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적응

  • 서정혁
  • |
  • 입력 2025-08-28 13:58  |  발행일 2025-08-28
서정혁 기자

서정혁 기자

얼마전 출근길에 생각보다 선선한 바람에 가을이 왔다고 생각했다. 절기로 따지면 입추(立秋)와 처서(處暑)를 지났으니 가을이 왔다고 여겨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오전부터 온도는 30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제야 내가 무더위에 '적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응은 무섭다. 죽을만큼 힘들던 폭염도 그 정도가 약해지니 견딜만하다고 느꼈다. 몇해 무더위가 이어지는 여름을 보내면서 내 몸 스스로가 여름의 무더위에 적응하고 있었다. 이처럼 적응은 삶의 생태계에서 꼭 필요하다. 첫직장, 전학, 이직, 이사 등 새로운 상황에서 생길 수 있는 막연한 두려움과 어색함을 차차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다만 정치 영역에서 적응은 피해야할 부분이다. '한쪽'에 적응할 경우 다양성이 사라지고 그결과 사회 전반적인 목소리가 배제될 수 있다. 이에 그동안 정치는 어느 한쪽의 독재를 막기 위해 대화, 타협 그리고 견제를 통해 균형을 맞춰가는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아쉽게도 최근 정치권에서 견제와 균형은 사라졌다. 대화도 없다. 한쪽에 너무 큰 권력을 몰아준 탓에 우리는 시대착오적인 새로운 정치를 경험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민주주의를 가장한 새로운 형태의 입법 폭주다. 야당 시절에도 민주당은 압도적인 의석수를 가졌단 이유로 타협이 이뤄지지 않은 법안들을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은 궁여지책으로 필리버스터에 나섰지만 법안 통과를 막을 수 없었다.


이같은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한 민주당은 압도적 다수에 여당의 지위까지 가지게 됐고 그동안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처리되지 못했던 노란봉투법, 상법개정안 등의 통과를 강행했다. 어느 한쪽의 의견만이 반영된 법안을 타협 없이 밀어붙인 셈이다. 법안 통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반대쪽의 우려가 이어졌지만, 법 통과를 견제할 수 있는 야당은 힘이 없었고 우리는 반복되는 익숙한 장면을 받아들였다.


현재 가장 우려스러운 건 대화와 견제, 타협이 실종된 현재의 정치 상황에 우리가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 지인은 상법개정안이 상정되기도 전 "당연히 통과될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 강한 힘을 가진 한쪽이 타협없이 상대를 찍어누르는 현 정치 상황을 당연하다 여기고 있단 사실에 놀랐다.


대화와 타협이 사라진 정치, 민주주의를 가장한 압도적 다수의 횡포에 우리 스스로가 적응할 경우 우리의 생태계는 파괴된다. 적응됐다는 핑계로 어느 한쪽의 횡포를 받아들일 경우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새로운 독재'를 받아들이는 결과를 만두는게 아닐까 우려스럽다



기자 이미지

서정혁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정치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