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망상의 세계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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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0-28  |  수정 2024-10-28 07:08  |  발행일 2024-10-28 제23면

[월요칼럼] 망상의 세계
허석윤 논설위원

지난달 어느 주말에 늦은 아침을 해결하려고 동네 식당에 갔다. 손님은 40대로 보이는 남자뿐이었다. 그의 테이블에는 국밥과 소주 한병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는 숟가락을 들지도 않은 채 계속 말만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선이어폰 같은 걸 끼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예전에도 길에서 그런 사람들을 몇번 봤기 때문이다. 그래도 식당의 그 사람은 고함을 지르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교적 멀쩡한 편이었다. 사실 그와 우리는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이야기를 조금 더 말로 내뱉을 뿐이다. 우리도 가끔 짧은 독백을 하거나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는가.

사람은 말 그대로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데 대부분이 망상(妄想)이다.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모든 고통은 망상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쳤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도 "인간을 괴롭히는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도, 망상도 없앨 수 없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다. 망상의 고통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 있기는 하다. 망상이 망상임을 알아채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코 쉽지는 않다. 인간은 자신의 망상이 실제라고 믿는 습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망상을 말로 떠벌이는 것보다 이게 훨씬 더 위험하다. 오래전 '재벌가 며느리 살해 사건'이 우리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적이 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바람을 핀다고 확신해 범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며느리는 결백했다. 이 사건은 인간의 망상이 낳는 수많은 비극 중 극히 일부 사례다.

당연한 얘기지만 망상의 규모가 거대해지고 집단화할수록 해악은 커진다. 특히 절대권력을 거머쥔 독재자의 망상은 전체 인류를 위협할 정도다. 아돌프 히틀러가 대표적이다. 그는 게르만족 우월주의 망상에 사로잡혔고, 독일 국민들에게 자신의 환상을 심었다. 히틀러의 망상 실현 방법은 폭력과 전체주의였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는 절망한 자들이 정교한 허구를 만들고, 그 허구를 폭력에 의해 현실로 바꾸는 작업"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권력자의 망상을 폭력으로 정당화하는 도구가 전체주의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히틀러의 망상은 생지옥을 만들었다. 물론 과거 독일식 전체주의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살육도 누군가가 집착한 망상의 산물이다.

인간사회를 망상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건 주로 정치가 하는 일이다. 정치 체제가 전체주의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수많은 정치인들이 약속했던 유토피아 같은 사회는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연하다. 현실세계에서 완전한 평등과 자유, 정의는 희망고문과 같다. 그런데도 정치는 이를 숭고한 이상(理想)으로 포장해 가능할 것처럼 현혹한다. 그나마 정치가 장밋빛 미래만 소근댄다면 다행이다. 감언이설은 듣기라도 좋다. 하지만 정치적 망상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형태로 표출되기 십상이다. 요즘 한국정치가 딱 그렇다. 망상에 뿌리를 둔 온갖 음모론과 혹세무민하는 선동이 난무한다. 망상 정치가 퍼뜨리는 적대와 혐오, 공포 바이러스에 나라가 병들고 있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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