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산 김창숙 선생이 동지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성주군 제공>

심산 김창숙 선생 사진 <성주군 제공>

2023년 6월23일 <사>심산 김창숙 선생 기념사업회 임원들이 성주생가를 방문 후 군수실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성주군 제공>

심산 김창숙 선생의 손녀 김주(85)여사 <본인제공>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일제 강점기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민족 교육에 몸바친 심산(心山) 김창숙(1879~1962) 선생 서거 63주기가 되는 해다. 경북 성주군에서 태어난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 활동, 독립운동 자금 모집, 청년 교육, 광복 후 성균관대학 설립 등 민족의 독립과 재건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김창숙 선생은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 후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외교·군자금 지원에 이바지했다. 특히 "독립운동은 단기 승부가 아니라 백년대계"라는 믿음으로 청년 교육에 힘썼다.
광복 후에도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성균관대학의 초대 이사장으로 오르며 학문과 인재 양성에 매진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 국내외를 오가며 정치·외교·교육에 걸쳐 폭넓게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독립 후에도 올바른 국가 건설'을 강조하고 청렴한 인품으로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다.
1941년생인 손녀 김주 여사는 심산이 병보석으로 석방돼 고향 성주에 돌아온 이후 그의 곁에서 성장했다.
어린시절 할아버지의 무릎 아래에서 자라며 가족이 겪은 역사적 무게를 몸으로 느끼야 했던 김 여사의 기억속에 심산은 한 없이 불쌍한 분이셨다고 한다.
김 여사는 광복된지 80주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일제청산을 못한 것이 평생 한으로 남는다고 했다. 김 여사는 성주 생가 일대의 기념사진과 심산 선생이 당했던 고문·투옥 이야기를 떠올리며, 독립투자 후손으로서의 묵직한 삶의 무게를 느껴왔다.
"가족 식탁에선 늘 할아버지 얘기가 나왔어요. 어린 마음에도 '왜 목숨 걸고 싸워야 했을까' 궁금했죠. 학교 역사책에 있는 분이 우리 할아버지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김 여사가 기억하는 심산 선생은 "어디에 있어도 항상 떳떳한 자세를 강조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후손으로써 그녀도 부끄럽지 않은 자세로 살아가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여사는 2021년 심산 선생이 착용했던 안경알을 식민지 역사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그녀는 당시 기억을 되짚으며 "안경알을 볼 때마다 할아버지를 뵙는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어 2023년에는 성균관대 61주기 추모제에도 참석해 할어버지 심산에 대한 그리움과 선생이 남긴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김 여사는 할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말을 아직도 잊지 않는다. 또 잊을 수도 없다.
"할아버지는 '나라를 찾는 건 시작일 뿐, 올바른 나라를 만드는 게 진짜 독립'이라고 하셨어요. 광복 후에도 부정부패를 비판하셨던 이유가 그거죠."
김 여사는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도 이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광복을 단순히 기념일로만 보지 말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어갈지 고민하는 날이 됐으면 합니다." 할아버지의 영향일까.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과 역사 이야기를 자주 하는 김 여사는 '정직과 용기'를 가르치는 일을 자신의 몫으로 여긴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첫걸음이에요. 할아버지처럼 바르게 살고 싶어요."
광복 80주년을 맞아 손녀 김주 여사는 시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독립운동가들이 외친 만세는 과거의 메아리가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가 불의와 맞서고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순간마다 울려 퍼져야 합니다."

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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