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산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 송병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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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14 07:00  |  수정 2023-10-11 13:28  |  발행일 2023-04-14 제21면
"내 작품은 상상력 필요 없는 라틴 아메리카 현실 그 자체"
콜롬비아 현실과 닮은 듯 다른 듯…화려한 상상 더해진 허구의 세계 묘사
제국주의·자본주의에 무너지는 마콘도와 부엔디아 가문의 멸망 보여줘
전 세계 독자 사로잡은 '마술적 사실주의' 문체…현대예술 효시이자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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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권 넘어 20세기 후반 세계 문학 대표 작가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세월호가 침몰한 이튿날인 2014년 4월17일 성목요일에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곧 서거 9주년이 되는 그는 20세기의 세르반테스라고 불렸으며,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현대 예술 사조의 효시이자 백미였다. 그는 유명 운동선수나 영화배우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며 세계의 독자를 사로잡았고 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작가였다. 그러나 그가 평생 추구한 것은 인기나 명예가 아니었고, 노벨문학상도 아니었으며, 불후의 명작을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글을 쓴 작가였다.

최근 60년 동안 세계 문학을 살펴보면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명성에 도전할 수 있는 작가는 그 어느 나라에도 없었다. 20세기 문학을 살펴보면 이런 현상은 쉽게 확인된다. 문학계가 이의를 달지 않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조이스, 프루스트, 카프카, 포크너, 울프 등은 모두 20세기 전반의 작가들이다. 20세기 후반에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유일하다. 그래서 1967년에 출간된 그의 대표작 '백년의 고독'은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세계화'된 소설이자 현대의 고전으로 여겨진다.

◆마술적 사실주의 : 상상 초월하는 실제 현실 기록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썩은 잎'(1955)을 시작으로 마지막 작품인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2004)까지 모두 10권의 소설과 4권의 단편소설집을 발표했다. 이 중에서 세계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소설은 '백년의 고독'(1967)과 '족장의 가을'(1975) 그리고 '콜레라 시대의 사랑'(1985)이다. '백년의 고독'은 가장 널리 알려졌고, 가장 높이 평가받으며, 가장 많이 모방되고, 가장 많은 찬사를 받는다. 한편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세계 문학에서 가장 훌륭한 러브스토리 중의 하나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족장의 가을'은 가장 읽기 어렵고 가장 이해하기 힘들지만 시적인 소설의 대표라는 평가를 받는다.

'백년의 고독'은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그를 하루아침에 유명작가로 바꿔준 작품이다. 20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6세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과 마콘도라는 허구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문체를 구사하고, 훌륭한 문학작품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100년의 역사가 흐르는데,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묘사하는 사건들은 대부분 부엔디아 가문의 삶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이루는 탄생이나 죽음, 혹은 결혼이나 사랑들이다.

부엔디아 가문의 몇몇 남자들은 거칠고 방탕하며 사창가를 전전하면서 불륜의 애인을 갖기도 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조용하고 고독하다. 그들은 방에 틀어박혀 조그만 황금 물고기를 만들거나 오래된 원고를 열심히 연구한다.

이 작품에서 부엔디아 가문뿐만 아니라 마콘도는 근대라는 힘에 파괴된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마콘도에 도착하고, 바나나 농장은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결국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은 미국인들의 비인간적 대우에 분노하여 파업하고, 바나나 농장 지주 편을 들던 군부는 수천 명의 노동자를 학살한다. 그들의 시체는 바다에 버려지고, 4년 11개월 2일 동안 끊임없이 비가 내리면서 마콘도의 멸망을 재촉한다. 이제 살아남은 부엔디아 가족들은 외부세계와 고립된 채 근친상간을 범한다.

1982년 10월21일에 스웨덴 아카데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선정하고, 그해 12월에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스톡홀름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이란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을 읽는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문학 표현 양식뿐만 아니라 가공할 만한 현실 때문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자기 작품은 종이 위의 현실이 아니라 불행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창조물의 실제 현실이며, 그것이 창작의 샘물이라서 상상력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미국과 유럽 비평가들은 마술적 사실주의를 현실과 환상의 혼합이라고 정의하지만, 그것은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 그 자체라는 것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열광하는 이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대부분의 우리 독자들에게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항상 그의 대표작인 '백년의 고독'을 통해 연상된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아직도 우리에게 생경한 '마술적 사실주의'의 작가, 혹은 환상과 현실을 적절히 배합한 우리의 현실과는 무관한 외국 작가로만 다가올 뿐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종종 한국이 등장한다. 특히 그가 1954년 12월에 쓴 '한국에서 현실로'란 기사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콜롬비아 병사들의 고통과 그 고통의 이미지를 다룬다. 이것은 '백년의 고독'에서 문제적 인물로 등장하는 대령의 완고함이나 뿌연 먼지로 뒤덮인 기차의 이미지가 한국전쟁 참전 용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글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20세기 현대 문학사에 여러 족적을 남겼다. 특히 현실과 환상의 혼합보다 상상이 때론 현실보다 정확하며, 현실이 때론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백년의 고독' 후반부에 나오는 바나나 농장 대학살 사건이다. 작가는 그 일화를 구체적인 자료 없이 상상으로 썼지만, 이후 콜롬비아 정부가 이 사건을 재조사하면서 작가가 상상으로 제시한 수치와 내용이 현실에 매우 근접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또한 이 사건은 현실이 너무나 가공할 만하기에 비현실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인들이 '소설'을 '거짓말'과 동일시하는 지금,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소설이야말로 거짓으로 은폐된 현실의 가면을 벗길 수 있는 도구임을 보여준다. 그것이 아직도 그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송병선 교수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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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선 교수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에서 라틴아메리카 소설과 스페인어 통번역 관련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여러 소설을 번역했으며, 그의 작품에 관한 많은 글을 학술지와 문학잡지에 발표했다. 또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마누엘 푸익의 주요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은 책으로 '보르헤스의 미로에 빠지기' '영화 속의 문학 읽기'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한국 전쟁' '붐 소설을 넘어서' 등이 있다. 제11회 한국문학번역상을 받았다.

현재 1980년 이후의 라틴아메리카 소설과 연극이 남아메리카에서 벌어진 '더러운 전쟁'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리고 21세기 문학의 사회적, 정치적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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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선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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