은 2차 대전 이후 미국문학사의 정전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불운을 겪는다. 그 이유로는 그녀가 주로 다루는 주제가 당시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중국과 여성이라는 점, 플롯이 복잡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당대 주류인 모더니즘과 동떨어진 사실주의 경향 등을 꼽을 수 있다.그러나 1990년대 이후 글로벌 시대를 맞아 다문화주의 담론의 부상과 학제 간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펄 벅의 작품은 재조명의 대상이 되었다. 역사학자 제임스 톰슨이 펄 벅을 "13세기 마르코 폴로 이후 중국에 관해 쓴 가장 영향력 있는 서양인"으로 자리매김한 이래로, 펄 벅의 작품은 미국과 중국에서 소설뿐만 아니라 문학성이 인정되는 몇 권의 전기까지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펄 벅에 대한 재평가는 비단 그녀의 문학 작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20세기 미국과 세계의 온갖 이슈에 대해 개입하고 발언하는 대변자였다는 점도 재조명되었다. 그녀는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 2차대전 시기의 히틀러의 파시즘과 인종주의, 그리고 2차대전 후의 미국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를 강하게 비판했을 뿐 아니라 여성, 유색 인종, 장애인 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선구적으로 목소리를 높인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1938년 노벨문학상 위원회가 펄 벅을 수상자로 선정했을 때 남성 비평가들과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는 1930년대 미국 문단은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남성 작가들에게 우선적으로 노벨상이 수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중국에 대한 주제로 소설을 쓴 펄 벅은 미국적인 주제에만 매몰되어있던 당대 문단의 흐름에서 자연히 무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노벨문학상 위원회는 펄 벅에게 상을 수여하는 이유에 대해 "인종을 분리하고 있는 큰 장벽을 넘어 인류 상호 간 공감을 나누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주목할 만한 작품들과 위대하고 생동감 있는 언어 예술을 창조하려는 인간의 이상을 향한 노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구체적인 작품으로는 "중국 농민의 삶에 대한 풍부하고 충실한 서사시적인 묘사와 전기체의 걸작"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문학 장르를 거론하고 있다. 즉, 위원회는 '대지' '아들들' '분열된 일가'로 이어지는 왕룽 일가 삼대를 다룬 '대지의 집' 삼부작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일대기를 다룬 '유배'와 아버지의 일대기를 다룬 '싸우는 천사'라는 전기까지 높이 평가하여 상을 선정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지' 는 중국 안후이성의 북부 농촌 지역인 난쉬저우를 배경으로 중국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땅을 생명으로 알고, 자연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왕룽이라는 평범한 농민의 혼례일부터 노년까지의 일대기를 충실하게 다루고 있는 사실주의 소설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청 말기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이전 중국 농민들의 고난과 투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대지'에서 땅은 왕룽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된다. 조상들이 대를 이어 고된 노동을 반복하여 땅을 가꾸어왔듯이, 왕룽도 근면과 검약을 통해 땅과 재산을 계속 불려 나간다. 그는 가뭄, 홍수, 메뚜기떼, 산적, 전쟁 등 외부의 환경으로 인해 끝없이 고난을 겪으나 땅만이 그에게 생명과 희망을 부여해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땅은 그에게 신이며, 괴로울 때 위로를 받는 치유제이기도 하다. 대지주가 된 왕룽은 죽을 때도 화려한 대저택이 아닌 오랫동안 살아왔던 소박한 옛 농가에서 생을 마감함으로써 끝까지 땅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는다. '대지'는 또한 이제는 사라진 혼례식, 아이 탄생 축하 의식, 설날 풍습, 장례식, 그리고 음식, 의복, 주거, 농사용 농기구 등 의식주에 대한 전통적 중국 농민의 삶과 풍습이 자세하고 충실하게 묘사된 인류학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는 일부다처제, 전족, 여아살해, 여성 매매, 종살이 같은 여성과 관련된 부정적 풍습도 사실주의 소설의 특징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당대 현실로 묘사된다. '대지'의 공헌은 무엇보다도 20세기 이전 서구의 중국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크게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수 세기 동안 서구의 소설이나 여행기에서 묘사된 중국은 그저 멀고, 이국적인 곳이었다. 또한 중국인들은 서구가 동양을 편견으로 왜곡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서 불결하고, 정직하지 않고, 잔인하며, 불가해한 존재로서 '미개한 야만인'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중국인은 개인이 아닌 전형적인 집단으로서 취급되어왔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펄 벅은 문화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집단적인 전형으로서 '미개한 야만인'이 아닌 살아있는 생생한 복합적 인간으로서의 개인 왕룽이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그는 때로는 성실하고, 근면한 평범한 농민으로, 때로는 땅이나 재산에 대한 탐욕과 오만으로 차 있는 복합적인 인물로, 즉 진정한 중국 농민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은 중국의 종교를 서술하는 대목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지'에서는 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모습이 잠시 나오지만 중국 토속 신앙과의 마찰이나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기독교도로 개종하는 장면도 없다. 서술자는 중국의 고유한 신앙을 미신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는 기독교도가 아니라고 해서 동양인을 이교도나 야만인으로 취급하는 전형적인 서구우월주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허정애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허정애 교수는 경북대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에서 '19세기 영국소설' '미국문학개관' 및 대학원 인문카운슬링학과에서 '소통과 공감의 문학연구' '문학과 치유 세미나'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영미소설에 나타난 젠더와 인종 문제를 주로 연구의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대중인문학의 확산을 통한 지역 사회와의 소통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경북대 인문대학장, 인문학술원장을 역임하면서 교육부가 주최하는 인문도시사업(2014년~2017년)의 연구책임자로서 '기억과 재생의 인문도시, 대구'를 주제로 시민인문학, 청소년인문학, 교도소인문학을 시작하였고, 현재 경북대 인문학술원에서 개설한 유튜브 강좌 '경BOOK톡'에 '영미소설, 인종으로 읽다'라는 시리즈로 지역민들과 만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경북대 인문대학의 '인문교양총서' 시리즈 51권 '영국소설, 인종으로 읽다' 외 '20세기 미국소설의 이해I'(공저)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제인 오스틴, 노예제, 계급, 인종' '에밀리 브론테의 성취와 한계: 인종적 시각에서 다시 읽는 '워더링 하이츠'' '마크 트웨인과 젠더'외 다수가 있다.※영남일보는 경북대 인문학술원 HK+사업단과 공동기획으로 한 '다시 읽는 고전 명작' 시리즈에 이어 '노벨문학상 산책'을 연재한다. '노벨문학상 산책'은 국내 전문가들이 참여해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작 가운데 20여 개의 작품을 선정해 재조명 한다. '노벨문학상 산책'은 영남일보 지면을 통해 먼저 소개된 후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다.허정애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2022.05.13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읽는 고전명작]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모노가타리'…시대에 맞는 번역으로 고전은 다시 태어난다
'겐지모노가타리'는 헤이안(平安)시기(문헌상으로는 1008년경)에 성립된 이후 서사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 읽혀왔으며, 학문으로도 꾸준히 연구되었다. 이러한 연구 흐름과 축적된 읽기는 20세기 초반, 유럽과 미국 사회에 영어와 불어 번역본을 통해 소개되었고, 그 결과 지금도 자연스럽게 세계문학으로서 공유되고 있다. 이야기는 '언젠가', 즉 특정되지 않은 시대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미모와 매력을 갖춘 히카루 겐지(光源氏)가 다양한 여성들과 나누는 러브스토리를 중심으로, 아버지인 천황에게 깊은 사랑을 받으나 어머니의 신분이 낮아 제위에 오르지 못하면서 벌어지는 귀족사회의 권력투쟁, 그리고 겐지의 아들 가오루(薰), 그리고 손자 니오노미야(내宮)에 이르는 약 70년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체 54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100만자에 이르는 대장편으로, 등장인물만 500여명, 그리고 약 800수의 일본 고전 운문 형식인 와카(和歌)가 등장한다. 저자는 헤이안 시대 중기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이다. 생몰연대 등이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겐지모노가타리'를 비롯하여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와 '문집' 등의 작품이 남아있어 그 활동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약 100만 字에 이르는 대 장편소설11세기 작품이란 역사성 인정되나세계문학 불리기까지 번역이 한 몫첫번째 번역가인 영국의 아서 웨일리셰익스피어 언어 사용해 높은 평가일본선 현대적 감성으로 재구성도개인의 이야기로 소통하는 21세기고전 콘텐츠의 접근 가치 생각해볼만'겐지모노가타리'라는 제목에서 '모노가타리'는 '모노(物)를 가타루(語)하다'는 의미로 내러티브 의 개념을 포함한다. 때문에, 번역 과정에서 '겐지이야기'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노가타리'에 대한 넓은 의미의 해석이며, 정확하게는 헤이안시대부터 가마쿠라시대까지 창작된 일본의 산문 픽션 형식을 의미한다. 대체적으로 'OO모노가타리'라는 이름으로 창작되었다. '겐지모노가타리'에서 '모노가타리'에 대해 경합하는 장면 중 '모노가타리의 시조는 다케토리모노가타리'라는 언급을 통해 일본 문학사적으로는 '모노가타리'의 시작을 '다케토리모노가타리'로 보고 있다. 픽션 세계의 언급이 역사적 사실의 세계로 옮겨온 아이러니이다. 겐지의 연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내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물론, 방대한 양과 11세기의 작품이라는 역사성이 인정되기는 하지만 일본을 넘어 세계문학 속에 위치될만한 특수성을 가진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붙을 수 있다. 일본의 로컬적 특성이 강한 '겐지모노가타리'라는 작품이 세계문학이라고 불릴 수 있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번역이다. '겐지모노가타리'는 영국인 번역가 아서 웨일리(Arthur Waley)에 의해 1925~1933년에 걸쳐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되어 세계로 발신되었다. 이후 웨일리의 번역은 중역을 거쳐 유럽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중국어에 능통한 웨일리가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많은 생략이 이루어졌다는 비평이 번역 연구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나, 웨일리가 그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상황에 맞추어 세익스피어의 언어를 사용한 것은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지극히 로컬적인 일본의 고전이 서구사회에서 이미 높은 문학적 평가로 인해 익숙한 감성을 공유하고 있던 세익스피어의 언어로 번역되면서, '겐지모노가타리'는 자연스럽게 서구사회에서 보편적 감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웨일리의 이러한 시도는 11세기 이후 지배계층의 문학적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며 학문으로 꾸준히 연구되어 온 성과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때문에, 웨일리의 번역을 통해 세계에 알려진 것은 우연히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된 연구 결과가 우수한 번역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일본 내부에서의 현대어 번역 과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재해석 측면에서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의 '사사메유키(細雪)'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다니자키는 1910년대부터 활동한 일본의 근대 작가로서, 악마주의로까지 불리는 철저한 탐미 성향의 작가이다. 소설 그 자체의 예술성보다는 이야기의 구성을 변화시켜 재미있게 만들어 가는 것이 소설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픽션 영역에서 활동하였다. 다니자키는 2차 세계대전 중 소설가에게 주어진 전쟁 참여와 절필이라는 이항대립적인 선택지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제3의 길로써 '겐지모노가타리'에 대해 축적된 자료를 탐구하여 현대어 번역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가 파악한 작품의 정취와 상황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최근의 콘텐츠로는 2011년 개봉된 영화 '겐지모노가타리 천년의 수수께끼(源氏物語 千年の謎)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겐지모노가타리' 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전근대적 장치였던 '생령(生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생령'은 살아있는 유령이라는 의미로, 겐지를 사모하던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六條御息所)가 질투심과 사랑의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생령'이 되어, 연적들을 죽인다. 강한 질투심 때문에 살아있는 유령이 되어 사람들을 죽인다고 하는 설정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감정을 대상화했다는 특이성을 가진다. 영화적 서사는 이러한 특이성을 메타픽션 장치로 삼아 '겐지모노가타리'와 그 작가인 무라사키 시키부를 연결한다. 그 결과 일본의 전통적인 유령인 바케모노(化け物)는 로컬적인 특성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것으로 설명된다. 즉 고전의 비현실적 일상이 지금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으로 재창조된 것이다. 20세기 근대의 시작이 '개인의 발견'이었다면,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복합적이고 광범위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상실된 개인'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기술적 자산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된 21세기는 다시 개인을 이야기한다.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회의 도래, 이것이 현재이며 또한 미래이다. 온라인 서비스인 SNS를 통해 누구나 '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리고 그 형태는 문자에 한정되지 않고 있다. 음악, 영상, 이미지 등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들이 활자로 된 책을 벗어나 개인의 이야기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산시킨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전 역시 이야기 속에 숨겨진 개인을 추출하여 재해석하고, 재창조한다. 그러나 고전이 가진 이야기 구조 속에서 재해석되고 재창조된 개인은 전형성에 기반을 둔 캐릭터의 한계성을 지닌 채 지금의 문화콘텐츠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캐릭터가 '나'의 이야기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제 고전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현시대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역할과 의미에서 그 범위를 더 확장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겐지모노가타리'는 일본의 고전에 대한 콘텐츠적인 접근을 참고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 그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일본 문학을 전공하며, 경북대에서 학사와 석사, 일본 주오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사는 픽션의 텍스트 분석이며, 소설의 방법론적 담론이 표상하는 거대 서사와 개인과의 관계를 연구하였다. 최근에는 한국 근대 소설을 비교 연구 대상으로 하여 한국과 일본의 소설 성립과 개념, 소설 방법론, 미디어 텍스트의 이야기 구조 분석 등의 연구에서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일본어문학회 총무이사, 한국일어일문학회와 한국일본문화학회 학술이사로서 연구영역과 관련된 다양한 학회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경북대 인문학술원 부원장으로 지역인문학센터를 통해 대학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樂&學 차이를 묻다 - 일본 문학의 특질'(2016, 공저), '일본 문학, 그 시대를 읽다'(2017, 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기록문화가 형성한 소설담론 공간의 리얼리티', '본격 미스터리의 장르적 변용이 가져온 새로운 추리 공간의 탄생', '감정 표상의 문화론적 고찰', '귀환자가 표상하는 한·일 근대 소설의 특질', '카타스트로피와 마주하는 소설적 패러다임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2021년 9월에는 지역민의 문화·예술 역량 강화를 위해 대구문학관에서 주최한 '외국문학의 밤'에서 '하루키 월드,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라는 대중강연을 진행하였다.조헌구 교수 (경북대 일어일문학과)조헌구 교수 (경북대 일어일문학과)
2022.04.15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명작'] 일연 '삼국유사'…건국신화·민중이야기 수록…고려의 자존감 지켜준 역사서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경북 경산 출신의 승려 일연(一然)이 편찬한 것이다. 일연은 희종 2년(1206)에 태어나 충렬왕 15년(1289)에 84세로 입적하였다. 그의 성은 김씨, 이름은 견명(見明), 자는 회연(晦然)인데, 뒤에 이름을 일연으로 고쳤다. 그는 고종 14년(1227), 승과에 상상과로 합격하여 오늘날 비슬산으로 불리는 포산(苞山)에 머물렀다. 이로부터 전후 두 차례에 걸쳐 약 35년간을 포산의 절에 있었으니, 보당암, 무주암, 묘문암, 인홍사, 용천사 등이 그곳이다. 그는 78세 때인 충렬왕 9년(1283), 승려로서 최고의 명예직인 국존(國尊)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노모 봉양을 이유로 귀향하였다가, 모친이 사망하자 군위 인각사에 머물다 일생을 마쳤다.일연은 승려로서 많은 불교 관련 저술을 남겼지만, 오늘날 전하는 최고의 걸작은 단연 '삼국유사(三國遺事)'다. '삼국유사'는 신라·고구려·백제의 여러 일화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유사(遺事)라고 한 것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빠진 사실들을 적었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이 책은 5권 9편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왕력(王曆) 편이 있는데, 이는 신라·고구려·백제·가락국 등 역대 여러 왕들의 계보와 연대를 기록한 것이다. 권1·2는 기이(紀異) 편으로, 고조선 이후의 여러 나라와 신라·고구려·백제의 삼국에 관한 사실을 적었다. 고려 말 승려 출신 일연이 편찬편찬 시기·목적 명확하지 않지만몽골침략으로 피폐한 상황 감안백성들에 긍정적 영향 끼쳤을 듯손님 접대위해 아내와 동침 권유비정한 남편 안길의 민담 등 수록장애인·빈민의 생활상도 전해져우리 문화 원형 이해하는 길잡이권3은 흥법(興法)과 탑상(塔像) 두 편으로 되어 있다. 흥법 편은 불교 수용과정의 이야기이고, 탑상 편은 탑과 불상에 얽힌 이야기를 수록한 불교미술사이다. 권4는 의해(義解) 편으로, 원효, 의상 등 고승들의 전기를 수록하였다. 권5는 네 편으로 되어 있는데, 신주(神呪) 편은 밀교 수용사이고, 감통(感通) 편은 신앙상의 기적을, 피은(避隱) 편은 세상을 피해 은둔해 사는 사람들을, 그리고 효선(孝善) 편은 효도와 선행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왕력과 권1·2가 우리 민족의 역사에 관한 기록이라면, 권3·4·5는 불교와 승려와 민중에 관한 기술이라고 하겠다. '삼국유사'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많다. 왕력 편이 원래 '삼국유사'에 포함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고, 왕력 편과 기이 편과 흥법 이하 부분이 원래 각각의 책이었다는 주장이 있는 한편, '삼국유사'란 이름도 자연 뒤에 붙여졌을 것이라는 견해가 그것이다. 또한 내용 가운데는 일연이 집필하지 않고 제자 무극(無極)이 적어 끼워 넣은 부분이 2곳이나 있다. '삼국유사'가 편찬된 시기 또한 정확히 알 수 없다. 인각사 보각국사 일연의 비문에는 당시 '어록(語錄)' '게송잡저(偈頌雜著)' 등 100여 권에 이르는 저술이 있었다고 하면서도 '삼국유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삼국유사' 편찬이 승려 일연의 본연의 의무가 아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충렬왕 대인 1281년 무렵 일연이 청도 운문사에 머물 때 집필한 것으로 흔히 추정하지만, 그의 말년인 인각사 시절이었다는 주장이 있고, 젊은 시절 포산에 있을 때부터 착수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한편에서는 그의 생전에 '삼국유사'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편찬자도 일연에 한정하지 않고, 제자 무극이나 기타 인물들까지 넣어 이해한다. 최근에는 1360년 무렵 완성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자세한 것은 더욱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지만, 포산 시절부터 축적된 일연의 노력과 경험이 '삼국유사' 편찬의 자료가 되었을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승려였던 일연이 '삼국유사'를 남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연이 살던 시대는 몽골의 침략기였다. 1231년부터 6차에 걸쳐 전개된 몽골의 침략은 고려의 전국토를 유린하였다. 이에 따라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민중들의 참상이 그에게 일정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삼국유사' 첫머리 고조선 조목에서 우리 민족의 건국 이야기인 단군신화를 처음으로 수록하였다. 우리의 역사가 중국이 아니라 하늘과 연결됨을 주장함으로써 민족의 기원을 보다 자주적인 입장에서 이해하려 한 것이다. 또 불교적 입장에서 유교의 합리주의 사관을 비판하고 신이(神異)한 사실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는 괴이한 것과 신이한 것을 구별하면서 기이 편 서문에서 "삼국의 시조가 신이한 데서 나왔다고 하여 무엇이 괴이하겠는가?"라고 설파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사관을 달리한다고 하겠다.'삼국유사'에는 삼국만이 아니라 단군신화를 비롯한 삼한, 낙랑, 대방, 부여, 가야 등의 역사가 실려 있고, 황룡사 장육상, 만파식적 설화, 불국사와 석불사, 동화사의 창건, 포산의 두 성인 관기와 도성, 그리고 세달사의 승려 조신의 꿈 이야기 등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과 설화, 민담, 전설, 향가 등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세 아내를 데리고 살면서 손님 접대를 위해 동침할 것을 권한 무진주 안길(安吉)의 이야기, 아비 없이 태어나 열두 살이 되어도 말하지도 일어나지도 못한 사복(蛇福)의 일화, 태어난 지 다섯 살 만에 눈이 먼 여인 희명(希明)의 아이가 다시 눈을 뜨게 된 이야기, 남의 집에 품을 팔아 노모를 봉양하였으나 노모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어린 아이를 땅에 묻으려 한 손순(遜順)의 이야기 등 상대적 약자였던 여성, 장애인, 빈민, 서민 등 민중들의 생활상을 여과 없이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 이야기는 우리 문화의 원형을 이해하는 길잡이일 뿐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풍부한 자료가 되고 있다.요컨대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 이은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동시에 전통문화사이다. '삼국사기'가 유교적, 정치적 관점에서 지배층 위주로 서술된 연대기라고 한다면, '삼국유사'는 불교적, 민중적 관점에서 기록된 민족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이야기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 사람들이 상상력의 원천으로 '그리스·로마 신화'를 즐겨 읽듯이, '삼국유사'는 우리가 늘 가까이 두고 읽어야 할 민족의 고전 중의 고전인 것이다. 이영호 교수 (경북대 사학과)공동기획 :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이영호 교수는한국고대사를 전공하며, 경북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사는 신라사로서 정치사, 불교사, 왕경사, 그리고 금석문과 목간 등의 문자자료에 성과가 많다. 학회 활동으로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대구사학회 회장, 한국목간학회 감사 등을 지냈다. 대외활동으로는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문화재청 고도보존육성 중앙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원장, 대구시 문화재위원회 위원, 경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 신라사학회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저서로 '신라 중대의 정치와 권력구조'(2014,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문자와 고대한국 2'(2019, 공저), '시대를 앞서간 고승 원효'(2020, 공저) 등 여러 권이 있으며, 논문으로 '신라 성전사원(成典寺院)의 성립' '팔공산 '부인사(夫人寺)'의 탄생' '신라 문무왕릉비의 재검토' '문자자료로 본 신라왕경(新羅王京)' '신라 사리함기와 황룡사' '영남과 호남, 그 연원을 찾아서' 등이 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경북도에서 기획하여 완간한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전30권)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단군신화를 수록한 '삼국유사' 〈서울대도서관 소장〉
2022.03.18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읽는 고전명작] 사마천 '사기'…52만6500字에 담긴 인간·권력에 대한 생생한 증언
역사는 시간과 공간의 틈새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을 모아 놓은 보물창고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흔적은 잡동사니일 뿐이다. 뛰어난 역사가는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사의 내면을 꿰뚫는 안목과 통찰력으로 잡동사니 속에서 유의미한 자료를 취사선택하고, 다시 이를 탐구함으로써 역사적 진실과 이성적 감동으로 채워진 사고(史庫)를 구축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원전 1세기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는 중국 문명사의 서막을 알리는 기념비적 저작이자 후대 역사학의 모범이며, 오늘날까지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더하고 있는 역사의 보고라 할 만하다.사기의 원명은 '태사공서(太史公書)'로서, 지금의 명칭은 3세기 위진시대부터 붙여졌다. 태사공은 사마천이 아버지 사마담의 뒤를 이어 담당한 태사령(太史令)이라는 관명에서 비롯되었다. 태사령은 역사서 저술과는 무관한 천문·역법 및 제의를 관장하는 직책이다. 따라서 사기는 정사가 아니라 사마천 부자의 사찬 사서다. 그럼에도 이들이 사기 편찬에 목숨을 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태사가 하늘의 이법(理法)을 궁구하는 천관(天官)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지상 세계는 하늘의 운행원리에 조응해 질서정연한 정치가 구현되어야 하고, 천체의 운행원리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달력이며, 달력에 명시된 시간의 선상에 놓인 인간사 고금의 변화를 관찰·기록하는 것이 태사이자 곧 천관으로서의 직무라고 생각한 것이다.이러한 역사가로서의 소명의식은 사마담 때부터 함양되었다. 사마담은 공자의 저작으로 알려진 '춘추'의 계승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완성하지 못한 사기의 저술을 사마천에게 유업으로 남겼다. 여기서 춘추는 단순히 노나라의 연대기로서만이 아니라 '춘추필법'의 정신으로 무장된 왕도의 정치적·도덕적 규범의 기준을 제시한 일종의 경전으로, 사마천 부자는 춘추를 계승하는 사기의 저술을 통해 왕도정치의 실현을 꿈꾼 것이다. 이러한 대의의 체계적 저록을 위해 사마천은 본기·세가·표·서·열전으로 구성된 기전체를 창안하고, 모두 52만6천500자의 사기를 저술했다.사마천에게서 인간의 역사는 천체의 순환 운동 원리에 조응해 통일과 분열이 반복·순환하는 정치의 역사를 의미하고, 그 중심축은 제왕이었다. 이에 황제(黃帝) 이래 약 3천년간 존속한 나라와 그 제왕의 연대기를 '본기(本紀)'라는 편목으로 사기의 첫머리에 배치했다. 그러나 제왕만으로는 지상세계가 운영되지 못한다. 천체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28개의 별자리(二十八宿)와 함께 조화롭게 움직이듯이 지상 세계 또한 북극성격인 제왕의 조력자로서 28개의 제후(국)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28개 제후국의 연대기와 더불어 제후에 비견되는 위업을 쌓은 공자와 진섭의 세가를 추가해 모두 30편의 '세가(世家)'를 본기 뒤에 배치했다. 그리고 세가에 기술된 제후국 내부 또는 제후국 간에 전개된 사건의 선후와 상호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십이제후년표 등 10편의 '표(表)'를 배치했다. 이들 편목이 상층부의 정치구조와 그 흥망성쇠를 기록한 것이라면, 이것의 운영 원리와 실제 작동의 기제는 8편의 '서(書)'로 정리했다. 여기에는 문물제도의 변화양상과 하늘의 이법에 조응한 지상질서의 운영원리를 동시에 기록했다.이상이 광의의 정치적 현상에 대한 탐구의 결과라면, '열전(列傳)'은 정치 중심의 역사를 추동하는 실제 동력이 인간으로부터 나온다는 사마천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가장 잘 반영한 편목이다. 총 130편의 사기에서 70편이나 차지하는 열전에는 수천 명의 인물이 등장해 역사의 현장을 증언한다. 여기에는 유명 정치인이나 사상가는 물론이고, 심지어 협객·익살꾼·점쟁이, 나아가 주변 민족의 역사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는 부귀를 성취한 개인보다는 각 분야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데 기여한 개인의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추적한 결과로, 사기가 죽은 기록의 집대성이 아니라 생생한 삶의 현장을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접목시킨 인간중심의 역사서임을 웅변한다.'사기'처럼 2천여 년의 간극을 넘어 오늘날의 독자에까지 흥미와 교훈을 주는 사서도 없을 성싶다. 그 요인으로 사기가 가지는 역사관과 체제 및 서술방식의 우수성, 문학작품으로까지 칭송받는 문장력, 준엄한 비판정신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마천 개인의 통절한 삶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사마천은 무제를 위로하기 위해 흉노에게 항복한 장군 이릉을 변호하다가 최고 존엄의 역린을 건드려 사형 판결을 받고, 이를 대신해 궁형을 자청, 환관이 된 후 기원전 91년 사기를 완성한다. 이는 스무 살 사마천이 아버지의 사기 저술을 돕기 위해 전국을 답사하며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 이래 죽음도 불사한 35년 대여정의 종결이었다.이 과정에서 그가 목도한 냉혹한 현실과 이에 대응한 초인적 인내와 불굴의 의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황제의 심기를 거슬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형 판결을 내리는 폭력적 권력 앞에서의 좌절감, 50만전의 속죄금을 마련하지 못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하는 무력감, 궁형을 감내해야 하는 극단적 치욕감, 누구 하나 자신을 변호해주거나 경제적 도움을 주지 않는 부박한 세태에 대한 열패감, 더욱이 환관이 된 후 자신을 죽이려 한 황제로부터 오히려 총애를 받으며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굴욕감. 이러한 극단적 상황에서도 그는 일시적 고통을 피하려고 가벼이 선택하는 죽음의 무가치를 일갈하면서 사기의 저술이 죽음보다 무거운 임무이자 입신양명의 길임을 설파하며 저술을 이어나간 것이다. 여기서 입신양명은 자신과 조상의 명성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정의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한 개인과 집단의 명성과 그 존재가치를 드러내 후세에 전하는 일이야말로 하늘의 소명을 완수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사기를 사마천이 개인적 울분을 토로하는 '비방의 서'로 평가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사기는 저자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종횡하는 하늘의 섭리에 비춰 위대함과 어리석음이 착종하는 인간세상을 냉철하게 관조하며 역사적 진실을 대면한 미증유의 대서사인 것이다.현대 역사학의 관점에서 사기는 비과학적이거나 고졸한 측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직업적 역사가들이 양산하는 무미건조한 역사 논저의 산더미 속에서 사기에 비견되는 고전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현대 역사학의 위기가 그저 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고 하여 대중매체를 떠도는 '역사소매상'들의 세치 혀끝에서 돈벌이로 전락하는 사이비 역사서의 양산은 더욱 경계할 일이다.윤재석 교수 <경북대 사학과>공동기획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 윤재석 교수는1997년부터 현재까지 경북대 사학과에서 중국고대사의 연구와 강의에 종사하고 있다. 세부 전공은 중국고대의 사회사·법제사 및 목간학으로서, 주로 진한시대 목간자료의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북대 인문학술원장 겸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플러스(HK+)지원사업(2019년 5월~2026년 4월)의 연구책임자로 활동하면서 고대 한중일 삼국의 목간기록문화권의 형성과 전개 양상 및 여기에 반영된 고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복원으로 연구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경북대에서 학사·석사·박사과정을 졸업하였고,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고급진수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중국고중세사학회장과 경북대 한중교류연구원장 및 경북대 교수회의장 등을 역임하였다.대외적으로는 중국사회과학원 간백연구센터의 객원연구원과 하북사범대학 역사문화학원의 객원교수 겸 학술고문, 중국사회과학원과 무한대학 및 감숙성문물고고연구소에서 발행하는 '簡帛' '簡帛硏究' '簡牘學硏究'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주요 논문으로는 '韓國·中國·日本 출토 論語木簡의 비교 연구' '秦漢時期後子制和家系繼承' '東アヅア木簡記錄文化圈の硏究' 등이 있고, 저서로는 '중국가족제도사'(역서), '睡虎地秦墓竹簡譯註' '簡帛學理論與實踐'(공저), '한국목간총람'(편저), '중국목간총람'(편저), '일본목간총람'(편저) 등이 있다.사마천 '사기'
2022.02.18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명작]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 '철학'하는 삶을 살아라
2천40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철학자의 전형이라는 빛나는 명성을 가지고 오늘날까지도 계속 사랑받는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년). 그런데 그가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이었고, 그의 철학 사상이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아직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한 상황이 실상이라고 말한다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소위 '소크라테스 문제'라고 불리면서 수많은 학자가 연구하고 논쟁했던 역사적 소크라테스의 실체에 관한 문제의 학술적 해결은 어쩌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생전 스스로 어떠한 저작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어떤 학파를 스스로 창설하거나 특정한 교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소크라테스'라는 이 인물에 대한 상당량의 증언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는 전거가 바로 플라톤이 저술한 대화편들이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철학 정신을 충실히 계승하려고 노력했던 플라톤이 그의 작품 속에서 등장시킨 '소크라테스'는 비록 플라톤의 철학적·문학적으로 재해석된 창작물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하지만 역사적 소크라테스에 관한 제한된 이해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여전히 위대한 철학자의 전형으로 삼는 데에 있어서 플라톤의 업적은 가히 대체 불가하다. 특히 기원전 399년 5월 어느 봄날 아테네 법정에서 벌어졌던 소크라테스에 대한 배심원 재판과 사형판결은 아마도 우리가 확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재판에 관한 몇몇 묘사 중 가장 신뢰할 만한 것으로 인정받는 것이 바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이하 '변론'으로 약칭)이다.플라톤의 초기 작품으로 분류되는 '변론'을 소크라테스 재판에 대한 객관적 사료처럼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이 작품에서도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적·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재판 상황을 마치 소설처럼 재현한다. 그렇지만 플라톤이 이 작품을 집필한 시기가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재판받고 사형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재판과 사형의 이유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었던 상황에서 당시 재판을 직접 참관했을 플라톤이 그 재판에 관해 오로지 허구적 상상력만으로 '변론'의 내용을 창작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마치 객관적 사료처럼 여겨서는 안 되겠지만, 방금 말한 이유 등을 고려할 때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소크라테스를 통해 그의 역사성을 그나마 가장 신빙성 있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다수의 학자가 인정하고 있다. 플라톤의 '변론'은 당시 재판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유력한 자료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인물로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삶을 유추해볼 수 있는 소중한 출처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최초의 철학적 순교처럼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당시의 평가는 무척 다양했던 것 같다. 아테네의 민주정을 반대하고 소수의 엘리트주의를 옹호한 반민주인사로 여겨지는 평가와 함께 민주정 체제에서의 전통적 신관과 윤리관을 대변하고 옹호하다가 정치적 음해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보수적 설교가의 모습으로 소크라테스가 기억되기도 했다. 혹은 기존의 전통과 윤리를 신랄히 비판하는 사회 개혁적 인물로 소크라테스를 말하는 이가 있었던 반면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인이었던 유명한 희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그의 작품 '구름'에서 천하에 둘도 없을 파렴치한 사기꾼 궤변론자이자 종교적 이단자 자연철학자로 소크라테스를 묘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평가되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변론'은 그의 억울한 죽음을 해명하고 진정한 철학자로서의 명성을 복권하려는 플라톤의 의도가 강하게 개입된 작품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무죄를 주장하려는 작가의 의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시각으로 이 작품을 자유롭게 읽을 수도 있는데,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에 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즉 작가 플라톤처럼 소크라테스에 대한 고발의 부당함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려는 입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당시 아테네 시민의 입장에서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그들의 사회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평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금 우리의 입장에 오늘날 시대적 문제의식과 상황을 투영해 독자 나름의 입장에서 소크라테스를 판단해볼 수 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플라톤의 '변론'이 가진 철학적 의미와 관련해서 한 가지만 언급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란 말은 사실 그가 직접 남긴 말이라고 볼 수 없다. 델포이 신전을 통해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져오던 격언으로서 그는 이 말을 신 앞에 겸손해야 할 인간의 근본적 태도로서 이해하고 가슴에 새긴 신념이었다. 오히려 그의 철학적 태도를 잘 보여주는 말은 바로 "캐묻지 않는 삶은 사람에게 살 가치가 없다"일 것이다.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철학하는 삶을 사는 이유와 목적을 추억한다. 그는 '도시가 믿는 신을 믿지 않았고, 새로운 영적인 것을 도입했으며,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라는 이유로 고발당해 급기야 재판에 세워졌지만, 이 고발 내용에 관한 그의 직접적 반박은 '변론'에서 일부만 차지할 뿐, 대부분의 분량에서는 자신에 관한 아테네 시민들의 오래된 선입견과 편견이 공식적 고발의 배경이자 자신의 철학을 대중이 오해하게 된 원인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해명하고 불식시키려고 행한 변론이다. 그런데 목숨이 걸린 재판에서 70세 노인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한 동정을 호소하거나 선처를 바라며 변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평소 아고라에서 사람들과 만나 항상 그렇게 하듯 재판정에서도 배심원들을 상대로 '철학한다'. 여기서 '철학한다'의 의미는 그 어떤 확정된 지식을 논증하거나 논설하여 가르치는 행위가 아니라 문답의 방식을 통해 주어진 문제에 관해 합리적으로 캐물어 탐구하는 행위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조차 자신을 향한 고발 내용을 문제 삼아 자신이 왜 평생을 바쳐 그토록 '지혜를 사랑하는' 삶, 즉 '철학하는' 삶을 살았는지 배심원들과 함께 캐물어 탐구해 얻은 결론으로 자신에 대한 유무죄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와 태도가 배심원들에게 어떻게 보였는지는 유죄와 사형이라는 재판 결과로 드러났지만, 철학자로서 소크라테스가 내세운 자신의 신조인 "캐묻지 않는 삶은 사람에게 살 가치가 없는 것"이란 믿음만큼은 추호의 흔들림 없이 굳게 지켜내는 모습을 플라톤은 그의 '변론'에서 그려내고 있다. 이재현 교수 <경북대 철학과>공동기획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이재현 교수는고대 그리스철학을 전공했고, 현재 경북대 철학과에 재직 중이다. 박사논문에서 '아포리아(=길 없음)'의 부정적 상황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전반에서 어떻게 철학적 개념으로 수용되고 사용되는지를 철학 방법론의 관점에서 추적해 연구했다. 이러한 학문적 관심은 현재까지도 유지·발전되면서 고대 그리스철학 전반에서 가지는 아포리아의 철학적 의미와 기능을 변증술과의 관련성 속에서 계속 연구하고 있으며, 이것과 연관해서 소크라테스 대화술의 고전적 전형과 이것의 현대적 해석 및 실천 등에 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철학실천'과 연계되면서 현재 경북대 철학과 4단계 BK21사업 '갈등 해결 철학 전문인력 양성 교육연구팀' 참여교수, 경북대 일반대학원 인문카운슬링학과 겸무교수, 그리고 인문학술원 산하 인문카운슬링센터 부센터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 인문학 대중화 사업에도 관심이 있어서 2014년 9월에 창립한 대구경북인문학협동조합에서도 활동하고 있다.이재현 교수 (경북대 철학과)
2022.01.21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명작]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프랑스판 '로빈슨 크루소' 영국판 소설과 뭐가 다를까
"스페란자는 이제 기름진 땅으로 가꾸어야 할 황무지가 아니다. 방드르디는 이제 내가 교육시켜야 할 야만인이 아니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의 후반부에 주인공 로빈슨이 항해일지 속에 써놓은 이 문장은 작가인 미셸 투르니에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이 소설의 결론을 요약하는 말이기도 하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1719년에 발표된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미셸 투르니에가 20세기의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쓰기를 하여 1967년에 출간한 작품이다.미지의 섬 표류·정착 줄거리 같지만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원주민들 문화 이해하는 자세 달라야생의 자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정복의 대상 아닌 존중의 대상 강조18세기 서구중심주의 제대로 꼬집어영국 작가와 프랑스 작가, 18세기 초와 20세기 중반의 제작 연도, 소설 제목에 언급되는 인물로서 로빈슨과 방드르디 등과 같은 표면적인 차이가 금방 눈에 띈다. 내용을 비교하자면, '로빈슨 크루소'는 팽창주의적 식민주의를 표방하던 18세기 서구문명을 대표하는 소설이고,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이러한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야생의 자연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입장을 표명하는 소설이다. '로빈슨 크루소'와 마찬가지로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도 주인공 로빈슨은 항해 중에 풍랑을 맞아 미지의 섬으로 표류한다. '스페란자'라고 이름을 붙인 이 섬에서 로빈슨은 몇 번 시도한 탈출을 포기하고 경작지를 개척하여 농사를 짓고 야생 염소를 길들이며 살아간다. 난파된 배에서 꺼내온 문명의 잔해들을 사용하여 섬을 통치하는 군주처럼 지낸다. 타인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할 도덕적 타락을 경계하여 성경을 매일 읽는 것도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다를 바가 없다. 여기까지는 "총을 쳐들고, 염소 가죽을 걸친 채, 털모자를 덮어쓰고 삼천년 서구문명으로 가득 찬 머리를 쳐들고 서 있는 백인"으로서 로빈슨이 있을 뿐이다. '로빈슨 크루소'에서 구출된 원주민의 이름이 '프라이데이'라면,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 등장하는 혼혈 원주민의 이름은 '프라이데이'의 프랑스어인 '방드르디'로 정해진다. 금요일에 섬에 와서 구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라이데이든 방드르디든 그의 주인은 로빈슨이다. 즉 문명인과 원주민의 관계는 어쨌든 주인과 노예다. 미셸 투르니에는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비판하기 위해 기본 설정은 거의 동일하게 시작한다. 야생의 섬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자이고 노예의 주인인 백인으로서 로빈슨은 '스스로의 모습을 본뜬 질서를 강요하는' 서구의 제국주의를 그대로 섬에 옮겨놓는다. 그러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줄거리에서나 소설적 장치에서나 상상력에서나 '로빈슨 크루소'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놓는다. 마치 소설 속에서 방드르디가 작은 나무들을 뿌리가 하늘을 향하게 '거꾸로' 심어 놓았지만 그 엉뚱한 생각이 의외로 좋은 결실을 가져왔듯이. 우선 사건이 진행되면서 로빈슨은 스페란자 섬과 방드르디를 지배하겠다는 생각에서 점차 벗어나 오히려 이 둘에게 매혹된다. 통치된 섬이 아닌 '또 다른 섬'으로서 스페란자를 마치 여인처럼 사랑하기에 이르고, 천박하고 미개한 노예가 아니라 '또 다른 방드르디'의 진가를 인정하고 찬미하기에 이른다. 제국주의적 통치자에서 우주적 원소들의 세례를 받은 '태양의 기사'로 변모하기까지 로빈슨은 커다란 파국을 겪는다. 가장 참담한 손실은 난파선에서 가져온 온갖 문명의 산물들과 식민지화된 섬에서 생산한 물산들을 축적해 두었던 동굴이 방드르디의 부주의에 의해 폭파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날려버린 로빈슨은 이제 방드르디의 방식을 좇아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이 원주민의 행동 속에서 '어떤 감춰진 통일성과 암암리의 원칙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셸 투르니에가 이 소설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상 프랑스의 유명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강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결과다. 1924년에 태어난 그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여러 차례 올라간 적이 있는 소설가이지만 원래는 철학교수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대학교수 자격시험에 실패한 후에 번역과 방송 및 출판 일에 몰두하다가, 그 사이에 파리의 인류박물관 강의에서 레비-스트로스를 알게 되었다. 그의 '신화적 사고'와 구조주의에 입각한 인류학에 영향을 받은 투르니에는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가 가진 문제점을 한눈에 파악하였고, 이 식민주의적 입장의 영국소설을 다시쓰기로 수정하고자 결심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과거의 정신에서 벗어나는 로빈슨과 중요한 인물로서 제 역할을 하는 방드르디가 등장하는 소설이 탄생하게 된다. 미셸 투르니에는 자신의 글쓰기에 '수공업적'이라는 표현을 때때로 덧붙인다. 이 표현은 레비-스트로스가 자신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사용하는 '손재주꾼의 작업'이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주변에 널려 있는 사물들을 모아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원주민의 손재주를 '수공업적'이라고 달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방드르디가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마치 놀이처럼 주변의 것들을 갖고 이것저것을 만들어내는 그 손재주! 그의 가장 걸작은 숫염소와 대결하여 이긴 후에 그 염소 가죽을 무두질하여 만들어낸 '노래하는 연'이다. 일상도구나 상징물에 새겨진 원시예술을 설명하기에 매우 적당한 이런 개념은 신화적 사고를 '일종의 지적인 손재주'라고 정의할 수 있게도 한다. 미셸 투르니에도 자신의 글쓰기를 신화적 사고의 산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결론적으로 야생의 자연을 미개한 땅으로 간주하여 식민지화하던 서구문명의 표상이었던 로빈슨이 야생의 자연과 원주민을 만나 오히려 자신 속에 억압되어 있던 '자연'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다. 이런 변모를 위해 작가는 서구문명의 합리주의와 기독교 정신 아래 억눌려 있던 신화적 상상력을 활용하여 소설을 구성한다. 소설의 시작을 여는 타로 점은 마치 책의 목차처럼 로빈슨의 운명을 예견하고, 주인공의 변화를 물, 불, 대지, 공기와 같은 4 원소론에 따라 입문의식의 과정을 거치듯이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 그 대표적인 방식이다. 문화와 인종의 차이를 차별로 대응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타자의 차이를 '관조적인 주의력'으로 경탄하는 일이다. 이런 매혹의 집중력은 개인의 자기완성이나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 수용을 이끄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김성택 교수 (경북대 불어불문학과)공동기획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김성택 경북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2021.12.24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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