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왕의 나라가 아니었다. 사실상 국정을 좌지우지한 건 신하였다. 개국 이념부터가 군약신강(君弱臣强)이었다. 정도전은 조선을 입헌군주제로 만들고자 했다. 이방원에게 참살 당해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의 정치 철학은 면면히 이어졌다. 태종과 연산군 등이 신하를 누른 적은 있으나, 그건 500년 조선 역사에서 예외적 사례였다. 신하들은 왕명을 거부할 정도로 힘이 셌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는 정치적 수사(修辭)였을 뿐, 실제로는 "아니되옵니다" "통촉해 주시옵소서"란 말로 왕을 압박했다.
조선시대 왕권 남용을 막은 건 신하들의 쓴소리 뿐만이 아니었다. 확실한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을 합쳐서 부르는 삼사(三司)가 대표적이다. 언론 기능을 맡은 삼사는 왕의 처신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왕에게 직소(直訴)를 올렸다. 경연(經筵)이란 수단도 있었다. 이는 단순한 학문 토론장이 아니었다. 진짜 목적은 신하들이 왕에게 통치자의 소양을 주입하는 것이었다. 조선왕조실록도 빼놓을 수 없다. 사관(史官)들은 왕의 언행을 모조리 기록했다. 왕의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역사에 오명을 남기기 싫은 왕들은 늘 조심해야 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희대의 미스터리다. 제왕적 대통령제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은 엄연한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도 군대를 동원한 친위쿠데타 시도가 가능했던 건 왕처럼 구는 대통령 밑에 용기 있는 '신하'가 없었던 탓이 크다. '군강신약(君强臣弱)'의 권력 구도가 낳은 비극이다. 나라를 폭망케 한 비상계엄을 단 한명이라도 목숨 걸고 반대했다면 어땠을까.
허석윤 논설위원
조선시대 왕권 남용을 막은 건 신하들의 쓴소리 뿐만이 아니었다. 확실한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을 합쳐서 부르는 삼사(三司)가 대표적이다. 언론 기능을 맡은 삼사는 왕의 처신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왕에게 직소(直訴)를 올렸다. 경연(經筵)이란 수단도 있었다. 이는 단순한 학문 토론장이 아니었다. 진짜 목적은 신하들이 왕에게 통치자의 소양을 주입하는 것이었다. 조선왕조실록도 빼놓을 수 없다. 사관(史官)들은 왕의 언행을 모조리 기록했다. 왕의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역사에 오명을 남기기 싫은 왕들은 늘 조심해야 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희대의 미스터리다. 제왕적 대통령제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은 엄연한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도 군대를 동원한 친위쿠데타 시도가 가능했던 건 왕처럼 구는 대통령 밑에 용기 있는 '신하'가 없었던 탓이 크다. '군강신약(君强臣弱)'의 권력 구도가 낳은 비극이다. 나라를 폭망케 한 비상계엄을 단 한명이라도 목숨 걸고 반대했다면 어땠을까.
허석윤 논설위원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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