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Talk] 스물세 번째 시집 '눈물, 그토록 아름다운 물방울' 펴낸 이기철 시인
〈이기철 시인 제공〉 "슬픔이라는 이름은 슬픔 속에서 산다/ 봄을 기다리는 나무처럼 기다림으로 산다/ 책을 안듯 한 아름 그리움을 안고/ 세상의 외딴집으로 걸어간다/ 햇빛의 은실은 끊어져도/ 기다림의 끈은 끊어지지 않는다" ('눈물, 그토록 아름다운 물방울' 중)문단에 나온 지 53년째, 스물세 번째 시집을 펴낸 이기철(영남대 명예교수) 시인은 여전히 시 앞에서 겸손하다. 그는 20여 권의 시집을 내고 1993년 김수영문학상, 2022년 박목월문학상, 2022년 문덕수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거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 출간 소감을 묻는 질문에 "말을 너무 낭비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시인은 늘 말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새 시집 '눈물, 그토록 아름다운 물방울'의 시들도 마찬가지로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 작고 여린 생명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껴안는다. 그와 이번 시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우리 삶은 마음 전하며 사는 것작고 애틋한 목숨들에 더 애착빈부·귀천 넘어 평등사회 지향정직한 사람이 세상 주인 돼야▶표제를 '눈물, 그토록 아름다운 물방울'로 정한 이유는."영역(英譯)을 전제로 출간한 시집이기 때문에, 쉽고 정감적인 제목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사물을 바라보면 슬픈 생각이 먼저 든다. 꽃 피는 일, 바람 부는 일, 별이 뜨는 일, 그 모두가 기쁨보다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슬픔은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감정이다. 주위에 고단하게 살아가는 인인(隣人)들, 가난하나 정직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세상의 주인이 돼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나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으려고 시를 쓴다'(마음을 이으려고 시를 쓴다)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시인의 시적 출발이 궁금하다."자연과 고향이었다. 초기의 '청산행'(1982, 민음사)이 특히 그렇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시의 주제가 차츰 사람과 삶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숨쉬고 마음 전하며 사는 것 아니겠나. 시간이 더 지난 지금은 나뭇잎, 풀벌레, 작은 새, 갓 피어난 꽃봉지 등 작고 애틋한 목숨들에 더 애착을 두고 있다."〈이기철 시인 제공〉▶시에 '나비'가 자주 등장한다. 시인에게 나비는 어떤 의미인가."나비는 가장 여린 생을 안고 가는 아름답고 순수한 이미지이자 상징이다. 또 슬픔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나비는 아마도 다른 목숨을 해쳐본 일이 없는 가장 고결한 목숨이 아니겠나. 그런 생각은 자의적이 아니라 저의 생체험으로부터 온 것이다."▶'머리카락에 흰 서리, 이마엔 주름/ 그건 슬프지 않아요/ 그게 우리가 걸어가는 삶이니까요'(떠나보낸 날들)을 보면 나이를 먹는 일에도 담담한 태도가 엿보인다."나이 먹는다는 것은 무릇 살아있는 생물체, 혹은 인간이 지닌 숙명 아니겠나. 인위적인 것은 추해지고 낡아가지만 자연적인 것, 순수한 것은 세월에 관계없이 더욱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력을 지닌다. 이것은 종교적인 체험이 아니라 생체험이고 궁극적으로 제가 가 닿고 싶은 정신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작은 삶이 큰 삶을 껴안는 것이 그러세다'(그러세)처럼, 시를 통해 껴안고자 하는 주변부의 삶이 있다면."'그러세'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빈부와 귀천을 넘어 누구든 함께 사는 공동체의 삶을 지향하는 정신을 표현한 시다. 그러면서 이 시는 전북지역 시 낭송가들의 활동이자 구호다. 저는 '서정시삼천리'라는 이름으로 그분들과 함께 시 보급운동을 하고 있다. '그러세'는 그분들의 요청에 의해 썼지만 궁극적으로는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정신에 부합된다고 생각해 쓴 작품이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