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산책]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돼지머리 악마에서 미지의 신으로

  • 이석광 경상국립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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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17 07:01  |  수정 2023-02-17 07:02  |  발행일 2023-02-17 제21면
惡으로부터 도망칠 곳 찾아…인간은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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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골딩은 1983년에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상은 보편적 대상에게 포괄적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윌리엄 골딩이 보편적 인간을 위해 얼마만큼이나 보편적 관조를 유발했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존 밀턴이 '실낙원'의 사탄을 통해 '악이 나의 선'이라고 말함으로써 보편인간 안에 내재된 보편적 현상을 묘사했다면, 골딩은 그 보편적 양태를 문학적으로 잘 구상화한 작가이다.

대가들이 수행하는 역작이 일견 용이한 작업과정을 통해 태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상 그것은 지난한 세월을 통해 얻어진 농축된 능력의 산물이다. 골딩에게도 42세에 첫 작품이 출판되기까지, 어렵사리 교사로 취업했다가 사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장교로 제대하여 다시 교사로 복직한 후 불편한 교사 생활을 하면서 거쳐 온 긴 습작의 기간이 있었다.

전쟁의 참상 피해 런던 떠난 소년들
무인도에 불시착하면서 고립돼
전쟁보다 더 큰 절망감·두려움
명분없이 서로를 죽이게 만들어

소설 통해 인간의 악성 구체화
이성·神마저 무력해지는 현실
악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지
근원적 질문 독자들 몫으로 남겨


그러나 인간의 보편 악성을 구상화하는 작업이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힘겨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분투하며 제어해야 하는, 그를 괴롭혀 왔던 그 자신의 악성을 분출하듯이, 혀(tongues)가 달린 타자기를 두들겼다.

'파리대왕'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악성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 알고 싶었고, 그 극점까지 다다르면 혹 중화될 수 있는 것인지, 거기에 버려두고 올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하였다.

그 후, 골딩은 계속해서 어두운 존재들을 만들어 내어 자신을 투영하였다. '파리대왕' 이후 전대미문의 폭력성을 지닌 호모사피엔스 집단을 '상속자 (The Inheritors)'에서 내보였고, '자유낙하 (Free Fall)'의 새미(Sammy)를 통해 기질대로 사는 것은 인간의 어두움에 대한 반영이며 자유를 상실한 삶이라는 것을 묘사했고, '보이는 것은 어두움 (Darkness Visible)'에서는 마티(Matty)를 중심으로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인간 군상들이 편재하고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1983년 그의 노벨상 수상은 그의 소설 경향이 보편인간의 어두운 보편현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 근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 1963년에 영화로 상영된 '파리대왕'의 시각적 잔상이 그의 수상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노벨상 위원회는, 골딩이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신화의 다양성과 보편성으로 당대의 인간조건을 조명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노벨상 수상의 근거로 설명하였다.

골딩은 자신이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것을 인지하였다. 그는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그 사실을 언급했고 자신은 사실 낙천가라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골딩은 자신이 이해하는 한 인간에게 있는 보편적인 결정론적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의 사후 발표작인 '더블텅 (The Double Tongue)'에서 골딩은 자신을 귀찮게 한 신에 대해 존재론적 질문을 한다. 가족 내에서 온갖 천시를 받아 오던 아리카(Arieka)는 아폴로 여사제가 된 후에 사제로서 신의 말을 전달하는 직임을 맡게 된다.

그러나 '더블텅'은 신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암시한다. 아리카가 '신의 혀'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두움이 난무하는 내면세계를 가진 사람들은 여사제 아리카에게 집중하고 제단들 사이에 그녀의 석상을 만들어 세우려 한다.

당시 집필 경향상 골딩은 이 미완의 작품을 200페이지로 마무리 지을 계획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이는 것은 어두움' 처럼 2~3부작으로 집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혹 100페이지 이상 더 집필할 수 있었다면 어떤 전개를 했을까? 골딩은 그의 독자들을 어디로 데려가려고 했을까?

'파리대왕'에서, 전쟁의 참상을 피해 런던을 떠난 13세 이하의 소년들이 낙원을 상징하는 산호초 섬에 떨어진다. 그러나 근거 없는 집단적 두려움에 몰입되어 소년들은 그들이 만든 나무창으로 동료 소년 샘을 찔러 죽이고,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성 증오에 몰입된 소년들이 바윗돌을 굴려 동료 소년 피기를 죽인다. 그리고 명분이 분명해지지 않은 채로 떼를 지어 동료 소년 랄프를 죽이려 달려든다.

랄프는 어디로 도주해야 할까? 악마를 상징하는 돼지머리 파리대왕이 '어디로 가든 소용이 없다'며 샘을 다그친다. 샘은 어두움을 벗어나고 싶지만 돼지머리 때문에 소용이 없는 일이다.

랄프가 사력을 다해 도주하던 중 해변에서 만난 흰색 제복의 해군 장교는 불바다가 된 산호초 섬을 단지 구경거리로만 여기고, 이 섬에서 야만인이 되어버린 소년들의 행동을 그저 전쟁놀이의 표현 방식쯤으로 이해한다. 랄프는 갑작스러운 긴장해소와 함께 죽음을 당한 피기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다른 소년들도 덩달아 흐느낀다. 화염이 혀처럼 치솟고 돼지머리가 있는 무인도에서 바라볼 대상은 흰색 복장의 장교뿐이다.

그러나 흰옷의 해군 장교는 이들의 안녕문제, 상황파악, 자초지종을 알아봐야 할 장교로서의 책무에 관심이 없다. 그에게는 소년들을 쳐다보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할 뿐이다. 못 본 체하고 싶다.

골딩은 인간들의 시선을 어디로 가져가려는 것일까? '더블텅'에서 인간들은 눈에 보이는 아리카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자신이 신의 말을 전달하는 일(oracle)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골딩은 '파리대왕'에서의 해군장교도 소용이 없는 존재라고 제시해 놓았다. 아리카 스스로도 자신이 소용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두운 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골딩의 인간은 시선을 어디로 향해야 하나?

결국 아리카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신에게 시선을 돌리라고 요청한다(TO THE UNKNOWN GOD). 골딩은 1993년 그의 최종작품에서 이 미지의 신을 독자들에게 밀어 놓았다.

이것이 보편인간들이 처한 보편조건인가? 악성에 시달리거나 악성을 자가당착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편이 되어버린 21세기의 보편인간은 이 보편조건에서 어디로 시선을 향해야 할까?

이석광 경상국립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이석광 경상국립대 교수
이석광 교수 (경상국립대 영어영문학부)

◆이석광 교수는? 

 

이석광 교수는 경상국립대 영어영문학부에서 20세기 21세기 영국소설, 영미비평이론, 영미문화, 고대중세근세 영국문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영어로 출판된 문학작품을 주제별로 접근한다. 비평이론을 인식하되 주로 사회, 역사, 문화, 정치, 철학, 장애인 인권, 환경, SDGs 이슈 등의 관점으로 비평논문을 기고한다.

주요 경력은 영미어문학회 회장, 동서비교문학회 부회장(현 평의원), 현대영미어문학회 부회장, 경상국립대 국제어학원장, 경상국립대 인문학연구소장(차기) 등이다. 최근 논문으로는 'A Neurotic Narrator in Julian Barnes' The Sense of an Ending: Time You Wear on the Inside of Your Wrist', 'Reading a Novel, Speechless: Becoming Harriet, a Girl with Cerebral Palsy; through the Lens of Irritation and Nussbaum's Capabilities, Children's Literature in Educatio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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