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9시 전에도 손님 ‘뚝’…빚내서 버티는 음식점 늘어

  •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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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9 07:17  |  수정 2019-08-29 08:20  |  발행일 2019-08-29 제3면
불황 탈출구 없는 대구경북 외식산업
20190829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한 식당가 1층 상가에 임대 문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지만, 11개월가량 지난 28일 현재까지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지난 27일 오후 8시30분쯤 대구시 동구 신천동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 건너 먹거리 타운. 이곳은 인근 직장인들의 저녁 회식 장소가 몰려 있는 상권이다. 요란스러워 보이는 네온사인 간판의 분위기와 달리 이곳을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거리 양쪽으로 빽빽히 들어선 가게 3개 중 1개 정도만 손님들이 테이블 절반 이상을 차지할 뿐, 나머지 상가들은 빈 테이블이 더 많았다. 불빛을 내뿜는 거리 앞쪽과는 반대로, 뒤쪽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했다. 주류를 함께 취급하는 고깃집임에도 손님이 없어, 테이블을 닦고 주변 정리를 시작하는 식당도 눈에 띄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주인들은 가게 앞에 둔 의자에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폐업한 지 오래된 듯 방치된 가게들도 간간이 보였다.

1시간가량이 지나자 그나마 식당에 있던 사람들의 귀가가 시작됐다. 한 고깃집 주인은 “회식·음주문화가 예전과 많이 달리진 데다 경기침체까지 겹쳐 요즘은 여러모로 어렵다”며 쓴웃음 지었다.

대구지역에서 주류도매업을 하고 있는 김모씨(50)는 요즘 하루하루가 힘겹다. 거래하는 음식점에서 매입하는 양이 줄어든 건 문제가 아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거래업소가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김씨는 “매출이 얼마 줄었냐고 묻는 지인들이 간혹 있다. 그럴 때마다 자고 나면 거래처가 하나씩 없어진다고 말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거래 형태가 외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거래업소로부터 받아야 할 돈이 적지 않지만 돈을 천천히 받아도 된다. 제발 영업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지역 외식산업

대구경북지역 외식산업 경기가 어두워져 외식업 자영업자들이 불황의 터널 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8일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외식산업 통계에 따르면, 올 2분기 외식산업 경기전망지수는 대구는 63.57, 경북은 62.48로 집계됐다. 외식산업 경기전망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100을 초과하면 성장, 100 미만은 위축을 뜻하며, 지수 결과가 클수록 경기가 좋다는 의미다. 전국 17개 시·도 중 대구는 12위, 경북은 14위로 하위권이다. 전국 평균치(65.08)보다도 낮은 상황이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세종(73.09)과 비교하면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워라밸 영향 회식마저 줄어들어
문 열어도 공치는 주점들도 많아
인건비·식재료값 상승까지 겹쳐
업주들 “장사해도 남는 게 없어”
음식점업 대출증가 역대 최대폭



문제는 2분기 지수가 지난 1분기보다도 악화됐다는 점이다. 1분기 대구의 외식산업경기전망지수는 64.42로 전국 10위를, 경북은 63.43으로 12위를 기록했다. 2분기 들어 각각 2계단씩 더 하락한 것이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대구지회 관계자는 “최근 2년간 30% 가까이 오른 인건비가 가장 큰 원인이고, 식재료값 상승 등이 이유가 될 수 있겠다”라고 분석했다.

전년 동기 대비 향후 3개월간의 매출·고객수·식재료 원가 정보 등을 예측해 전망하는 미래 경기전망지수도 대구 66.70, 경북 66.97로 나타나 전국 평균치(68.66)에 못 미쳤다.

◆“너무 어렵다” 음식점주 이구동성

폐업전 전매를 폐업으로 간주하면 지역 외식업체가 신규등록에서 폐업에 이르기까지의 주기는 유난히 짧다. 신규 외식업자 10명 중 3명은 1년 안에 문을 닫는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대구지회 관계자는 “식당 운영은 자격증이 꼭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아 준비 안 된 상황에서 진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도 높은 데다, 대구는 자영업자 비율이 전체 산업의 23% 정도로 높다 보니 이런 상황이 일어난다”고 전했다.

워라밸을 중시하고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사회적 분위기는 술자리 회식을 줄어들게 만들었다. 이는 음식점업이나 주점업 등 외식산업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빚내서 버티는 음식점이 늘고 있다. 2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2분기 중 예금취급기관 산업별 대출금’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예금취급기관의 산업별 대출금 잔액은 전분기 말 대비 22조2천억원(1.9%) 증가한 1천163조1천억원이었다. 전년동기 말보다는 12조9천억원(7.4%) 늘어났다. 이는 2009년 2분기 9.6% 증가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업종별로는 서비스업 대출금이 16조2천억원 늘어났다. 서비스업 가운데 도·소매, 숙박 및 음식점업 대출이 7조8천억원 늘면서 역대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작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12.0%를 기록했다.

지역 외식업 자영업자들은 한목소리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변운수 신세계 상가번영회장은 “동대구역 상권은 밤 9시만 되면 거의 황폐화·슬럼화되고 있다”라며 “주점은 매일 공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또 “폐업을 고민하는 사람도 많이 늘고 있는데, 가게에 투자가 많이 돼 있는 데다 권리금 받기는 상상도 못하고, 나가려고 하더라도 보증금은 기간이 만료돼야 내주니까 마음대로 폐업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수성구 들안길 내 식당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김갑동 들안길 상가번영회장은 “들안길은 문 닫고 나가도 새로운 사람이 금방 들어와 빈 점포는 잘 없지만, 이곳도 마찬가지로 상인들이 장사해도 남는 게 없다고 말한다”라며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고 있는데 직간접세나 임대료, 인건비, 오르는 농산물 가격 등 부담해야 할 비용은 점점 늘어나 악순환이 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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