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의 한 고교에서 학부모 등이 공모해 중간·기말고사 시험지를 수 차례 절취한 정황이 포착돼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경북도교육청도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영남일보 DB>
경북 한 인문계 고교에서 학부모와 학교 관계자 등이 공모해 중간·기말고사 시험지를 여러 차례 절취한 정황이 포착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범행 과정에서 금품이 오간 정황도 확인된 만큼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13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30대 전직 기간제 교사 A씨와 40대 학부모 B씨는 지난 4일 오전 1시20분쯤 해당 고교를 무단 침입했다가 발각(인터넷 영남일보 7월11일 단독보도)됐다. 건조물 침입 등의 혐의로 이들을 붙잡아 조사 중인 경찰은 이들의 무단 침입이 처음은 아니며, 시험지를 빼돌리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최소 4~5회에 걸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앞두고 학교에 침입한 것으로 보인다. 심야 시간대 보안상의 허점을 노려 시험지가 보관된 교무실이나 인쇄실에 침입한 뒤 문제지를 빼돌린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 관계자의 묵인 또는 공모가 이뤄진 정황도 드러났다. 경찰은 해당 학교 소속 30대 관계자 C씨가 A·B씨의 범행을 사전에 알고도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혐의로 조사 중이다. A·B씨는 빼돌린 시험지를 B씨 자녀에게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학생은 이 학교 재학생으로, 각종 시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B씨 자녀의 성적이 시험 전 미리 문제를 확보한 결과라는 점이 확인될 경우, 단순 부정행위를 넘어 입시 전반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사건이 커지자 학교 측과 경북도교육청도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해당 고교 관계자는 "경비 시스템 경고음을 통해 침입 사실을 인지했고, 즉각 경찰에 신고하고 도교육청에 보고했다"며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를 위해 사건 경과와 대응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계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 아닌, 고교 내신 시험의 구조적 취약성과 감시 체계의 붕괴를 드러낸 결과로 보고 있다. 특히 교사와 학부모가 공모해 시험지를 빼돌리고, 내부 관계자마저 이를 묵인한 정황은 교육 공동체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현재 이들이 절취한 시험지의 범위, 유출 시기, 사전 계획 여부 등을 다각도로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는 건조물 침입 혐의로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수사의 범위는 훨씬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내부 공모, 시험지 유출, 금전 대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조만간 A·B씨에 대한 진술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신병 처리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며, C씨에 대해서도 직무유기 및 공범 여부에 대한 법적 책임을 따질 예정이다.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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