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산책] 가오싱젠 '영혼의 산'…씁쓸한 통찰·언어적 독창성으로 中 문화 근원 찾던 순례자

  • 기영인 경북대 미주유럽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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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01 09:06  |  수정 2023-12-29 08:56  |  발행일 2023-12-01 제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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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싱젠 '깊은 산 속에서 자고새 소리 듣다'(The Deep Mountain, 2016) <출처:아트시(Artsy)>

"첫 희곡작품 '절대신호' 커다란 성공 불구 공연금지
중국사회 매서운 풍자로 자국 입국 금지까지 당해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中 문화 근원 찾는 여정 지속
첫 장편소설 '영혼의 산' 문학의 존재 이유 드러내"


중국에서 나고 자라 베이징외국어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한 다독가 가오싱젠(高行健, 1940~ )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겪으며 "문학이 가능하지 않던 시기에 비로소 문학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 적 있다.

사십에 가까운 비교적 늦은 나이에 소설집, 희곡과 평론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펴기 시작했는데, 1981년 펴낸 '현대 소설의 기교에 대한 초보적 탐색'은 소설의 현대화를 둘러싼 논쟁을 야기하며 중국에서 모더니즘 및 아방가르드의 수용과 탐색에 있어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가오싱젠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대표적인 작품은 희곡들로, 실험적이고 선구적인 작품들이다. 1982년에 나온 첫 희곡작품 '절대신호'는 베이징인민예술극원에 공연된 최초의 실험극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 발표한 '버스정류장'을 통해 그의 극작가로서의 명성이 확립됐다. 오지 않는 버스를 막연히 기다리는 인물군상의 모습을 통해 중국 사회에 대한 매서운 풍자와 함께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그러나 당국에 의해 '정신오염원'으로 지목되며 공연이 금지되었다. 1985년 발표한 '야인'은 브레히트의 소외효과 같은 서양의 현대 연극기법과 중국 전통 경극을 기반으로 한 노래, 춤, 곡예 등의 요소를 가진 실험적인 형식을 통해 윤리, 전통, 생태환경, 부정부패 등을 다루어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었으나 중국 내에서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던 가오싱젠은 현대적인 수묵화를 그려왔는데, 신비감에 싸인 무채색의 풍경들이 등장하는,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추상도 구상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그의 그림들은 작가의 책 표지 삽화로도 자주 선보였다.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지점에 그림이 시작한다고 하는 그는 이 같은 회화작업 덕분에 1980년대 후반부터 유럽에서 체류하게 되면서 망명작가로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1989년 톈안먼 사건이 발발한 뒤 그가 중국 정부의 대응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희곡 '도망'을 발표하자 중국 당국은 그의 모든 작품을 금서로 정하고 중국 입국을 금지했다. 작가의 유일한 책임은 "작가가 쓰는 언어"에 있다는 가오싱젠은 그 어떤 정치적 이념도 탈피하고, 여러 풍조와 유행에 휩쓸리는 시장 중심 소비사회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은 '무(無)주의'를 주장하며 문학비평을 지속했다.

작가는 1997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고, 1992년에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2001년에 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지옹도뇌르훈장을 받기도 했는데, 2000년에 마침내 노벨문학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가 "보편적 타당성, 씁쓸한 통찰과 언어적 독창성을 지닌 작품을 통해 중국 소설과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했다. 가오싱젠은 아시아 출신 작가로는 네 번째, 중국 출신 작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나, 중국 당국은 '중국어 작가'의 수상소식을 거의 알리지 않았으며, 중국작가협회에서도 노벨문학상의 정치화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가오싱젠은 소설작품을 중국어로 써왔으나, 중국에서 희곡작품의 상연이 금지된 이후 공연을 전제로 하는 희곡은 '주말 사중주'(1999)처럼 프랑스어로 쓰기도 했다. 이 밖에도 오페라-경극 '8월의 눈'(2002)을 통해 공연작품의 형식적 실험을 계속했으며, 그가 '영화시'라고 부르는 '혼돈 이후'(2008)와 '아름다움의 장례'(2013) 등의 영화를 만들었다.

◆자신을 찾아가는 순례의 여정, '영혼의 산'

가오싱젠은 1980년대 초반 중국 현대연극의 한 획을 그을 만한 희곡작품들을 선보이며 평론가와 관객의 큰 관심과 환영을 받았지만 중국 정부의 강한 제재의 대상이 됐다. 당국의 감시망과 비난을 피하고자 가오싱젠은 베이징을 벗어나 중국 남서부로 향했다. 그는 1982년과 1983년 사이 수개월씩 쓰촨(四川)의 깊은 숲속에 위치한 자연보호구역, 양쯔강의 발원지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산과 숲과 강가를 누볐고, 작가의 말에따르면, "아직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근원, 중국 문화의 근원을 찾는 영적이고 문화적인 탐색"을 했다. 1만5천㎞를 거친 이 긴 여정이 그의 첫 장편소설 '영혼의 산'의 기반이 됐다.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1982년 여름부터 구상해온 이 책의 원고를 들고 작가는 1987년 중국을 떠났고, 프랑스에서 책을 집필하면서 중국에 대한 그리움을 극복했다고 한다. '나 혼자만의 성경'과 더불어 가오싱젠의 양대 장편소설인 '영혼의 산'은 작가가 자신만을 위해 썼던 글이기 때문에 더욱 독특함을 지니게 된 작품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중국 문화의 근원과 사람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에 대한 탐색이자, 세상 속에 자신의 위치와 가치에 대한 회의를 포함해한 사람이 성장해가는 과정에 대한 분석이다. 또한 언어를 통해 이러한 주제를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담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이 "주인공이 자신에게로 순례를 떠나는 순례 소설이자 허구와 삶, 상상과 기억을 구분하는, 거울처럼 반사되는 표면을 따라가는 여행"이라고 표현한 소설 속에 '나' '당신' '그' 등 여러 인칭대명사로 지칭되는 작중인물들은 거울처럼 서로를 반사하고, 때로는 같은 시간과 공간, 때로는 상이한 시공간적 차원에서 움직인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한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남들과 터놓고 자유롭게 대화하지 못하던 시절, 혼잣말을 하다 보니 머릿속에 여러 자신들과 대화했다는 작가의 회상을 떠올리게 한다.

'영혼의 산'은 자신을 바라보고 자기 인식을 찾는 주인공을 통해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파격적인 현대소설의 실험적 형식을 취하면서도 그 속에 옛 민담과 전설과 구전가요를 전하며 중국대륙의 문화의 원류를 좇는다. 가오싱젠은 "작가가 쓰고 독자가 읽는 바로 그 순간에" 문학이 실현되고 의미가 있다고 했다. 자신을 관망하는 과정을 통해 '순간의 영원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영혼의 산'은 작가가 말하는 문학의 존재 이유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영인 전임연구원(경북대 미주유럽연구소)
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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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인 경북대 미주유럽연구소 전임연구원

기영인은 프랑스 소르본누벨대학에서 가오싱젠을 포함한 유럽의 동아시아계 이주작가에 대한 연구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 불어불문학과에서 프랑스어권 지역에 대한 강의를 하며, 미주유럽연구소에서 트랜스내셔널한 존재로서의 이중언어작가와 이주문학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아시아 출신 이주작가의 작품 속에 나타난 '언어적 과잉 의식'과 문화의 중첩 양상' ''루', 킴 투이의 '행복한' 망명' '린다 레의 후기 소설' '프랑스 현대 이주문학의 지형' 등의 논문을 썼다. '오늘날의 프랑스'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 등을 같이 집필했고, 문화비평서 '모든 것에 반대한다'와 소설 '나쁜 생각들' '아테나'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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