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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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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 스트레스 날렸어요~"…희망인재 프로젝트 5월 정기행사 '체육대회'
"중간고사로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는데, 오랜만에 뛰어노니 즐거워요."지역 우수인재 양성 프로그램인 영남일보 '희망인재 프로젝트'가 12일 대구 동구청소년문화의집 아름드리에서 5월 정기행사 '우리끼리 체육대회'를 열었다.이날 체육대회는 학업에 지친 희망인재 장학생들이 체육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프로젝트 구성원들 간 유대감을 쌓기 위해 대학생 멘토들의 주도로 기획됐다. 멘토 대학생, 멘티 장학생, 복지관 관계자 등 70여명이 참석했다.오전 10시에 시작한 행사는 준비 체조를 시작으로 계주, 피구, 줄다리기, 협동 공 튀기기 등 다양한 종목이 이어지며 오후 2시까지 열렸다. 학생들은 팀원들과 조 이름 및 구호를 정하고 레크리에이션을 즐기는 등 모처럼 주어진 '힐링'의 시간을 만끽했다.점심 식사 후 오후 경기 전에 진행된 장학생들의 장기자랑 시간도 관심을 끌었다. 춤과 노래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나와 K팝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끼를 발산해 행사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하게 무르익었다.특히 이날 체육대회는 프로젝트를 수료한 졸업생들도 찾아와 눈길을 끌었다. 멘토·멘티로 활동한 후 사회 초년생이 된 이들이 주말임에도 참석해 가족애를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행사를 기획한 오유진 희망멘토 기획부장(경북대 생명과학부)은 "체육대회인 만큼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로 가득한 행사가 된 듯하다. 앞으로도 프로젝트 구성원 모두가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행사들을 기획해 나가겠다"고 했다.희망인재 프로젝트는 언론과 사회과 지역 청소년들의 꿈을 응원한다는 취지로 2013년 발족한 공익성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다. 어려운 형편에 처한 지역의 우수인재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대구지역 5개 복지관에서 매년 선발한 50명의 장학생과 28명의 대학생 멘토들이 비전캠프·진로컨설팅 등 월례모임, 자유교류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12일 열린 영남일보 희망인재 프로젝트 5월 정기행사 체육대회에서 멘토 대학생, 멘티 장학생들이 줄다리기 종목에 참여하고 있다. 멘토 대학생, 멘티 장학생 등 영남일보 희망인재 프로젝트 구성원들이 체육대회가 끝난 후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람의 서재] 조지 오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스탈린 시대 공산주의 독재를 풍자한 소설 '동물농장'의 한 문장이다. 오늘날까지 신문 칼럼에 인용될 만큼 명문이다. 당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저자인 조지 오웰<사진>의 통찰력과 깊은 식견은 빛나고 있다.조지 오웰은 1903년 인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 영국령 인도행정부 아편부 소속인 아버지의 근무지인 모티하리에서 태어났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영국으로 건너갔다. 성적이 우수해 1917년에는 학비를 면제받고 상류층의 학교로 알려진 이튼칼리지에 입학했다. 하지만 졸업 후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인도 제국경찰에 지원해 1922년 미얀마로 떠났다. 5년간 경찰관으로 일하며 자신이 꿈꿨던 동양에 대한 동경이 착각임을 깨닫고 영국 제국주의가 저지른 식민지악(植民地惡)을 통감하게 된다. 영국으로 돌아가 1928년 경찰직을 사직하고 이때부터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다.이후 불황 속의 파리 빈민가와 런던 부랑자들의 극빈 생활을 실제로 체험했다. 1933년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첫 작품 르포르타주 '파리와 런던의 바닥생활'을 발표했고 필명은 조지 오웰로 했다. 1936년 12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자원 입대했다. 하지만 스페인 혁명을 가로막는 세력이 오히려 좌익임을 발견했으며 자신이 소속된 통일노동자당이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아내와 함께 스페인을 탈출해 프랑스로 건너갔으며 직접 느꼈던 이데올로기에 대한 환멸을 '카탈로니아 찬가'로 출간했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적인 성향이 짙은 작가로 알려지게 됐다.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전쟁특파원으로 근무를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와 1945년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둔 정치우화 '동물농장'〈작은 사진〉을 펴내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이후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있는 주라 섬에 머물며 집필에만 전념했고 1949년 그의 최대 걸작인 '1984'를 완성했다. 이 책은 현대 사회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도달하게 될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공포의 미래소설이다.1984를 출간하고 바로 다음 해인 1950년 1월 오랫동안 앓아온 결핵이 악화되면서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동 추 거문고 이야기] 〈9〉형체 없는 거문고
'줄 없는 거문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형체 없는 거문고'를 이야기한 선비가 있다. 안동(풍산) 출신으로 대구부사를 지낸 동리(東籬) 김윤안(1560~1622)의 '무형금(無形琴)'이다. 그는 도연명에게 줄 없는 거문고(無絃琴)가 있었다면 자신에겐 형체 없는 거문고(無形琴)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김윤안은 작은 초당을 하나 마련한 뒤 적은 글 '소우당기(消憂堂記)'에서 이렇게 말했다."나는 어려서부터 매우 가난하였는데 늘그막에 구산(龜山) 아래에 집을 빌려 살았다. 집 둘레는 휑하여 바람과 햇빛조차 가릴 수 없었다. 손님이 오면 늘 마당에 앉아서 맞았다. 10년을 경영하여 초당 한 채를 지었는데, 한 해가 가고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초당은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면에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초당에는 빈 땅이 없어서 대나무나 꽃 따위를 심을 수 없었다. 다만 국화 몇 포기가 있어서 때가 되면 피었다. 창은 '남창'이라 하고, 뜰은 '면가(眄柯)'라 하고, 문은 '상관(常關)'이라 불렀다. 초당 동쪽에 나지막한 울타리가 있었는데 '동리(東籬)'라 하였다. 이 모두를 합한 초당의 이름을 '소우당(消憂堂)'이라 하였다. 모두 도연명의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근심은 마음의 병이다. 풀어서 없어지게 하여 즐겁게 된다면, 천지 만물이 모두 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어떤 손님이 물었다. '사모할 만한 옛 성현이 한둘이 아닌데 그대는 초당의 창, 문, 뜰, 울타리를 모두 도연명의 말에서 가져와 이름 붙였소. 그대는 어째서 오로지 도연명만 별나게 흠모하시오?'내가 말했다. '그를 흠모하는 게 아니라 우연히 그와 같았을 뿐이오. 내가 가난한 것이 도연명과 같고, 초당에 책이 있는 것이 도연명과 같고, 남쪽에 창이 있고 동쪽에 울타리가 있는 것이 도연명과 같고, 문이 늘 잠겨 있어서 쓸쓸한 것이 도연명과 같소이다. 그래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지 구차하게 흠모하는 것이 아니라오.' 손님이 또 말했다. '그대의 말은 그럴듯하오. 도연명은 거문고(琴)와 책을 즐기며 근심을 씻는다고 하였는데, 그대의 초당에는 책은 있으나 거문고가 없으니 어찌 된 일이오?' 내가 '도연명은 줄 없는 거문고인 무현금(無絃琴·원 안)을 가졌고 나는 형체 없는 거문고인 무형금(無形琴)이 있으니, 어찌 거문고가 없다고 하시오'라고 대답했다. 손님이 웃으면서 떠나갔다."김윤안은 이 기문에서 도연명의 '무현금'을 넘어 '무형금'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줄 없는 거문고가 아니라, 아예 거문고 자체가 없이 거문고의 세계에 노닐 것을 꿈꾸고 있다. ◆도연명을 흠모한 김윤안의 '무형금'김윤안의 호 동리(東籬)는 도연명의 시에서 따와 스스로 아호로 삼은 이름이다. 김윤안은 이 글에서 보듯이 초당의 창과 문, 울타리, 뜰의 이름을 모두 도연명의 시 구절에서 따올 정도로 도연명을 지극히 사랑한 인물이다. 김윤안은 소고 박승임,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의병에 참여하여 김해(金垓)의 막하에서 문서 수발을 도맡았고, 영남 유생들이 회재 이언적을 변호하고 오현(五賢)의 문묘 종사 운동을 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선조 후반과 광해군 때 관직에 나아가기도 하였지만, 대구부사를 마지막으로 귀향해 소우당을 짓고 은거했다.많은 선비들이 도연명을 사모하고 그의 시풍을 본받으려 했다. 퇴계 이황은 도연명의 시를 읽고 맛을 보면 속세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만물 가운데 홀로 초탈하게 서 있는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했다. 김윤안은 류운용과 류성룡 등을 통해 이황의 학맥을 이었다. 도연명은 열심히 공부해서 벼슬길로 나아가 이상적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뜻을 펼칠 상황이 안 되면 미련 없이 물러나는 출처진퇴(出處進退)의 모범을 보인 상징적인 인물이다. 김윤안은 소우당 곳곳에 도연명의 시 구절을 끌어들여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형체마저도 없는 무형금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음을 잘 다스리고 단속할 힘이 충분하다면 유현금이나 무현금 모두 필요 없을 것이다. 마음속에 무형금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 탈 수 있을 것 아닌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조선 후기 문신인 귀와(龜窩) 김굉(1739~1816)은 1811년 12월 동리선생문집 발문(跋文)에서 김윤안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동리(東籬)라는 자호(自號)로 집에 편액을 단 뜻은 도연명의 풍류를 듣고서 흥기한 것이다. 바야흐로 그 남창에 기대어 노닐고 동쪽 언덕에서 시를 읊조리며, 거문고와 책을 통해 온갖 근심을 없애고, 구름과 새에게 한가한 심정을 부치고, 소나무 오솔길을 거닐고 국화꽃을 따며 지냈다. 그 그윽한 운치와 구함이 없는 뜻은 시대는 달라도 흥취는 같으니, 천년 세월이 아침저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찌 선생이 다만 그 적적하고 한가한 취미를 좋아해서 아름다운 겉모습만 표방하고자 한 것이겠는가. 아마도 반드시 분발한 바가 있어 뜻을 부친 것이 그 사이에 있을 것이다.'김윤안은 54세 때인 1613년 봄부터 1615년 겨울까지 대구부사로 재임했는데, 당시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태고정(太古亭)을 위해 시를 한 수 남겼던 것 같다. 태고정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박팽년(1417~1456)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그의 손자인 박일산이 1497년에 처음 건립한, 사당인 절의묘(節義廟)가 딸린 종택의 별당 건물로 지은 정자다. 지금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일부만 남은 것을 1614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김윤안은 1614년 태고정이 재건된 후 이 정자를 찾아 시를 남겼을 것으로 보인다. 태고정에 오르면 김윤안의 시판이 걸려 있다.'정자 이름이 어찌하여 태고인고(亭名何太古)/ 주인의 마음이 태고라네(主人心太古)/ 원컨대 태고의 마음으로(願得太古心)/ 일마다 모두 태고이기를(事事皆太古)'. '태고'를 구절마다 사용해 지은 시다. 이 시 현판의 글씨는 전서로 되어 있는데, '태고(太古)' 글자 모두를 각기 다른 전서로 써서 눈길을 끈다. 글·사진=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5290@naver.com〈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MZ세대 사로잡은 재밌는 불교문화 (2) 승복 입고 디제잉·스님이 커플 매칭 '재밌어진 불교'
"전엔 엄숙한 종교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힙하고 재미있게 느껴져요." 다소 엄숙하고 어려운 이미지로 여겨졌던 불교가 이제 MZ세대 사이에서 '힙'한 종교로 통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재미'와 '의외성'으로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불교 특유의 포용적 교리와 메시지가 SNS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흥미를 가질 만한 이색적인 이벤트가 최근 많이 열리고 있다.'서울국제불교박람회' 파격 시도 호응EDM 입힌 뉴진스님의 찬불가 열광방문객 전년비 3배…10~30세대가 80%커플매칭 예능 패러디한 '나는 절로'재미·신선함 더한 이색 콘텐츠 각광엄숙한 종교 이미지 벗은 행사 '속속' ◆디제잉 파티·짝 찾기…불교 행사의 변신지난달 4일부터 나흘간 열린 '2024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재밌는 불교'를 주제로 진행됐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이 행사는 이번 회에 파격적 변신을 하며 젊은 세대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행사를 주최한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박람회 방문객은 지난해보다 약 3배 정도 늘었는데, 80%가 10~30대였다. 메타버스 사찰 체험, 출가 상담, 차(茶) 시음회, 디제잉 파티 등 젊은 세대의 문화를 적극 수용한 콘텐츠로 눈길을 끌었다. AI 부처의 고민 상담,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팔로어 3만1천명 '꽃스님' 화엄사 범정스님의 강연, 남은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임종체험'도 진행됐다.그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모은 건 '뉴진스님'의 DJ 네트워킹 파티였다. '뉴진스님'은 개그맨 윤성호의 이른바 '부캐'다. 이름은 '뉴미디어 시대에 발맞춰 새롭게 나아간다(進·진)'의 뜻을 담고 있으며 걸그룹 뉴진스의 이름도 차용한 것이다. 이번 박람회에서 스님으로 변신한 그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입힌 찬불가를 디제잉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유쾌한 춤사위와 함께 "이 또한 지나가리, 이 또한 지나가리, 고통을 이겨내 극락왕생!" 등을 노래해 관객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무대가 담긴 영상이 널리 퍼져 온라인상에서도 화제가 됐다. 누리꾼들은 "보수적일 것 같았던 불교가 가장 멋있다" "부처핸섭!" "정말 재밌다. 종교가 무조건 고요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교리가 참 와닿는다. 불교는 젊은 사람이 입문하기 힘든데 이런 식으로 더 친근감 있는 생활 종교가 됐으면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대한불교조계종은 올 하반기 대구와 부산에서도 같은 행사를 열 예정이다. 김현준(25·대구 중구)씨는 "SNS를 통해 이번 불교박람회 영상과 후기를 접했다. 대학교 축제 같았다. 종교 행사는 따분하고 재미없을 거란 편견이 깨졌다"며 "어렵게만 보였던 불교가 친숙해졌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곧 대구에서도 열린다고 하니 꼭 한번 가볼 계획"이라고 말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인천의 전등사에서는 지난달 6일 짝 찾기 프로그램 '나는 절로'가 열렸다. 방송 프로그램 '나는 솔로'가 모티프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결혼 기피나 저출산 등을 해소하는 방안의 하나로 실시하는 미혼 남녀 템플스테이다. 스님이 매니저로 나서 30대 미혼 남녀 20명의 커플 매칭을 돕는다. 남녀 각 10명을 모집했는데, 남성 147명·여성 190명이 지원해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다.◆쉬어가는 이색 체험 '템플스테이'도 인기한국의 불교문화를 알리기 위해 등장한 '템플스테이'도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다. '템플스테이'란 절에 머물면서 불교문화와 사찰 생활을 체험하는 일이다. 속세를 떠나 불교와 관련된 이색 활동을 즐길 수 있다. 경북 지역 한 사찰 관계자는 "체험을 하러 오는 사람 중 80%는 MZ세대다. 그중에서도 여성이 대다수"라고 했다.프로그램은 주로 체험형과 휴식형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대구 동구 도학동에 위치한 동화사의 경우 체험형은 사찰음식 만들기와 차 마시기, 오는 15일까지 부처님 오신 날 기간에 한정해 연꽃등 만들기가 있다. 휴식형은 오리엔테이션과 절에서 음식을 먹는 공양, 순례를 마치는 회향식을 제외하곤 모두 자율로 이뤄진다. 동화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경북대 김민정(20)씨는 "종교가 없고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혼자 쉴 수 있고 절의 독특한 분위기까지 만끽할 수 있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사찰음식도 템플스테이의 인기 요인 중 하나다. 기존에 사찰 음식은 부실하고 맛 없을 거란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젊은 층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과 함께 비건 선호도 늘어나면서 채식인 사찰 음식에 대한 궁금증이 증가했다. 이에 사찰에서도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5일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사찰음식'을 검색하니 약 3만3천개의 게시물이 나왔는데, 두부 완자 미역국, 두릅전, 우엉전병, 가지전 등의 음식 사진이 담겨 있었다. 김씨가 방문한 동화사에서도 나물반찬과 두부조림, 버섯요리, 야채 고명이 올라간 국수 등이 나왔다.이런 인기로 불교 문화에 관심을 갖는 청년들의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대학생이면 단돈 1만원에 템플스테이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오는 30일까지 '청춘'을 주제로 '청춘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학업과 취업, 경쟁 스트레스에 지친 청년들이 전국 100여 곳의 사찰에서 심신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한다. 대구 지역은 동화사, 경북 지역은 △고운사 △골굴사 △보경사 △봉정사 △선본사 △심원사 △용문사 △은해사 △자비선사 △직지사 △축서사 등에서 진행한다.◆"가르침 위로돼" "강요 없어서 좋아" 교리에도 긍정적최근 MZ세대에서 불교가 사랑받는 이유에는 이색 체험도 있지만 교리도 한몫한다. SNS 등을 통해 불교 특유의 포용적 메시지가 널리 알려지면서 보이는 것과 경쟁에 지친 청년들의 마음을 저격한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박선영(25)씨는 "유튜브를 통해 한 강연에서 스님이 대학생의 고민에 대해 조언해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큰 위로가 됐다. 취업 준비로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쉬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삶을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어 불교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다른 종교에 비해 종교 강요가 없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혔다. 김현준씨는 "종교가 심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아 신앙 활동을 하고 싶어도 엄격한 규율, 강요 등으로 입문하기 쉽지 않았는데 불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 같다. 불교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해보고 괜찮으면 종교로 삼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격식에 얽매이는 것을 꺼리는 젊은 세대에게 불교 문화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한다. 송재룡 경희대 교수(사회학과)는 "정기 예배나 헌금 등에 대한 부담이 없고, 누구나 일상적 수련과 명상으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다른 종교에 비해 젊은 층의 거부감이 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이 지난달 4일 서울국제불교박람회 무대에서 디제잉 공연을 하고 있다. 서울국제불교박람회 제공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지난달 6일 인천 강화군 소재 전등사에서 진행한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서 남녀 참가자들이 묘장스님 등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MZ세대 사로잡은 재밌는 불교문화 (1) MZ는 불교도 '힙하게'
기자는 가톨릭 신자다. 모태신앙 신자는 아니고, 성인이 되고 나서 세례받았다. 지난 3월 부활절에 받았으니 비교적 최근이다. 큰 고난이 닥쳤을 때 신앙이 있으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종교를 갖게 됐다. 천주교를 택한 건 살면서 만난 가톨릭 신자들이 하나같이 다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고,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내 신앙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은 크게 없는 편이다.그런 종교 중 대표적인 게 불교다. 체질적으로 경쟁과는 맞지 않는 성격이지만 어릴 적부터 무한한 경쟁에 치여 살아왔다. 그러니 번 아웃, 지치는 순간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스님의 말씀이 담긴 문구를 보면서 편안함을 얻었다. 조금은 쉬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였을 뿐, 불교에 더 이상의 관심을 가지긴 쉽지 않았다. 다소 엄숙하고 근엄한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진입 장벽이 느껴졌다.그러다 최근 한 행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또한 지나가리, 이 또한 지나가리, 고통을 이겨내 극락왕생!" 서울국제불교박람회라는 행사가 지난달 열렸는데, 한 스님이 EDM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었다. 관객도 중·노년층일 거란 생각과 다르게 대다수가 젊은 청년들이었다. 진지하고 보수적일 것 같았던 불교 행사가 청년들의 놀이터였다. 이뿐만 아니라 AI 부처의 고민 상담, 인스타그램 스타 스님의 강연 등 최근 트렌드가 결합된 프로그램도 다수 진행됐다.'그렇지. 종교 행사가 무조건 진중할 필요는 없지.' 이 행사를 접한 후 기존에 갖고 있던 불교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불교라는 종교가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온라인상에도 기자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네티즌들이 많았다. "세상 힙한 불교" "시대의 흐름을 탈 줄 아는 유연한 종교" "중요한 건 형태가 아니라 본질" 등의 댓글이 쏟아져 나왔다. 후기를 살펴봐도 불교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행사를 둘러보니 재미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이외에도 다양한 이색 프로그램들이 열리고 있어 불교의 인기는 더욱 뜨거워지는 모양새다. 그중에서도 MZ세대의 반응이 뜨겁다. 국제불교박람회 행사 주최 측도 불교 신자가 감소하는 시대에 무종교 인구가 많은 젊은 세대에 친숙하게 접근하기 위해 '재밌는 불교'를 콘셉트로 잡았고, 실제 방문객도 대다수가 청년이었다고 한다. 사찰을 방문하는 이들도 늘어나면서 대학생이면 단돈 1만원에 1박2일 동안 사찰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최근 마련됐다.불교는 어떻게 젊은 세대를 사로잡았을까. 젊은 세대는 어쩌다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무슨 일이든 '강요'가 뒤따르면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붙잡고 포교하면 관심을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아주 성공적인 포교 사례다. 강요 대신 '재미'와 '의외성'으로 이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연령대에 맞춘 포교 방법, 종교와 그들의 문화를 적절히 결합한 새로운 콘텐츠를 잘 활용했다. 이에 이번 위클리포유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MZ세대에서 불교 문화가 인기를 끄는 현상에 대해 다뤄본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K팝 문화의 이면 '악플'(1) 압박과 악플에… 영혼까지 갉아먹힌 ☆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대상에 따라 이성 간의 애정뿐만 아니라 우애, 모·부성애, 인류애, 조국애, 진리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 등 여러 가지 사랑이 있다. 기자 또한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오늘 얘기하고 싶은 건 아티스트에 대한 사랑이다.기자는 K팝 팬이다. 2PM, B1A4, 엑소, 레드벨벳, 지금은 NCT DREAM과 에스파까지. 여러 아이돌 가수를 '덕질'(무언가에 파고 드는 일) 했고, 하고 있다. 덕질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든 매혹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처음엔 아이돌을 왜 좋아하나 싶었다. 헛짓이라 생각했다. 자주 만나기도, 가수가 나를 기억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을 텐데. 뒷모습이 어떤지도 모르고, 잘 꾸며진 이미지에 속아 넘어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감겨버렸다. '너무 멋지다.' 이후 오랜 기간 K팝을 덕질 하고 있지만 아티스트에 대한 팬들의 마음은 여전히 형용하기 어렵다. 동경이라 하기엔 부족하고 사랑이라 하기엔 조금 과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가장 가까운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가까이서 관계를 형성하진 않지만 함께 행복을 나누고 가수를 응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은 단지 K팝 산업이 만들어낸 상품이라는 말로 환원할 수 없는 복잡한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단순히 구매자와 상품이 아닌 이상적인 관계로 본다.하지만 이제 이런 사랑을 '좋은 것'만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몇몇 팬들은 자신의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과 지지를 표현하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과도한 잣대를 들이밀기 때문이다. 최근 수많은 논란과 사과가 반복됐다. 대표적으로 열애설이 공개된 모 아이돌이 이로 인한 자필 사과문을 올리는 일이 발생했다. 일부 팬들이 '배신 당했다'는 비난과 함께 돌아섰기 때문이다. 외신들도 이를 지적했다. 영국 BBC는 "한국과 일본의 팝스타들은 압박이 심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며 "불과 10년 전만 해도 신인의 연애는 물론 개인 휴대전화도 금지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었다"고 했다. 이어 "지금도 연애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팬들에게 스캔들로 여겨지게 한다"고 꼬집었다.이런 일들은 아이돌 산업 구조가 얼마나 기형적이고 상호 의존적인지를 보여준다. 팬들은 가수에게 자신의 사랑을 투자한 만큼 아티스트도 그에 맞는 언행을 하기 바란다. 문제는 그런 바람이 지나친 요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범법적인 행위나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일은 충분히 피드백을 요청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행동들도 '논란'이 되어 화살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들도 아이돌이기 전에 하나의 인격체다. 보이는 직업이기에 대중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사적인 영역과 개인의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얼마 전 좋아하는 가수가 악플로 인한 불안 증세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K팝 산업이 오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팬덤 문화가 선행돼야 한다. 이는 아티스트와 팬 간의 상호 존중과 이해를 기반으로 시작된다. 이런 노력이 함께 이뤄질 때 K팝 산업은 더욱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라면서 이번 위클리포유에선 K팝 문화의 이면에 대해 다룬다.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그래픽=장수현기자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K팝 문화의 이면 '악플'(2) 무섭고 이기적인 팬덤 문화
"아이돌들 몇억씩 벌면서 징징대는 거 듣기 싫다. 똑같이 힘든데 주 5일 출근에 월 200만원 버는 직장인들도 있다."요즘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K팝 산업과 관련해 자주 보이는 게시글 내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K팝이 흥하고 있지만 산업의 뒤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두운 이면이 존재한다. K팝 아티스트들은 '보이는 직업' 특성상 대중의 사랑을 기반으로 돈을 버는데, 이로 인해 과도한 잣대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모 아이돌의 열애설이 논란으로 떠오르면서 아티스트가 자필 사과문을 올리는 일까지 발생했다.악플 고충 내비친 NCT드림 런쥔 팬들 비난에 불안증세로 활동 중단 에스파 카리나 열애에 극성팬 분노트럭 시위까지 이어지자 사과문 "팬들이 뒷받침해주는 아이돌 문화'보상 심리'로 과도한 잣대 들이대K팝 산업 오래 유지되기 위해선건강한 팬덤 문화부터 선행돼야" K팝 스타인 아이돌은 엔터사의 기획을 통해 만들어진다. 아이돌의 인기를 형성하는 요소는 아티스트들의 재능도 있지만 주로 문화자본, 엔터기획사의 규모, 팬덤 등이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아이돌들은 대중에게 전문적인 아티스트보다는 보이는 직업 또는 엔터사의 상품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며 악플, 감정 착취, 과도한 품평 등 객체화·대상화라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사람들의 관심을 통해 돈을 벌기에 '그래도 되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 K팝 산업과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론장을 새로운 눈으로 풀이하는 책 '망설이는 사랑'에서 저자 안희제도 "아이돌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노래나 춤과 같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일보다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일'로 이해된다"고 했다.이로 인해 최근 K팝 아티스트들의 호소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지난달 7일 그룹 엔시티 드림(NCT DREAM)의 런쥔은 자신이 받은 악성 메시지를 팬소통 플랫폼에 공개하며 고충을 토로했다. 해당 메시지에는 '아이돌들 살기 너무 편해졌다'는 말과 함께 외모와 실력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면서 런쥔은 "아이돌도 사람이고 힘듦을 느낀다. 보이는 건 당연히 예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접한 네티즌들 중에는 런쥔의 입장에 동의하는 이들이 나오는 한편 "굳이 왜 부정적인 메시지를 팬과의 소통 창구에 올리며 징징대는지 모르겠다" "팬들이 감정 쓰레기통인가" 등의 반응도 적지 않았다. 런쥔은 결국 컨디션 난조와 불안 증세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열애설이 논란이 된 경우도 있다. 지난 3월5일 그룹 에스파의 카리나는 자신의 SNS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저를 응원해준 마이(공식 팬덤)들이 얼마나 실망했을지, 그리고 우리가 같이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속상해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마이들이 상처받은 부분 앞으로 잘 메워나가고 싶다." 일주일 전 배우 이재욱과의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는데, 그사이 여러 팬들이 배신 당했다는 비난을 온·오프라인으로 표출하면서 뒤돌아섰기 때문이다. 카리나 소속사 인근엔 해외팬들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트럭 시위가 등장하기도 했다. 트럭에는 "팬이 너에게 주는 사랑이 부족하니? 당신은 왜 팬을 배신하기로 선택했습니까"라는 멘트가 적혀 있었다.런쥔도, 카리나도 스타들이 이렇게 엄격한 잣대에 직면하는 근본적인 이유에는 아이돌은 대중에게 보여줘야 하는 영역과 숨겨야 하는 영역을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10년째 K팝을 덕질(무언가에 파고 드는 일) 하고 있다는 이세영(26)씨는 "아이돌은 보이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긍정적이지만 수동적인 모습만 보여줘야 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듯하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 않는 '아바타'처럼 말이다"라면서 "그런 점에서 고충 토로나 열애설은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는 점에서 숨겨야 하는 영역에 해당한다. '우리의 사랑으로 돈을 버는 네가 감히?'식의 생각이 사람들의 무의식에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팬과 가수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보상 심리'로 풀이되기도 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팬들이 가수를 뒷받침하고 밀어준다고 생각하기에 유사 제작자 마인드가 있는 듯하다. 자신들이 스타에게 해주는 만큼 스타도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열정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 스타로서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기대한다"면서 "그러니 연애를 한다든지, 푸념을 한다든지 하는 건 이들에게 열심히 하려는 마음가짐이 없는 것으로 비친다. 그런 심리가 있어서 아이돌들을 팬들이 다그치는 일들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단순히 상대를 좋아하는 걸 넘어서 과도한 것을 요구하고 이래라저래라하는 건 팬의 위치에 맞지 않는 건강하지 못한 행동"이라며 "스타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응원해주는 선에서 그치는 게 가장 팬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K팝을 좋아하는 대중 사이에서 확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에스파 카리나엔시티 드림 런쥔
[동 추 거문고 이야기]〈8〉줄 없는 거문고(하) 정신은 찾지 않고 껍데기만 좇을 뿐…고요함 속 찾은 깨달음의 경지
"옛말에 이르기를 거문고는 악(樂)의 으뜸이라, 군자가 항상 사용하여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는 군자가 아니지만 거문고 하나를 지니고 줄도 갖추지 않고서 어루만지며 즐겼더니, 어떤 손님이 이것을 보고 웃고는 다시 줄을 갖추어 주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길게 혹은 짧게 타며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옛날 진나라 도연명은 줄이 없는 거문고를 두고 그것으로 뜻을 밝힐 뿐이었는데, 나는 이 구구한 거문고를 가지고 그 소리를 들으려 하니 어찌 옛 사람을 본받겠는가?" 시·거문고·술을 너무나 좋아해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었던 이규보(1168~1241)가 남긴 내용이다. 그 역시 도연명의 무현금의 세계를 동경했음을 알 수 있다. 줄 없는 거문고 '무현금'의 세계는 이처럼 한국의 선비들에게도 깊이 스며들었다.소리가 없음에 느끼는 오묘함 체득귀한 줄이나 채 가져도 부질 없는 것귀로 듣는게 아닌 마음으로 듣는 것선비들에 깊이 스며든 무현금 세계◆조선의 선비와 무현금이규보는 도연명의 무현금 세계를 찬미하는 시를 적지 않게 남겼다. 다음은 도연명의 시에 대해 읊은 작품 '독도잠시(讀陶潛詩)'이다. 도잠(陶潛)은 도연명의 본명이다. 연명(淵明)은 도잠의 아호이다. '내가 사랑하는 도연명은(吾愛陶淵明)/ 그 말이 너무도 평담하다(吐語淡而粹)/ 항상 줄 없는 거문고 어루만졌다지(常撫無絃琴)/ 그러기에 시도 모두 그렇구나(其詩一如此)/ 지극한 음률은 소리가 없는 법이니(至音本無聲)/ 무슨 줄이 필요하겠는가(何勞絃上指)/ 지극한 말은 문체가 없는 법인데(至言本無文)/ 어찌 꾸밈을 일삼으랴(安事彫鑿費)/ 자연에서 나온 그 평화로운 말들(平和出天然)/ 음미할수록 진미를 느끼네(久嚼知醇味)/ 인끈 풀고 전원에 돌아와(解印歸田園)/ 세 갈래 좁은 길 소요하면서(逍遙三徑裏)/ 술 없으면 친구 찾아가(無酒亦從人)/ 날마다 취해 쓰러졌지(頹然日日醉)/ 한 평상에 희황이 누웠으니(一榻臥羲皇)/ 맑은 바람 솔솔 불어온다(淸風颯然至)/ 순수한 태고 시절 백성이요(熙熙太古民)/ 고상하고 뛰어난 선비로세( 卓行士)/ 그 시 읽고 그 사람 상상하며(讀詩想見人)/ 천년토록 높은 의리 숭앙하리(千載仰高義)'.이규보의 또 다른 시 '소금(素琴)'이다. '천뢰(우주)는 처음부터 소리 없는데/ 흩어져 만규(萬竅)의 소리를 내는구나/ 오동은 본래 고요한 것이나/ 다른 힘을 빌려서 소리가 나네/ 내가 줄 없는 거문고로/ 유수(流水)곡 한 곡을 타네/ 지음(知音)이 듣기를 원하지도 않고/ 속물이 듣는 것도 꺼리지 않네/ 다만 내 마음을 쏟아/ 애오라지 한두 줄 퉁겨 보네/ 곡조가 끝나면 또 고요하게 침묵하니/ 아득히 옛사람의 뜻과 합치되네'화담(花潭) 서경덕(1489~1456)은 '무현금명(無絃琴銘)'을 남겼다. 무현금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거문고에 줄이 없는 것은(琴而無絃)/ 본체는 놓아두고 작용을 뺀 것이다(存體去用)/ 정말로 작용을 뺀 것이 아니라(非誠去用)/ 고요함에 움직임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靜基含動)/ 소리를 통하여 듣는 것은(聽之聲上)/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不若聽之於無聲)/ 형체를 통하여 즐기는 것은(樂之刑上)/ 형체 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不若樂之於無刑)/ 형체가 없음에서 즐기므로(樂之於無刑)/ 그 오묘함을 체득하게 되며(乃得其)/ 소리 없음에서 그것을 들음으로써(聽之於無聲)/ 그 미묘함을 체득하게 된다(乃得其妙)/ 밖으로는 있음에서 체득하지만(外得於有)/ 안으로는 없음에서 깨닫게 된다(外得於無)/ 그 가운데에서 흥취 얻음을 생각하면(顧得趣平其中)/ 어찌 줄에 얽매이겠는가(爰有事於絃上工夫)/그 줄은 쓰지 않고(不用其絃)/ 그 줄의 줄 소리 밖의 가락을 쓴다(用其絃絃律外官商)/ 나는 그 본연을 체득하고(吾得其天)/ 소리로써 그것을 즐긴다(樂之以音)/ 그 소리를 즐긴다지만(樂其音)/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요(音非聽之以耳)/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聽之以心)/ 저 종자기가(彼哉子期)/ 어찌 나의 거문고 소리를 귀로 들으리(曷耳吾琴)'종자기(鍾子期·BC 387~299)는 중국 춘추전국 시대 초나라의 사람이다.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의 거문고 소리를 종자기만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종자기가 죽은 후에 백아는 지음(知音)을 잃었다고 탄식하며 거문고를 다시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조선 전기 문신인 이영서(?~1450)가 남긴 시 '무현금(無絃琴)'이다. 여기에서도 이런 선비의 삶을 잘 읽을 수 있다. '도연명이 거문고 하나를 가졌는데(淵明自有一張琴)/ 줄을 매지 않았지만 뜻은 더욱 심오했었네(不被朱絃思轉深)/ 참된 맛을 어찌 거문고 소리로써 얻을 것인가(眞趣豈能聲上得)/ 천기란 모름지기 고요함 속에서 찾아진다네(天機須向靜中尋)/ 좋은 거문고 줄과 채는 모두 부질없는 것(鯤絃鐵撥渾閑事)/ 유수와 고산을 켰다는 악곡도 헛애만 쓴 것이네(流水高山 苦心)/ 옛 거문고 가락 속인의 귀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니(古調未應諧俗耳)/ 천년 세월이 흘러가도 그 곡조 아는 이 없으리(悠悠千載少知音)' '곤현(鯤絃)'은 곤어(鯤魚) 가죽으로 만든 줄로, 좋은 거문고 줄을 의미한다. 곤어는 북해에 산다는 상상의 큰 물고기이다. 그리고 '철발(鐵撥)'은 쇠로 만든 채(현을 퉁기는 도구)를 말한다. 좋은 악기나 연주 도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리 이전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것이 관건임을 이야기하고 있다.줄이 없는 거문고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쓸모가 없는 물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도연명은 무현금 하나를 가지고 어루만지면서 심오한 뜻을 추구했다. 참다운 맛은 거문고에서 나오는 소리로 얻어지는 게 아니며, 귀한 거문고 줄이나 채를 가졌다는 것은 다 부질없는 것이다. 백아가 아양곡을 잘 타고 종자기가 그 가락을 잘 알아들었다는 것도 헛애만 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도연명이 줄 없는 거문고에서 들었던 그 곡조를 알고자 하는 뜻을 드러내고 있다.동양의 대표적 고전인 '채근담'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고작 유자서(有字書)나 읽을 줄 알았지 무자서(無字書)를 읽을 줄은 모르며, 유현금(有絃琴)이나 뜯을 줄 알았지 무현금(無絃琴)을 뜯을 줄은 모르니, 그 정신을 찾으려 하지 않고 껍데기만 쫓아다니는데 어찌 금서(琴書)의 참맛을 알 도리가 있겠는가.' 이처럼 선비들, 군자와 성인이 되고자 했던 옛 지식인들은 그들이 추구한 인격을 완성해 가는 동반자로 무현금을 가까이했던 것이다.무현금의 세계를 추구한 것은 선비들뿐만이 아니다. 선사들, 불교 수행자들은 '몰현금(沒絃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깨달음의 경지를 드러내고 있다. 줄 없는 거문고라는 비유를 통해 탐진치(貪嗔痴)를 벗어난 깨달음의 세계,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경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이경윤(1545~1611)의 '월하탄금도'(부분). 이 그림은 줄이 없는 거문고를 그린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김봉규 bg4290@naver.com
[사람의 서재] 우울·파멸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오랜 기간 많은 청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인간 실격'의 첫 문장이다. 이 소설은 우울과 절망에 빠진 젊은이의 심리를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묘사하고 있는데,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다.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7남 4녀 중 열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 쓰시마 집안은 고리대금업을 통해 대부호 가문으로 성장했는데, 이런 집안의 역사는 다자이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였고 그의 작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학창 시절부터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아 도쿄제국대 불어불문과에 입학한 후 좌익 운동에 가담했다. 1930년 연인과 투신자살을 기도했지만 홀로 살아남았다. 1935년 소설 '역행'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했다. 27세가 되던 해 "유언을 쓰는 마음으로 썼다"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했다. 그는 또다시 아쿠타가와상에 응모했고 발표에 앞서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설국'의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책을 보내며 다음과 같은 편지를 첨부했다. "부디 저에게 (아쿠타가와상을) 주십시오. 바라는 것은 일절 없습니다. 깊은 경의와 비밀스러운 혈족감이 이와 같은 부탁의 말씀을 드리게 한 것 같습니다. (중략) '만년' 이 한 권만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분명 괜찮은 작품일 것입니다."1945년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그는 정신적 공황에 빠진 일본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지금까지의 도덕이나 문학에 반발해 새로운 인간성 회복을 찾아 가자고 주장하는 '무뢰파(無賴派) 문학'의 대표 작가로 불리게 된다. 이 시기에 발표된 '인간 실격'은 '퇴폐와 파멸의 정조'를 기저에 깔고 있는 일본 무뢰파 문학의 대표작이다.이후 3년 뒤인 1948년 연인과 함께 또다시 투신자살을 기도했고 생을 마감했다. 향년 38세. 유서엔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졌기 때문에 죽습니다"라고 썼다. 조현희기자다자이 오사무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앤티크의 세계(3) 서운희의 앤틱 지식·정보
오래된 도자기를 보면 '언제 만들어졌지?' '어느 회사 제품이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찾기 어렵다. 이런 갈증을 해결해줄 '가뭄 속 단비' 같은 책이 지난달 발간됐다. 앤티크(앤틱, Antique) 도자기에 대한 모든 것이 담긴 백과사전, '서운희의 앤틱(엔틱) 지식'과 '서운희의 앤틱(엔틱) 정보'<사진>다.저자인 서운희는 약 10년간 유럽 앤티크 도자기를 모으고 있는 수집가다. 세계 3대 도자기인 독일의 마이센, 헝가리의 헤렌드, 덴마크의 로얄 코펜하겐을 비롯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셀 수 없을 만큼 보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시작한 취미였지만 이제는 국내에서도 앤티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 필요하다고 느껴 이번 신간을 발간했다. 기존 해외 서적은 찾기도 쉽지 않고, 찾아도 도자기의 이름이 회사명으로 이름이 표기된 경우가 있어 국내 독자들이 앤티크 도자기에 관한 책을 접하거나 모르는 도자기의 이름을 알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이런 어려움을 덜기 위해 저자는 자신이 보유한 여러 소장품들을 바탕으로 앤티크 도자기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백과사전식으로 구성해 설명한다.앤티크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게재할 내용이 매우 풍부해 한 권의 책으로는 그 내용을 모두 담기 모자라며 방대하다. 이에 저자는 '지식'편과 '정보'편을 나눠 두 권으로 발간했다. 두 권의 저서는 내용이 상호 연결돼 있다. 지식편은 앤티크 도자기의 스토리·팩토리(제조사)·모양·연표·명장·기념 접시 등의 내용이, 정보편은 지식편과 마찬가지로 스토리·팩토리·기념 접시에 더해 이마리 패턴·제조 번호·양식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온 가족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쉽게 풀어썼다. 큰 책에 저자가 직접 찍은 다양한 시각자료도 들어가 있어 잡지를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앤티크는 일반적으로 오래전에 만들어진, 100년 이상 된 도자기(ceramic), 포슬린(porcelain), 포터리(pottery)를 일컫는다. 이 책에선 이를 일일이 구분해 부르기엔 번거로운 면이 있어 통칭해 '앤틱'이라 부른다. 'Antique'란 단어도 외래어를 우리말로 표기할 땐 '앤티크'라 표기하지만, 본책에선 일반적인 독자들이 통상적으로 부르는 '앤틱(엔틱)'으로 표기했다.저자는 서문에서 "박물관에서만 만날 수 있는 거리감 있는 도자기가 아니라, 우리가 생활 속에서 수집 가능한 다양한 유럽 도자기를 '앤틱'이라 칭해 이 책에 나타냈다"며 "오래된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앤티크의 세계(2) 당대 최고 장인이 완성한 빈티지 도자기…백마크·디자인엔 문화 코드 담겨
"원래 수집에 취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앤티크 도자기를 접하게 됐는데 이건 언제 만들어졌고 이름은 뭘까, 어느 회사 제품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찾아보고 모으게 됐어요. 몇 개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저희 집에 방문한 사람 중에는 박물관급이라 말하는 분도 계시더라고요(웃음)." 서운희 도서출판 앤틱 대표는 '앤티크(앤틱, Antique) 도자기' 수집가다. 경북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서 대표는 금융기관 근무를 시작으로 커리어를 쌓았는데, 도자기나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앤티크 도자기를 수집하게 된 건 '앎의 즐거움'으로 시작됐다. 10여 년 전 앤티크 도자기를 우연히 접한 후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서 과거의 물건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금융가 일하다 수집가로 옛것서 새것 아는 재미 빠져 정보 찾고 모으다 책까지 내 명가 고유의 紋章 백마크 위조 구별하려 새기기 시작 제조사·시대별 다르게 표기 도자기 예술에 숨ㅅ은 역사 십자군 승전 700주년 접시나 청나라 영향 받은 디자인도도자기의 종주국은 중국이지만 그가 수집하는 앤티크 도자기는 주로 유럽에서 제조된 것들이다. '백마크'(Back mark)의 매력 때문이다. 오래된 도자기들을 보면 알 수 없는 문자나 숫자, 작은 그림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백마크다. 유럽의 도자기 회사들은 도자기를 제조할 때마다 밑바닥에 상표인 백마크를 정교하게 새긴다. 17세기까지 유럽에는 토기나 도기 수준의 연질도만 있었는데, 1710년 작센 공국의 마이센(Meissen)에서 도기를 처음 생산했다. 마이센은 자기를 제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조품이나 열등한 모조품으로부터 자사 제품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깨닫고 진품을 나타내기 위해 마크 표시를 그리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이후 백마크 표기는 유럽의 다른 도자기 제조사로도 이어졌다. 백마크는 제조 회사에 따라, 심지어는 같은 회사라도 제조 시기에 따라 다르게 표기된다. 영국 민턴(Minton)의 경우 1891년부터 1912년 사이 제조된 제품에는 기본 인쇄 마크에 'England'란 단어가 새겨져 있지만 이후 1950년까지는 'Made in England'라는 문구가 종종 추가된다. 서 대표는 이 점을 매력으로 꼽았다. "보통 오래된 도자기를 보면 예쁘다, 아름답다고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도자기마다, 심지어는 같은 제조 회사라도 시기에 따라 백마크 디자인이 다 달라요. 그런 새로운 정보들을 알아가는 게 정말 즐겁더라고요. 모르는 백마크는 알 때까지 찾아본다고 몇 달이 걸린 적도 있어요. 온·오프라인 서적을 모두 들여다봤죠." 앤티크는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예술품이다. 장인들은 시대마다 고유한 스타일을 창출했는데, 접시에 담긴 그림이 당시 중요한 사건이나 문화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 덴마크 왕실 도자기 브랜드인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은 1888년부터 오늘날까지 매년 기념접시를 발행하고 있는데, 한 해 있었던 중요한 사건이나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접시 앞면에 쓰인 연도는 접시에 담긴 사실이 발생한 해를 의미한다. 그는 1919년 제조된 단네브로그(Dannebrog) 700주년 기념 접시로 설명했다. "하늘에는 덴마크 국기가 있고, 그 밑에는 군인들이 환호하며 기뻐하는 그림이죠. 1219년 십자군전쟁 때 하늘에서 십자가가 그려진 붉은색 깃발이 덴마크 진지로 내려오면서 덴마크 군대가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 붉은색 깃발을 단네브로그라 해요. 그래서 덴마크에서는 이 붉은 깃발을 축복으로 여겨 국기로 정하게 됐어요. 그 일의 7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접시예요. 앤티크 도자기를 통해 역사적 사건도 엿볼 수 있는 거죠."제조사에 따라 그 회사만의 고유한 패턴도 나타난다. 로얄 코펜하겐의 경우 독일 마이센에서 매각한 '블루 플루티드'가 있다. 중국의 청화백자를 참고해 디자인한 푸른 밀짚꽃 문양 패턴이다. 영국의 와일만(Wileman)과 쉘리(Shelley)는 굉장히 다양한 패턴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마리 패턴'이 유명하다. 18세기 초 영국이 고급 도자기를 만드는 비결을 알게 되자 일본 도자기의 스타일을 모방한 것이다. 이마리는 일본 아리타에서 만든 도자기를 수출하는 아리타 인근 항구 이름이다. 와일만과 쉘리는 19~20세기 화려한 금색으로 칠해진 붉은 주황색 장식과 함께 언더 글레이즈를 사용한 이마리 스타일로 화려한 패턴을 만들었다.이런 재미로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한 도자기들은 이제 셀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집을 장식하고 있다. 거실부터 주방, 방 안까지 다양한 회사, 여러 패턴의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세계 3대 도자기인 독일의 마이센, 헝가리의 헤렌드, 덴마크의 로얄 코펜하겐을 비롯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자기를 구하는 방법이 어렵지 않았냐고 물으니 최근 국내에서도 앤티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간편한 방법으로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요즘은 판매 시스템이 잘돼 있는 것 같아요. 국내에서도 여러 앤티크 도자기 셀러들이 활동하고 계셔서 그분들을 통해 하나둘씩 구입했어요. 오프라인 매장도 꽤 있어요"라고 했다."정말 흥미롭죠.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저 혼자 알고 있는 게 아쉽더라고요." 서 대표는 그의 신간 '서운희의 앤틱(엔틱) 지식'과 '서운희의 앤틱(엔틱) 정보'를 펴낸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미 2021년 앤티크 도자기의 백마크에 관한 책을 발간했지만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할 필요성을 느껴서다. 그는 "처음 펴낸 책에는 백마크에 관한 내용만 있었어요. 최근 앤티크 도자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보다 다양하게 쓰면 앤티크를 처음 접하는 분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어요. 좋은 건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라며 웃었다. 글=조현희기자·사진=도서출판 앤틱서운희 대표가 소장 중인 영국 로졸 웨어의 도자기.로얄 덜튼의 셰익스피어 시리즈 제품들. 도자기에 표현된 셰익스피어.아래는 도자기로, 뚜껑은 실버 플레이트 혹은 니켈 등으로 만든 비스킷 배럴.영국 웰링턴 차이나 찻잔 세트. 그래픽=장수현기자서운희 대표의 자택. 세계 3대 앤티크 회사의 도자기를 비롯해 다양한 앤티크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앤티크의 세계(1) 컬렉터 서운희씨가 말하는 빈티지 도자기 수집의 미학
수집은 아주 재미있는 취미다. 다양한 물건과 정보를 모으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쾌락과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상에 따라서는 어떤 문화나 역사를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 수집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물건 중 하나가 '앤티크(앤틱, Antique)'다. 앤티크란 형용사로 옛날의, 고대의, 고풍의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명사로 치면 골동품이다. 일반적으로 100년 이상 된 물건을 의미하지만 최근에는 쓰임새가 넓어져 100년이 지나지 않아도 특별한 가치를 지닌 오래된 물건이면 앤티크로 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앤티크 수집의 가장 큰 매력은 먼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앤티크는 현대 제품들과는 다른 미(美)를 갖고 있어 매력적인데, 예스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희소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잘 살펴보면 물건이 만들어진 시대·문화적 배경을 알 수 있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앤티크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제조된다. 특히 유럽의 왕조와 귀족들이 즐겨 쓰던 것들은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한땀 한땀 공들여 만든 것이다. 덴마크 왕실 도자기 브랜드인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은 1888년부터 오늘날까지 매년 기념접시를 발행하고 있다. 접시 앞면에 쓰인 연도는 접시에 담긴 중요한 사실이 발생한 해다. 매년 특정한 사건이나 행사 등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다.이처럼 앤티크 수집은 단순히 독특한 물건을 모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과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 앎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 같은 매력으로 유럽에서 앤티크 수집은 일상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즐기는 취미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 생소한 문화로 여겨진다. 앤티크에 대한 정보도 그리 많지 않아 입문의 벽도 존재한다. 이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던 중 최근 앤티크 관련 책이 나왔다. '서운희의 앤틱(엔틱) 지식'과 '서운희의 앤틱(엔틱) 정보'다. 두 책은 상호 연결돼 있는 책으로 앤티크 도자기에 대한 풍부한 정보들이 체계적으로 담긴 백과사전이다.저자인 서운희 도서출판 앤틱 대표는 10여 년 전 앤티크 도자기를 우연히 접하게 됐다가 '이건 언제 만들어졌지?' '이름은 뭐지?' '어느 회사 제품이지?' 등과 같은 궁금증을 갖고 하나둘씩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수집한 앤티크 도자기는 현재 셀 수 없을 만큼 모였다. 그는 앤티크 도자기에 대한 수요층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처럼 궁금증을 갖고 앤티크 도자기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앤티크 전문 출판사를 차려 책을 발간했다. 2021년 12월에 펴낸 '서운희의 앤틱(엔틱) 백마크'가 첫 저서다. 앤티크 도자기의 백마크(밑바닥 상표)에 관한 책으로는 국내 최초다. 앤티크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할 정도로 첫 저서부터 반응이 좋았다. 더 많은 지식과 정보에 대한 요청도 줄이어 이번 신간 두 권을 펴내게 됐다고 한다.앤티크 도자기와 서 대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의 집에 방문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포근한 느낌이 가득한 그의 집은 유럽 여러 회사에서 나온 오래된 도자기들로 채워진 '박물관'이었다. 그가 들려주는 매력적인 앤티크 도자기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그래픽=최은지기자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전세계 홀리는 'K-라면' (2) 중국서 밀가루 늘여 만든 납면, 일본 인스턴트 라멘 거쳐 한국의 라면으로
도약기중일전쟁 비상식량이던 납면日사업가 치킨라멘으로 개발삼양식품이 제조기술 배워와1963년 한국 최초 라면 선보여황금기1980년대 신라면·너구리 등장사발면·짜파게티 출시 다양화전성기유튜브 '매운맛 챌린지' 열풍한류 타고 수출 효자품목 등극 ◆中→日→韓…삼양의 '치킨라면'이 시초라면은 중국의 '납면'(拉麵· 라미엔)이 일본으로 전해져 라멘으로, 다시 우리나라로 건너와 라면이 됐다. 납면은 '끌어당겨 만든 면'이라는 뜻이다. 1930년대 중일전쟁 당시 중국 북방에서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잡아 늘여 만든 납면이 중국군의 비상 식량으로 사용되면서 자연스레 일본으로 전파됐다. 일본 닛신식품 창업자인 안도모모후쿠가 1958년 미군이 구호품으로 지급한 밀가루를 활용해 개발한 '치킨라멘'이 오늘날 인스턴트 라면의 시작이다.우리나라에서 라면이 처음 생산된 것은 1963년 9월15일이다. 삼양식품이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삼양라면'을 선보이면서 시작됐다. 1960년대 초 전중윤 회장은 남대문 시장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면서 식량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이 패전 후 식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눈여겨봤고, 일본에서 라면을 시식한 경험이 있던 그는 라면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5만달러를 정부로부터 빌려 일본 묘조식품의 라면 제조 기술 및 기계를 도입했다. 당시 라면 가격은 100g에 10원이었는데, 커피 한 잔이 35원, 김치찌개가 3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저렴했다. 그러나 밥과 국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인스턴트 식품인 라면은 초기에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다.1965년 나온 정부의 혼분식(混粉食) 장려 정책은 '가뭄 속 단비'였다. 이 정책은 식사에서 주식인 쌀의 소비를 줄이고 혼식과 분식을 늘리는 방법이었다. 이때부터 라면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음식으로 다가왔고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대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식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같은 해 롯데공업(현 농심)에서도 롯데라면을 생산했다. 1966년 연 240만개 팔리던 라면은 1969년 1500만개로 늘어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베트남전 파병 장병들의 보급품으로 납품되기도 했다. 삼양식품은 1963년 총 42명의 종업원만이 몸담고 있었지만, 약 10년 후인 1970년 중반엔 무려 5천명의 종업원이 일하는 거대 제조사로 성장했다.◆황금기 도약…신라면·짜파게티의 등장1970년대가 라면의 도약기였다면 1980년대는 황금기다. 오늘날까지 우리가 찾는 상품 다수가 이때 나왔기 때문이다. 절대빈곤 해소를 위한 기업인들의 의지, 급속한 경제발전 등으로 라면 수요 증가에 탄력이 더해지면서 제조사들은 새로운 상품을 계속 출시하며 제품의 다종화에 주력했다. 삼양라면은 1980년대 초반에만 '뽀빠이면' '귀빈면' '떡라면' '라면1번지' 등을 선보였다. 김남석 부경대 교수의 '라면의 기원과 국내 보급의 역사'에 따르면, 이에 대항하는 농심은 기념비적인 제품을 출시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1981년에 시판되기 시작한 '사발면'으로, 이는 용기를 개봉한 이후 물을 넣어 즉석라면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조된 제품이다. 이어 1982년에는 '너구리'와 '육개장 사발면', 1983년엔 '안성탕면', 1984년엔 '짜파게티', 1986년엔 '신라면'을 출시했다. 특히 신라면은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을 받는 제품으로 2020년 국내 라면시장 전체 매출의 15.97% 규모로 1위다.스포츠는 한국인의 라면 사랑에 더욱 불을 붙였다. 1984년 LA올림픽 1호 금메달리스트 레슬링의 김원기는 "조금이라도 양을 늘리려고 일부러 라면을 불려서 먹었다"라고 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육상 사상 최초의 3관왕을 차지한 임춘애가 "라면만 먹고 운동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회자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관중석에서 컵라면을 먹는 장면도 세계에 중계되며 한국 컵라면이 널리 알려졌다. 한국형 컵라면은 1972년에 처음 세상에 나왔는데, 봉지라면보다 두 배 비싼 가격으로 판매는 부진했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 이후 컵라면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세계 각지로 팔려나갔다.◆한류 열풍…미디어 통해 세계 각지로 쏙쏙21세기 들어 세계화가 본격화된 가운데 한국의 라면은 'K-푸드'가 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지난 1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우리나라 농식품 수출액은 22억달러를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라면 수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라면 수출액은 작년 동기보다 30.1% 증가해 2억740만달러로 최대 기록을 달성했다. 농심의 대표 제품인 신라면의 경우 2021년 처음으로 해외 매출(5천억원)이 국내 매출(4천3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기준 신라면 국내 매출은 5천억원(41%), 해외 매출은 7천100억원(59%)에 달한다.수출의 일등공신은 K-콘텐츠다. 전 세계 사람들이 유튜브 또는 넷플릭스 등의 OTT를 통해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접하면서 라면의 인기도 뜨거워졌다. K-라면은 단순히 제품만 알려지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레시피와 재미있게 먹는 법까지 더해져 널리 퍼졌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원 안〉는 농심의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은 라면에 채끝살 등을 얹은 요리인데, 인스턴트 라면도 고급 음식의 식재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줬다. 이를 통해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K-라면 레시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에는 '라면땅'(끓이지 않은 라면 면을 양념 스프에 묻힌 것)을 먹는 장면이 등장해 라면 과자에 대한 외국인들의 궁금증도 유발했다. '먹거리 경험 소비' 문화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SNS, 유튜브 등에서 매운 음식 먹기에 도전하는 소위 '매운맛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매운 라면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삼양식품이 2012년 출시한 불닭볶음면은 국내외 매운 라면 열풍을 선풍적으로 일으킨 상품인데, 신라면보다 매워 매운 음식에 익숙한 한국인이 먹어도 땀을 흘릴 맛이다. 구독자 590만명이 넘는 유튜버 '영국남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콘텐츠를 다루는 영국인 유튜버다. 2014년 불닭볶음면을 먹는 런던 사람들 반응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렸는데, 외국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불닭볶음면에 대한 궁금증, 시식 후기 등이 줄이었다. 이후 '불닭볶음면 먹기 챌린지'도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불닭볶음면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출시 해인 2012년 1억원이 되지 않던 불닭브랜드 수출액은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6천800억원을 달성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올해도 해외법인을 중심으로 현지 영업마케팅을 강화하며 해외사업 성장세를 이어갈 계획"이라며 "수출 시장 다변화와 소스, 냉동식품 등으로의 수출 품목 확대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삼양식품 초기 광고. 창업주인 전중윤 회장은 국내 식량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생각해 라면을 출시했다. 지난 12일 서울 성동구 플랜트란스에서 농심 짜파게티 출시 40주년을 기념해 열린 '짜파게티 분식점' 팝업스토어에서 라면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신라면 컵라면을 구입한 관광객들. 591만 유튜버 '영국남자'가 2014년 올린 '런던의 불닭볶음면 도전' 영상.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전세계 홀리는 'K-라면' (1)'꿀꿀이죽' 충격이 만든 라면, 이젠 전세계 홀리는 K-푸드
지난해 12월, BGF리테일은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KT&G 상상마당에 라면을 직접 제조해 먹을 수 있는 CU 편의점을 열었다. 일명 '라면 라이브러리'로 불리는 이곳은 외국 관광객을 포함해 2030세대가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유럽의 지붕, 만년설이 쌓인 스위스 융프라우산 정상에서 자주 보이는 라면이 있다. 농심 '신라면'의 컵라면이다. 한국인은 익숙한 냄새에, 외국인들은 매콤한 맛에 끌려 현지 매점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신라면 컵라면은 이제 융프라우 관광객에게 필수 먹거리가 됐다.구독자 590만명이 넘는 유튜버 '영국남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콘텐츠를 다루는 영국인 유튜버다. 2014년 삼양의 '불닭볶음면'을 먹는 런던 사람들의 반응을 편집한 영상을 올렸는데, 외국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 1천125만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한국인에게 간식이면서 주식 같은 음식. 라면의 매력은 대단하다. 간편하고 싼데 맛까지 있다. 그래서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음식 중 하나다. 2022년 한국인의 연간 평균 라면 소비량은 77개라고 한다. 한 달에 평균 6개는 먹는 셈이다.한때 라면은 몸에 나쁜 음식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이제 소비자들의 수요 증가로 상품의 종류가 다양해져 나쁜 이미지로만 보이지 않는다.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좋은 재료와 영양소를 강조하는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비건 라면인 애터미의 '감자라면'이 그 예다. 매운 음식 열풍으로 맵다고 유명한 삼양의 불닭볶음면에서 더 매워진 '핵불닭볶음면'도 나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출시 초기엔 '이걸 누가 먹나' 하는 소비자들의 궁금증이 있었지만, 이제는 '매운맛 덕후'면 너도나도 한 번씩 도전하고 있다.이런 라면은 중국에서 일본,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왔다. 한국에선 1963년 삼양식품이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치킨라면'을 선보이면서 시작됐다. 기존에 라면은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소비되는 음식으로 여겨졌다.하지만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K-푸드인 라면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K-라면은 미국, 유럽, 중동, 남미 등 여러 지역 편의점, 슈퍼마켓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1분기 우리나라 농식품 수출액은 22억달러를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라면 수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라면 수출액은 작년 동기보다 30.1% 증가해 2억740만달러로 최대 기록을 달성했다. 농심의 대표 제품인 신라면의 경우 2021년 처음으로 해외 매출(5천억원)이 국내 매출(4천3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기준 신라면 국내 매출은 5천억원(41%), 해외 매출은 7천100억원(59%)에 달한다.국내 식품기업들의 '라면 경쟁'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세계 각지를 사로잡기 위해서다. K-라면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을 방증한다. 이에 이번 위클리포유에서는 K-라면이 이토록 성장하기까지의 역사와 그 주역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라면을 먹으면서 읽으면 재미는 배가 될 듯하다.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최은지기자
[사람의 서재] 서머싯 몸
소설가로 더 유명하지만 극작에도 재능을 보여 소설, 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많은 명작을 남기고 간 작가가 있다. 인생관을 강하고 명석한 문체로 묘사하고,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풍자 희극을 써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서머싯 몸이다.몸은 1874년 파리 주재 영국 대사관의 고문변호사 아들로 태어났다. 여덟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2년 뒤 아버지마저 여의자 영국에서 목사로 있던 숙부 밑에서 자랐다. 한동안 독일에 유학한 뒤 런던의 한 의대에 입학했는데, 이때부터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1897년 첫 소설 '램버스의 라이자'를 발표했다. 1897년 의대를 졸업하고는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해 소설, 희곡을 계속 썼다. 1907~1908년 그의 희곡 4편이 런던 4곳의 극장에서 동시에 상연되면서 이름을 떨쳤다.한국에서도 많이 읽히는 '인간의 굴레'는 그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완성한 장편소설이다. 몸이 고독한 청소년 시절을 거쳐 인생관을 확립하기까지 정신적 발전의 자취를 더듬은 자서전적 대작이다. 그러나 출간 당시에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후 1919년 화가 폴 고갱의 삶에서 모티프를 따온 소설 '달과 6펜스'〈사진〉를 펴내면서 호평을 받고 작가로서 지위를 확립했다.그는 91세라는 나이까지 장수해 긴 생애에 걸쳐 많은 작품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소설은 '케이크와 맥주'(1930), '면도날'(1944), 희곡은 '순환'(1921 초연), '높은 사람들'(1923), '서밍업'(1938) 등이 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네이버 지식백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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