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산책]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오지 않는 구원자를 기다리며… 그래도 그들은 웃는다

  • 김소임 교수 (건국대 영어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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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04 08:27  |  수정 2023-10-11 13:29  |  발행일 2023-08-04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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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에 완성되었으나 1952년에 출판되고, 1953년에 파리에서 초연된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명 작가였던 사뮈엘 베케트를 하룻밤 사이에 유명 작가로 부상시켰으나 이 극이 쉽게 대중과 만난 것은 아니었다. 이 작품은 텅 빈 시골길 초라한 관목 옆에서 오지 않는 구원자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떠돌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여러모로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워 출판사, 연출가, 배우, 극장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아방가르드의 선두주자였던 로저 블랭이 연출뿐 아니라 포조 역을 맡기로 하면서 공연이 성사되고, 바빌론느 극장서 초연 후에는 비로소 폭발적인 대중의 반응과 접하게 된다. 이 작품은 바빌론느 극장에서만 400회 공연되었다.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 집필이 소설 쓰기의 고통을 잊기 위한 기분전환용이었다고 토로했지만 꼭 필요한 부분만 남겨놓고 제거해 버린 듯한 미니멀한 스타일과 주제의 심오함은 전 세계 연극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장소 모호
인물들 대화 오가지만 오해 반복
부조리한 상황·의사소통 한계 강조

이해하기 어려운 삶 용기있게 직면
현대인의 궁핍함 고양감 얻는 순간

이 작품은 여러모로 획기적이다. 인물들이 직면한 문제는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고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어디에, 왜 있는지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베케트는 자신의 작품을 부조리극이라고 부른 적은 없지만 에슬린이 저서 '부조리극'(1961)을 발표한 이후 그렇게 분류되고 있다. 에슬린은 부조리란 용어를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에서 가져온다.

'부당한 이유를 가지고라도 설명할 수 있는 세계는 친근한 세계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환상과 이성의 빛을 빼앗긴 우주 속에서 인간은 이방인으로 느낀다. 이 망명지에는 구원이 없다…. 인간과 그의 삶, 배우와 그의 무대 사이의 단절, 이것이 바로 부조리의 감정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여러모로 카뮈가 말한 부조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늙은 방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왜 자신들이 이 쓸쓸한 시골길에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한다. 이 불확실한 장소에서 그들은 영원한 이방인이다. 자신의 과거도 현재도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은 자신의 삶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2막으로 구성되는데 시간과 공간 배경은 동일하게 저녁 무렵, 시골길이다. 저녁 무렵이 되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시골길에 있는 나무 곁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올지 안 올지도, 자신이 맞는 장소에서 기다리는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그들은 고도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으로 믿으며 나무 옆에서 기다린다.

부조리한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극은 사실주의 극에서 볼 수 있는 현실의 시간과 공간과의 연결 고리를 차단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살고 있는 시점도 불분명하고 장소도 확실하지 않다. 텅 비어있는 길과 잎이 몇 개 달린 나무는 특정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은유가 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전기적 정보도 제한된다. 그들의 과거 행적에 대한 정보도 파편적이다. 시간이 경과해도 구원자는 오지 않지만, 인물들은 노쇠해간다. 1막에서 당당하던 포조는 2막에서는 눈이 먼 채 하인인 럭키에게 끌려다닌다. 1막에서는 장시간 장광설을 내뱉던 럭키는 벙어리가 된다. 1, 2막 모두 소년이 등장해서 고도가 오지 않는다고 전한다. 소년이 나가자마자 달이 뜨고 밤이 온다. 고도가 오지 않았음을 확인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자살을 할까 생각하지만 결국 자살에도 실패한다.

이 연극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처한 상황의 부조리함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한계를 강조한다. 둘은 서로의 말을 오해하기 일쑤다. 언어는 두 친구에게는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기보다는 기다리는 지루함을 덜어주는 도구, 유희의 방편이 된다. 언어 희화화의 가장 극단적 사례는 럭키의 장광설이다. 럭키의 장광설에서는 철학적, 신학적 용어들이 변형되고 파편화되어 나열된다. 이는 언어가 진리를 전달하는 기능을 상실했음을 시사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느끼는 지루한 절망감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극은 1막과 거의 유사한 내용을 2막에서 반복한다. 뿐만 아니라 2막의 끝에서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을 암시한다. 즉 기다림은 무한히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막이 반복될 뿐 아니라 대사도 빈번하게 반복된다. 포조와 럭키의 등장 또한 반복되고, 소년의 등장 또한 그러하다. 1, 2막의 마지막에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전하는 소년은 동일인이다. 하지만 그는 블라디미르에게 그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블라디미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며 그의 존재를 위협한다. 반복이 때로는 위협이 된다.

1969년 노벨상 위원회는 베케트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면서 선정 취지를 "소설과 연극에 있어서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그의 글 속에서 현대인의 궁핍함이 고양감을 획득하게 된다"라고 설명한다. 얼핏 보면 베케트의 작품이 고양감을 준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베케트는 대담록 '세 가지 대화'(1949)에서 미술에 대해 언급하면서 "표현할 것이 없으며, 표현의 도구도 없고, 표현의 근원도 없으며, 표현할 힘도, 욕망도 없으나, 표현의 의무만 있는 것의 표현"을 선호한다고 말한 바 있다.

베케트는 전달 능력도 없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서 말할 거리도 없는 초라한 인간 세상에 대한 표현 의무를 완수한다. 인용문은 작가의 상황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그의 인물들의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노벨상 위원회가 지적한 '고양감'이 배어 나온다. 구원자 고도가 오지 않더라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나무 곁을 떠나지 않으며 어떻게든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전달하려고 애쓴다. 따라서 그들은 나름의 영웅성을 지닌다. 그들은 또한 삶이 아무리 이해 불가하고 부조리할지라도 매우 자주 웃음의 원천을 찾아낸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연금술사와 같다. 절망과 패배의 징후가 농후한 세상에서 그들이 웃음의 원천을 찾아낸다는 것은 부족한 인지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겉과 속의 다름을, 인간의 정체성의 균열을, 꿈과 현실의 차이를, 육체와 정신의 간극을 간파해내고 그것을 웃음으로 피어 올린다. 그런 점에서 베케트뿐 아니라 그의 인물들도 어두운 현실을 직면해내는 용감한 현대인이다.

김소임 교수 (건국대 영어문화학과)
공동기획: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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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임 교수 (건국대 영어문화학과)
김소임 교수는 건국대 영어문화학과에서 '영미 드라마' '미국의 이해' '영화이론의 이해' 등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에머리 대학교에서 '사뮈엘 베케트 연극의 공간 연구'로 박사학위로 받았으며 인문과학대학장, 현대 영미드라마 학회장, 동화와 번역 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베케트의 독특한 가치관과 연극적 구현뿐 아니라 현대 드라마 전반에 나타난 남녀 간의 갈등, 인종 갈등, 신화의 현대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대 연극뿐 아니라 고전 연극, 르네상스 연극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최근에는 영화와 페미니즘으로 연구의 폭을 넓혀 다수의 책의 기획과 편집에 참여하였다. 저서로는 '베케트읽기' '아일랜드, 아일랜드'(이하 공저), '퓰리처 상을 통해 본 현대 미국 연극' '영화로 보는 미국 역사' '문화로 읽는 페미니즘' '우리 안의 나쁜 여자' '영화로 보는 영국 역사'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부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존 왕'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사무엘 베케트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드라마' 'Krapp's Last Tape, 베케트 그리고 아일랜드'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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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임 교수 (건국대 영어문화학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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