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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76주년 사람과 지역의 가치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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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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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종교전쟁
인류와 전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문명사학자 윌 듀랜트에 따르면 역사에 기록된 3천421년 중 전쟁이 없었던 해는 268년에 불과했다. 이 기간 평화의 시기가 8%도 안 된 것이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전쟁 횟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1945~1990년 2천340주 중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단 3주뿐"이라고 했다. 인류사 전체를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는 비교적 평화로운 때였다. 그럼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전쟁의 주된 원인으로 경제나 이념, 인종·종교적 차이가 꼽힌다. 이 중 한 가지 요인으로 발발한 것처럼 보이는 전쟁도 그 이면에는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 종교 간 갈등이 불씨가 된 전쟁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종교전쟁'은 종교개혁을 빌미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스가 16~17세기 유럽 내에서 벌인 일련의 전쟁을 일컫는다. 하지만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충돌한 십자군 전쟁(1095~1291년)이 진정한 의미의 종교전쟁이라고 할 만하다.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도 유대교와 이슬람교 간 해묵은 갈등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서구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 간 전면적인 패권 싸움으로 번지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3차 세계대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괜한 호들갑이라고 하기에는 전쟁 상황이 갈수록 심각하다. 인류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이 닥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종교로 포장된 인간의 증오와 광기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핑계
매일 저녁 식당에서 혼자 소주 2병을 마시는 중년 남성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한 병만 시켰다. 식당 주인이 궁금해져서 그 이유를 물었다. 남자가 답했다. "원래 한 병은 내 것이었고, 다른 한 병은 술 좋아하던 죽은 친구를 위해 대신 마셔준 것이었소. 그런데 나는 술을 끊었소." 물론 유머다. 저승에 있는 친구의 '흑기사'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알코올 중독자의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하지만 마냥 비웃기에는 켕기는 게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신의 잘못이나 은밀한 욕구를 이런저런 핑계로 그럴싸하게 포장하지 않는가.인간은 언제부터 핑계를 대기 시작할까? 심리학계에서 통용되는 연구에 따르면 평균 6세 때부터 자아 정체성에 눈을 뜨게 되고 7세 때부터 남에게 비치는 자기 이미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9세가 되면 자신의 결점이나 실수를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보호 본능이 강해져 온갖 핑계를 댄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형성된 핑계 습관은 어른이 돼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더욱 심해지면 모든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 병적인 상태가 된다. 극악한 범죄자들조차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사회적 차별의 피해자라고 여긴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우리나라에서 핑계를 가장 잘 대는 부류를 꼽으라면 단연 정치인이다. 물론 그들의 핑곗거리는 죄다 '국민'이다. 이전투구의 정쟁과 막말의 이유도 "국민이 원해서, 국민을 위해서"라고 한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누구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허석윤 논설위원
[월요칼럼] 망해가는 대한민국?
올해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다. 전쟁 직후 국토의 80%는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로 아프리카 최빈국 수준이었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70년 후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4만달러를 바라보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성장 신화다. 기적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올해 미국 매체 US뉴스앤월드리포트가 경제·군사·외교력을 합산해 순위를 매긴 '세계에서 강력한 국가' 6위에 랭크됐다. 우리가 지난해보다 두 계단 상승하면서 8위로 내려앉은 일본을 제친 것. 반도체·스마트폰·철강·조선 등 기간산업이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라 있는 덕분이다. 특히 조선업의 경우 지구촌 선박 발주량의 37%를 수주하는 압도적 세계 1위다. 여기에다 K팝, 드라마 등 한류 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마냥 좋아하기엔 이르다. 화려한 압축성장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갈수록 짙어지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저임금 노동자 비율, 가계부채, 사교육비 지출, 근무시간 등 한국의 1위 항목이 적지 않다. 나아가 성형 건수, 명품 소비, 자살률, 저출산은 불명예스러운 세계 1위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게 저출산임은 물론이다. 정부가 지난 16년간 저출산 대책비로 260조원을 쏟아부었다지만 전혀 효과가 없다. 되레 출산율 하강 곡선은 가팔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무감각해진 탓인지 위기 의식도 별로 없다. 정작 해외에서 한국을 더 걱정한다. 이달 초에 구독자 수 2천만명이 넘는 인기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가 올린 '한국은 왜 망해가나'라는 제목의 영상이 꽤 화제가 됐다. 한국의 저출산 추세가 이어진다면 100년 안에 청년 인구가 94%나 줄어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그러면서 영상 섬네일에 녹아내리는 태극기를 내걸어 섬뜩한 경고를 날렸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교육방송(EBS) 다큐멘터리 예고편에 찍힌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사실을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며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인종·성별 분야 전문가인 윌리엄스 교수조차 믿을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한국의 저출산이 국제 이슈가 되면서 해외 석학들의 조언도 잇따른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 원인은 육아가 여성 몫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있다"고 꼬집었다. 기성세대와 기업 문화가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는 충고다. 타당한 지적이지만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알다시피 저출산은 사회·경제·문화적 요인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이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단시간에 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 우리 국민은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끝내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DNA를 가지고 있다. 의식 수준도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높다. 쉽게 망할 리 없다. 저출산은 '세대'가 아닌 '시대'의 문제다. 온 마을을 넘어 온 나라가 아이를 키운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청년 세대가 더 낳은 미래를 확신하면 저출산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허석윤 논설위원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고통체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되도록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타인의 학대 행위에 성적 만족을 느끼는 '마조히스트'가 드물게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정신병일 뿐이다. 정상인에게는 어떤 종류의 고통도 달가울 리 없다. 문제는 인간의 삶에서 고통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석가모니가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29세 때 출가한 이유도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고통 때문이었다. 그는 6년 만에 삶의 진리가 '무아 연기(無我 緣起)'임을 깨달아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깨달음과 거리가 먼 중생들은 여전히 '고통의 바다'에서 유랑하고 있다.현대인에게 문제가 되는 건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주로 정신적 괴로움이다. 극도로 발달한 현대문명은 안락함과 즐거움을 한껏 제공하지만 한편으론 인간 내면을 극도로 황폐화시킨다. 살벌한 생존경쟁과 단절된 인간관계,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현대인을 노이로제(신경증) 상태로 내몬다. 이 같은 정신적 고통은 어린 시절부터 쌓이기 시작해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자각하지 못한다. 무의식 수준에서 감정과 생각의 형태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두려움, 근심, 불안, 경멸, 증오, 갈망 등 온갖 부정적 감정은 해소되지 못한 정신적 고통의 분절된 형태다.현대의 영적 지도자 에크하르트 톨레는 인간 내면에는 '고통체(painbody)'가 실재한다고 가르친다. 평소에 잘 못 느끼더라도 외부 자극이나 어떤 계기로 활성화되면 '폭발'하기 마련이라고. 누군가가 별 이유도 없이 토라지거나 화를 낸다면 잠자던 고통체가 깨어난 것일 수도 있다.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일대일로
시진핑 주석은 2012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된 직후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듬해 그가 중화민족 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야심 차게 내놓은 카드가 현대판 실크로드로 불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다. 한무제 때 중동 및 로마와 교역했던 고대 실크로드를 복원·확장해 '대국굴기'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2049년까지 중국과 중앙아시아·유럽을 5개 노선(내륙 3개, 해상 2개)으로 연결하는 거대 경제·무역벨트를 완성하는 게 목표다. 현재 일대일로 참여·관계국은 150여 곳이다. 양적으로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주요 참여국 중에 선진국이 별로 없는 데다 독재 국가도 상당수여서 미래가 결코 밝아 보이지 않는다.일대일로는 중국이 참여국에 도로·철도를 깔고 항만과 공항을 짓는 인프라 투자가 핵심이다. 중국이 벌이는 글로벌 사업의 현재 성적표는 어떨까. 중국은 무역흑자의 40%를 일대일로에서 벌어들인다고 한다. 꽤 짭짤한 수입이지만 문제는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현지 사업이 줄줄이 중단되면서 스리랑카를 비롯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지는 나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일대일로의 위기는 불량채권 급증뿐만 아니다. 미국 주도하의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 구상이 더 큰 위협 요인이다. 중국은 다음 달에 베이징에서 일대일로 탄생 10주년 이벤트를 거창하게 열 계획이다. 이 행사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참석해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가진다고 한다. 일대일로가 세계 1·2위 독재자들을 연결하는 공식 통로도 되는 셈이다.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자유의지
"삶은 우리가 내린 모든 선택의 총합"이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각자가 처한 현실은 본인이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진학에서부터 취업, 결혼에 이르기까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180도 달라지지 않는가. 그렇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중대한 선택은 그리 많지 않다. 인간이 하루에 약 150번의 선택을 한다지만 대부분 자잘한 것들이다. 출근할 때 무슨 옷을 입을지, 점심으로 뭘 먹을지 따위를 결정하는 정도다. 이에 관해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일상에서 끊임없이 이뤄지는 선택의 주체는 나일까? 대부분 사람은 그렇다고 믿는다. 외부 요소에 영향받지 않고 본인만의 '자유의지'로 스스로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짜장면과 짬뽕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하지만 자유의지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찮다. 특히 최근 심리학과 뇌과학 분야에서는 자유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과학적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다. 심리학자 벤저민 리벳은 실험을 통해 인간이 어떤 결정을 내리기 약 0.5초 전에 이미 뇌의 준비전위 영역이 발화됐음을 알아냈다. 그 후 존 딜란 헤인즈가 실시한 실험에선 준비전위 발화가 무려 10초 전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의 의사 결정이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서 먼저 이뤄지는 게 사실이라면 실로 충격적이다.최근 인간 두뇌 뺨치는 인공지능의 출현도 자유의지 부정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어쩌면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말처럼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는 세상에서 있는 척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허석윤 논설위원
[월요칼럼] 중독시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로 유명하다. "행복은 쾌락이며, 쾌락은 유일한 선(善)"이라는 게 그의 신조였다.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인근의 한 정원을 구입해 '쾌락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곳에 몰려든 사람들은 주로 하층민이었다. 노예와 창녀도 있었다니 난잡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공동체는 음식과 술을 극도로 절제하는 금욕주의 집단에 가까웠다. 쾌락을 추구한다면서 금욕을 했다니 선뜻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에피쿠로스 철학이 많은 오해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대로 이해를 하려면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쾌락'을 물질적·육체적 욕구와 혼동해선 안 된다. 그보다는 소박한 생활을 통한 정신적 만족, 혹은 마음의 평화를 진정한 쾌락으로 여겼다. 하지만 에피쿠로스식 쾌락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 그렇다. 현대사회에서 에피쿠로스의 후예는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금기시한 감각적 쾌락을 한껏 부추기는 게 현대문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현대인의 일상은 즉각적인 즐거움을 찾는 것으로 채워진다. 눈 뜨자마자 TV나 스마트폰을 켜고 인터넷, SNS,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며 하루를 보낸다. 디지털 매체와 잠시라도 분리돼 있으면 불안감까지 느끼기에 강박적으로 접속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음식, 쇼핑, 게임, 도박, 술, 담배, 마약 등 말초적 쾌락을 자극하는 유혹들도 넘쳐난다. 하지만 이 같은 욕구에 탐닉하다가는 '중독'이라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현대의학의 눈부신 진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급증하고 있다. 세상은 물질적 풍요로 가득하지만 되레 더 불행하다는 사람도 많다. 이는 '과잉 쾌락' 시대의 대표적인 중독 부작용이다. 현대사회 중독의 이유를 '변연계 자본주의'의 승리에서 찾은 분석(데이비드 코트라이트 미국 노스플로리다대학 교수)은 타당하다. 사실 충동적·본능적 감정을 관장하는 인간 뇌의 변연계는 온갖 종류의 쾌락을 제공하는 자본주의 제품과 서비스에 길든 지 오래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기업들은 점점 더 강한 자극으로 사람들을 쾌락에 중독시키고 있는 것이다.사람들은 중독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잘 벗어나지 못한다. 당장의 쾌락에 굴복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관여하는 건 뇌신경 세포의 흥분전달 물질인 '도파민'이다. 즉 기분을 좋게 하는 '쾌락 호르몬'으로, 적당한 양이면 아무 탈이 없다. 행복감을 높이는 필수 장치다. 하지만 현대인은 너무나 쉽게, 빠르게, 과다하게 도파민을 생성한다는 게 문제다. 이는 애초에 설계된 생명의 특성을 거스르는 것이어서 사람 역시 망치게 돼 있다.중독 의학 권위자 애나 램키는 중독 원리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쾌락과 고통의 저울 법칙'이 그것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쾌락 쪽으로 기운 저울은 반작용으로 수평 상태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쾌락 범위 이상으로 고통 쪽으로 기운다. 사람들은 이 같은 고통(금단증상)을 피하려고 더 강한 자극에 매달리지만 헛수고다. 도파민 내성 때문에 갈수록 쾌락을 못 느낀다. 결국 중독이란 게 행복 추구가 아니라 고통받지 않으려는 몸부림인 셈이다. 중독을 벗어나는 해결책은 특별한 게 없다. 고통이 사라질 환상임을 믿고 고통에 맞서는 게 최선이다. 허석윤 논설위원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미세플라스틱
플라스틱의 역사는 150여 년쯤 됐다. 1869년 미국의 존 웨슬리 하이엇이 상아로 된 당구공 대용품으로 발명한 셀룰로이드가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이다. 이후 다양한 인조재료(합성수지)를 이용한 플라스틱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알다시피 플라스틱의 최대 강점은 열이나 압력을 가해 원하는 모양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성형하기 알맞다는 뜻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가 플라스틱의 어원인 것도 이런 연유다. 플라스틱은 또 가볍고, 튼튼하고, 부식에 강해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현대문명도 꽃피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류가 석기, 청동기, 철기에 이어 플라스틱기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우리는 플라스틱 덕분에 편리한 생활을 누리지만 마냥 좋아할 수 없다. 환경오염이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플라스틱은 자연분해가 안 되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이 탓에 만들긴 쉽지만 처리는 어렵다. 불에 태우면 환경호르몬을 발생시킨다. 또 마구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가 지구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플라스틱의 습격에 사람인들 온전할 리 없다. 특히 크기가 5㎜ 이하인 미세플라스틱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생수병과 종이컵에서부터 티백,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흡수하는 미세플라스틱의 양은 생각보다 많다.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결코 미세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위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만큼 미세플라스틱을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이다. 허석윤 논설위원
[논설위원의 직터뷰] 전중하 <주>문화뱅크·<주>코리아비앤씨 대표
시작하기는 쉬워도 성공하기는 어려운 게 사업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통계도 있지만 굳이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주변에 널린 게 사업 실패담이다. 그럼에도 사업에 뛰어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관적이다. 자신만은 성공할 것 같은 확신을 가지기도 한다. 문제는 그게 근거 없는 희망일 경우가 많다는 것.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갖고 있다. 얻어맞기 전까지는." 전설적인 복서 마이크 타이슨이 남긴 말이다. 권투선수만이 아니라 사업가에게도 유효한 경구다. 사업이란 것도 결국 한판 승부 아닌가. 어쩌면 '사각의 링'에서 펼쳐지는 혈투보다 더 치열한 생존 경쟁이다. 그럴싸한 계획을 들고 사업 무대에 올랐다가 호되게 당하고 퇴출되기 십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스타트업 5년 생존율이 30%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사업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는 무엇일까. 자질·노력·운 중에 적어도 하나 이상이 필요한 건 확실하다. 필자처럼 사업과 거리가 먼 사람들도 그 정도는 안다. 거기까지다. 성공의 핵심 요인과 디테일은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유추는 가능하다. 성공한(혹은 성공 중인) 사업가가 들려주는 인생 철학과 경험담을 통해서다. 그들의 사업 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 성공 방정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근면과 성실이 근본 상수(常數)다. 영주 시골서 자라며 영어 좋아하고 잘해 고교 졸업후 카투사 복무 美 장관표창까지 첫 직장 호텔 중책 안주 않고 뉴질랜드 유학 IMF사태 와중 귀국했지만 사업구상 매진 이듬해 TK 첫 전문문화기획 '문화뱅크' 설립 영어교육박람회·커피&카페박람회를 비롯 치맥페스티벌 등 성공 '업계 톱 클래스' 등극 2016년엔 화장품기업 '코리아비앤씨' 세워 '디블랑' 브랜드로 20여國 수출 K뷰티 선도 전시컨벤션 전문가·화장품 수출역군의 삶 전중하(54) <주>문화뱅크·<주>코리아비앤씨 대표의 최대 덕목도 성실함이다. 인생 모토부터가 '근자필성(勤者必成)'이다. 25년간 사업을 성장시켜온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여기에다 특유의 도전 정신과 열정, 창의적 아이디어, 통찰력도 장점이다. 물론 전 대표도 사업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본인은 '실패'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오히려 쓰러지지 않으려는 발버둥이 더 힘들 수도 있는 법. 그와의 인터뷰 도중 '역시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다른 노력에 더해 때때로 밀려드는 두려움과 외로움까지 극복해야 하니까.전 대표는 경북 영주에서 2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여느 시골 아이와 달랐던 건 영어를 좋아하고 꽤 잘했다는 것.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카투사에 입대하고, 복무 중에 미국 국방부 장관 표창까지 받을 정도였다. 그는 뛰어난 영어 실력 덕분에 제대 후 서울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3년 가까이 중책을 맡아 정규직으로 일했다. 당시만 해도 외국계 호텔 총지배인이 꿈이었다. 하지만 근무하던 호텔에 해외 유학파 엘리트들이 몰려들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외로 나가서 공부를 더 하기로 했다. "멀쩡한 직장을 왜 때려치우느냐"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낯선 뉴질랜드로 떠나 경영학을 전공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돈은 몇 달 만에 바닥이 났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그가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때는 공교롭게도 IMF 사태가 일어난 1997년이었다. 막막한 현실이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사업구상에 매진했다. 마침내 이듬해 대구경북 최초의 전문 문화기획사인 '문화뱅크'를 설립했다. 문화뱅크는 2000년대 후반부터 MICE(Meeting·Incentive·Convention·Exhibition) 전시컨벤션 기획사로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2008년 '대한민국영어교육박람회'를 시작으로 '대구 커피&카페박람회'(2011~), '대구치맥페스티벌'(2013~2015)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문화뱅크가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서 관련 업계 톱 클래스에 오른 원동력이 됐다. 전 대표가 MICE 산업계에서 '아이디어 뱅크'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에게는 'K뷰티 수출 전도사'라는 또 다른 애칭이 있다. 2016년도에 화장품 기업 <주>코리아비앤씨를 설립해 해외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기획과 화장품 분야에서 '투잡'을 뛰는 전 대표의 바쁜 사업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주>문화뱅크를 소개하자면."간단히 말하면 MICE산업 관련 토털서비스시스템을 갖춘 전문기획사입니다. 국내외 전시회 주최를 비롯해 박람회, 콘퍼런스 등 각종 행사를 기획·운영·디자인합니다. 2010년에 MICE업계 최초로 벤처기업에 지정될 정도로 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지금까지 개최한 대표적인 전시회는 '대한민국 영어교육박람회'를 비롯해 '대구 커피&카페박람회' '경주윈터페어' '대한민국장례문화박람회' '대구치맥페스티벌' 등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저의 전시컨벤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영어교육박람회는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대구의 민간업체가 영어를 주제로 한 박람회를 처음 만들어 흥행몰이를 했으니 그럴 만했죠. 전국 각지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대구치맥페스티벌은 어떻게 기획한 건가요."대구사람들은 예전부터 치맥을 즐겼잖아요. 저도 직원들과 두류공원에서 돗자리 펴놓고 치맥을 하다가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이걸로 축제를 만들면 괜찮겠다'는 촉이 왔어요. 2013년에 첫 축제를 열었는데 대구시 보조금이 5천만원밖에 안돼 어려움이 많았죠. 사업비가 턱없이 모자랐지만 행사 준비와 홍보에 최선을 다해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이 행사를 3년간 진행하면서 대구 대표 축제로 키웠다는 사실이 뿌듯합니다."▶탄탄한 기획사가 있는데 화장품 업체를 또 설립한 이유는."제 사업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필요해서였죠. 사실 기획사 특성상 아무리 노력하고 잘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관공서 등을 상대로 늘 영업을 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고, 행사 취소 등 돌발 변수도 많고요. 대구치맥페스티벌처럼 대박 행사를 만든다 해도 내 것이 아닐 수 있죠. 이런 고민을 덜기 위해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전시컨벤션 업계에서 20여 년간 쌓아온 역량을 발휘하면 승산이 있겠더라고요. 제가 제품 기획에서부터 디자인·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전문가인 만큼 화장품 산업에서도 먹혀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맞아떨어졌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것도 도움이 됐고요."▶<주>코리아비앤씨는 어떤 기업인가요."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글로벌 코스메틱 전문 연구소 기업입니다. 우리 회사의 '디블랑(DIBLANC)' 브랜드는 K뷰티를 선도하는 화장품이라고 자부합니다. 실제로 대구한의대와 함께 개발한 고기능성 한방 스킨케어와 립스틱 제품은 현재 유럽·미국·중동·러시아 등 20여 개국에 수출될 정도로 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입장에서 시장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기획한 게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제품 성분 못지않게 용기 디자인을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하는 것도 중요하죠. 다시 말해 잘 팔릴 만한 게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게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코리아비앤씨가 수출 비중 90%가 넘는 지역 최상위권 업체로 성장한 핵심 비결입니다."▶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코로나 팬데믹 시기였죠. 행사가 없다 보니 기획사 수입이 없었죠. 그래도 한솥밥 먹는 직원들을 내보낼 순 없었어요. 가진 자산 다 팔고 빚까지 내서 버텼습니다. 화장품 업체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죠. 그래도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아무도 해외에 안 나가던 시기였지만 저는 입출국을 밥 먹듯 했습니다. 그렇게 목숨 걸고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더니 하늘도 도와주더군요. 그 기간에 유럽·미국 바이어들과 많은 수출 계약을 맺었습니다. 경쟁자가 없으니 거의 100전 100승, 노다지였죠. 코로나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죠."▶사업 철학과 목표는. "사업에는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적 책임감도 지녀야 합니다. 제가 <사>경북도화장품산업협회를 설립해 초대회장을 맡고 있는 것도 지역 화장품 기업들의 상생과 지역 기여를 위한 것입니다. 사업목표는 문화뱅크의 경우 대구를 전 세계에 각인시킬 만한 MICE 행사를 하나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글로벌 행사로 자리매김한 이탈리아 볼로냐의 뷰티박람회처럼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불가능할 것도 없겠죠. 또 대구경북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의 화장품 기업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4년 내에 코리아비앤씨를 그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허석윤 논설위원 hsyoon@yeongnam.com대구경북을 대표하는 전시컨벤션 전문가이자 화장품 수출 역군인 전중하 문화뱅크·코리아비앤씨 대표가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자유성] 전업자녀
중국경제가 심상찮다. 롤러코스터에 비유한다면 급상승이 끝나고 내리막 구간에 접어든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하강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경제를 '시한폭탄'에 빗댄 건 허튼소리가 아니다. 전례 없는 소비·수출 둔화에 부동산 버블 붕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경제침체의 최대 피해자는 청년층이다. 지난 7월까지 중국의 대졸자는 1천100여만 명이다. 이들을 포함해 올해 고용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3천300여만 명이 살벌한 취업경쟁을 벌여야 한다. 중국의 지난 6월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인 21.3%였다. '통계 마사지'에 능한 중국 정부가 7월 수치를 공개하지 않은 건 실업률이 더 치솟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는 50%에 가까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률 탓에 최근 중국에선 '전업자녀(Full time children)'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전업주부처럼 가족들을 위한 식사, 청소, 돌봄 등 가사를 도맡는다. 그 대가는 용돈이 아니라 엄연한 월급이다. 그들에겐 집이 직장이고 부모가 고용주인 셈인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노동시간 조건을 협상하는 '프로 전업자녀'도 있다. 심지어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전업자녀를 선택하는 청년들도 있다고 한다. 전업자녀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캥거루족'보다는 훨씬 염치가 있다. 집에서 빈둥거리며 공짜 숙식에 용돈까지 뜯어가는 캥거루족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청년실업률이 꽤 높은 만큼 캥거루족이 많다. 하지만 그들이 전업자녀로 전향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구하라법
며칠 전 제주도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 어미가 새끼 사체를 등에 업은 채로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게 목격돼 화제가 됐다. 죽은 새끼를 보내지 못하는 돌고래 어미의 애틋한 몸부림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남방큰돌고래는 제주 연안에만 100여 마리 남아 있는 멸종위기종으로, 모성애가 지극하다고 알려져 있다. 죽은 새끼를 업고 유영하는 모습이 과거에도 몇 차례 발견됐다고 한다.돌고래의 모성애가 감동적이라고 해도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헌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위대한 사랑이라고 하지 않나. 하지만 요즘 세태가 흉흉해서인지 이 같은 믿음조차 흔들린다. 친모가 어린 자식을 버리거나 학대하고 심지어 살해까지 한다. 극히 일부지만 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일그러진 모성이 안타까울 따름이다.죽은 아들의 보험금을 타려고 무려 54년 만에 나타난 80대 친모 사례도 공분을 사고 있다. 그 친모는 두 살배기 아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후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들의 사망보험금을 챙기려고 불쑥 나타나 친누나와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최근 법원은 보험금 2억3천만원 중 1억원을 친누나에게 주라고 결정했지만, 친모는 다 갖겠다며 이마저도 거부했다. 이처럼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재산 상속을 막자는 게 '구하라법'이다. 가수 고(故) 구하라씨 오빠의 입법 청원에 따라 2021년 법안이 발의됐지만 여태껏 감감무소식이다. 국회가 구하라법을 뭉개면서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 벌어진다. 자식을 버린 패륜 부모가 죽은 자식 재산으로 한몫 챙기는 모습을 언제까지 봐야 하나. 허석윤 논설위원
[월요칼럼] 사자성어로 본 새만금 잼버리
#풍비박산(風飛雹散)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새만금 잼버리가 역대 최악의 오명을 남겼다. 6년간 준비했다는 행사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됐을까. 폭염·태풍 탓할 게 없다. 차라리 다행이다. 뒤늦게나마 대회 준비가 그토록 부실했음을 알게 됐으니. 외신들의 질타는 당연했다. 비싼 돈 내고 자녀를 보낸 해외 학부모들은 분노했다. 홍보·경제 효과는커녕 국격만 훼손됐다. #백공천창(百孔千瘡) 한마디로 엉망진창. 150여 개국에서 온 4만3천여 명에게 '지옥훈련'이라도 시킬 셈이었나. 애초에 대회 장소부터 부적절했다. 한여름 땡볕에 나무 한 그루 없는 뻘밭이라니. 이에 대한 우려가 많았음에도 별다른 보완 대책이 없었다. 아무리 폭염이라지만 온열질환자가 속출한 건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야영지 시설도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화장실·샤워실은 더러운 데다 턱없이 모자랐고, 곰팡이 달걀, 바가지, 해충 피해 등 온갖 문제가 속출했다. #무사안일(無事安逸) 새만금 잼버리 유치가 결정된 건 2017년이었다. 오랜 준비 기간 동안 뭘 했는지가 미스터리다. 부지·도로 등 기반 시설 공사가 2022년 6월에 완료됐다지만 여전히 부실투성이다. 배수가 잘 안 되고 습기·악취에 취약한 상태다. 운영 준비 과정에서의 무사안일은 더 심각하다. 처참한 실패를 피할 수 있었던 기회를 다 놓쳤다. 무엇보다 2015년 7월 일본 야마구치현 잼버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했다. 그때도 '폭염 속 간척지'에서 치러져 환자가 속출하는 등 큰 곤혹을 치렀기 때문이다. 또 2019년 정부보고서에도 새만금 매립지가 태풍·폭염·위생 등에 취약하다는 점이 적시돼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새만금의 악몽'은 이미 예견돼 있었던 셈이다. #본말전도(本末顚倒) 전북도는 잼버리를 미끼 삼아 나랏돈 빼먹기에만 골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새만금 고속도로와 국제공항 등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에 수조 원의 국비를 챙겼다. 그럼에도 정작 잼버리 야영장 시설은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말 그대로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 직접적인 대회 준비에 투입한 1천100억여 원의 용처도 납득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시설비 예산이 130억원인데 조직위 운영비·사업비가 870억원? 잼버리를 핑계로 한 공무원들의 외유성 출장도 '흥청망청'에 다름없다. 이래저래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책임전가(責任轉嫁) 잼버리 파행에 대한 '네 탓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여당은 문재인 정부와 전북도 잘못으로 몰고 간다. 물론 잼버리 사전 준비에서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일말의 책임을 묻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남 탓 역시 자가당착이다. 1년 3개월이면 예상되는 문제를 방지하기에 충분했다. 관건은 시간이 아니라 관심과 노력 부족이었다. 잼버리 주관 부처인 여성가족부 장관은 몇 차례나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걸 어찌 일개 장관의 거짓말로만 볼 수 있을까. 새만금 잼버리가 시작보다는 끝이 나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실패를 되돌릴 순 없다. 낙장불입이다. 만시지탄이지만 같은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허석윤 논설위원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조건만남
최근 40대 현직 판사가 성매매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게 알려져 화제가 됐다. 지방의 한 법원에서 근무하는 그 판사는 서울 출장 중에 강남의 한 호텔에서 '조건만남' 앱을 통해 만난 30대 여성에게 15만원을 주고 성매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관이 업무 시간인 벌건 대낮에 그런 짓을 했다는 것도 한심하지만, 입건 후에도 한 달 동안 재판을 맡았다니 기가 찬다. 법원이 경찰로부터 해당 판사에 대한 수사개시 통보를 받았음에도 그냥 뭉갰기 때문이라고 한다. 법원의 기강해이와 제 식구 감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게 한다.국민을 열받게 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성매매 판사의 신분 유지도 논란거리다. 판사는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는 한 파면할 수 없는데, 성매매 초범은 대부분 기소유예로 그치기에 해당 판사는 경징계만 받을 가능성이 높다. 헌법으로 법관 신분을 보장하는 건 판결의 독립성,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이게 성매매와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다.해당 판사는 과거에 성매매 관련 사건도 10건 이상 맡아 모두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특히 '조건만남' 방식으로 성매매를 알선한 일당의 항소심에서 "사회적 해악이 적지 않아 엄벌할 필요성이 있다"며 징역형을 선고했다. 법정에서는 근엄하게 성매매를 꾸짖고 뒤로는 몰래 즐긴 판사의 이중적 행태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판사까지 이용할 정도라면 '조건만남' 앱이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육체적 쾌락을 위한 부적절한 만남을 즐기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생각의 감옥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남긴 유명한 문구다. 어려운 철학적 논제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내 존재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나로부터 나온 생각이기에 내 존재가 증명된다'는 것이다. '생각=존재'라는 데카르트의 주장은 맞는 것일까. 철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명쾌한 결론은 없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결정적인 반론의 여지가 생겼다. 스스로 생각하는 AI는 인간 존재와 뭐가 다른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앞으로는 인간 존재를 생각이 아닌 감정으로 규정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사실, 인간의 생각은 생각보다 대단치 않다. 생존을 위해 장착된 일종의 자동 프로그램이다. 때문에 생각은 인간 의지와 무관하게 하루에도 수만 번 저절로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 증거는 지금 당장 찾을 수 있다. 단 10초만이라도 생각을 완전히 끊으려고 시도해 보면 된다. 물론 의도적, 창의적인 생각도 없진 않지만 드물다는 게 문제다. 보통 인간의 생각은 긍정보다 부정성이 훨씬 강하다. 인간 무의식에 뿌리박힌 두려움과 죄의식에서 파생된 생각의 내용물은 주로 쓸데없는 것들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집착, 미래에 대한 불안 따위가 대부분이다. 인간 특성상 '생각의 감옥'에서 탈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고통을 덜 받는 방법은 있다. 생각에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말고 한 발 떨어져 지켜보는 게 핵심이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도 있다.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기후재앙
여태껏 이런 장맛비는 없었다. 말 그대로 '물폭탄'이었다. 장맛비가 시작된 지난달 25일부터 누적 강수량이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최고치다. 특히 시간당 강수량이 최대 60~80㎜에 달하는 지역도 있었다. 통상 집중호우 기준이 시간당 30㎜ 정도여서 이번처럼 하늘이 뚫린 듯 미친듯이 퍼붓는 비를 규정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새로 등장한 용어가 '극한호우'다. 시간당 강수량이 50㎜ 이상이면서 동시에 3시간 누적 강수량 90㎜ 이상인 경우다. 시간당 강수량 72㎜ 이상도 해당한다. '극한호우'는 기상청이 지난해 서울에서 시간당 140㎜가 쏟아지자 만든 용어지만 실제로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상청의 선견지명인 셈이다.'극한호우' 빈도가 갈수록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급격한 기후변화에다 '슈퍼 엘니뇨'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탓에 요즘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이상 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은 40~50℃의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대륙의 수은주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가운데 중국 북서부는 52.2℃까지 치솟아 '불지옥'을 방불케 했다. 또 지구 곳곳이 대형 산불과 홍수로 황폐해지고 있다. 특히 인도에선 45년 만에 최악의 홍수가 발생해 6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알다시피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자업자득이다. 그 대가인 '기후위기'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듯하다. 사실 기후위기라는 표현도 현실보다 뒤처진 느낌이다. 요즘 전 세계를 덮친 살인적인 폭염·폭우는 '기후재앙'이 이미 시작됐음을 알리는 경고 메시지인 것 같다. 허석윤 논설위원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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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위기경보 '심각' 단계 때 외국 의사 의료행위 허용…대구 의료계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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