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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산책·다시 읽는 고전명작]
[노벨문학상 산책]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억울한 감옥살이 속 햇살처럼 스며드는 '인류애'
◆고난의 생애와 진실의 문학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은 '러시아 문학의 불굴의 전통인 도덕적 힘을 계승했다'는 찬사와 함께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노벨상을 기점으로 작가는 소련에서는 반역자로, 서구에서는 사회주의 체제를 고발하는 양심과 저항의 상징으로 양극단의 운명에 처해 진다. 솔제니친의 문학은 자신의 삶과 역사적 체험에 근거한 생생한 육필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암병동'은 8년에 걸친 작가의 수용소 체험을 바탕으로, '붉은 수레바퀴'와 '수용소 군도'는 자신의 체험과 다른 사람들의 역사적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창작되었다.1962년 솔제니친은 가까스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할 수 있었는데,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1960년대 자유화를 알리는 일대 사건이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그는 작품 출판금지와 작가동맹 제명이라는 가혹한 탄압을 받아야 했다. 솔제니친은 공개서한을 통해 정부와 작가동맹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그 서한들이 서구에 전해지면서 그는 세계적인 저항의 지식인으로 부상한다. 죽 한그릇 더 먹는 일에 일희일비20세기 러시아 역사 생생히 그려내현실비판 소설로만 해석땐 아쉬움이기적인 주인공이 나눔 시작하며수용소 안에서 자라나는 희망의 싹 그 위대한 순간 문학적 구현한 소설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를 몰래 해외에서 출판했다는 이유로 1974년 마침내 반역죄로 체포돼 해외로 추방당한다. 이후 미국에 정착한 솔제니친은 이데올로기 선전전의 훌륭한 상징물로 활용되었지만, 다른 한편 서구 자본주의에 대해 차가운 태도를 견지하며 한적한 버몬트주 산골에 칩거한 채 러시아어와 러시아적 생활을 고집하는 등 다소 괴짜라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1994년 솔제니친의 귀국길에는 수천 명의 열렬한 환영 인파가 뒤따랐다. 이후 솔제니친은 국수적 애국주의를 주창하고 서구의 간섭과 이데올로기적 침투를 비난하는 등 다소 극우적일 정도의 정치적 행보를 보였고, 2008년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이반 데니소비치의 '행복한' 하루와 역사의 불안'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하루를 통해 20세기 역사의 비극적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아마 모든 문학서가 바로 이렇게 이 작품을 요약하고 소개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런 독법에만 머문다면, 간단한 요약본으로 이 작품을 읽는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오늘날 새롭게 이 소설을 손에 든다면 우리는 도식적 독서가 아니라, 보다 깊은 소설의 재미와 진경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장면을 발견하고 단순한 사실 폭로나 현실 비판을 넘어 삶과 문학의 본성에 닿아 있는 솔제니친 문학의 정수를 느껴보아야 할 것이다.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했는데, 독일군 첩자라는 부조리한 혐의로 10년 형을 받고 현재 8년째 복역 중이다. 그는 그저 죽 한 그릇을 더 먹거나, 약간 유리한 작업 부서에 배치를 받는 등 약삭빠르게 약간의 편익을 도모하는 일에만 열중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그런 하루가 슈호프에겐 운이 좋고 행복한 하루이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에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 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새벽부터 일어나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기껏해야 죽 한 그릇을 더 얻어먹을 수 있었던 슈호프의 하루, 이런 하루가 '행복'했다니?! 분명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감옥을 묘사할 때 비참한 상황을 극대화하기보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 오히려 더욱 공포를 느끼게 되는 솔제니친의 냉엄한 리얼리즘을 목도한다.하지만 작가는 비참한 수용소 생활의 묘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벽돌 쌓는 작업을 배정받은 슈호프와 동료들은 각자 편하고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다. 그러나 막상 일이 시작되자 슈호프는 오직 일 자체에 빠져든다. '이제 슈호프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 슈호프는 오직, 이제부터 쌓아 올릴 벽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일에 열중한 슈호프의 모습에서 강제노동이라는 비극적 분위기는 사뭇 사라지고 일 자체에 대한 희열까지 느껴진다. 모르타르를 빗고 벽돌을 나르며 함께 일하는 반원들도 어느새 자발적으로 빠져든다. 마치 신나는 잔치와도 같은 분위기다. 이렇게 노동의 기쁨을 맛본 후 슈호프는 평소와 다르게 반장에게 대등하게 말을 건네는가 하면 금지된 줄칼을 몰래 반입하는 용기를 내고 남에게 얻은 '소중한' 비스킷 하나를 옆 침상의 알료쉬카에게 나누어주며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저 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하던 슈호프가 이젠 가장 약하고 선량한 알료쉬카에게 적선을 베풀고 있지 않은가. 이 역시 오늘 하루 노동의 기쁨을 맛본 자의 고양된 내면의 효과가 아닐까. 이런 장면은 견고한 일상의 벽에 균열을 일으키는, 그 균열의 틈새를 인간의 생명이 파고 들어가는 희망의 싹틔우기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삶을 희망으로 일깨워 가는 작은 자유의 몸짓이며,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힘이라고 해석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20세기, 사회정치 혁명이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었던 것은, 아니 그 몰락의 분명한 원인 중 하나는 인간 활동의 이러한 미세한 생성의 계기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는 이 장면을 비참한 일상을 돋보이게 하려고 그렸을지 몰라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 위대한 순간을 문학적으로 구현해 낸 것은 아닐까.이강은 교수 (경북대 노어노문학과)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경북대 인문대학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러시아 소설론'과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등을 강의하고 있다. 소설을 인간과 문화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하고, 소설 속 인물이 주이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보여주는 사소하면서도 위대한 움직임에 주목하길 좋아한다. 경북대 기초교육원장과 교무처장을 역임한 바 있고, 우리 사회의 인문사회 역량을 제고하고자 설립된 <사>인문사회연구소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혁명의 문학 문학의 혁명 막심 고리끼' '변혁기 러시아 문학의 윤리와 미학' '러시아 소설의 형식적 불안정과 화자' '반성과 지향의 러시아 소설론' '미하일 바흐친과 폴리포니야' 등이 있고, 역서로 '인생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은둔자' '레프 톨스토이' 등이 있다.이강은 교수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2022.09.02
[노벨문학상 산책] 이오시프 브로드스키의 '존 던에게 헌정하는 大 비가'
창작의 자유 외치던 문학청년소련 추방 15년 뒤 노벨상 수상모국의 정체성 평생 잊지 않고망명문학 독창적 창작세계 구축건조한 시어로 감정의 과잉 억제삶·죽음·운명에 관한 성찰 전달러시아 최고의 서정 시인 평가198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오시프 알렉산드로비치 브로드스키(1940~1996)는 유대계 출신이며, 러시아 시인이자, 미국의 에세이 작가이다. 그는 소련에서 추방된 지 15년 만에 미국 시민권자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국회도서관으로부터 '올해의 시인'(1991)으로 선정되기도 하면서 이주작가 혹은 망명작가로서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가까운 친구이자 시인의 전기를 집필한 알렉세이 로세프는 "브로드스키가 영어로 시를 쓰면서도 자신을 이중 언어의 시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영작 시를 차라리 하나의 게임처럼 여겼다. 그는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러시아인이었으며, 중년이 되어서도 그런 자신의 입장을 반복했다"며 그의 복잡한 경계인적 입장을 설명한 바 있다. 실제로도 그는 자신의 시 대부분은 러시아어로 썼으며, 영어로는 주로 에세이를, 그것도 레닌그라드 시절의 경험과 기억을 회고하는 자전적 에세이와 시론을 쓰는 데 몰두했다. 이처럼 브로드스키의 창작 양태가 보여주듯 그는 소비에트 망명문학이라는 기이한 문학 현상에 나타난 희생자이자 대표작가로 상징되고 있다. 1940년 레닌그라드(오늘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브로드스키는 열다섯 살에 중학교를 중퇴한 이후, 병기창 견습생, 보일러공, 등대지기, 병원 시체안치실 보조원 등의 막일을 전전하며 정규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으며 심각한 대인공포증과 말더듬증을 앓을 정도로 사회 적응을 하지 못하던 문제아였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스무 살의 문학청년 브로드스키는 사미즈다트(지하출판) 시 잡지 '문장'에서 비공식적으로 문학 데뷔를 하였고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할 정도의 미미한 창작 생활을 겨우 이어가던 문학 초년병에 불과했다. 그러나 1963년 11월29일 석간지 '저녁의 레닌그라드'의 '유사 문학을 행하는 기생충'이라는 기사를 통해 브로드스키가 사회적 공적으로 비판받고 재판에 회부되자, 역설적이게도 그의 재판은 '시인은 직업인가?' '소련에는 창작의 자유가 있는가?'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세계적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덩달아 그의 작품세계도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결국 그는 법정 최고형인 5년간의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으며 아르한겔스크의 한 벌목장으로 추방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직업 활동을 기피하는 반사회적인 인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사회적 분위기를 추스르려고 했던 소련 정부의 의도는 빗나가고 공연히 불필요한 논란만 키운 꼴이 되고 말았다.사실 브로드스키라는 시인의 등장과 그에 대한 재판은 소위 '해빙'이라는 스탈린 사후의 탈권위주의적 사회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5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해빙의 사회적 분위기는 강압적 스탈린주의에 대한 반대, 정통 레닌주의로의 회귀, 개인과 창작의 자유 보장 등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며 사회적 긴장이 이완되고 있었다. 이러한 해빙의 분위기를 주도한 사람들은 문학, 음악, 영화 등의 문화 전반에서 그간 숨죽이던 예술가이었는데, 그들은 스탈린 시대를 거치며 끊어진 러시아 모더니즘의 다양한 창작적 실험을 다시 재현하고 있었다. 브로드스키 역시 시대의 변화에 호응하며 숨겨진 자신의 시적 재능을 통해 아크메이즘(아담주의)의 문학적 전통을 이어가고자 했다. 브로드스키의 시 세계는 '마치 아담처럼 지상적 존재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껴야 하며, 시선에 들어오는 최초의 인상을 표현해야 한다'는 아크메이즘 창작 원칙 아래 세계를 선입견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명료한 시어를 추구하며 시작된다. 그러나 아크메이스트적 입장에 안주하지 않고 그는 이십 대 중반부터는 영국 시인 존 던과 위스턴 휴 오든(1907∼1972)의 형이상학 시에서 자극을 받으며 죽음, 불멸, 시간과 공간, 형제애 등의 철학적 명제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시적 주제를 확장한다. 이 과정을 통해 시인 브로드스키는 러시아적 요소와 비러시아적 요소가 혼합된 자신만의 독창적인 창작 세계를 구축한다. '존 던에게 헌정하는 대(大) 비가 Большая элегия Джону Донну'(1963)는 그의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서 브로드스키의 시학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존 던이 잠들자, 주변 사물이 모두 잠들었다.사방의 벽이, 마루가, 침대가, 그림들이 잠들었고탁자, 양탄자, 빗장, 걸쇠,옷걸이, 찬장, 양초, 커튼이 잠들었다.'208행에 달하는 이 대(大) 비가에서 단어 나열은 무려 91행에 걸쳐 계속되며 브로드스키의 시선은 존 던의 침실로부터 시작해 집 안 구석구석으로, 창문 너머의 도시로, 자연의 세계로, 다시 신도 악마도 모두 잠들어 있는 천상의 세계로 계속 이동한다. 시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한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가에 통상적인 슬픔을 자극하는 정서적 단어들은 일절 등장하지 않고 단지 건조하고 사실적인 시어만이 사용되며 철저히 감정의 과잉이 억제된다. 이는 브로드스키가 시간의 본질과 현상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모색하면서도 삶, 죽음, 수난, 운명, 공간 등을 시간의 변주가 낳은 하위 테마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브로드스키는 어떤 시인보다도 철학자적 면모를 보이는 형이상학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로드스키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에 자신의 오랜 굴레였던 유죄판결에서 25년 만에 완전히 복권되고 페테르부크그 명예시민으로 위촉되면서 러시아 시민의 권리를 회복했다. 그러나 그는 부모가 이미 사망한 러시아를 방문하지 않았고 미국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그는 미국에서 문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되기도 하고 여러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인으로 또 에세이 작가로 최고의 영예를 누리던 1996년 브로드스키는 56세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했다. 1964년 투옥 당시 처음 발병하기 시작한 심장병이 다시 재발한 것이다. 소비에트 체제가 붕괴하자 해외 망명문학이 러시아 문학에 공식적으로 편입되는데 이때 브로드스키에 대한 재평가도 함께 이루어졌다. 한때 조국에서 수모를 겪고 추방당했던 브로드스키는 오늘날 러시아 문단에서 20세기 후반 러시아 최고 서정시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이대우 교수<경북대 노어노문과>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현재 경북대학교 인문대 노어노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대 노어노문과 및 동대학원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했으며, 프로방스 대학 및 파리 8대학 박사과정에서 DEA를 취득한 후,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에서 세르게이 예세닌의 신농미시와 한국농민문학으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 '러시아문학개론'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 등과 역서 '부활'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네네츠의 신화-설화' 등이 있다.이대우 교수(경북대 노어노문과)
2022.08.05
[노벨문학상 산책] 세이머스 히니의 첫 시집…'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
1972년 1월30일 데리의 보그사이드 지역에서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라 불리는 역사적 사건이 발발한다. 북아일랜드 시민권 협회가 재판없는 구금에 반대하기 위해 조직했던 행진에서 영국군의 낙하산병들이 비무장 시민운동가 13명을 살해하고 12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모두 가톨릭 신자였다. 이 사건의 문맥은 아일랜드 독립전쟁 기간인 1920년 11월21일에 일어났던 원조 '피의 일요일'과 관련해 소위 IRA가 더블린에서 더블린성의 정보부 소속 무장 영국장교 11명을 살해했을 때, 그 보복으로 영국군은 더블린의 크로크 파크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 21명을 사살한 역사적 사건과 맞물린다. 북아일랜드 분쟁(The Troubles)이라 불린 이러한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동요의 상황 속에서, 벨파스트에 거주하던 세이머스 히니는 마침내 퀸즈대학의 강사직을 사임하고, 1972년 11월 가족과 함께 북아일랜드를 떠나 남쪽 아일랜드 공화국의 위클로 카운티의 글랜모어 카티지로 이주한다. 북아일랜드 '피의 일요일' 사건 후 남아일랜드공화국으로 떠난 히니총과 폭력에 대한 공포 극복하며 자연 속 서정적 아름다움 그려내23년 뒤 '일상의 기적과 살아있는 과거를…'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진심·희망 주는 밝은 어조 눈길…작품속에서 숭고한 삶의 비전 제시23년 뒤 히니는 '일상의 기적과 살아있는 과거를 찬양하는 서정적 아름다움과 윤리적 깊이의 작품'으로 199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아일랜드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판테온에 W. B. 예이츠, 조지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켓과 함께 나란히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 것에 대한 소감을 묻자, 히니는 "산맥 아래 작은 산기슭에 있는 것과 같다"라고 겸손히 대답한다. 조그마한 나라 아일랜드 문학의 산맥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4명이나 있다는 사실은 남북의 문제가 공통분모인 한국에서 숙고해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최초의 시집인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에 처음 등장하고 히니의 시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시 '땅파기'에서 시인인 화자는 펜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삽으로 작업한다. 시인은 탐구가이자 고고학자로서 자신의 땅의 도면을 그리고 전통을 발굴하며 다시 써내려 간다. '내 검지와 엄지손가락 사이에펜촉 만년필이 놓여있다. 총의 방아쇠를 쥔 듯 가지런히.창문 아래에서는 자갈밭에 꽂히는깔끔하면서도 거친 삽질 소리가 들린다.아버지가 땅을 파고 계신다. 나는 내려다본다. (DN 3)'감자 이랑과 늪지의 어두운 땅속을 파내려 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현실적 작업에서, 히니는 고고학적 상상력으로 북아일랜드 정신적·역사적·문화적·영성적 공동체의 현실적 토착 토양을 펜으로 파내려 가고자 하는 욕망과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펜과 총의 이미지가 독자의 뇌리에 남는다. 펜과 총의 이미지로 시작하는 히니의 의식 속에는 총의 비유가 전하는 폭력적인 위험이 잠재해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지뢰와도 같이 단편적으로 폭발적인 이미지로 시집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에 여기저기 심어져 있다.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에서는 어린 시절의 자연현상은, 더 이상 목가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다. '땅파기'에서 언급된 총은 방아쇠가 당겨지면 폭력적인 위험을 상징하여 공포와 두려움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초기의 시인 히니는 폭력의 이미지가 지배하는 북아일랜드 데리에 살면서 자신도 모르는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자연은 현실적인 체험에서 생경하고도 낯설게 위협과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이제 낭만주의적 자연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자연주의의 종말' '현실의 비전'을 가져다준다. 습지에서 개구리를 보는 시각뿐 아니라 곡식 창고에서, 강둑에서, 우물에서, 개울에서, 그리고 모스반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포가 다가온다. 목가적이라고 생각했던 데리의 모스반의 곳곳의 공간에서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어린 시절의 경험은 시인에게 여러 형태의 관찰을 통해 무의식적인 공포증의 원인을 엿보게 해준다. 공포에서 벗어나면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공포의 대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은, '배움의 진전'에서 제시한 쥐 공포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것이다. "신중하고도 소름이 돋는 주의를 기울이며" "뚫어지게 바라보는" 새로운 응시의 현실감각을 초기 시에서 구현한 것이다. '블랙베리 따기'와 '버터 만드는 날'에서도 시인은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응시의 현실감각을 체득한다. 이제 독자들도 시인 히니가 익숙하게 연단 시킨 동식물에 대한 집중력으로 사물을 응시할 수 있다.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연단된 응시로 독자의 상상력을 일깨워 자연현상과 인간, 물고기, 폭포에 대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응시와 연단을 통한 예술적 재현의 사례를 '아란섬의 싱' '성 프란체스코와 새들' '조그마한 마을에서' 3편의 시에서 찾아본다. '아란섬의 싱'에는 아란 섬의 사방의 바람이 소금으로 그 날카로움이 더해지고, 땅을 깎아 내려가며, 절벽을 깎기도 한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존 밀링톤 싱(John Millington Synge·1871~1909)은 아란 섬의 '영감'의 바람과 함께하며 항상 머릿속에는 작품을 구상하며 '소금 바람으로 다듬어지고' 연마되고 감정의 격동 속에서 '통곡하는 바다에 담긴 펜촉'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천재적이고 날카로운 비평적 시각을 지닌 작가가 된다. '성 프란체스코와 새들'에서는 1209년 가톨릭 프란시스칸 수도회의 설립자인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1191~1226)가 새들에게 사랑을 전파하는 언어는 새로운 신비로운 의사소통의 선물로 재창조되어, '날개로 춤을 추고, / 투명한 기쁨을 위해 놀며 노래하는' 날개 달린 단어가 되어 새와 함께 춤을 춘다. 사랑의 믿음을 가진 이들의 진심과 희망을 주는 빛나는 밝은 어조가 바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조그마한 마을에서'에서 반 고흐(Van Gogh)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풍의 독특한 스타일로 풍경화를 그리는 초현실주의 화가 콜린 미들톤(Colin Middleton·1910~1983)은 총처럼 장전된 돼지털 쐐기로 큰 브러시 윤곽선과 세척을 사용하여 바위 안의 수정이 나타날 때까지 화강암과 점토를 구별하여 쪼개어, 석재의 그라운드가 더 선명하게 정의되고 배경이 고정될 때까지 가장자리를 연마한다. 마지막에 위치한 프레임 시 '나만의 헬리콘산'에서 우물은 화자에게 시적 영감의 원천을 제시한다. V자 모양으로 두 갈래로 갈라진 개암나무 막대로, 목표장소를 빙빙 돌다가 가야금 줄을 퉁기듯 개암나무 가지의 떨림으로 물소리의 튕김을 감지하는 '수맥 탐지자(The Diviner)'처럼, 안나 스위르(Anna Swir)의 '세상의 목소리를 포착하는 안테나'처럼, 시인 히니는 자신의 잠재의식과 집단적 잠재의식 사이(in-between)의 안테나가 되어 영감의 물줄기를 찾아낸다. 이제 히니의 시는 우물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증폭된 소리와 같이 자신의 시적 목소리로 '어둠을 메아리치는' 시적 소명을 결단한다. 이후 수십 년 동안 북아일랜드의 사회적, 정치적인 동요와 소용돌이를 목격하고 시적인 현실의 비전을 재현하여 아일랜드 전역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숭고한 어둠을 파헤쳐 메아리쳐 울려 퍼지게 할 것이다. 김영민 (동국대 명예교수)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김영민 교수는 동국대 영어영문학부에서 '현대영미시' '아일랜드 문학' '캐나다 문학' '정신분석학' '비평이론' '포스트모더니즘' '초국가주의' '비교문학' '세계문학' '디지털 인문학' 등을 강의해왔으며, 1998년에는 미국 코넬대 강의 교수로 한국학을, 2011~2014년에는 버지니아대학 객원교수로 동아시아 관련 연구를 했다. 2016년에는 동국대 연구 우수 교수, 2019년부터는 동국대 명예교수로서, 2019년부터 현재까지(2022) 중국 항주사범대의 Jack Ma Chair Professor로 영문학, 비교문학과 세계문학, 트랜스 미디어와 디지털 인문학의 융합과 통섭의 문맥에서 미래인문학에 관한 강의와 연구를 해오고 있다. 동국대 국제교육원장, 인문대학장, 한국사립대인문대학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트랜스미디어세계문학연구소와 디지털인문학 LAB을 설립해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초국가주의와 문화번역'(2009~2011), '트랜스미디어, 디지털인문학, 세계문학의 융합의 미학'(2017~2020),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의 미학과 통섭의 윤리'(2020~2022) 등 미래인문학에 관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또 교육부·한국연구재단에서 세계인문학포럼 추진위원 및 운영위원, 인문학대중화사업 운영위원, 학술지발전위원회 발전위원 등을 수행하였고, 대산문화재단 자문위원, 부산영화제(BIFF)콘퍼런스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영어영문학회, 한국라깡과 현대정신분석학회, 한국예이츠학회의 회장, 한국영어영문학회 저널 편집위원장(2013~2021), 한국동서비교학회 편집위원장(2022~)을 역임했다. 국제윤리비평문학협회(IAELC), 국제아일랜드문학협회(IASIL) 부회장, 국제비교문학협회(ICLA), 국제번역과문화간연구협회(IATIS), 국제W.B.예이츠학회, 국제에즈라파운드학회의 집행이사직을 수행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에즈라 파운드: 포스트모던 오디세이아', '예이츠, 아일랜드, 그리고 문학'(공저)등이 있다.2009년 예이츠 서머스쿨에서 아일랜드 노벨문학상 수상자 세이머스 히니(오른쪽)와 함께.김영민 (동국대 명예교수)
2022.07.08
[노벨문학상 산책]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호수의 섬 이니스프리'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1865 ~ 1939년)의 작품과 생애는 블루베리의 과육과 껍질처럼 쉽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예이츠의 생애는 고기압과 저기압의 부딪힘에서 그 힘을 얻는 태풍마냥, '초월적 상승'과 '지상에 뿌리박기'라는 강력한 두 경향성의 맞부딪힘으로 가득하다. 그는 초월적 존재들과 영적 교류를 시도함으로써 시공을 뛰어넘는 초월적 상징체계를 구축하려는가 하면, 아일랜드의 전통과 역사적 현재와 영웅들의 행적을 꼼꼼히 담아내려 한다. 예이츠의 초월적 성향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형성된 것처럼 보인다. 예이츠가 어린 시절과 학교 방학의 대부분을 조부모와 함께 지냈던 슬라이고 지방은 신화와 민담과 전설이 가득했던 곳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들 이야기를 접하면서 초월세계가 단순히 상상이 아니라 실재하며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청년 예이츠는 과학과 현실을 초월하여 심령의 세계로 들어가 신과 우주의 신비를 표현하는 것에 매료된다. 1885년 그는 조지 윌리엄 러셀, 찰스 존스턴과 함께 '더블린 신지회'를 설립하여, 태고 이후 우주와 인간의 기원을 둘러싼 비밀의 중요한 부분을 공유하고 다시 근원적인 신적 예지에 접근하기를 희망한다. 신화·민담 가득한 슬라이고 지방서 어린시절…신·우주의 신비에 매료생활 터전인 도시 떠나지 못한채 이니스프리 섬으로 떠나는 날 염원작은 오두막 짓고 명상하며 생활…꿈꾸던 소박한 삶 하나하나 나열아침 안개 '면사포'·한밤중 '타는 보랏빛' 등 몽환적 시적 표현 '백미'1889년 1월 예이츠는 민족주의 독립투사인 미모의 여배우 모드 곤을 만난다. 예이츠는 그녀를 만난 이래 10여 년을 줄곧 구혼하고 수많은 시를 바쳤으나 모두 허사였다. 그에게 모드 곤은 열렬한 숭배의 대상, 아일랜드 민족운동의 동지, 불멸의 뮤즈이지만, 또한 희망 없는 사랑으로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모순의 존재이다. 예이츠가 최소 네 차례 청혼을 하지만 모두 거절한 모드 곤은 1903년 아일랜드 독립투사인 존 맥브라이드 소령과 결혼한다. 이 결혼은 예이츠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힌다. 예이츠는 민족주의자로서 문학과 예술을 통해 아일랜드를 통합하고 계층과 종교와 종족 간의 연대를 고취하려 한다. 이 일환으로 그는 레이디 그레고리, 더글라스 하이드, 조지 무어, 조지 러셀 등과 함께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을 시작한다. 이들 작가는 아일랜드의 독립에 이바지하기 위해 민중에게 아일랜드의 소중한 자산을 계몽하고 아일랜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다. 또한 가톨릭 소작 농민의 삶 속에 신화, 전설, 민담을 문학으로 표현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과 통합을 가져오려 한다. 한편 1910년과 1920년대는 아일랜드가 영국 제국주의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탈식민의 빛으로 나오는 때이다. 1916년 부활절 봉기와 1919년에 시작되어 2년 동안 지속된 영국-아일랜드 전쟁을 치른다. 1921년 1월 아일랜드의회가 논란 끝에 단 7표 차로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인준함으로써 마침내 아일랜드자유국이 탄생한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자유국에서 상원으로 6년을 봉사한다. 1923년 예이츠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1937년, 이미 일흔두 살이 된 예이츠는 호흡과 보행이 곤란할 정도로 노쇠했다. 그는 요양차 남부 프랑스로 떠난다. 이듬해인 1938년 겨울 그의 병세는 악화된다. 멀리 고향인 더블린을 그리워하며 예이츠는 1939년 1월28일 숨을 거둔다. 예이츠는 1938년 9월에 탈고한 작품 '불벤 산 아래'에서 자기의 영면(永眠)의 장소와 비문을 손수 지정한 바 있다. 비문에는 "차가운 눈길을,/ 삶과 죽음 위에 던지며,/ 지나가라, 말탄 자여!"가 새겨져 있다. 비문은 삶과 죽음, 지상과 초월을 모두 포괄하려는 예이츠의 열망을 깊은 여운으로 남겨놓는다.예이츠는 '호수의 섬 이니스프리(The Lake Isle of Innisfree)'를 "내 자신의 음악적 리듬으로 쓴 첫 서정시"라고 설명하면서 이니스프리가 힘든 순간마다 제자리를 찾게 해주는 사색과 치유의 공간이라고 토로한다. 이 서정시에서 시인은 도시의 문명 생활, 소음, 군중으로부터 벗어나 이니스프리의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평화와 지혜를 얻고자 염원한다. 이 염원은 물욕과 인습으로부터 탈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시는 이니스프리로 떠나고 싶다는 소망으로 시작된다. "나는 일어나 이제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거기 흙과 욋가지로 조그마한 오두막 짓고,/ 아홉이랑 콩을 심고 꿀벌 통은 하나,/ 숲 가운데 빈터에 벌 잉잉거리는 곳, 나 홀로 게서 살리라." 시인은 자연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이니스프리에 도착했을 때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나열한다. 그는 '흙과 욋가지'로 은신처인 조그마한 오두막 짓고 '아홉이랑 콩'을 심을 것이다. 또한 벌집 한 통을 마련하여 꿀을 딸 것이다. 시인은 탈문명의 불편함을 손수 행하는 고된 노동으로 채우고 소박하고 명상적인 생활을 해나갈 것이다. 2연은 시인이 꿈꾸는 평화를 아름다운 자연의 이미지로 그려낸다. "거기서는 나도 얼마쯤 평화를 가지리, 평화는 천천히 흘러내려,/ 아침 면사포에서 귀뚤개미 우는 데로 흘러내리나니./ 거긴 한밤중에도 환한 미광, 한낮엔 타는 보랏빛,/ 해질녘엔 가득한 홍방울새 나래 소리." 평화는 참을성 있게 노동을 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적 삶을 추구할 때 서서히 내려온다. 그곳에서 누릴 평화는 여러 얼굴이다. 아침 안개에 가려 어렴풋이 드러냈던 평화는 한나절 타는 보랏빛으로 바뀌더니 황혼녘에 홍방울새의 날갯짓마냥 솟아올라 찬란한 영적인 위엄을 드러낸다. 아침 안개가 종교 의식에서 쓰는 '면사포'에 비유되어 영적인 의미가 환기된다. 또한 '한밤중에도 환한 미광'이나 '타는 보랏빛'은 이 평화가 지닌 몽환적이고 초자연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현실로 되돌아온다. "나는 일어나 이제 가리라. 언제나 밤낮으로/ 내 귀에 들리나니, 그 호수의 언덕에 나직이 철썩거리는 물소리,/ 차로에서나 회색 인도에 서있을 제,/ 내 맘의 깊은 곳에 들려오나니." 이니스프리의 호수 물소리는 시인을 밤낮으로 부르며 손짓한다. "가리라"는 말을 반복하며 굳건한 의지를 강조하지만 시인은 무감각하고 병들고 우울한 도시의 회색 인도를 좀처럼 떠나지 못한다. 그곳은 황량하지만 생활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도시에서 머물며 밤낮으로 이니스프리를 그리워한다. 그의 갈망은 좀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과 같다. 하지만 짝사랑의 마법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호수의 물소리가 맘 깊은 곳에서 철썩이며 귓전에 맴돌 것이기에. 윤일환 교수 (한양대 영어영문학과)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윤일환 교수는 한양대 인문과학대학 영어영문학과에서 '영미문학읽기' '현대영미역사와시,' 대학원에서 '19세기 영미시 세미나' '20세기 영미시 세미나' 등을 강의하고 있다.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에 나타난 억압적인 미적-도덕적 규율의 해체, 메시아적인 정의 및 욕망의 흐름의 재형상화 등을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한양대 인문과학대학 부학장, 영어영문학과 학과장, 하버드 엔칭연구소 방문교수를 지냈다. 또 한국예이츠학회 회장과 한국영어영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교양으로 읽는) 영미문학'(공저), '예이츠, 아일랜드, 그리고 문학: 이니스프리에서 델피까지'(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번역, 권력, 전복'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크리스타벨과 타자의 애도 윤리학' '예이츠의 사랑의 시: 잃은 여인과 얻은 시' '자본주의, 정의, 그리고 욕망-생산-데리다와 들뢰즈, 그리고 마르크스의 유산' 외 다수가 있다.윤일환 교수 (한양대 영어영문학과)
2022.06.10
[노벨문학상 산책] 펄 벅 '대지'…중국 농민의 삶 재현한 '대서사시'…포용의 시선 느껴져
펄 벅의 삶의 궤적은 세계 문단에 유례가 없을 만큼 독특하다. 1892년 미국에서 태어나 기독교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생후 3개월에 중국으로 가 약 40년을 중국에서, 그리고 약 40년을 미국에서 보낸 그녀는 미국인 혹은 중국인이라고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중의 정체성을 가진 '정신적인 혼혈인'이다. 펄 벅이 중국에서 살았던 40년 동안 중국은 왕조 시대의 몰락과 1900년 의화단 운동, 1911년 신해혁명, 1920년대와 30년대 국공내전, 1931년 일본의 만주 침략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격랑 속에 있었다. 그녀는 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의 속살과 문화와 철학을 온몸으로 생생하게 체득한 결과를 글로 씀으로써 후에 중국에 관한 전문가로 성장하게 된다. 펄 벅은 1931년 '대지'를 발표하고 나서 미국 최고의 작가에게 수여하는 퓰리처상과 하우얼즈상뿐만 아니라 미국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로, 미국 작가로서는 세 번째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으며, 국립문예학술원 회원으로 선정되는 명예를 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은 2차 대전 이후 미국문학사의 정전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불운을 겪는다. 그 이유로는 그녀가 주로 다루는 주제가 당시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중국과 여성이라는 점, 플롯이 복잡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당대 주류인 모더니즘과 동떨어진 사실주의 경향 등을 꼽을 수 있다.그러나 1990년대 이후 글로벌 시대를 맞아 다문화주의 담론의 부상과 학제 간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펄 벅의 작품은 재조명의 대상이 되었다. 역사학자 제임스 톰슨이 펄 벅을 "13세기 마르코 폴로 이후 중국에 관해 쓴 가장 영향력 있는 서양인"으로 자리매김한 이래로, 펄 벅의 작품은 미국과 중국에서 소설뿐만 아니라 문학성이 인정되는 몇 권의 전기까지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펄 벅에 대한 재평가는 비단 그녀의 문학 작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20세기 미국과 세계의 온갖 이슈에 대해 개입하고 발언하는 대변자였다는 점도 재조명되었다. 그녀는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 2차대전 시기의 히틀러의 파시즘과 인종주의, 그리고 2차대전 후의 미국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를 강하게 비판했을 뿐 아니라 여성, 유색 인종, 장애인 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선구적으로 목소리를 높인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1938년 노벨문학상 위원회가 펄 벅을 수상자로 선정했을 때 남성 비평가들과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는 1930년대 미국 문단은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남성 작가들에게 우선적으로 노벨상이 수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중국에 대한 주제로 소설을 쓴 펄 벅은 미국적인 주제에만 매몰되어있던 당대 문단의 흐름에서 자연히 무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노벨문학상 위원회는 펄 벅에게 상을 수여하는 이유에 대해 "인종을 분리하고 있는 큰 장벽을 넘어 인류 상호 간 공감을 나누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주목할 만한 작품들과 위대하고 생동감 있는 언어 예술을 창조하려는 인간의 이상을 향한 노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구체적인 작품으로는 "중국 농민의 삶에 대한 풍부하고 충실한 서사시적인 묘사와 전기체의 걸작"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문학 장르를 거론하고 있다. 즉, 위원회는 '대지' '아들들' '분열된 일가'로 이어지는 왕룽 일가 삼대를 다룬 '대지의 집' 삼부작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일대기를 다룬 '유배'와 아버지의 일대기를 다룬 '싸우는 천사'라는 전기까지 높이 평가하여 상을 선정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지' 는 중국 안후이성의 북부 농촌 지역인 난쉬저우를 배경으로 중국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땅을 생명으로 알고, 자연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왕룽이라는 평범한 농민의 혼례일부터 노년까지의 일대기를 충실하게 다루고 있는 사실주의 소설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청 말기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이전 중국 농민들의 고난과 투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대지'에서 땅은 왕룽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된다. 조상들이 대를 이어 고된 노동을 반복하여 땅을 가꾸어왔듯이, 왕룽도 근면과 검약을 통해 땅과 재산을 계속 불려 나간다. 그는 가뭄, 홍수, 메뚜기떼, 산적, 전쟁 등 외부의 환경으로 인해 끝없이 고난을 겪으나 땅만이 그에게 생명과 희망을 부여해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땅은 그에게 신이며, 괴로울 때 위로를 받는 치유제이기도 하다. 대지주가 된 왕룽은 죽을 때도 화려한 대저택이 아닌 오랫동안 살아왔던 소박한 옛 농가에서 생을 마감함으로써 끝까지 땅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는다. '대지'는 또한 이제는 사라진 혼례식, 아이 탄생 축하 의식, 설날 풍습, 장례식, 그리고 음식, 의복, 주거, 농사용 농기구 등 의식주에 대한 전통적 중국 농민의 삶과 풍습이 자세하고 충실하게 묘사된 인류학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는 일부다처제, 전족, 여아살해, 여성 매매, 종살이 같은 여성과 관련된 부정적 풍습도 사실주의 소설의 특징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당대 현실로 묘사된다. '대지'의 공헌은 무엇보다도 20세기 이전 서구의 중국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크게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수 세기 동안 서구의 소설이나 여행기에서 묘사된 중국은 그저 멀고, 이국적인 곳이었다. 또한 중국인들은 서구가 동양을 편견으로 왜곡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서 불결하고, 정직하지 않고, 잔인하며, 불가해한 존재로서 '미개한 야만인'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중국인은 개인이 아닌 전형적인 집단으로서 취급되어왔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펄 벅은 문화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집단적인 전형으로서 '미개한 야만인'이 아닌 살아있는 생생한 복합적 인간으로서의 개인 왕룽이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그는 때로는 성실하고, 근면한 평범한 농민으로, 때로는 땅이나 재산에 대한 탐욕과 오만으로 차 있는 복합적인 인물로, 즉 진정한 중국 농민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은 중국의 종교를 서술하는 대목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지'에서는 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모습이 잠시 나오지만 중국 토속 신앙과의 마찰이나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기독교도로 개종하는 장면도 없다. 서술자는 중국의 고유한 신앙을 미신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는 기독교도가 아니라고 해서 동양인을 이교도나 야만인으로 취급하는 전형적인 서구우월주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허정애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허정애 교수는 경북대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에서 '19세기 영국소설' '미국문학개관' 및 대학원 인문카운슬링학과에서 '소통과 공감의 문학연구' '문학과 치유 세미나'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영미소설에 나타난 젠더와 인종 문제를 주로 연구의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대중인문학의 확산을 통한 지역 사회와의 소통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경북대 인문대학장, 인문학술원장을 역임하면서 교육부가 주최하는 인문도시사업(2014년~2017년)의 연구책임자로서 '기억과 재생의 인문도시, 대구'를 주제로 시민인문학, 청소년인문학, 교도소인문학을 시작하였고, 현재 경북대 인문학술원에서 개설한 유튜브 강좌 '경BOOK톡'에 '영미소설, 인종으로 읽다'라는 시리즈로 지역민들과 만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경북대 인문대학의 '인문교양총서' 시리즈 51권 '영국소설, 인종으로 읽다' 외 '20세기 미국소설의 이해I'(공저)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제인 오스틴, 노예제, 계급, 인종' '에밀리 브론테의 성취와 한계: 인종적 시각에서 다시 읽는 '워더링 하이츠'' '마크 트웨인과 젠더'외 다수가 있다.※영남일보는 경북대 인문학술원 HK+사업단과 공동기획으로 한 '다시 읽는 고전 명작' 시리즈에 이어 '노벨문학상 산책'을 연재한다. '노벨문학상 산책'은 국내 전문가들이 참여해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작 가운데 20여 개의 작품을 선정해 재조명 한다. '노벨문학상 산책'은 영남일보 지면을 통해 먼저 소개된 후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다.허정애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2022.05.13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읽는 고전명작]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모노가타리'…시대에 맞는 번역으로 고전은 다시 태어난다
'겐지모노가타리'는 헤이안(平安)시기(문헌상으로는 1008년경)에 성립된 이후 서사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 읽혀왔으며, 학문으로도 꾸준히 연구되었다. 이러한 연구 흐름과 축적된 읽기는 20세기 초반, 유럽과 미국 사회에 영어와 불어 번역본을 통해 소개되었고, 그 결과 지금도 자연스럽게 세계문학으로서 공유되고 있다. 이야기는 '언젠가', 즉 특정되지 않은 시대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미모와 매력을 갖춘 히카루 겐지(光源氏)가 다양한 여성들과 나누는 러브스토리를 중심으로, 아버지인 천황에게 깊은 사랑을 받으나 어머니의 신분이 낮아 제위에 오르지 못하면서 벌어지는 귀족사회의 권력투쟁, 그리고 겐지의 아들 가오루(薰), 그리고 손자 니오노미야(내宮)에 이르는 약 70년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체 54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100만자에 이르는 대장편으로, 등장인물만 500여명, 그리고 약 800수의 일본 고전 운문 형식인 와카(和歌)가 등장한다. 저자는 헤이안 시대 중기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이다. 생몰연대 등이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겐지모노가타리'를 비롯하여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와 '문집' 등의 작품이 남아있어 그 활동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약 100만 字에 이르는 대 장편소설11세기 작품이란 역사성 인정되나세계문학 불리기까지 번역이 한 몫첫번째 번역가인 영국의 아서 웨일리셰익스피어 언어 사용해 높은 평가일본선 현대적 감성으로 재구성도개인의 이야기로 소통하는 21세기고전 콘텐츠의 접근 가치 생각해볼만'겐지모노가타리'라는 제목에서 '모노가타리'는 '모노(物)를 가타루(語)하다'는 의미로 내러티브 의 개념을 포함한다. 때문에, 번역 과정에서 '겐지이야기'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노가타리'에 대한 넓은 의미의 해석이며, 정확하게는 헤이안시대부터 가마쿠라시대까지 창작된 일본의 산문 픽션 형식을 의미한다. 대체적으로 'OO모노가타리'라는 이름으로 창작되었다. '겐지모노가타리'에서 '모노가타리'에 대해 경합하는 장면 중 '모노가타리의 시조는 다케토리모노가타리'라는 언급을 통해 일본 문학사적으로는 '모노가타리'의 시작을 '다케토리모노가타리'로 보고 있다. 픽션 세계의 언급이 역사적 사실의 세계로 옮겨온 아이러니이다. 겐지의 연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내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물론, 방대한 양과 11세기의 작품이라는 역사성이 인정되기는 하지만 일본을 넘어 세계문학 속에 위치될만한 특수성을 가진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붙을 수 있다. 일본의 로컬적 특성이 강한 '겐지모노가타리'라는 작품이 세계문학이라고 불릴 수 있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번역이다. '겐지모노가타리'는 영국인 번역가 아서 웨일리(Arthur Waley)에 의해 1925~1933년에 걸쳐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되어 세계로 발신되었다. 이후 웨일리의 번역은 중역을 거쳐 유럽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중국어에 능통한 웨일리가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많은 생략이 이루어졌다는 비평이 번역 연구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나, 웨일리가 그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상황에 맞추어 세익스피어의 언어를 사용한 것은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지극히 로컬적인 일본의 고전이 서구사회에서 이미 높은 문학적 평가로 인해 익숙한 감성을 공유하고 있던 세익스피어의 언어로 번역되면서, '겐지모노가타리'는 자연스럽게 서구사회에서 보편적 감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웨일리의 이러한 시도는 11세기 이후 지배계층의 문학적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며 학문으로 꾸준히 연구되어 온 성과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때문에, 웨일리의 번역을 통해 세계에 알려진 것은 우연히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된 연구 결과가 우수한 번역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일본 내부에서의 현대어 번역 과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재해석 측면에서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의 '사사메유키(細雪)'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다니자키는 1910년대부터 활동한 일본의 근대 작가로서, 악마주의로까지 불리는 철저한 탐미 성향의 작가이다. 소설 그 자체의 예술성보다는 이야기의 구성을 변화시켜 재미있게 만들어 가는 것이 소설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픽션 영역에서 활동하였다. 다니자키는 2차 세계대전 중 소설가에게 주어진 전쟁 참여와 절필이라는 이항대립적인 선택지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제3의 길로써 '겐지모노가타리'에 대해 축적된 자료를 탐구하여 현대어 번역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가 파악한 작품의 정취와 상황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최근의 콘텐츠로는 2011년 개봉된 영화 '겐지모노가타리 천년의 수수께끼(源氏物語 千年の謎)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겐지모노가타리' 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전근대적 장치였던 '생령(生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생령'은 살아있는 유령이라는 의미로, 겐지를 사모하던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六條御息所)가 질투심과 사랑의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생령'이 되어, 연적들을 죽인다. 강한 질투심 때문에 살아있는 유령이 되어 사람들을 죽인다고 하는 설정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감정을 대상화했다는 특이성을 가진다. 영화적 서사는 이러한 특이성을 메타픽션 장치로 삼아 '겐지모노가타리'와 그 작가인 무라사키 시키부를 연결한다. 그 결과 일본의 전통적인 유령인 바케모노(化け物)는 로컬적인 특성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것으로 설명된다. 즉 고전의 비현실적 일상이 지금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으로 재창조된 것이다. 20세기 근대의 시작이 '개인의 발견'이었다면,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복합적이고 광범위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상실된 개인'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기술적 자산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된 21세기는 다시 개인을 이야기한다.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회의 도래, 이것이 현재이며 또한 미래이다. 온라인 서비스인 SNS를 통해 누구나 '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리고 그 형태는 문자에 한정되지 않고 있다. 음악, 영상, 이미지 등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들이 활자로 된 책을 벗어나 개인의 이야기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산시킨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전 역시 이야기 속에 숨겨진 개인을 추출하여 재해석하고, 재창조한다. 그러나 고전이 가진 이야기 구조 속에서 재해석되고 재창조된 개인은 전형성에 기반을 둔 캐릭터의 한계성을 지닌 채 지금의 문화콘텐츠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캐릭터가 '나'의 이야기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제 고전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현시대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역할과 의미에서 그 범위를 더 확장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겐지모노가타리'는 일본의 고전에 대한 콘텐츠적인 접근을 참고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 그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일본 문학을 전공하며, 경북대에서 학사와 석사, 일본 주오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사는 픽션의 텍스트 분석이며, 소설의 방법론적 담론이 표상하는 거대 서사와 개인과의 관계를 연구하였다. 최근에는 한국 근대 소설을 비교 연구 대상으로 하여 한국과 일본의 소설 성립과 개념, 소설 방법론, 미디어 텍스트의 이야기 구조 분석 등의 연구에서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일본어문학회 총무이사, 한국일어일문학회와 한국일본문화학회 학술이사로서 연구영역과 관련된 다양한 학회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경북대 인문학술원 부원장으로 지역인문학센터를 통해 대학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樂&學 차이를 묻다 - 일본 문학의 특질'(2016, 공저), '일본 문학, 그 시대를 읽다'(2017, 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기록문화가 형성한 소설담론 공간의 리얼리티', '본격 미스터리의 장르적 변용이 가져온 새로운 추리 공간의 탄생', '감정 표상의 문화론적 고찰', '귀환자가 표상하는 한·일 근대 소설의 특질', '카타스트로피와 마주하는 소설적 패러다임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2021년 9월에는 지역민의 문화·예술 역량 강화를 위해 대구문학관에서 주최한 '외국문학의 밤'에서 '하루키 월드,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라는 대중강연을 진행하였다.조헌구 교수 (경북대 일어일문학과)조헌구 교수 (경북대 일어일문학과)
2022.04.15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명작'] 일연 '삼국유사'…건국신화·민중이야기 수록…고려의 자존감 지켜준 역사서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경북 경산 출신의 승려 일연(一然)이 편찬한 것이다. 일연은 희종 2년(1206)에 태어나 충렬왕 15년(1289)에 84세로 입적하였다. 그의 성은 김씨, 이름은 견명(見明), 자는 회연(晦然)인데, 뒤에 이름을 일연으로 고쳤다. 그는 고종 14년(1227), 승과에 상상과로 합격하여 오늘날 비슬산으로 불리는 포산(苞山)에 머물렀다. 이로부터 전후 두 차례에 걸쳐 약 35년간을 포산의 절에 있었으니, 보당암, 무주암, 묘문암, 인홍사, 용천사 등이 그곳이다. 그는 78세 때인 충렬왕 9년(1283), 승려로서 최고의 명예직인 국존(國尊)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노모 봉양을 이유로 귀향하였다가, 모친이 사망하자 군위 인각사에 머물다 일생을 마쳤다.일연은 승려로서 많은 불교 관련 저술을 남겼지만, 오늘날 전하는 최고의 걸작은 단연 '삼국유사(三國遺事)'다. '삼국유사'는 신라·고구려·백제의 여러 일화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유사(遺事)라고 한 것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빠진 사실들을 적었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이 책은 5권 9편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왕력(王曆) 편이 있는데, 이는 신라·고구려·백제·가락국 등 역대 여러 왕들의 계보와 연대를 기록한 것이다. 권1·2는 기이(紀異) 편으로, 고조선 이후의 여러 나라와 신라·고구려·백제의 삼국에 관한 사실을 적었다. 고려 말 승려 출신 일연이 편찬편찬 시기·목적 명확하지 않지만몽골침략으로 피폐한 상황 감안백성들에 긍정적 영향 끼쳤을 듯손님 접대위해 아내와 동침 권유비정한 남편 안길의 민담 등 수록장애인·빈민의 생활상도 전해져우리 문화 원형 이해하는 길잡이권3은 흥법(興法)과 탑상(塔像) 두 편으로 되어 있다. 흥법 편은 불교 수용과정의 이야기이고, 탑상 편은 탑과 불상에 얽힌 이야기를 수록한 불교미술사이다. 권4는 의해(義解) 편으로, 원효, 의상 등 고승들의 전기를 수록하였다. 권5는 네 편으로 되어 있는데, 신주(神呪) 편은 밀교 수용사이고, 감통(感通) 편은 신앙상의 기적을, 피은(避隱) 편은 세상을 피해 은둔해 사는 사람들을, 그리고 효선(孝善) 편은 효도와 선행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왕력과 권1·2가 우리 민족의 역사에 관한 기록이라면, 권3·4·5는 불교와 승려와 민중에 관한 기술이라고 하겠다. '삼국유사'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많다. 왕력 편이 원래 '삼국유사'에 포함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고, 왕력 편과 기이 편과 흥법 이하 부분이 원래 각각의 책이었다는 주장이 있는 한편, '삼국유사'란 이름도 자연 뒤에 붙여졌을 것이라는 견해가 그것이다. 또한 내용 가운데는 일연이 집필하지 않고 제자 무극(無極)이 적어 끼워 넣은 부분이 2곳이나 있다. '삼국유사'가 편찬된 시기 또한 정확히 알 수 없다. 인각사 보각국사 일연의 비문에는 당시 '어록(語錄)' '게송잡저(偈頌雜著)' 등 100여 권에 이르는 저술이 있었다고 하면서도 '삼국유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삼국유사' 편찬이 승려 일연의 본연의 의무가 아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충렬왕 대인 1281년 무렵 일연이 청도 운문사에 머물 때 집필한 것으로 흔히 추정하지만, 그의 말년인 인각사 시절이었다는 주장이 있고, 젊은 시절 포산에 있을 때부터 착수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한편에서는 그의 생전에 '삼국유사'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편찬자도 일연에 한정하지 않고, 제자 무극이나 기타 인물들까지 넣어 이해한다. 최근에는 1360년 무렵 완성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자세한 것은 더욱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지만, 포산 시절부터 축적된 일연의 노력과 경험이 '삼국유사' 편찬의 자료가 되었을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승려였던 일연이 '삼국유사'를 남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연이 살던 시대는 몽골의 침략기였다. 1231년부터 6차에 걸쳐 전개된 몽골의 침략은 고려의 전국토를 유린하였다. 이에 따라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민중들의 참상이 그에게 일정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삼국유사' 첫머리 고조선 조목에서 우리 민족의 건국 이야기인 단군신화를 처음으로 수록하였다. 우리의 역사가 중국이 아니라 하늘과 연결됨을 주장함으로써 민족의 기원을 보다 자주적인 입장에서 이해하려 한 것이다. 또 불교적 입장에서 유교의 합리주의 사관을 비판하고 신이(神異)한 사실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는 괴이한 것과 신이한 것을 구별하면서 기이 편 서문에서 "삼국의 시조가 신이한 데서 나왔다고 하여 무엇이 괴이하겠는가?"라고 설파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사관을 달리한다고 하겠다.'삼국유사'에는 삼국만이 아니라 단군신화를 비롯한 삼한, 낙랑, 대방, 부여, 가야 등의 역사가 실려 있고, 황룡사 장육상, 만파식적 설화, 불국사와 석불사, 동화사의 창건, 포산의 두 성인 관기와 도성, 그리고 세달사의 승려 조신의 꿈 이야기 등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과 설화, 민담, 전설, 향가 등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세 아내를 데리고 살면서 손님 접대를 위해 동침할 것을 권한 무진주 안길(安吉)의 이야기, 아비 없이 태어나 열두 살이 되어도 말하지도 일어나지도 못한 사복(蛇福)의 일화, 태어난 지 다섯 살 만에 눈이 먼 여인 희명(希明)의 아이가 다시 눈을 뜨게 된 이야기, 남의 집에 품을 팔아 노모를 봉양하였으나 노모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어린 아이를 땅에 묻으려 한 손순(遜順)의 이야기 등 상대적 약자였던 여성, 장애인, 빈민, 서민 등 민중들의 생활상을 여과 없이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 이야기는 우리 문화의 원형을 이해하는 길잡이일 뿐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풍부한 자료가 되고 있다.요컨대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 이은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동시에 전통문화사이다. '삼국사기'가 유교적, 정치적 관점에서 지배층 위주로 서술된 연대기라고 한다면, '삼국유사'는 불교적, 민중적 관점에서 기록된 민족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이야기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 사람들이 상상력의 원천으로 '그리스·로마 신화'를 즐겨 읽듯이, '삼국유사'는 우리가 늘 가까이 두고 읽어야 할 민족의 고전 중의 고전인 것이다. 이영호 교수 (경북대 사학과)공동기획 :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이영호 교수는한국고대사를 전공하며, 경북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사는 신라사로서 정치사, 불교사, 왕경사, 그리고 금석문과 목간 등의 문자자료에 성과가 많다. 학회 활동으로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대구사학회 회장, 한국목간학회 감사 등을 지냈다. 대외활동으로는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문화재청 고도보존육성 중앙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원장, 대구시 문화재위원회 위원, 경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 신라사학회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저서로 '신라 중대의 정치와 권력구조'(2014,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문자와 고대한국 2'(2019, 공저), '시대를 앞서간 고승 원효'(2020, 공저) 등 여러 권이 있으며, 논문으로 '신라 성전사원(成典寺院)의 성립' '팔공산 '부인사(夫人寺)'의 탄생' '신라 문무왕릉비의 재검토' '문자자료로 본 신라왕경(新羅王京)' '신라 사리함기와 황룡사' '영남과 호남, 그 연원을 찾아서' 등이 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경북도에서 기획하여 완간한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전30권)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단군신화를 수록한 '삼국유사' 〈서울대도서관 소장〉
2022.03.18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읽는 고전명작] 사마천 '사기'…52만6500字에 담긴 인간·권력에 대한 생생한 증언
역사는 시간과 공간의 틈새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을 모아 놓은 보물창고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흔적은 잡동사니일 뿐이다. 뛰어난 역사가는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사의 내면을 꿰뚫는 안목과 통찰력으로 잡동사니 속에서 유의미한 자료를 취사선택하고, 다시 이를 탐구함으로써 역사적 진실과 이성적 감동으로 채워진 사고(史庫)를 구축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원전 1세기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는 중국 문명사의 서막을 알리는 기념비적 저작이자 후대 역사학의 모범이며, 오늘날까지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더하고 있는 역사의 보고라 할 만하다.사기의 원명은 '태사공서(太史公書)'로서, 지금의 명칭은 3세기 위진시대부터 붙여졌다. 태사공은 사마천이 아버지 사마담의 뒤를 이어 담당한 태사령(太史令)이라는 관명에서 비롯되었다. 태사령은 역사서 저술과는 무관한 천문·역법 및 제의를 관장하는 직책이다. 따라서 사기는 정사가 아니라 사마천 부자의 사찬 사서다. 그럼에도 이들이 사기 편찬에 목숨을 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태사가 하늘의 이법(理法)을 궁구하는 천관(天官)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지상 세계는 하늘의 운행원리에 조응해 질서정연한 정치가 구현되어야 하고, 천체의 운행원리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달력이며, 달력에 명시된 시간의 선상에 놓인 인간사 고금의 변화를 관찰·기록하는 것이 태사이자 곧 천관으로서의 직무라고 생각한 것이다.이러한 역사가로서의 소명의식은 사마담 때부터 함양되었다. 사마담은 공자의 저작으로 알려진 '춘추'의 계승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완성하지 못한 사기의 저술을 사마천에게 유업으로 남겼다. 여기서 춘추는 단순히 노나라의 연대기로서만이 아니라 '춘추필법'의 정신으로 무장된 왕도의 정치적·도덕적 규범의 기준을 제시한 일종의 경전으로, 사마천 부자는 춘추를 계승하는 사기의 저술을 통해 왕도정치의 실현을 꿈꾼 것이다. 이러한 대의의 체계적 저록을 위해 사마천은 본기·세가·표·서·열전으로 구성된 기전체를 창안하고, 모두 52만6천500자의 사기를 저술했다.사마천에게서 인간의 역사는 천체의 순환 운동 원리에 조응해 통일과 분열이 반복·순환하는 정치의 역사를 의미하고, 그 중심축은 제왕이었다. 이에 황제(黃帝) 이래 약 3천년간 존속한 나라와 그 제왕의 연대기를 '본기(本紀)'라는 편목으로 사기의 첫머리에 배치했다. 그러나 제왕만으로는 지상세계가 운영되지 못한다. 천체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28개의 별자리(二十八宿)와 함께 조화롭게 움직이듯이 지상 세계 또한 북극성격인 제왕의 조력자로서 28개의 제후(국)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28개 제후국의 연대기와 더불어 제후에 비견되는 위업을 쌓은 공자와 진섭의 세가를 추가해 모두 30편의 '세가(世家)'를 본기 뒤에 배치했다. 그리고 세가에 기술된 제후국 내부 또는 제후국 간에 전개된 사건의 선후와 상호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십이제후년표 등 10편의 '표(表)'를 배치했다. 이들 편목이 상층부의 정치구조와 그 흥망성쇠를 기록한 것이라면, 이것의 운영 원리와 실제 작동의 기제는 8편의 '서(書)'로 정리했다. 여기에는 문물제도의 변화양상과 하늘의 이법에 조응한 지상질서의 운영원리를 동시에 기록했다.이상이 광의의 정치적 현상에 대한 탐구의 결과라면, '열전(列傳)'은 정치 중심의 역사를 추동하는 실제 동력이 인간으로부터 나온다는 사마천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가장 잘 반영한 편목이다. 총 130편의 사기에서 70편이나 차지하는 열전에는 수천 명의 인물이 등장해 역사의 현장을 증언한다. 여기에는 유명 정치인이나 사상가는 물론이고, 심지어 협객·익살꾼·점쟁이, 나아가 주변 민족의 역사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는 부귀를 성취한 개인보다는 각 분야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데 기여한 개인의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추적한 결과로, 사기가 죽은 기록의 집대성이 아니라 생생한 삶의 현장을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접목시킨 인간중심의 역사서임을 웅변한다.'사기'처럼 2천여 년의 간극을 넘어 오늘날의 독자에까지 흥미와 교훈을 주는 사서도 없을 성싶다. 그 요인으로 사기가 가지는 역사관과 체제 및 서술방식의 우수성, 문학작품으로까지 칭송받는 문장력, 준엄한 비판정신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마천 개인의 통절한 삶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사마천은 무제를 위로하기 위해 흉노에게 항복한 장군 이릉을 변호하다가 최고 존엄의 역린을 건드려 사형 판결을 받고, 이를 대신해 궁형을 자청, 환관이 된 후 기원전 91년 사기를 완성한다. 이는 스무 살 사마천이 아버지의 사기 저술을 돕기 위해 전국을 답사하며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 이래 죽음도 불사한 35년 대여정의 종결이었다.이 과정에서 그가 목도한 냉혹한 현실과 이에 대응한 초인적 인내와 불굴의 의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황제의 심기를 거슬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형 판결을 내리는 폭력적 권력 앞에서의 좌절감, 50만전의 속죄금을 마련하지 못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하는 무력감, 궁형을 감내해야 하는 극단적 치욕감, 누구 하나 자신을 변호해주거나 경제적 도움을 주지 않는 부박한 세태에 대한 열패감, 더욱이 환관이 된 후 자신을 죽이려 한 황제로부터 오히려 총애를 받으며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굴욕감. 이러한 극단적 상황에서도 그는 일시적 고통을 피하려고 가벼이 선택하는 죽음의 무가치를 일갈하면서 사기의 저술이 죽음보다 무거운 임무이자 입신양명의 길임을 설파하며 저술을 이어나간 것이다. 여기서 입신양명은 자신과 조상의 명성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정의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한 개인과 집단의 명성과 그 존재가치를 드러내 후세에 전하는 일이야말로 하늘의 소명을 완수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사기를 사마천이 개인적 울분을 토로하는 '비방의 서'로 평가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사기는 저자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종횡하는 하늘의 섭리에 비춰 위대함과 어리석음이 착종하는 인간세상을 냉철하게 관조하며 역사적 진실을 대면한 미증유의 대서사인 것이다.현대 역사학의 관점에서 사기는 비과학적이거나 고졸한 측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직업적 역사가들이 양산하는 무미건조한 역사 논저의 산더미 속에서 사기에 비견되는 고전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현대 역사학의 위기가 그저 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고 하여 대중매체를 떠도는 '역사소매상'들의 세치 혀끝에서 돈벌이로 전락하는 사이비 역사서의 양산은 더욱 경계할 일이다.윤재석 교수 <경북대 사학과>공동기획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 윤재석 교수는1997년부터 현재까지 경북대 사학과에서 중국고대사의 연구와 강의에 종사하고 있다. 세부 전공은 중국고대의 사회사·법제사 및 목간학으로서, 주로 진한시대 목간자료의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북대 인문학술원장 겸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플러스(HK+)지원사업(2019년 5월~2026년 4월)의 연구책임자로 활동하면서 고대 한중일 삼국의 목간기록문화권의 형성과 전개 양상 및 여기에 반영된 고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복원으로 연구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경북대에서 학사·석사·박사과정을 졸업하였고,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고급진수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중국고중세사학회장과 경북대 한중교류연구원장 및 경북대 교수회의장 등을 역임하였다.대외적으로는 중국사회과학원 간백연구센터의 객원연구원과 하북사범대학 역사문화학원의 객원교수 겸 학술고문, 중국사회과학원과 무한대학 및 감숙성문물고고연구소에서 발행하는 '簡帛' '簡帛硏究' '簡牘學硏究'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주요 논문으로는 '韓國·中國·日本 출토 論語木簡의 비교 연구' '秦漢時期後子制和家系繼承' '東アヅア木簡記錄文化圈の硏究' 등이 있고, 저서로는 '중국가족제도사'(역서), '睡虎地秦墓竹簡譯註' '簡帛學理論與實踐'(공저), '한국목간총람'(편저), '중국목간총람'(편저), '일본목간총람'(편저) 등이 있다.사마천 '사기'
2022.02.18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명작]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 '철학'하는 삶을 살아라
2천40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철학자의 전형이라는 빛나는 명성을 가지고 오늘날까지도 계속 사랑받는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년). 그런데 그가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이었고, 그의 철학 사상이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아직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한 상황이 실상이라고 말한다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소위 '소크라테스 문제'라고 불리면서 수많은 학자가 연구하고 논쟁했던 역사적 소크라테스의 실체에 관한 문제의 학술적 해결은 어쩌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생전 스스로 어떠한 저작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어떤 학파를 스스로 창설하거나 특정한 교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소크라테스'라는 이 인물에 대한 상당량의 증언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는 전거가 바로 플라톤이 저술한 대화편들이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철학 정신을 충실히 계승하려고 노력했던 플라톤이 그의 작품 속에서 등장시킨 '소크라테스'는 비록 플라톤의 철학적·문학적으로 재해석된 창작물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하지만 역사적 소크라테스에 관한 제한된 이해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여전히 위대한 철학자의 전형으로 삼는 데에 있어서 플라톤의 업적은 가히 대체 불가하다. 특히 기원전 399년 5월 어느 봄날 아테네 법정에서 벌어졌던 소크라테스에 대한 배심원 재판과 사형판결은 아마도 우리가 확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재판에 관한 몇몇 묘사 중 가장 신뢰할 만한 것으로 인정받는 것이 바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이하 '변론'으로 약칭)이다.플라톤의 초기 작품으로 분류되는 '변론'을 소크라테스 재판에 대한 객관적 사료처럼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이 작품에서도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적·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재판 상황을 마치 소설처럼 재현한다. 그렇지만 플라톤이 이 작품을 집필한 시기가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재판받고 사형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재판과 사형의 이유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었던 상황에서 당시 재판을 직접 참관했을 플라톤이 그 재판에 관해 오로지 허구적 상상력만으로 '변론'의 내용을 창작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마치 객관적 사료처럼 여겨서는 안 되겠지만, 방금 말한 이유 등을 고려할 때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소크라테스를 통해 그의 역사성을 그나마 가장 신빙성 있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다수의 학자가 인정하고 있다. 플라톤의 '변론'은 당시 재판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유력한 자료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인물로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삶을 유추해볼 수 있는 소중한 출처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최초의 철학적 순교처럼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당시의 평가는 무척 다양했던 것 같다. 아테네의 민주정을 반대하고 소수의 엘리트주의를 옹호한 반민주인사로 여겨지는 평가와 함께 민주정 체제에서의 전통적 신관과 윤리관을 대변하고 옹호하다가 정치적 음해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보수적 설교가의 모습으로 소크라테스가 기억되기도 했다. 혹은 기존의 전통과 윤리를 신랄히 비판하는 사회 개혁적 인물로 소크라테스를 말하는 이가 있었던 반면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인이었던 유명한 희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그의 작품 '구름'에서 천하에 둘도 없을 파렴치한 사기꾼 궤변론자이자 종교적 이단자 자연철학자로 소크라테스를 묘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평가되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변론'은 그의 억울한 죽음을 해명하고 진정한 철학자로서의 명성을 복권하려는 플라톤의 의도가 강하게 개입된 작품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무죄를 주장하려는 작가의 의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시각으로 이 작품을 자유롭게 읽을 수도 있는데,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에 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즉 작가 플라톤처럼 소크라테스에 대한 고발의 부당함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려는 입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당시 아테네 시민의 입장에서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그들의 사회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평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금 우리의 입장에 오늘날 시대적 문제의식과 상황을 투영해 독자 나름의 입장에서 소크라테스를 판단해볼 수 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플라톤의 '변론'이 가진 철학적 의미와 관련해서 한 가지만 언급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란 말은 사실 그가 직접 남긴 말이라고 볼 수 없다. 델포이 신전을 통해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져오던 격언으로서 그는 이 말을 신 앞에 겸손해야 할 인간의 근본적 태도로서 이해하고 가슴에 새긴 신념이었다. 오히려 그의 철학적 태도를 잘 보여주는 말은 바로 "캐묻지 않는 삶은 사람에게 살 가치가 없다"일 것이다.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철학하는 삶을 사는 이유와 목적을 추억한다. 그는 '도시가 믿는 신을 믿지 않았고, 새로운 영적인 것을 도입했으며,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라는 이유로 고발당해 급기야 재판에 세워졌지만, 이 고발 내용에 관한 그의 직접적 반박은 '변론'에서 일부만 차지할 뿐, 대부분의 분량에서는 자신에 관한 아테네 시민들의 오래된 선입견과 편견이 공식적 고발의 배경이자 자신의 철학을 대중이 오해하게 된 원인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해명하고 불식시키려고 행한 변론이다. 그런데 목숨이 걸린 재판에서 70세 노인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한 동정을 호소하거나 선처를 바라며 변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평소 아고라에서 사람들과 만나 항상 그렇게 하듯 재판정에서도 배심원들을 상대로 '철학한다'. 여기서 '철학한다'의 의미는 그 어떤 확정된 지식을 논증하거나 논설하여 가르치는 행위가 아니라 문답의 방식을 통해 주어진 문제에 관해 합리적으로 캐물어 탐구하는 행위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조차 자신을 향한 고발 내용을 문제 삼아 자신이 왜 평생을 바쳐 그토록 '지혜를 사랑하는' 삶, 즉 '철학하는' 삶을 살았는지 배심원들과 함께 캐물어 탐구해 얻은 결론으로 자신에 대한 유무죄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와 태도가 배심원들에게 어떻게 보였는지는 유죄와 사형이라는 재판 결과로 드러났지만, 철학자로서 소크라테스가 내세운 자신의 신조인 "캐묻지 않는 삶은 사람에게 살 가치가 없는 것"이란 믿음만큼은 추호의 흔들림 없이 굳게 지켜내는 모습을 플라톤은 그의 '변론'에서 그려내고 있다. 이재현 교수 <경북대 철학과>공동기획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이재현 교수는고대 그리스철학을 전공했고, 현재 경북대 철학과에 재직 중이다. 박사논문에서 '아포리아(=길 없음)'의 부정적 상황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전반에서 어떻게 철학적 개념으로 수용되고 사용되는지를 철학 방법론의 관점에서 추적해 연구했다. 이러한 학문적 관심은 현재까지도 유지·발전되면서 고대 그리스철학 전반에서 가지는 아포리아의 철학적 의미와 기능을 변증술과의 관련성 속에서 계속 연구하고 있으며, 이것과 연관해서 소크라테스 대화술의 고전적 전형과 이것의 현대적 해석 및 실천 등에 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철학실천'과 연계되면서 현재 경북대 철학과 4단계 BK21사업 '갈등 해결 철학 전문인력 양성 교육연구팀' 참여교수, 경북대 일반대학원 인문카운슬링학과 겸무교수, 그리고 인문학술원 산하 인문카운슬링센터 부센터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 인문학 대중화 사업에도 관심이 있어서 2014년 9월에 창립한 대구경북인문학협동조합에서도 활동하고 있다.이재현 교수 (경북대 철학과)
2022.01.21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명작]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프랑스판 '로빈슨 크루소' 영국판 소설과 뭐가 다를까
"스페란자는 이제 기름진 땅으로 가꾸어야 할 황무지가 아니다. 방드르디는 이제 내가 교육시켜야 할 야만인이 아니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의 후반부에 주인공 로빈슨이 항해일지 속에 써놓은 이 문장은 작가인 미셸 투르니에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이 소설의 결론을 요약하는 말이기도 하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1719년에 발표된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미셸 투르니에가 20세기의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쓰기를 하여 1967년에 출간한 작품이다.미지의 섬 표류·정착 줄거리 같지만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원주민들 문화 이해하는 자세 달라야생의 자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정복의 대상 아닌 존중의 대상 강조18세기 서구중심주의 제대로 꼬집어영국 작가와 프랑스 작가, 18세기 초와 20세기 중반의 제작 연도, 소설 제목에 언급되는 인물로서 로빈슨과 방드르디 등과 같은 표면적인 차이가 금방 눈에 띈다. 내용을 비교하자면, '로빈슨 크루소'는 팽창주의적 식민주의를 표방하던 18세기 서구문명을 대표하는 소설이고,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이러한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야생의 자연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입장을 표명하는 소설이다. '로빈슨 크루소'와 마찬가지로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도 주인공 로빈슨은 항해 중에 풍랑을 맞아 미지의 섬으로 표류한다. '스페란자'라고 이름을 붙인 이 섬에서 로빈슨은 몇 번 시도한 탈출을 포기하고 경작지를 개척하여 농사를 짓고 야생 염소를 길들이며 살아간다. 난파된 배에서 꺼내온 문명의 잔해들을 사용하여 섬을 통치하는 군주처럼 지낸다. 타인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할 도덕적 타락을 경계하여 성경을 매일 읽는 것도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다를 바가 없다. 여기까지는 "총을 쳐들고, 염소 가죽을 걸친 채, 털모자를 덮어쓰고 삼천년 서구문명으로 가득 찬 머리를 쳐들고 서 있는 백인"으로서 로빈슨이 있을 뿐이다. '로빈슨 크루소'에서 구출된 원주민의 이름이 '프라이데이'라면,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 등장하는 혼혈 원주민의 이름은 '프라이데이'의 프랑스어인 '방드르디'로 정해진다. 금요일에 섬에 와서 구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라이데이든 방드르디든 그의 주인은 로빈슨이다. 즉 문명인과 원주민의 관계는 어쨌든 주인과 노예다. 미셸 투르니에는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비판하기 위해 기본 설정은 거의 동일하게 시작한다. 야생의 섬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자이고 노예의 주인인 백인으로서 로빈슨은 '스스로의 모습을 본뜬 질서를 강요하는' 서구의 제국주의를 그대로 섬에 옮겨놓는다. 그러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줄거리에서나 소설적 장치에서나 상상력에서나 '로빈슨 크루소'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놓는다. 마치 소설 속에서 방드르디가 작은 나무들을 뿌리가 하늘을 향하게 '거꾸로' 심어 놓았지만 그 엉뚱한 생각이 의외로 좋은 결실을 가져왔듯이. 우선 사건이 진행되면서 로빈슨은 스페란자 섬과 방드르디를 지배하겠다는 생각에서 점차 벗어나 오히려 이 둘에게 매혹된다. 통치된 섬이 아닌 '또 다른 섬'으로서 스페란자를 마치 여인처럼 사랑하기에 이르고, 천박하고 미개한 노예가 아니라 '또 다른 방드르디'의 진가를 인정하고 찬미하기에 이른다. 제국주의적 통치자에서 우주적 원소들의 세례를 받은 '태양의 기사'로 변모하기까지 로빈슨은 커다란 파국을 겪는다. 가장 참담한 손실은 난파선에서 가져온 온갖 문명의 산물들과 식민지화된 섬에서 생산한 물산들을 축적해 두었던 동굴이 방드르디의 부주의에 의해 폭파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날려버린 로빈슨은 이제 방드르디의 방식을 좇아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이 원주민의 행동 속에서 '어떤 감춰진 통일성과 암암리의 원칙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셸 투르니에가 이 소설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상 프랑스의 유명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강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결과다. 1924년에 태어난 그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여러 차례 올라간 적이 있는 소설가이지만 원래는 철학교수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대학교수 자격시험에 실패한 후에 번역과 방송 및 출판 일에 몰두하다가, 그 사이에 파리의 인류박물관 강의에서 레비-스트로스를 알게 되었다. 그의 '신화적 사고'와 구조주의에 입각한 인류학에 영향을 받은 투르니에는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가 가진 문제점을 한눈에 파악하였고, 이 식민주의적 입장의 영국소설을 다시쓰기로 수정하고자 결심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과거의 정신에서 벗어나는 로빈슨과 중요한 인물로서 제 역할을 하는 방드르디가 등장하는 소설이 탄생하게 된다. 미셸 투르니에는 자신의 글쓰기에 '수공업적'이라는 표현을 때때로 덧붙인다. 이 표현은 레비-스트로스가 자신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사용하는 '손재주꾼의 작업'이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주변에 널려 있는 사물들을 모아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원주민의 손재주를 '수공업적'이라고 달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방드르디가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마치 놀이처럼 주변의 것들을 갖고 이것저것을 만들어내는 그 손재주! 그의 가장 걸작은 숫염소와 대결하여 이긴 후에 그 염소 가죽을 무두질하여 만들어낸 '노래하는 연'이다. 일상도구나 상징물에 새겨진 원시예술을 설명하기에 매우 적당한 이런 개념은 신화적 사고를 '일종의 지적인 손재주'라고 정의할 수 있게도 한다. 미셸 투르니에도 자신의 글쓰기를 신화적 사고의 산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결론적으로 야생의 자연을 미개한 땅으로 간주하여 식민지화하던 서구문명의 표상이었던 로빈슨이 야생의 자연과 원주민을 만나 오히려 자신 속에 억압되어 있던 '자연'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다. 이런 변모를 위해 작가는 서구문명의 합리주의와 기독교 정신 아래 억눌려 있던 신화적 상상력을 활용하여 소설을 구성한다. 소설의 시작을 여는 타로 점은 마치 책의 목차처럼 로빈슨의 운명을 예견하고, 주인공의 변화를 물, 불, 대지, 공기와 같은 4 원소론에 따라 입문의식의 과정을 거치듯이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 그 대표적인 방식이다. 문화와 인종의 차이를 차별로 대응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타자의 차이를 '관조적인 주의력'으로 경탄하는 일이다. 이런 매혹의 집중력은 개인의 자기완성이나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 수용을 이끄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김성택 교수 (경북대 불어불문학과)공동기획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김성택 경북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2021.12.24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명작]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묵직한 질문
고전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은 세월이 지나도 쉼 없이 독자에게 문제를 던진다. 고전은 지금도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도 그렇다. 글의 형식이 좀 오래되었거나 분량이 많아서 지금의 독자들이 직접 읽기가 힘들다 해도 이 작품의 내용은 대부분 안다. '레미제라블'이 빵 하나를 훔쳐 그 때문에 오랜 수형생활을 한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은 다 안다. 주인공 이름이 장 발장이라는 것도 안다. 오래 전부터 짧게 각색한 작품으로 읽거나 만화로 보거나 감독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영화로 관람했거나 가슴을 울리는 노래로 엮인 뮤지컬로 즐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레미제라블'을 감상하고 생각하며 감동을 받아왔다. '좁은 문'으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앙드레 지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가 누구냐?"라는 질문에 "아쉽지만 빅토르 위고라고 해야겠군요"라고 답했다. 흔히 프랑스의 소설은 세련된 문체로 작중인물의 심리상태를 완곡하게 묘사하는 것에 정통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빅토르 위고의 작품들은 웅변적인 글쓰기와 거침없는 상상력을 구사한다. 앙드레 지드는 프랑스 소설의 섬세함을 보여주지 못하는 빅토르 위고에게 약간의 아쉬움이 남은 것 같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글의 내용에 있어서나 글의 형식에 있어서나 '낮은 곳에 임하는' 빅토르 위고의 글쓰기가 훨씬 마음에 다가왔던 모양이다. 특히 '레미제라블'의 저자로서 그는 "이 지상에 무지와 가난이 있는 한 이 책이 유용할 것"이라고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이 문학작품이 고전으로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다. 프랑스의 19세기는 가장 변화무쌍하고 또 그만큼 도전적이었던 세기였다. 이런 시대를 관통하며 역사의 파고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았던 빅토르 위고는 당연하게도 똑 바르게 그어진 선이 아니라 변곡점을 지닌 생애를 보냈다. 시인, 희곡작가, 소설가이자 상·하원의원이기도 했던 그는 영광의 순간도 누렸지만 망명을 해야만 했던 좌절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정치적으로는 왕당파에서 진보적 공화주의자로 노선을 변경하였고, 문학적으로는 낭만주의 작가에서 사회의 낮은 곳을 바라보는 휴머니즘 작가로 변모하였다. 점차 개인의 구원에 대한 관심에서 사회의 구원에 대한 관심으로 시야를 넓혀간 작가가 되었다. 1845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했던 '레미제라블'은 1851년부터 무려 20년간 이어진 망명시기 동안에 완성시킬 수 있었는데, 15년 이상의 제작기간은 이 작품이 수많은 경험과 사유, 그리고 적지 않은 자료의 용광로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작가가 알게 된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선량한 신부에 관한 소문만이 아니라 도시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보고서까지 소설의 구체적인 재료가 되었고, 작가 자신이 직접 겪었던 7월 혁명과 2월 혁명, 그 사이에 있었던 무수히 많은 바리케이드 항쟁들은 소설의 골격을 이루었다. 그리고 "때때로 하층 사회의 위대함을 지켜보지 않은 사상가는 없다"는 작가의 생각은 소설 전체에 생명을 주는 혈관이 되었다. '레미제라블'의 대단원을 이루는 바리케이드 항쟁은 1832년 6월5일에 시작하여 단 하루 만에 끝났다. 비록 당대에는 작은 사건에 불과하지만, 1830년 7월 혁명 이후에 루이 필립의 입헌군주정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시민들이 그 당시 야당 지도자인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을 계기로 모여 민주공화정을 요구하며 일으킨 항거이며, 이후 2월 혁명까지 무수한 시민들의 저항을 촉발시켰던 사건 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은 소설가의 상상력이 개입되기가 용이하기도 했기에 이 사건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들의 입을 빌려서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을 다시 조명하고자 한 것이다. 시위대를 주도한 'ABC의 벗들'이란 비밀결사조직은 그 당시에 있었던 수많은 정치사회운동조직의 하나로 등장하며, 그 지도자인 앙졸라는 자유와 평등이란 프랑스대혁명의 원칙을 다시 살리려는 당대의 젊은 사상가들을 대변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그가 역설한 자유와 평등에 대한 원론적 정의는 귀에 남는다. 자유가 "나에 대한 나의 주권"이라면, 공동의 권리를 형성하기 위해 각각의 주권이 약간씩 양보될 경우에 "개인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그 양보의 동일성"을 평등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래서 요즘처럼 공정사회가 중요한 화두가 된 시대에 '레미제라블'은 더욱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레미제라블'은 미리엘 신부가 주장하는 평등,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평등, 장 발장이 실천하는 평등을 다 생각해볼 수 있는 평등에 관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동등한 기회의 권리, 동등한 정치행위의 권리, 동등한 양심의 권리, 동등한 인격의 권리 등은 평등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이상임을 알려주는 세부항목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데모스'의 해방을 실천하는 평등의 과정이라고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정의하고 있다. '데모스'란 민중 혹은 '제 몫을 가지지 못한 민중'을 의미하며, 이들이 자신의 몫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데모스의 정치'다. 바리케이드 항쟁도 이러한 정치의 하나지만 장 발장의 운명도 '데모스의 정치'가 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소설의 구성이 빅토르 위고의 진보적 휴머니즘을 반영하고 있기에 더욱 더 그러하다. "출발점은 물질이고 도착점은 영혼이다." 소설 속의 이 말은 "출발점은 물질적 불평등이고 도착점은 정신적 평등이다"로 다시 읽을 수도 있다. '레미제라블'에서 장 발장과 자베르의 대립은 쫓고 쫓기는 필름 누아르 식의 긴장을 독자에게 주는 소설적 구도이기도 하지만, 장 발장이 '데모스'의 전형적 인물로 읽힐 수 있게 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사회를 유기체로 보는 계급사회인 '아르케'는 정치가 아니라 치안을 공고하게 한다. 시민항쟁이나 범죄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질병이므로 철저하게 감시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자베르 형사를 가장 잘 요약하는 것이 바로 '감시와 경계'라고 작중화자가 말했을 때 우리는 작가의 혜안에 감탄한다. 혹은 자크 랑시에르도 역시 '레미제라블'의 열렬한 독자이므로 이 말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삼았을지 모른다. 한번 흙수저면 영원히 흙수저야 하는 사회체계를 철저하게 수호했던 자베르 형사는 한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범죄자이기는커녕 성인에 가까웠던 장 발장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의 세계가 붕괴되는 것을 느꼈다. 그것 자체가 이미 자베르 형사에겐 몰락이자 죽음이다. 정치와 치안의 대립처럼 '레미제라블'은 오늘날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민주사회가 공론의 장으로 올려야 할 주제들을 여전히 독자들에게 던져줄 것이다. 김성택 교수 (경북대 불어불문학과)<공동기획: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김성택 교수는프랑스 문학과 상상력에 관심을 두고 전공을 선택해 빅토르 위고의 시와 르네 샤르의 시를 연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경북대 불어불문학과에서 프랑스 시, 비평, 상상력과 관련된 강의를 주로 맡고 있으며, 교양과목으로는 '신화와 상상력'을 가르치고 있다.초현실주의의 세례를 받은 르네 샤르와 폴 엘뤼아르에 관한 초기 논문이 있고, 공동연구에도 관심을 갖고 '타자의 눈에 비친 한국'이란 주제로 프랑스 문헌 속에서 한국과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하였다. 또한 프랑스와 러시아의 문화 비교를 위한 '문화 토포스'에 관한 공동연구의 책임자가 되기도 했다. 이런 공동연구의 결과로 몇 권의 책과 논문들이 생산되었고, 그 후 폴 발레리나 스테판 말라르메와 같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에 관한 최근 논문도 있다.학내에서는 인문과학연구소장, 인문학술원장, 인문대학장,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장, 학외에서는 한국프랑스학회장의 임무를 맡았다. 인문학 확산을 위해 외부 강연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공부하고 생각했던 것을 시민과 현장에서 공유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과 같은 여러 문학작품들이 여전히 현대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들을 제공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인문학술원의 유튜브 강좌 '경BOOK톡'에 '레미제라블' 강의 시리즈가 있다.김성택 교수 (경북대 불어불문학과)
2021.11.26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 명작]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각자 다른 '행복' 꿈꾸지만 현실에 굴복…진정한 삶의 가치 되물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무대에 올려지는 희곡을 남긴 극작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그는 우리에게 친숙한 4대 비극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를 비롯해 모두 36편의 희곡을 남긴 인물이다. 반면에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7편의 장막극을 남겼지만, 세계 연극계가 주목하는 장막극은 '갈매기' '바냐 외삼촌' '세 자매' '벚나무 동산' 등 4편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연 빈도에서 체호프는 셰익스피어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세자매가 가려고 하는 '모스크바'…작품 속 희망·구원의 상징속물들로 가득한 현실 벗어나지 못한채 서서히 질식되고 말아19세기 최후의 러시아 귀족여성의 삶과 비애 현실적으로 그려암울한 내용 속에도 희망 남겨두며 독자·관객에 큰 의미 전달1585년부터 1625년까지 지속된 엘리자베스 시대를 대표하는 소네트 시인이자 극작가 셰익스피어에게 밀리지 않는 유일한 극작가 체호프. 유럽에서 가장 낙후했던 러시아의 19세기 끄트머리를 장식한 소설가이자 극작가 체호프. 복잡다단한 심리의 햄릿, 질투의 화신이 되어버린 오셀로, 믿음의 허망한 나락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리어왕, 바닥 모를 권력을 추구했던 맥베스 같은 인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인생의 비의(秘義)를 예리하게 포착한 체호프. 28세 올가, 21세 마샤, 20세 이리나. 이들이 '세 자매'에서 19세기 최후의 러시아 귀족 여성들의 총합을 그려낸다. 여단장이자 장군인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지 1년 세월이 흐른 5월5일 봄날의 환희가 가득한 날, 그들은 모스크바로 가려고 채비한다. 11년 전에 아버지의 근무지 이동에 따라 고향 모스크바를 떠나온 세 자매. 그들은 한시바삐 모스크바로 돌아가 예전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삶을 되찾고 싶어 한다. 과연 그들의 꿈은 이뤄질 것인가?!인구 10만명이 넘는 대처(大處)임에도 정거장까지 20㎞나 떨어져 있는 그들의 도시. 마샤의 놀라운 피아노 연주를 이해하는 이가 한 사람도 없는 비문화의 도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읽고 쓰는 세 자매가 자신들을 육손이라고 여겨야 하는 무지몽매와 야만이 횡행(橫行)하는 도시. 모범이 될 만한 단 한 사람도 태어나지 않은 곳. 그저 먹고 마시고 잠자고 아이만 줄줄이 낳아 기르는 속물들의 거대 집합소. 거기서 세 자매는 서서히 하지만 확실히 질식된다.그들이 가고자 하는 모스크바는 구원과 이상의 유일한 실현 장소이자 의지처다. '세 자매'는 '짧게 써진 장편소설'이라는 별칭(別稱)을 가질 정도로 오랜 시간 유장하게 진행된다. 4년 반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체호프는 어떻게 그들 하나하나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피폐해지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만일 그들이 절망의 나락에서 마침내 모스크바로 갈 수만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의 출구이자 구원이 될 수 있을 터. 과연 그 일이 가능하겠는가?!푸른 교사 제복 차림의 단아한 맏언니 올가의 꿈은 시집가는 것이다. 4년의 무의미한 김나지움 교사 생활로 폭삭 늙었다고 생각하는 올가. 여학교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결혼한 매력적인 둘째 마샤. 그녀는 인생의 종언을 검은색 상복으로 여실하게 드러낸다. 막내 이리나는 '시(詩)가 있는 노동'을 꿈꾸며 모스크바에서 기막힌 사랑을 꿈꾸는 맑고 하얀 미인이다. 이들의 오빠 안드레이는 미래의 대학교수로 그들의 희망과 열망의 구현자가 되어야 마땅한 인물이다.오랜 세월 세 자매가 공들인 안드레이는 19세기 유럽의 비천한 부르주아의 러시아판 나타샤에게 확고하게 몰락한다. 초록색 허리띠에 장미색 원피스 차림으로 생일잔치에 나타나 세 자매를 경악시키는 천박한 나타샤. 기실 세 자매의 활동공간은 나타샤로 인해 조금씩 좁혀져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완벽하게 밀려난다. 그들의 자리를 대신하는 나타샤의 정부(情夫) 프로토포포프. 그자 밑에서 무보수로 일하는 안드레이. 아, 세상에 이런 일이?!하지만 마샤와 이리나에게 희망이 생겨난다. '세 자매'의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포병 중대장 베르쉬닌이 마샤와 정신적으로 결합하고, 순정한 인간 투젠바흐가 이리나의 마음을 움직인다. 객석에는 아연 활기가 생겨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언어가 끊어진 '언어도단'의 자리를 대신하여 소리로 서로의 마음을 읽고 교감하던 마샤와 베르쉬닌은 기약 없는 작별과 만나고, 투젠바흐는 한갓 말다툼 때문에 생겨난 결투로 영원한 불귀의 객이 되어 지상에서 사라진다.가눌 길 없는 슬픔에 무너져내리는 마샤를 보며 하염없는 행복감에 젖어 드는 속물 남편 쿨르이긴은 '생활의 방편'에 능통한 얼간이다. 귀머거리 하인 페라폰트와 술주정뱅이 군의관 체부트이킨에게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안드레이 역시 아내 나타샤를 도둑맞지만, 그는 아내를 떠나지 못한다. '세 자매'에서 안드레이가 제기하는 '난청(難聽)'의 주제는 당대 인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타자의 우울하고 구슬픈 내면 풍경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누군가가 우리 시대에 아직 존재하고 있는가?!이런 점에서 베르쉬닌이 꿈꾸는 200년 혹은 300년 뒤에 올 사람들은 정말로 아름답고 의미로 충만한 삶을 맞이할 것인지, 그것 또한 자못 궁금하다. 미래에 찾아올 사람들의 화사한 장미색 미래를 위해 오늘의 우리는 행복도 꿈도 미래기획도 자발적으로 생매장한 채 오로지 일하고 또 일해야 한다는 베르쉬닌의 말에 우리는 정녕 설득되어야 하는가?! 왜 우리는 당대 우리 시대의 희열과 충만과 힘과 만족과 행복을 소유하면 안 된단 말인가?! 실제로 '세 자매' 가운데 누구도 그들의 간직한 단 하나의 진정한 꿈인 모스크바로 끝끝내 가지 못한다.여기서 남는 문제는 하나다. 누가 그들을 모스크바에 가지 못하도록 했는가?! 그들의 열망과 유일한 꿈은 어째서 시간과 더불어 부러지고 꺾였는가?! 4년 반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아리따운 주인공들은 조금씩 물러서고, 조금씩 무너지며, 조금씩 포기하다가 마침내는 자멸의 길에 들어선다. 그것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속물적인 사회적 환경과 그들 자신에게 고유한 무기력에서 발원한다. 그들은 시간과 더불어 스스로 무너지고 파괴된다. 하되 그 방식과 양상이 너무도 아름답고 처연하여 우리의 폐부에 깊고 너른 상처를 남긴다.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세 자매'를 보고 또 보고 다시 보았던 극작가 레오니드 안드레예프는 일주일 내내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난 연후에 그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노라고 고백한다. 그래서일까. 훗날 체호프는 자신의 극작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낸 바 있다. 어쩌면 그의 말은 21세기 오늘의 우리를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나는 사람들을 울리려고 희곡을 쓰지 않았다. 나는 다만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말하고자 했다. 당신들의 삶을 돌아보라. 당신들이 얼마나 따분하게 잘못 살고 있는지 돌아보라. 만일 그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들은 더 나은 삶을 건설하게 될 것이다." 김규종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공동기획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김규종 교수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2021.10.29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명작]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혁명의 환상 거부하고 평화 외친 사나이
노벨문학상에 선정됐지만 조국추방 위기놓여 수상 포기한 비운의 작품주인공 '유리 지바고' 통해 당대 지식인들 고뇌 담고 폐쇄적 사회 비판20세기 초 러시아 격변기 속 등장인물 솔직담백한 내면토로 독자 위로절대 권력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한 지 3년 후인 1956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Boris Pasternak)는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Доктор Живаго)를 탈고한다. 니키타 흐루쇼프가 주창한 '스탈린 격하 운동'과 '해빙기'의 특수성을 고려한 시인은 소설출판을 낙관한다. 그러나 '닥터 지바고'는 사회주의 10월 혁명과 인민, 소련의 사회건설을 중상했다는 이유로 출판 금지처분을 받는다. 한국전쟁과 매카시즘으로 동서냉전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가운데 '닥터 지바고'는 1957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다. 그 이듬해에 소설은 18개 언어로 출간되기에 이른다. 스웨덴 한림원은 1958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닥터 지바고'를 선정한다. 이로써 파스테르나크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하나는 노벨상 수상과 귀국 금지, 다른 하나는 수상 거부와 국내 잔류였다. 소련의 시인과 작가들을 총괄하는 '작가동맹'은 노벨상 수상과 무관하게 파스테르나크를 제명한다. 파스테르나크는 노벨상 수상 거부 의사를 밝히고 소련에 체류한다. 1960년 그는 파란만장한 70년 생애를 마감한다. 그리고 5년 뒤인 1965년 영국 출신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이 '닥터 지바고'를 연출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유리 지바고와 라라 그리고 토냐의 삼각관계 공식은 할리우드의 오마 샤리프와 줄리 크리스티 그리고 제랄딘 채플린의 관계에서 발원한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인물상과 시대, 혁명과 역사는 영화에서 가혹하게 왜곡-변형-축소되어 파스테르나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시인이 들여다보는 대목은 결혼한 남녀 유리와 라라의 금지된 사랑과 육체의 그리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닥터 지바고'에는 20세기가 막 시작한 1901년 볼가강에서 시작한 서사(敍事)가 1953년 스탈린 사후의 모스크바에 이르도록 유장하고 대규모로 진행된다. 1905년 제1차 러시아혁명과 러일전쟁,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과 1917년 사회주의 10월 혁명, 거기서 촉발된 적백내전과 7년의 신경제정책 시기, 그리고 지바고가 최후를 맞이하는 1929년이 소설에서 빼곡하게 묘사된다. 에필로그에 이르러 독자는 2차 세계대전과 스탈린의 죽음에 이르는 20여 년 세월의 경과를 확인한다. 따라서 50년이 넘는 장구한 시간과 실명으로 등장하는 60여 인물들의 초상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풍요롭게 인도한다. 여기 더하여 작가는 우리에게 인간과 역사에 관한 다채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김나지움에서 고전과 성서, 전설과 시, 역사와 자연과학을 공부한 유리 지바고는 의대에 진학하여 일반 내과와 안과를 전공한다. 지바고에 고유한 속성 가운데 하나인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조화로운 결합이 소설을 풍성하게 한다. 그는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엄정한 과학자이자 동시에 예수의 세계사적인 의미와 인간을 둘러싼 다채로운 시와 고전을 섭렵한 전인적인 지식인이자 교양인이다.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국민의회 의원 G가 일갈했던 것처럼 "프랑스 대혁명은 예수 탄생 이래 최대의 사건"이라는 의식을 가진 인간이 지바고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지바고는 10월 혁명과 소비에트 정권 수립에 환호한다. "얼마나 멋진 수술인가! 해묵은 고약한 종기를 단번에 도려내다니! 오래도록 떠받들었던 부정을 군말 없이 처형했군. 두려움 없이 이렇게 끝장을 낼 때는 우리 민족의 진면목(眞面目)을 볼 수 있어. 푸시킨의 솔직담백한 맛과 사실(事實)에 대한 톨스토이의 확고한 신념에서 내려오는 무엇인가가 있어." 그러나 혁명을 둘러싸고 피비린내 나는 적백내전이 발생하자 지바고의 태도는 급변한다.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폭력을 써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지바고는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며, 사람을 선으로 인도하려면 선으로 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폐쇄성과 사실 왜곡, 진리를 향한 무관심 때문에 10월 혁명에 등을 돌리고 아주 냉담해진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소박한 바람마저 외면하는 소련의 우울한 현실을 비판한다. "나는 농부의 노동과 의료사업을 하면서 지내고 싶고, 무엇인가 후세에 남길 수 있는 근본적인 것을 구상하고, 과학논문이나 예술작품을 쓰고 싶다. 치료나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들은 가난이나 방황, 불안이나 변화가 아니라, '미래의 새벽'이니 '새로운 세계의 건설'이니 '인류의 등불'이니 따위의 구호가 만연한 우리 시대의 정신이다." 라라는 지바고와 똑같은 생각을 소유한 인물이다. "혁명 이후 러시아에 허위가 찾아왔다. 모든 악의 근원은 개인 의견의 가치를 불신하는 데 있다. 자신의 도덕성에 따라 행동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모든 사람이 목소리를 맞추어 살아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외부에서 강요된 관념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이 대목은 1949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시킨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구속, 무지는 힘"이라는 표어 아래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 그리고 경찰 헬기가 감시하는 전체주의 통제사회. 2%의 핵심당원이 13%의 일반당원과 85%의 프롤(레타리아) 위에 군림하는 악의 제국 오세아니아. 어쩌면 파스테르나크는 반유토피아 소설의 효시인 예브게니 자먀틴의 '우리'(1924)를 통독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바고와 라라는 그런 암울한 전체주의와 획일주의 안에서 서로 숨 쉬고 위안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열망하지 않았을까!'닥터 지바고'에서 악질적인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가 악랄하게 편집해낸 스트렐리니코프는 라라가 코마로프스키를 따라 극동으로 떠나간 다음 지바고를 찾아와 밤새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이튿날 권총 자살한다. 자신보다 훨씬 윗길에 있던 구원의 여인 라라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실현하지 못한 비운의 인물. 6년에 걸친 이별과 가혹한 자제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절대 순수의 영혼을 가진 사내 스트렐리니코프. 파리로 이주해야 했던 토냐가 남긴 장문의 편지 역시 우리의 가슴을 절절하게 울린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당신이 그걸 알아주신다면! 나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당신의 남다른 점을 모두 사랑하고 있어요.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소중합니다. 나는 당신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아요. 당신 좋을 대로 살아가세요. 당신만 좋다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운명적으로 엇갈리고 만나고 헤어지는 인간군상과 그들을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데려가는 혁명과 전쟁의 대격변을 그려냄으로써 파스테르나크는 20세기 최대의 역사적 사건을 오늘에 재현한다. 빛나던 시대의 청정한 별처럼 맑고 투명했던 인간들의 솔직담백한 내면토로가 혹은 격정적으로 혹은 유장하게 전개되는 위대한 서사시 '닥터 지바고'가 우리 곁에 있다.김규종 교수(경북대 노어노문학과)<공동기획: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김규종 교수는고려대 문학박사(러시아 희곡)로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대경민교협 집행위원장, 경북대 전교교수회 부의장, 민교협 공동의장 겸 대경민교협 의장, 경북대 인문대학장, 복현 콜로키움 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민예총 대구지부 영화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대구 문화방송 '시인의 저녁' 주관자 겸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다.저서로 '유라시아 횡단 인문학', '노자의 눈에 비친 공자' '기생충이 없었다면 섹스도 없었다?!' '대학생으로 살아남기'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1~8권)' '극작가 체호프의 희곡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소련 초기 보드빌 연구' '파안재에서' '비가 오는데 개미는 왜 우산을 안 쓸까?!' 등이 있으며, 공저로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찾아서' '우리 시대의 레미제라블 읽기'가 있다. 인문학의 확대와 보급, 민주사회 건설과 부의 공평한 분배,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 나와 우주의 합일과 자유로운 공존을 위한 내적인 성찰과 실천 등이 주된 관심영역이다.1965년작 영화 '닥터 지바고' 포스터 리터치. 〈영남일보DB〉김규종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2021.10.01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 명작] - 아서 코난 도일의 '네 사람의 서명' - 셜록 홈즈는 명탐정?
만능 해결사인 셜록 홈즈는 영국의 천재적인 명탐정으로 세계 독자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아서 코난 도일의 모든 작품에 묘사된 셜록 홈즈의 모습을 종합해보면 그는 '180cm가 넘는 큰 키'에 '날카로운 눈과 빈 틈이 없고 단호한 인상을 주는 매부리코'와 '각이 지고 돌출한 턱'을 갖고 있다. 즉, 강인한 신체, 그리고 이성과 결단력이 부각된다. 그는 또한 목검술, 권투, 펜싱 등 뛰어난 스포츠 실력뿐만 아니라 과학, 법률, 농업, 의학 등 최신 과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슈퍼맨 명탐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인종과 제국주의의 측면에서 살펴볼 때도 여전히 그는 명탐정일까? 코난 도일이 1890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인 '네 사람의 서명'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180㎝ 넘는 큰 키와 강인한 신체 강조모든 학문·스포츠에 능통한 캐릭터프랑스 탐정 뒤팽 등 과소평가 하며영국인 우월성 강조하는 모습도 보여식민지 인도인은 흉측한 악마로 묘사지배계급 범죄엔 무관심 이중적 모습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영국 제국주의가 절정에 이른 19세기 말엽이다. 이 시기에 식민지의 타인종들이 대거 영국으로 유입되면서 영국인들은 순수한 영국성이 오염되고 위협받는다는 불안에 직면한다. 또한 19세기 중반인 1857~58년에 발생한 인도 항쟁은 영국인들이 충격과 공포로 '세포이 반란'이라고 불렀듯이, 오히려 역으로 영국이 인도의 식민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 즉, 역식민화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엄청난 공포로 작용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부분의 문학 작품에서 인도 항쟁은 영국인의 상상력을 자극함으로써 이 항쟁에 참여하는 인도인은 비이성적인 악마이며 반역자로 묘사된다. '네 사람의 서명'에서도 세포이 항쟁을 일으킨 인도인은 영국인에 대한 살인과 방화와 반인륜적인 행위를 자행하는 '20만명의 시커먼 악마들'로 서술된다. 셜록 홈즈는 19세기 중반 이후 이러한 영국인들의 불안과 공포를 달래기 위해 코난 도일에 의해 발명된 탐정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당대 영국 제국주의가 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남성으로 탄생시킨다. 셜록 홈즈는 강인한 신체와 결단력, 그리고 범죄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스포츠 실력 등으로 우월한 영국인의 몸과 정신을 갖추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코난 도일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홈즈는 범죄 현장에 늘 과학과 합리성의 상징인 줄자와 돋보기를 들고 관찰하고 추리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것도 영국 범죄과학의 우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작가의 장치다. 영국인 탐정 홈즈는 프랑스 탐정인 뒤팽이나 프랑수아 르 빌라르 등을 관찰력이나 추리력, 지식 등에서 자신보다 한 수 낮은 인물로 과소평가함으로써 영국인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반면에 홈즈의 범죄학의 대상이 되는 식민지 출신의 타인종은 미개하고 열등한 야만인으로 범죄와 질병의 원천으로 그려진다. '네 사람의 서명'은 19세기 중반 인도항쟁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발생한 인도의 보물 탈취 사건에 연루된 영국인이 살해되었을 때 그 범인을 영국인이 아닌 식민지인으로 규정하는 홈즈의 추리와 범죄자 처벌을 다룬다. 이 소설에서 홈즈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의뢰인은 '크고 푸른 눈과 금발 머리에 사랑스럽고 상냥한 표정'을 가진 당대 남성들이 이상적인 영국 여성으로 여기는 미스 매리 모스턴이다. 매리 모스턴의 아버지인 모스턴 대위와 그의 친구인 숄토 대령은 인도 아그라의 값비싼 보물을 차지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군인들이다. 홈즈는 이 보물을 소유하고 있던 숄토 대령을 살해한 사건을 떠맡는다. 살해된 숄토 대령은 근육이 모두 수축되고, 안면 근육이 심하게 뒤틀린 상태로 발견된다. 홈즈는 이것을 강력한 알칼로이드로 인한 중독사로 추정한다. 이 '식물성 알칼로이드'는 코난 도일의 소설에서 식민지에서 유입된 독성 식물로 자주 등장한다. 즉, 달아난 범인은 식민지 출신이라는 사실이 암시된다. 또한 홈즈는 살해 현장에서 범행 증거로 어떤 발자국을 발견하고 돋보기와 줄자를 들고 '보통 성인의 절반도 안 되는 기이한 맨발', 그리고 돌도끼와 살해당한 자의 머리에 꽂힌 '영국산이 아닌' 독침을 근거로 살해범은 인도 안다만제도 출신의 원주민 통가라는 가설을 세운다.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홈즈는 그 당시 가장 권위있는 책이라고 하면서 '대륙지명사전'에 나와 있는 안다만 제도의 원주민에 대한 설명을 인용한다. 즉, 안다만 제도의 원주민은 평균 신장이 120㎝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종족으로서 선천적으로 흉측하게 생기고, 크고 기형적인 머리와 작고 사나운 눈과 뒤틀린 얼굴을 하고 있고, 성격은 사납고, 음침하며, 다루기 어려우며, 지나가는 영국 선원들을 돌도끼나 독침으로 죽인 뒤 그 시체로 식인 축제를 벌인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흉측하고 잔인한 야만인으로 묘사되는 인도 원주민 통가는 독침을 쏘는 범인에 대한 정당 방위라는 명분으로 정당한 재판의 절차나 자신을 변호할 한 마디의 목소리도 없이 홈즈와 왓슨의 총에 의해 현장에서 즉사한다. 결국 문명화된 영국의 상징인 총이 식민지 원주민의 원시적인 살인 무기인 독침을 한 방에 간단히 해결하는 탐정 영웅의 모습에서 영국인의 우월성이 생생하게 부각된다. 이처럼 홈즈는 범죄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주로 인종적 타자인 범죄자들을 제압하는 권력으로 활용함으로써 식민지의 인종적 타자에 의해 영국성이 오염되고 위협받는 상황에서 위험한 타자를 처벌하고 영국인들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영웅으로 부상된다. 코난 도일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홈즈는 영국인 지배계급의 범죄에는 무관심하다. 모스턴 대위와 숄토 대령은 사실 인도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보물을 손에 넣은 후 영국으로 돌아온 군인들이다. 그러나 홈즈는 이 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이 보물을 상속받을 숄토 대령의 자식들과 미스 매리 모스턴을 위해, 즉 영국 지배계급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사건을 적극 수사할 뿐이다. 허정애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공동기획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이 강의 시리즈는 경북대 인문학술원 '경BOOK 톡' 유튜브강좌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허정애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2021.09.03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읽는 고전명작] 대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총·칼 무기삼아 원주민 착취, 자신만의 왕국 지배욕망 드러내
영남일보는 경북대 인문학술원 HK+사업단과 공동기획으로 이번주부터 '다시 읽는 고전 명작'을 연재한다. '다시 읽는 고전 명작'은 동서양의 고전을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재조명해 독자들에게 '명작'을 대하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자 한다. 필진으로 경북대 허정애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규종 노어노문학과 교수, 김성택 불어불문학과 교수, 이재현 철학과 교수, 윤재석·이영호 사학과 교수, 조헌구 일어일문학과 교수 등이 참여한다.<이 강의 시리즈는 경북대 인문학술원 '경BOOK톡' 유튜브강좌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시 서구권, 원주민과 식인종 동일시무인도 표류중인 크루소 불안에 떨며매일 밤 그들을 죽이는 꿈 꾸며 번민처음 마주친 원주민 강제로 노예삼고 보상없이 통역·농사 등 시키며 지배문명인과 야만인 이분법적 잣대 눈길모험·용기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을까1719년 '로빈슨 크루소'가 '요크 출신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삶과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이라는 부제로 영국에서 출판되었을 때 수 많은 영국인이 열광했고, 이 책은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작품은 그 당시 실제 난파 사건을 소재로 한 사실주의 소설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작가의 상상에 의한 픽션, 즉 허구인데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크루소의 모험을 마치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믿었고, 주인공 크루소처럼 무인도로 가겠다고 가출을 하기까지 하는 소년들도 나타났다. 왜 그랬을까? 크루소는 18세 되던 1651년, 편안한 중산층으로 살아가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듣지 않고 집을 떠난다. 그는 배를 타고, 폭풍을 만나고, 해적선에 잡히는 등 천신만고 끝에 브라질에 정착하여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는 부유한 농장주가 된다. 그런데도 17세기 중반 당시에는 불법인 노예 밀무역을 하기 위해 또 아프리카로 항해를 떠나고, 도중에 폭풍으로 배가 난파되어 카리브해의 한 섬에 표류하게 된다. 그때가 26세 무렵인 1659년이다. 그 후 크루소는 그 섬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고 염소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우산을 쓰고, 돌아다닐 때는 늘 소총 1개와 권총 2개, 그리고 칼을 차고, 조끼 주머니에는 화약과 탄환을 넣고, 바구니를 메고 다닌다. 몇 가지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염소 등 가축을 키운다. 이렇게 25년을 고립된 삶을 살던 크루소는 섬에서 처음 만난 아메리카 원주민을 프라이데이라고 부르며 노예로 삼고 3년간 함께 생활한다. 그 후 영국 배에 의해 표류한 지 28년 만인 약 54세의 나이인 1686년에 마침내 영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영국은 1640년대부터 해외 식민지 확장이 본격화되었는데 이러한 시기에 영국인들은 크루소의 이야기에서 식민지 정복의 구체적인 매뉴얼을 발견하고 흥분했던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흔히 영국 근대소설이며 모험소설의 효시로 평가된다. 이러한 모험소설의 주인공인 크루소는 지금까지 근면, 도전, 모험, 용기, 신앙, 합리성, 창의성, 인내심을 대표하는 근대 자본주의 인간의 원형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런데 그는 정말 도전과 용기와 모험의 아이콘일까? 소설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는 사실 식인종이라고 세뇌받은 야만인인 원주민에 의해 잡아 먹힐까 봐, 또 섬의 소유권을 빼앗길까 봐, 가축이나 곡식 등 자신의 사유재산을 빼앗길까 봐 오히려 늘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다. 섬에 표류한 지 만 15년째 되는 날, 해변의 모래사장에 찍힌 사람의 발자국은 그를 극도의 공포와 충격으로 몰아넣는다. 서구의 상상 속에서 아메리카의 원주민은 곧 식인종이기 때문이다. 크루소는 식인 행위를 직접 목격하지 않았으면서도 뼈나 핏자국, 살점 등의 흔적을 서술하고 원주민의 식인 축제를 상상한다. 그는 "늘 무시무시한 악몽을 꾸고, 한밤중에 자주 깜짝 놀라 깨기도 하고, 낮에는 엄청난 번민에 마음이 짓눌리다가 밤에는 야만인들을 죽이는 꿈을 꾼다"고 고백하는데. 이러한 서술은 도전과 용기의 아이콘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광기와 불안에 사로잡힌 인물의 모습을 보여준다.'로빈슨 크루소'보다 약 50년 뒤인 1762년에 출판된 루소의 '에밀'에서는 청소년기에 처음 읽어야 할 책으로서 '로빈슨 크루소'를 권장한다. 자연 상태에서 탐욕 없이 자급자족 경제를 실천하고, 동료 인간을 착취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크루소는 정말 탐욕이 없을까? 동료 인간을 착취하지 않을까? 크루소는 자신이 표류한 섬이 카리브해 원주민들이 늘 방문하는 익숙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로 간주하고 자신의 소유권을 행사한다. 그는 당시 영국인들이 어디를 가든 작은 영국을 만들듯이 여기에 자신만의 소우주인 작은 영국을 만든다. 자신이 거처하는 동굴을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튼튼한 요새로 만든 후 그것을 성이라고 부르며, 자신은 그 성의 군주 혹은 영주로 자처한다. 귀족처럼 바닷가 옆에 시골 별장을 만들고, 염소를 기르기 위해 영국에서처럼 인클로저를 만들고, 영국식 푸른 전원과 유사한 푸른 녹지를 발견하고 기뻐한다. 그는 자신의 섬에 사는 프라이데이, 개, 고양이, 앵무새, 그리고 후반부에는 섬에 들어온 스페인인, 프라이데이의 아버지 등을 자신의 백성이라 칭하고 전제군주와 같은 지배권으로 이 백성들의 "교수형, 사면, 구속"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흡족해한다. 상인인 그는 이처럼 계급 상승에 대한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낸다. 과연 이러한 크루소를 탐욕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또 원주민을 당연히 노예로 생각하는 크루소는 섬에서 처음 마주친 원주민인 프라이데이를 총과 칼을 무기로 노예로 삼아 복종을 하게 하고,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농사짓기, 통역사, 호위병, 길 안내 등 노동을 착취한다. 뿐만 아니라 야만인을 문명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소위 문명인인 영국의 언어, 종교, 문화를 강제로 프라이데이에게 주입시킨다. 원주민의 고유한 이름은 무시되고, 금요일에 만났다고 하여 영어로 프라이데이라고 이름을 부여한다. 이것은 백인 노예주들이 흑인 노예들에게 부르기 쉬운 이름을 부여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름 외에 그가 가르치는 낱말은 정복과 지배의 관계를 가르치는 "주인님" 혹은 "예" "아니요" 정도로 노예의 노동에 필수적인 언어뿐이다. 그는 또한 프라이데이가 '베나무키'라는 고유한 신을 믿는데도, 그 신을 악마로 규정하고 강제로 기독교로 개종시킨다. 크루소는 프라이데이의 식인 습관을 제거한답시고 염소젖과 빵 먹는 법 등을 교육시킴으로써 영국 음식 문화를 주입시키고, 옷을 입지 않는 문화를 가진 프라이데이가 불편해하는데도 자신을 기준으로 옷을 만들어 입힌다. 과연 크루소는 프라이데이를 착취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크루소와 프라이데이의 만남은 서구의 문명인·야만인이라는 이분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누가 더 야만인일까? 프라이데이에 의하면 원주민은 평소 식인 행위를 하지 않고, 전쟁 후 항복하지 않는 포로들에게만 식인 의식을 행한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크루소는 동물이든 인간이든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존재는 가차 없이 총살한다. 한 예로 그는 자신이 힘들여 농사지은 곡식을 먹는 새들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세 마리를 총으로 쏜 후 "영국에서 흉악한 도둑들을 처리하듯 다른 새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죽은 새들을 사슬에 매달아 놓는다. 그는 식인 행위를 하는 원주민들에 대한 분노로 살인과 파괴의 충동에 휩싸이다가 실제로 그들을 학살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수백만 명의 원주민을 죽이면서 식민주의의 길을 앞서간 스페인인들의 잔인성과 야만성을 비판한다. 크루소는 연민과 자비를 베푸는 기독교 국가인 영국은 스페인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과연 영국인 크루소는 다른가? 허정애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공동기획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 허정애 교수는 경북대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에서 '19세기 영국소설' '미국문학개관' 및 대학원 인문카운슬링학과에서 '소통과 공감의 문학연구' '문학과 치유 세미나'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영미소설에 나타난 젠더와 인종 문제를 주로 연구의 주제로 삼고 있다.특히 대중인문학의 확산을 통한 지역 사회와의 소통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경북대 인문대학장, 인문학술원장을 역임하면서 교육부가 주최하는 인문도시사업(2014~2017년)의 연구책임자로서 '기억과 재생의 인문도시, 대구'를 주제로 시민인문학, 청소년인문학, 교도소인문학을 시작하였고, 현재 경북대 인문학술원에서 개설한 유튜브 강좌 '경BOOK톡'에 '영미소설, 인종으로 읽다'라는 시리즈로 지역민들과 만나고 있다.주요 저서로는 '20세기 미국소설의 이해I'(공저)가 있으며, 2022년 2월에 경북대 인문대학의 인문교양총서 시리즈로 '영국소설, 인종으로 읽다'를 출간 예정이며, 주요 논문으로는 '제인 오스틴, 노예제, 계급, 인종' '에밀리 브론테의 성취와 한계: 인종적 시각에서 다시 읽는 워더링 하이츠' '마크 트웨인과 젠더' 외 다수가 있다.허정애 경북대 영어영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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