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언어는 문화를 담는 그릇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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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12   |  발행일 2020-11-12 제22면   |  수정 2020-11-12
우리나라 지형적·기후 특성

다양한 음식문화·언어 발달

사람 특징 표현 때까지 사용

먹기만 보여주는 '먹방'보다

맛깔스러운 말 구사 품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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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호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언어는 인간이 지닌 상징화의 능력이 빚어낸 최고의 문화적 산물이다. 언어와 문화의 관계는 어휘에서 잘 나타난다. 모든 언어의 어휘는 그 문화권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반영한다.

남부 인도의 '코가 부족'은 열대의 중요한 천연자원인 대나무를 표현하는 일곱 가지 단어는 있지만 눈(雪)을 표현하는 단어는 하나도 없다. 우리는 '함박눈' '대설' '강설' 등 몇 개의 수식어를 붙여 눈을 표현하지만 에스키모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눈의 상태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눈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물질로 본다. 그래서 눈의 유형을 여러 가지로 분류해 수많은 단어로 표현한다. 이처럼 모든 언어에서 문화적으로 강조되는 것들은 어휘의 수와 구체성에서 직접 반영된다. 하나의 문화에서 강조되는 내용은 수많은 동의어와 세분화된 어휘로 표현된다. 말하자면 관련 어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산지가 평야보다 많은 지형적 특성,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특성을 지닌 우리나라는 음식문화가 다양하게 발달해 왔다. 음식에는 민족 특유의 속성과 문화가 담겨 있으니, 음식을 나타내는 어휘들이 우리말에는 많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긴 겨울을 나기 위한 저장법과 가공법이 발달해 김치와 같은 발효식품이 많으며 조리 방법과 맛을 표현하는 낱말도 상당하다.

우선 불 사용 여부의 표현으로는 불로 익히는 조리법의 표현은 굽다, 튀기다, 지지다, 데치다, 볶다, 부치다, 익히다, 끓이다, 달이다, 찌다, 삶다, 고다, 데우다, 조리다, 쑤다, 덖다 등이 있다. 또한 불을 사용하지 않고 하는 조리법의 표현은 저미다, 다지다, 썰다, 무치다, 버무리다, 말리다, 절이다, 뜨다, 안치다 등이 있다. 또한 맛을 표현하는 미각어가 발달해 있다.

맛 종류에 따른 언어표현으로 단맛의 경우 달다, 달콤하다, 달곰하다, 달큼하다, 달짝지근하다, 달착지근하다, 들큰하다, 들쩍지근하다, 들부레하다 등이 있고, 쓴맛은 쓰다, 씁쓸하다, 씁스름하다, 씁쓰레하다, 쌉쌀하다, 쌉싸롬하다, 쌉싸래하다 등이 있다. 신맛은 시다, 새큼하다, 시큼하다, 새곰하다, 시금하다, 시쿰하다, 산산하다 등이 있다. 또한 짠맛은 짜다, 짤하다, 찝질하다, 짐짐하다, 간간하다 등이 있고, 매운맛은 맵다, 매콤하다, 칼칼하다, 알알하다, 얼얼하다, 얼근하다, 얼큰하다, 알큼하다 등이 있다.

이런 맛감각어는 정서적 유사성(類似性)에 의해 비유적 표현으로까지 확장하여 사용된다. 사람의 특징을 표현할 때 아무개는 짜다, 싱겁다, 맵다, 텁텁하다, 가볍다, 무겁다 등과 같이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런 예다. '키 크고 안 싱거운 사람 없다더라' '집안을 잘 꾸려 가려면 손이 좀 맵짜야 할텐데' '요즘 재미가 짭짤하니?' '그 사람은 손이 참 맵네'가 그런 말이다.

요즘 대세가 다들 먹방이라고 한다. 먹방 유튜버들의 한달 수익이 수천 만원 대에 이른다는 말도 들었다. 또한 공중파와 케이블방송의 먹방도 만만치 않아 시청률을 높이는 1등 공신이라고도 한다. 단순히 먹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방송보다는 다양하게 맛을 표현하거나 올바르게 맛을 음미하는 말을 잘 구사하면 품격있는 먹방도 될 수 있고, 우리나라의 발달한 음식문화를 전승하는 중심적인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방송에서 맛깔스러운 말을 잘 사용하니 수입도 짭짤하겠네.'
김덕호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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