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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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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청소년 우울증
지난달 15세 중학생(A군)이 배현진 국회의원을 돌덩이로 마구 폭행한 건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단독 범행인지, 구체적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A군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경찰조사에서 A군 스스로도 정신질환(우울증)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A군은 초등학생 때부터 이상 행동을 보였다. 친구를 상대로 괴롭힘과 폭력, 성희롱, 스토킹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런 공격 성향에 더해진 비뚤어진 정치 신념이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A군이 저지른 짓은 용서받기 힘들지만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A군처럼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치료가 우선이다. 그게 재범 방지에도 효과적이다.'마음의 병'을 앓는 청소년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 진단을 받은 10대 청소년은 2018년 2만8천여 명에서 2022년 4만6천여 명으로 늘었다. 4년 만에 무려 60% 이상 증가한 것이다. 또 우울증을 호소하는 청소년 정신건강 상담 건수도 연간 수십만 건에 이른다. 이에 더해 남에게 숨기는 우울증 특성을 감안하면 통계에 잡히지 않은 청소년 환자가 더 많을 수도 있다. 최근 10대의 자해·자살 시도가 급증하는 것도 우울증이 원인이다.청소년 우울증은 단지 본인과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A군처럼 공격·충동 성향이 밖으로 발현되면 사회를 위협하는 범죄가 된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요구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성 학대, 폭력, 마약 등 청소년 정신 건강을 좀먹는 SNS 저질 콘텐츠 규제부터 필요해 보인다.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장마당 세대
지난해 12월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유포한 10대 청소년들이 공개 처형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식 '공포정치'가 얼마나 극악한지를 보여준다. 근래 들어 북한 당국은 한국 대중문화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상 교육과 단속만으로는 통제가 안 되자 잔혹하게 처벌하고 있는 것.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걸리면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길게는 10년 넘게 노동교화소에 수감된다. 하지만 이 같은 공포정치도 한류 열풍을 막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탈북민들 증언에 따르면 현재 북한 청년들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온갖 기기를 동원해 한국 음악과 영화, 게임을 즐긴다고 한다. 북한 내 한류의 중심에는 '장마당 세대'가 있다. 최악의 식량난이 덮친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며 자란 20~30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국가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유년기부터 시장(장마당)을 친숙한 생활공간으로 삼았다. 국가의 부재와 시장 경제를 경험한 만큼 이들의 사고는 기성세대에 비해 자유롭다. 더구나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등을 통해 한국 문화를 가까이 접했고, 최신 IT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북한이 최근 통일 불가론을 띄우며 교육사업 강화에 나선 건 장마당 세대에 대한 사상 통제가 어려워진 게 주된 요인이다. 이들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한국의 실상을 많이 알고 있으며 동경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 196명 중 절반 이상이 20~30대였다. 우리의 MZ세대에 해당하는 장마당 세대가 북한 변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트럼프의 귀환
현대 정치사에서 도널드 트럼프만큼 드라마틱한 인물도 드물다. 사실, 돈은 많지만 정치경력이 전혀 없는 70세 노인이 불쑥 선거에 출마해 미국 대통령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그 사람이 재벌가 '금수저' 출신인 데다 독불장군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주된 비결은 백인우월주의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노동자를 비롯한 미국 중·저득층 백인들은 "위대한 미국 재건"을 외친 트럼프에 열광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막말과 좌충우돌 행동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건 기존 정치에 식상함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파격과 신선함으로 다가가는 효과를 냈다. 더욱 놀라운 건 트럼프가 4년 공백을 딛고 대통령에 재등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트럼프는 지난 16일 아이오와주(州) 코커스(당원대회)에서 경쟁 후보들을 모두 압도적 표 차이로 따돌렸다. 공화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첫 경선지에서 압승을 거두며 재선고지를 향한 순항을 예고한 것. 이 같은 기세라면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돼 본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역사적 재대결을 벌일 공산이 크다. 두 사람이 맞붙으면 어떻게 될까. 최근 미국 내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승리를 예상하는 쪽이 훨씬 많다.트럼프 대세론에 변수는 있다. 사법리스크다. 그는 현재 미국 내 여러 법원에서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등 수많은 혐의로 기소돼 있다. 트럼프의 대선 후보 자격 박탈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미국 법원의 판단에 트럼프와 미국, 나아가 전 세계의 앞날이 요동치게 됐다. 허석윤 논설위원
[월요칼럼] 꿈속의 가상세계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장자(莊子)가 어느 날 제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난밤 꿈에 나비가 돼 꽃 사이를 날아다녔는데 내가 나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내가 된 꿈을 지금 꾸고 있는 것인가?" 장자의 '제물편'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 이야기다. 알다시피 장자가 강조한 건 나비가 아니다. 자면서 꾸는 꿈속 세상처럼 현실의 삶도 꿈일 수 있음을 알려 준 것이다. 수많은 성현들의 가르침도 이와 비슷하다. 세상은 꿈과 같고, 이슬과 같고, 안개와 같다고 했다. 인생이 실제보다 환영에 가깝다는 것. 그럴 듯도 싶다. 자면서 꾸는 꿈도 그때는 너무 현실 같다. 그게 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깨어나 보면 모든 게 신기루였다. 꿈에선 나조차도 따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사물, 풍경처럼 그냥 꿈속의 '한 장면'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현실세계는 다를까. 어쩌면 우리는 눈 뜬 상태로 꿈을 꾸는 건 아닐까.인생이 꿈이라는 건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 오감으로 체험하는 물질세계가 너무나 생생하지 않은가. 불교에선 색즉시공(色卽是空)이란 말로 물질의 실체가 없음을 설파하지만,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사람들에겐 그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하지만 그 '과학적 사고'란 게 사실 한물간 것이다. 근본부터가 잘못됐다. 현대의 양자역학은 '색즉시공'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이중슬릿 실험이란 게 있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아름다운 실험으로 꼽힌다. 결론만 요약하면 이렇다. 빛과 전자는 실험자들이 지켜보면 입자, 그렇지 않으면 파동으로 움직인다. 전자는 물질의 최소 단위다. 즉 물질이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란 것이다. 두 상태를 구분 짓는 건 오로지 '관찰'이라는 행위다. 이른바 '관찰자 효과'다.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이 있다. "내가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은 없는 것인가?" 양자역학자들의 대답은 "사실상 그렇다"이다. 우주 만물은 텅 빈 상태로 인간이 의식할 때만 현현(顯現)된다는 것이다. 현실세계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건 양자역학자만이 아니다. 세계 최고 갑부 일론 머스크도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믿는다. "이 세상이 가상현실이 아닐 확률은 10억분의 1"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큰둥하다. 대부분 "그래서 뭐?"라는 식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가상세계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그래서 인류는 또 하나의 멋진 가상세계를 만들고 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한 '호모데우스(신적인 인간)'의 전능으로 디지털 유토피아를 창조 중이다. AR, VR, 홀로그래피 기술을 통합한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가 대표적이다. 게임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사회·경제·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현실세계와 유사한 활동이 이뤄진다. 사람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메타버스에서 더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가상세계의 또 다른 한 축은 AI(인공지능)이다. AI의 진화 속도는 너무 빨라 겁이 날 정도다. AI는 인류에게 풍요와 즐거움을 주지만 한편으론 위협적인 존재다. 가짜뉴스와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어쨌건 AI는 이미 인간을 뛰어넘었다. 신이 되는 건 인간이 아니라 AI일 것이란 예측도 많다. 꿈속에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꿈(가상) 세계, 그 미래가 궁금하다. 허석윤 논설위원허석윤 논설위원
[논설위원의 직터뷰] 권도훈 '라일락뜨락1956' 대표 "獨 괴테하우스처럼 이상화생가터도 좋은 문화콘텐츠 될 수 있어"
이상화 시인(1901~1943)은 1926년 '개벽'(開闢)지 6월호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란 시를 발표했다. 25세 때였다. 시에는 나라를 잃어버린 청년 시인의 비애와 저항의식, 민족애가 절절히 녹아 있다. 일제에 핍박받는 민초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가 대구가 낳은 민족시인으로 불리는 이유다. 시만 쓴 것은 아니었다. 그는 1919년 대구3·8만세운동 때 백기만과 함께 학생 동원에 앞장섰다. 자택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기도 했다. 시와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시기에 그는 지금의 대구 중구 서문로 2가 11에서 거주했다. 그의 생가인 이곳에서 32세까지 살았다. 이후 여러 번 이사를 다니다가 1939년부터 4년간 중구 계산동 주택에서 살다가 운명했다. 대구에는 이상화가 태어난 생가와 죽음을 맞은 고택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상화 고택은 대구 근대골목 투어의 필수코스가 됐을 정도로 잘 보존돼 있다. 하지만 이상화가 떠난 후 생가는 1956년에 허물허졌다. 그 집터에는 새집들이 들어섰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던 이상화 생가는 다행히 일부나마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생가터에 지어져 방치되던 빈집이 2018년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라일락뜨락1956)으로 재탄생했다. 그곳 마당엔 청년 이상화에게 시심(詩心)을 심어준 수령 200년의 라일락 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이상화 생가터에서 '라일락뜨락1956'을 운영 중인 문화기획자 권도훈 대표를 만났다.◆이상화 생가와의 운명적 만남권 대표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 대학원에서 광고디자인을 전공했다. 대구디자인전람회 금상을 비롯해 30여 개의 크고 작은 상을 받은 실력파다. 광고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주>평화산업의 발렌키 브랜드 리뉴얼, 달서문화재단 CI 등도 개발했다. 영남이공대 겸임교수로 12년 동안 학생들에게 실무디자인을 가르쳤다. 디자인이 필요한 곳에 무료로 디자인 실무를 가르친 공로로 2008년 경북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그가 광고디자이너로서 한창 잘나가던 때에 큰 시련이 닥쳤다. 그건 어쩌면 이상화 시인과의 만남을 위한 운명이었다. "2016년에 광고회사를 동업하던 선배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때 회사를 정리하고 강의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 막냇동생을 몹쓸 병으로 보냈습니다. 슬픔과 공허함이 너무 커 대인기피증까지 생기더군요. 2년 동안 사무실에서 식물을 키우고 책만 읽었습니다. 고통은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새로운 삶의 공간을 물색하던 중 이곳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권 대표는 6년 전 매입한 빈집이 이상화 시인의 생가터 중 안채 위치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이후 자료들을 모아 대구시청에 생가에 대한 사실을 바로잡아달라는 청원을 했다. 그로 인해 중구청에서 고증을 거쳐 2019년에 이상화 생가터를 알리는 지주식 푯말을 세웠다. "하지만 시민들 대부분은 아직도 이상화 고택을 생가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상화 시인에 대해 제대로 알리는 게 디자이너인 나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개업 일 년 만에 닥친 코로나…위기를 기회로권 대표가 부푼 희망을 안고 이상화 생가터에 안착했지만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곳을 오픈 한 지 일 년 만에 코로나19가 닥쳤습니다. 당시 대구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다시피 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동산병원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병원 근처 카페가 모두 문을 닫아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커피를 못 마신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더치커피를 내려 동산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시작했지만, SNS로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성금을 보내주더군요. 덕분에 10회에 걸쳐 100잔씩, 총 1천잔의 '커피폭탄'을 쏠 수 있었습니다. 또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8회에 걸쳐 무관객 콘서트를 열어 SNS를 통해 대구경북민에게 '힘든 상황을 극복하자'는 응원 영상을 보냈습니다. 모두가 함께한 봉사활동으로 대구시장 표창을 받았고 2020년에는 <사>여성과 도시·영남일보로부터 제1회 미터(美터)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대구 문화예술 명소 라일락뜨락코로나19를 슬기롭게 견뎌낸 권 대표는 '라일락뜨락1956'을 대구의 문화예술 명소로 만들고 있다. 그곳에선 주민과 함께하는 노래자랑과 음악회, 연주회, 시 낭송회, 전시회 등이 열린다. 그의 열정과 다재다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매일 새로운 일을 찾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바리스타로서 커피를 볶고 내리며, 시각디자이너로서 브랜드 개발 작업도 쉼 없이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이상화 시인을 주제로 한 곡의 노랫말과 뮤지컬 극본을 썼습니다. 북성로를 주제로 한 노래 5곡과 달성군 명소 4곳에 대한 노랫말을 쓰는 등 작사가로도 데뷔(?)했습니다. 음악인들과 협업해 여기서 '북성로 노래자랑'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열린 공간인 만큼 지역 예술인이면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알리고 주민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많은 문화예술 행사가 열리길 바랍니다. 특히 이상화 시인의 시와 민족정신을 계승하고 알리고 싶습니다. 매년 이상화 시인이 작고한 4월25일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추념식을 여는 것도 그런 소망에서입니다." 권 대표는 지역 청년이 꿈을 펼치는 일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3년 연속 대구시 '청년응원카페'로 선정됐습니다. 2022년에는 제가 주최해 '청년응원 한마당, 멍석을 깔다'를 열었습니다. 여러 분야의 예술지망생을 추천 받아 지역 기업의 후원으로 장학금을 지급했던 게 뿌듯합니다."◆"대구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의 고장" 권 대표는 이상화의 민족 정신뿐만 아니라 대구의 근현대 문화예술, 대구 정체성을 알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2020년 가을부터 6개월 동안 대구가톨릭 평화방송에서 '문화예술 라일락뜨락'이란 코너를 통해 대구의 문화예술을 알렸습니다. 지금은 TBN 대구교통방송 '대구야사'(격주 목요일 오전)라는 생방송 코너를 통해 대구의 숨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2022년 11월부터 방송해 오면서 저도 대구의 정체성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대구는 보수적이라는 이미지로 스스로 규정하고 가두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과 다릅니다. 대구는 정의감과 저항 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국채보상운동, 3·8만세운동, 2·28민주운동 등 대구에서 시작해서 전국으로 퍼져나간 역사적인 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타적인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구의 정체성은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의 고장'입니다."◆이상화를 K문화 콘텐츠로권 대표는 이상화와 그의 생가를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상화 시인은 대구를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족 저항 시인입니다. 그의 생가터 역시 대구 근대역사의 중요한 장소이자 훌륭한 문화 콘텐츠입니다. 우리나라 K팝, K컬처는 전 세계 문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콘텐츠의 힘'입니다. 독일에는 괴테하우스, 영국에는 셰익스피어 생가가 최고의 문화 관광지가 되고 있습니다. 조앤 K 롤링은 스코틀랜드 '엘리펀트하우스'란 카페에서 에든버러성을 바라보고 얻은 영감으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썼습니다. 이상화 생가터 '라일락뜨락1956'에서도 한국판 조앤 K 롤링이 나오길 희망합니다."권 대표는 이상화 생가터를 전국에 알리고 관광명소로 만들려면 해결돼야 할 두 가지 과제가 있다고 했다. "이곳 마당에는 이상화가 보고 자랐을 수령 200살의 라일락 나무가 있습니다. 3년 전 광복회 대구지부와 함께 이상화 나무 2세목을 배양해 전국의 학교로 보내 '상화 정신'을 알리는 사업을 추진했으나 배양 실패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 사업을 관청에서라도 재추진해주면 좋겠습니다. 또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은 2년 전 대구대표 인물 4명(이상화·이인성·이병철·박태준)을 선정해 도보여행 코스를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 사이에선 이상화 생가터를 못 찾겠다는 불만이 많습니다. 구청 차원의 생가 체험 프로그램 및 홍보물 안내가 안 돼 있기 때문입니다. '라일락뜨락1956'은 민간 주도형 역사·문화를 기반으로 한 도시재생 창업 모델입니다. 청년들의 지역 이탈을 막고, 청년 창업을 이끄는 성공 모델을 확산하려면 지자체의 관심과 적극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허석윤 논설위원 hsyoon@yeongnam.com권도훈 '라일락뜨락 1956' 대표가 대구 중구 라일락뜨락 1956 내부의 이상화 나무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훈 대표는 "라일락뜨락 1956은 이상화 시인의 생가터에 이상화 시인을 모티브로 세운 복합문화공간으로 청년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심어주고 용기와 정의감 등의 상화정신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자유성] 2024 최악의 해?
새해 벽두부터 몰아친 재해와 테러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충격적인 소식은 가장 먼저 일본에서 들려왔다. 지난 1일 이시카와현 노토 반도에서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해 이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현재 확인된 사망자만 130명에 이른다. 지난 3일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란에서 벌인 자살 폭탄 테러로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수니파인 IS가 적대관계에 있는 이란(시아파)을 기습 공격한 것이다. 또 유럽은 기상 이변에 시달리고 있다. 북유럽은 영하 40℃ 이하의 역대급 한파에 꽁꽁 얼어붙었고, 서유럽은 때 아닌 겨울 폭우에 물난리를 겪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심상치 않은 재난이 잇따르자 새삼 노스트라다무스가 소환되고 있다. 16세기 프랑스 점성가인 그의 예언이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400년 전에 그가 쓴 예언서는 2024년을 최악의 해로 꼽았다고 한다. 유례없는 기후재앙에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큰 전쟁까지 벌어진다는 것이다. 얼추 지금 상황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이미 그는 프랑스 혁명, 히틀러 등장, 2차 세계대전, 9·11 테러 등 역사적 사건을 예언했다지 않는가.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은 흥밋거리일 뿐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실 그의 예언은 대부분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돼 있어 모호한 구석이 많다.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의 예언이 여태껏 회자되는 건 비관론을 좋아하는 호사가들 때문이다. 세상 앞일을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올해가 최고의 해가 될 수도 있다.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시절인연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혹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바로 옆에 두고도 만날 수 없고 손에 넣을 수 없는 법이다…(중략)/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헤어지는 것은 인연이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재물이든/ 내 품 안에 내 마음속에서 내 손 안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스님이 '시절인연'에 대해 쓴 글의 일부다. 법정스님 육신은 13년 전에 이 세상과 시절인연이 끝났지만, 그의 가르침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우리 속담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잠시 스쳐 지나간 사람들과의 인연도 소중하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반론도 있다. '옷깃'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과 가슴을 감싸는 부분이어서 스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 포옹할 정도로 남녀 사이가 깊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현대사회에서 인연의 뜻은 주로 인간관계에 한정된다. 하지만 불교에서 이 말을 처음 쓴 것은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석가모니는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이 합해져서 생겨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고 했다. 사람도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우주 만물과 연결돼 명멸하는 연기(緣起)적 존재라는 것이다. 올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이맘때면 누구나 한 해를 되돌아보기 마련이다. 건강과 행복을 누렸다면 운이 좋았던 것에 감사할 일이다. 그렇지 못했더라도 그 또한 삶의 한 과정이다. 받아들일수록 고통은 적어진다. 시절인연은 우리에게 집착과 낙담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잘파세대
우리나라에는 특정 세대를 구분하는 용어가 많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공통적 경험을 하거나 행동양식을 공유한 연령대별 이름이 붙어 있다. 6·25 전쟁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386세대(1960~1969), 서양과 일본문화를 체험한 X세대(1970~1980),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즈음 성인이 된 밀레니얼 세대(Y세대·1980~1994), 디지털 환경을 접하며 자란 Z세대(1995~2012), 진정한 디지털 원주민으로 불리는 알파세대(2012년 이후 출생)로 나뉜다. 마케팅 업계는 이것만으로 성에 안 차는지 젊은 세대를 새로 묶은 신조어를 만들어 낸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MZ세대도 옛말이 되고 있다. 최근 들어 Z세대와 알파세대를 결합한 '잘파세대'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대략 30세 이하인 잘파세대의 최대 특징은 디지털 문화에 최적화돼 있다는 점이다. 걸음마를 배우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먼저 접할 정도니 그럴 만도 하다. 이들의 삶은 온통 디지털로 채워져 있다. 아날로그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잘파세대의 하루는 온라인에서 시작해 온라인으로 끝난다. 일하고, 소통하고, 즐기는 모든 일상이 온라인 공간을 통해 이뤄진다. 잘파세대는 여러 가지 정보를 동시에 습득하고 이해하는 멀티태스킹에 능하다.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현재에 충실하면서 삶을 즐기는 특성도 있다. 반면 집중력과 인내심이 약하고 이기주의 성향이 강한 건 단점이다. '디지털 신인류'인 잘파세대가 이끌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이 궁금하다.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현존
남편이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라며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세상에서 소중한 세 가지 금이 황금, 소금, 지금이래. 그중에서도 지금이 가장 중요하고~' 아내가 곧바로 답했다. "내게 소중한 세 가지 금은 지금, 현금, 입금!" 남편이 다시 문자를 보냈다. "방금, 조금, 송금!" 유머지만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이 부부는 적어도 '지금'의 소중함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지금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다수는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에 사로잡혀 있다. 고금의 영적 스승들은 시간은 환상이라고 가르친다. 과거나 미래 시간은 실재하지 않으며 단지 사람의 머릿속 관념일 뿐이라는 것. 오해는 없어야겠다. 그들이 말하는 시간이란 실생활에 필요한 도구적 시간 개념이 아니다.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빠져드는 심리적 시간을 가리킨다. 받아들이기 쉽진 않지만 맞는 말이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생각으로 채워져 있다. 하루에도 수만 번 생각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 생각은 모두 과거 기억 아니면 미래 상상이다. 이처럼 생각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어느 것도 실체가 없다.사람들이 가끔 생각과 시간 차원을 벗어날 때도 있다. 자동차가 갑자기 돌진해 오면 생각할 겨를이 없다. 대자연의 위대함에도 생각은 멎는다. 진정 살아 있는 '현존' 상태가 된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습관적으로 현재에서 도피해 다시 생각과 시간의 가상세계를 헤맨다. 그곳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 두려움의 환영이 지배한다. 현존의 삶은 늘 묻는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허석윤 논설위원
[월요칼럼] '서울민국'의 저출산 재앙
우리나라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이다. 지난해보다 0.1명이나 줄었다. 간당간당하다. 0.6명대로 내려갈 날도 멀지 않았다. 인구 감소세도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어디서 멈출지 가늠이 안 된다. 그럼에도 어느새 우리 사회는 무덤덤해졌다. 아직 숫자로만 접하는 정도여서 그럴까. 정부와 정치권도 무관심하다. 당장 눈앞의 총선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되레 해외에서 더 걱정이다. 지난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한 편의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지만 내용이 더 자극적이다. 이 칼럼을 쓴 로스 다우서트는 "한국인구 감소가 중세 유럽 흑사병 창궐 때보다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그의 주장이 괜한 호들갑이 아니라는 것이다.알다시피 14세기 흑사병은 인류 최악의 전염병이었다. 유럽 일대를 휩쓸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이 희생됐고, 심지어 고려까지 전파돼 수십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학계에선 흑사병으로 당시 세계 인구(4억5천만명)의 22%가량인 1억명이 줄어든 것으로 추산한다. 다우서트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흑사병을 거론했을 것이다. 그는 한국이 0.7명 수준 출산율을 유지하면 한 세대 만에 인구가 65%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흑사병 때보다 3배나 빠른 인구감소가 나타난다는 것. 물론 단순 비교의 오류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인구 급감이 흑사병에 버금가는 대재앙인 건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우리 정부가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본격 대처에 나선 게 2006년부터다. 그때 합계출산율은 1.13명이었다. 이후 17년간 출산율 제고를 위해 투입한 예산이 400조원 가까이 된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은 거의 반 토막이 났다.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이는 틀린 표현이다. 지금까지 정부 대책은 돈을 쓴 게 다였다. 결코 '백약'이 아니었다. 저출산 원인은 생각보다 복잡다단하다. 청년층의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과도한 경쟁과 비교 문화, 비혼주의 확산 등과 연동돼 있다. 돈과 함께 다양한 복합 처방이 필요한 이유다. 사실 우리의 저출산 원인과 해법은 거의 알려져 있어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유독 저출산의 주요 배경인 도시인구 집중은 간과된다. 인구밀도가 높고 삶이 팍팍할수록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건 당연한 이치인데도 그렇다. 실제로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도시인구 집중이 완화되면 합계출산율이 0.4명 이상 높아진다. 이는 여타 출산율 제고 정책 효과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게 문제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의 도시 인구는 서울과 수도권 인구를 일컫는다. 청년들의 수도권 쏠림이 그치지 않는 한 저출산 해결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다.현재 한국 청년(19~34세) 80%가 미혼이다. 특히 수도권 거주 청년들의 미혼 비율이 훨씬 높다. 앞으로가 더 걱정일 수밖에 없다. 지방 청년들의 수도권 이동이 늘어날수록 저출산이 심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어쩌고 있나. 여당은 김포와 인근 도시들의 서울 편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아무리 총선용 카드라지만 경박하고 무책임하다. '서울민국' 영토가 확장하면 희생양은 단지 지방만이 아니다. 나라 전체의 미래도 암울해진다. 무엇보다 저출산 재앙을 피할 수 없다. 허석윤 논설위원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폴리코노미
내년엔 지구촌이 선거로 들썩일 전망이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40억명이 투표소로 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대선·총선(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선(3월), 한국 총선(4월), 인도 총선(5월), 유럽의회 선거(6월), 브라질 지방선거(10월)가 줄줄이 이어진다. 세계적 관심사인 미국 대선 투표도 11월5일 치러진다. 이처럼 전쟁 중인 러시아를 포함해 세계 강대국들의 선거가 한 해에 몰려 있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국제 정세가 요동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년 세계 경제 전망의 키워드가 '선거'인 것도 당연해 보인다.내년 글로벌 경제가 '폴리코노미(Policonomy)'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폴리틱스(politics·정치)와 이코노미(economy·경제)의 합성어로, 정치가 경제를 휘두르는 현상을 뜻한다. 폴리코노미의 대표적인 사례가 선거 포퓰리즘이다. 선거철에 막대한 돈이 풀리는 건 만국 공통이다. 그 정도가 심하면 인플레이션이 촉발되고 국가부채가 급증한다. 선거가 민주주의 축제라지만 경제에는 독약이 될 수 있다. 경제학계는 지구촌 선거로 인한 세계 각국의 재정 적자 확대가 신흥국 자본 유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국은 대표적인 신흥국이지만 자본 유출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선거 때마다 기승을 부리는 포퓰리즘 폐해가 우려된다. 이미 여야 할 것 없이 총선용 선심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물론 그 뒷감당은 정치인이 아닌 국민 몫이다.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외로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중략)…/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다. 수선화의 꽃말은 외로움이다. 시에서는 외로움 자체가 사람이라고 했다.물론 외로움은 시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수많은 문학가와 예술가가 천착해 온 주제다. 당연한 일이다. 외로움이란 게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특성 아닌가. 사실 외로움 자체에는 나쁘고 좋고가 없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서양 의학계를 중심으로 외로움을 개인 차원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보는 추세다. 며칠 전 WHO(세계보건기구)도 전 세계적인 외로움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섰다. 미국 보건 정책을 총괄하는 비벡 머시 박사를 영입해 '사회적 연결위원회'를 출범시켰다.머시 박사는 외로움을 정서의 문제가 아닌 질환으로 보는 대표적인 의학자다. 그는 "외로움이 비만보다 건강에 안 좋다. 심장병 위험을 30%나 증가시킨다"면서 심지어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만큼 해롭다"고 주장한다. 외로움에 대한 머시 박사의 경고가 섬뜩하다. 우리 주변에도 은둔형 외톨이가 적지 않다. 노인의 고립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외로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허석윤 논설위원
[월요칼럼] 지방시대와 지방언론
예전에 정부와 정치권의 예산낭비 취재를 위해 미국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에 간 적이 있었다. 취재 목적은 아니었지만 현지 시민단체 관계자들로부터 미국의 언론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나빴다. 특히 로컬 저널리즘의 위기가 심각했다. 경영난으로 줄줄이 문을 닫는 지역 신문사와 그에 따른 언론인의 대량 실직 사태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다. 한국의 시·군·구에 해당하는 카운티 중에 로컬신문이 없는 곳도 많다고 했다. 그로부터 20년가량 흐른 지금, 쇠락의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신문광고 시장 축소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미국이 특히 심하다. 2000년대 초에 비해 최대 70%가량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 신문산업이 온전할 리 없다. 급격히 위축되는 와중에 양극화가 극심해졌다. 뉴욕 타임스 같은 대형 신문사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했으나 지역신문은 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문을 닫은 지역신문사가 2천500개에 이른다. 전체 3분의 1 수준이다. 이로 인해 미국 3천140여 개 카운티 중 일간지가 있는 곳은 30%에 불과하다. 대부분 카운티에는 단 하나의 주간지만 있다. 심지어 주간지마저 사라진 카운티도 200곳이 넘는다. 인구기준으로 보면 미국인 20% 이상이 지역신문이 없는 곳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나온 용어가 '뉴스 사막화' 현상이다. 미국에서의 뉴스 사막화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미국 사회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위기로 받아들인다. 지역신문이 사라지면 커뮤니티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지역주민의 정치 무관심을 불러올 것으로 우려한다. 또 지방 정부와 기업에 대한 부정부패 감시도 불가능하다. 미국 정부와 의회(하원)가 직접 나서 지역신문을 살리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7억달러(2조원) 지원을 명시한 '지역언론 지속가능법'의 미국 상원통과가 관건이다. 이와 별도로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주(州) 정부 차원의 지역언론 지원도 크게 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건 미국 20개 비영리단체가 지역언론에 5억달러를 기부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본고장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제 미국 사회에서 지역언론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주요 인프라로서 보호받는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미국과 같은 '뉴스 사막화'는 없다. 지방(지역)언론이 탄탄해서가 아니다. 단지 국토가 좁아서다. 오히려 지방언론 상황은 미국보다 열악하다. 좁디좁은 시장에서 제살깎기 경쟁을 벌인 지 오래다. 특히 지방신문의 경우 상당수가 생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방시대'를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지방언론은 없다. 사실 애초부터 별 기대도 없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방언론에 대한 홀대가 갈수록 심하다. 현 정부는 지역신문발전기금조차 못마땅한 모양이다. 지난 2년간 20억원 줄인 것도 모자라 내년엔 10억원 더 삭감한 72억원만 준단다. 이렇게 되면 2021년 115억원이던 기금이 3년 새 40% 가까이 쪼그라든다. 지역신문발전기금은 지방언론의 가느다란 생명줄이다. 얼마 되지도 않지만 그나마 지역사회 공익과 건전한 여론 조성에 쓰인다. 지방언론을 근간으로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게 무슨 지방시대인가.허석윤 논설위원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횡재세
횡재(橫財)의 사전적 의미는 뜻밖에 얻은 재물이다. 영어로는 '윈드폴(windfall)'이라고 한다. 중세 영국에서 생겨난 말이다. 당시 영국은 벌채를 엄격히 금지했지만 폭풍에 쓰러진 나무를 주워가는 건 허용했다. 이런 나무는 빈민들에게 그야말로 '횡재'였던 셈이다. 이처럼 운 좋게 공짜로 취한 이득일지라도 세금을 매기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20여 년 전까지는 그랬다. 횡재세(windfall tax)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7년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 총리 집권 직후였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시절 단행한 국영기업 민영화 덕분에 떼돈을 번 사기업들에 시세 차익의 23%를 토해내게 했다. 이렇게 거둔 52억파운드(현재 가치 20조원)를 복지 재원으로 활용했다.지난해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발(發) 횡재세가 등장했다. 영국 정부는 수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에너지업체들에 최대 40%가 넘는 초과이득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어 독일·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헝가리 등도 횡재세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최근 들어선 고금리로 인해 짭짤한 재미를 본 유럽 은행들까지 횡재세 타깃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은행 횡재세 도입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은행권 이자 수익이 역대 최고인 60조원으로 추정된다니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은행 임직원의 성과급 잔치는 고금리에 등골이 휘는 서민 입장에선 열불이 날 만하다. 최근 대통령도 "소상공인이 은행 종노릇 하는 것 같다"며 직격했다. 사회적 비판이 커지자 은행권이 부랴부랴 상생 방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국민 기대에는 못 미친다. 허석윤 논설위원
[논설위원의 직터뷰] 박창원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대구경북 해방공간 민중의 삶은 지금 우리와 맞닿아 있죠"
'일요일은 쉽니다.' 영남일보 1947년 10월18일자에 보도된 기사다. 대구 달성동의 어느 기와집에 붙어 있는 글귀였다.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글을 써서 붙였을까. 해방 이태 뒤인 그해 5월 경북에는 콜레라가 번졌다. 그해 말까지 4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졸지에 가족과 이웃을 잃은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해방 직후부터 '삼순구식(한 달 동안 아홉 번 밥을 먹는다)'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민중의 삶은 비참했다. 식량난으로 촉발된 대구 10월항쟁은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해방의 기쁨은 온데간데없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넘기기가 숨찼다. 일없이 빈둥거리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희망은 희미했고 삶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했다. 그래도 살아야겠기에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부여잡으려 했다. 달성동의 그 집은 지푸라기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꼭두새벽부터 문전성시를 이뤘다. 장봉사가 주인인 점집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와 하루도 쉴 틈이 없자 '일요일은 쉽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였던 것이다. 휴일 개념조차 흐릿했던 빈한한 시절이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장봉사가 건넨 부적으로 위안을 삼았다. 아이의 저고리에 이름을 써서 세 번 절하면 돈을 벌고 병이 낫는다는 식의 기이한 처방에 감지덕지했다. 없는 살림에 적지 않은 복채를 내고 받은 대가였다. 해방공간의 신문 기사를 인용한 장봉사 이야기는 박창원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가 펴낸 책 '조금 지난 뉴-쓰'(2019)에 '달성동 장봉사'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이 책은 할머니 무릎베개로 옛이야기를 듣듯 '멀미 나는 부영뻐스' '70년 전의 스카이캐슬' 등 다양한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대구경북의 시간여행은 '오늘 보는 그제 뉴-쓰'(2023)로 이어졌다. 그는 앞서 '내가 네게 묻다'라는 인물 에세이를 내기도 했다. 박 교수는 신문 지면 위를 누비며 대구경북 해방공간에서 펼쳐진 숱한 이야기들을 되살려 맛깔나게 풀어낸다. 그의 글은 2017년 연재된 '영남일보로 보는 시간 여행'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박 교수의 흥미로운 시간여행 얘기를 들어봤다. 2017년 '영남일보로 보는 시간여행' 연재 2019년 '조금 지난 뉴-쓰' 책 시리즈 시작 올 4년 만에 후속여행 '오늘 보는 그제…''지금의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란 궁금증 1945~50년 지면 누비며 숱한 얘기로 풀어 내년 달서아트센터 예술아카데미 특강 ▶해방 후 삶이 힘들었던 탓에 사람들이 점집을 많이 찾았네요. "대구경북에는 당시 점쟁이가 많았습니다. 오죽했으면 '대구경북의 명물'이라는 말이 나돌았을까요. 불안한 삶의 탈출구로 점쟁이를 찾는 수요가 많으니 공급 역시 늘어난 것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불안한 현실의 또 다른 돌파구는 교육열로 나타났습니다. 중학교의 입학 문이 좁다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수업이 성행했습니다. 음악·미술 같은 예능과목은 정규 수업에서 배제될 정도였습니다. 곧 수능이 치러지는데요, 그때도 다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려 했습니다. 1950년 대구지역 남자중학교의 졸업생은 750여 명이었는데 졸업생 열 중에 아홉은 서울의 대학을 선호했습니다. 당시 중학교는 고등학교 기간을 합친 6년제였습니다. 같은 해 여중 졸업생인 70여 명도 엇비슷했습니다. 다만 부모들의 반응이 달랐는데요. 대학 진학을 말리는 분위기였죠. 여학생들은 중학 졸업 나이가 대개 20세를 넘었습니다. 대학 4년을 지나면 나이가 너무 많아 혼기를 놓칠 수 있다는 걱정을 했죠."▶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과 흡사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해방공간 대구경북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뭡니까."시작은 단순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였습니다. '우리'는 대구와 경북 사람이니까 굳이 사족을 달 필요가 없겠지요. '어디'는 해방공간이었습니다. 해방은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살아가는 노정의 첫 단추를 끼운 시기입니다. 가장 가까운 과거죠. 명망가나 위정자의 삶보다는 민중들의 일상에 눈이 먼저 갔죠. 지금의 시민들 삶과 비슷할 테니까요. 새로이 입은 옷의 첫 단추가 어찌 끼워졌는지도 궁금했습니다. 해방과 미군정기,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억압과 전환의 시기에 대구경북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거창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고 미래는 현재를 기반으로 나아간다잖아요."▶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모형이라는 점에서 해방공간을 선택한 의미가 있군요. 그렇더라도 굳이 신문 기사로 그 시기를 조명하려는 이유는."1949년 대구의 집값이 내린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민생고를 견디다 못해 집을 담보로 고리대금업자와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습니다. 대구부내 열 중에 여덟 집은 빚에 쪼들렸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 매물로 내놓는 집이 많았습니다. 매물은 늘어도 거래는 절벽이었습니다. 한 번 오른 집값이 내리지 않았던 탓이죠. 다수의 무주택자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해방 후 일본인이 살던 빈 적산가옥은 모리배나 배경이 있는 사람들이 이미 여러 채를 소유한 상태였습니다. 이 같은 실상을 신문 기사는 낱낱이 전하고 있었습니다. 씨줄과 날줄로 엮인 기사 속에는 당시 사람들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대구는 신문의 도시였습니다. 해방된 그해 9월 진보 색채의 민성일보를 시작으로 영남일보, 대구시보, 부녀일보, 남선경제신문 등이 잇따라 창간했습니다. 신문은 사람들 일상을 담는 또 하나의 '광장' 역할을 했죠. 신문 기사를 징검다리 삼아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저도 '오늘 보는 그제 뉴-쓰'를 단숨에 읽었는데 '가을바람에 사라진 순정' '극장 관객 실종사건' 등 내용이 기억에 남네요. 특히 서문에 "시간은 뒤로도 흐른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오늘 보는 그제 뉴-쓰'는 '조금 지난 뉴-쓰'에 이은 후속 여행이었는데요. 여행 시기는 1945~1950년입니다. '가을바람에 사라진 순정'처럼 신문에 연재했거나 기사를 다듬어 정담(情談)으로 엮었습니다. 정담은 주로 과거를 묻는 이야기에 어울립니다. 이런 작업에는 늘 아쉬움이 따르는데요. 해방공간 대구경북에서 발행됐던 신문은 검색할 수 없습니다. 기사를 보려면 하나하나 찾아 눈이 아플 정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판독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꽤 있고요. 여러 시기의 신문을 숙독해야 하나의 스토리 구성이 됩니다. 예상 외로 해방공간 민중의 일상 자료는 빈약한 편입니다. 정치적 격변기와 전쟁, 주류세력의 교체와도 연관이 있겠지요. 검색을 통한 신문 기사의 정보 활용은 지역의 역사 찾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관심이 필요한 대목이죠. 첨단시대에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웬 말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요. 이런 해명은 어떨까요. 사람들은 십중팔구 과거가 있는 도시로 여행을 갑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말이죠. 과거와의 동행은 즐거움과 충전, 성찰을 한꺼번에 가져다주기도 하죠."▶신문을 매개로 그 시절 민중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연구를 하고 있는데요. 그 시절의 언론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이 있는지요."1947년 3월25일 한밤중에 만경관 앞에서 영남일보 방수복 기자가 경찰로부터 폭행을 당했어요. 대구신문기자회는 5관구경찰청(경북경찰청)에 항의문을 전달하고 출입을 중단했죠. 그런데 며칠 뒤 부녀일보 최석채 편집국장이 경북경찰청에 구속됩니다. 이 사건을 권력이 저지른 테러로 규정해 연이틀 경찰 폭행을 비판하는 기사를 대서특필하자 보복이 뒤따른 것이죠. 경찰의 영남일보 기자 구타 사건 보도로 다른 신문의 편집국장이 구속된 것입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언론의 본질적 기능인 권력 비판이 침해당할 때는 언론자유 수호를 위해 기자들이 이른바 동업자 정신으로 뭉쳐 저항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뉴-쓰'시리즈 3편도 나오나요. "내년에 '시리즈3' 준비를 시작하려 합니다. 대구경북의 진보성이나 역동성을 제대로 전달할지 고민은 됩니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는 노래 제목으로는 그만이죠. 하지만 현실은 과거를 물어야 삶이 오만하지 않고 풍부해지지 않을까요. 미래 세대라고 다를까요. 과거의 대구 이야기와 친해지도록 SNS 활용을 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최근 책 속 '대구의 연인 금달네'에 관심을 보인 젊은 기획자가 있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웃음) 아, 중요한 얘기를 빠뜨릴 뻔했네요. 2024년 대구경북 시간여행 스타트는 달서아트센터 예술아카데미 봄학기 특강입니다."박 교수 고향은 대구가 아니다. 대구 사람도 아닌데 대구경북 해방공간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특히 옛 신문을 일일이 찾아 당시 시대상과 지역민의 삶을 재조명하는 건 박 교수가 유일하다. 굳이 그 이유를 물었다가 핀잔 같은 농담을 들었다. "이게 돈 되는 일이 아니라서 그렇지 않을까요~" 허석윤 논설위원 hsyoon@yeongnam.com박창원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는 옛 지역 신문을 교재 삼아 대구경북 해방공간에서 펼쳐진 민중들의 삶을 연구하고 있다. 책과 신문, 시민 특강을 통해 박 교수가 들려주는 당시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련한 추억과 함께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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