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을 위한 행진곡’ 비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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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2   |  발행일 2017-12-22 제34면   |  수정 2017-12-22
82년 카세트테이프로 첫 녹음
당시 처음 부른 가수는 오정묵

광주포크사를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곡이 바로 이젠 제2의 애국가로 정착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곡은 1982년 카세트테이프로 처음 녹음된다. 20여 명의 광주운동권 멤버가 함께 부른 어쩜 시민들에 의해 완성된 저항가요다. 그때 그 노래를 불렀던 오정묵은 이제 내 단짝이다. 작곡자는 김종률인데 그는 전남 강진 출신으로 전남대 상대를 다녔다. 대학가요제 이듬해 광주판 대학가요제가 만들어진다. 그게 바로 1978년 ‘전일가요제’. 지방 첫 대학가요제다. 거기서 히트곡이 많이 나왔다. 전국적 인기를 누린 김만준의 ‘모모’, 하성관의 ‘빙빙빙’, 김종률의 ‘소나기’ 등이다. 김종률은 내친 김에 대학가요제에 출전한다. 3회 때 ‘영랑과 강진’이란 노래로 은상을 받는다.

당시엔 이렇다 할 만한 싱어송라이터가 광주엔 드물었다. 황석영 등을 축으로 한 광주운동권이 김종률한테 광주노래를 의뢰했다. 그는 곡을 적어놓고 군대에 갔고 이후 오래 서울에서 생활했다. 현재는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다.

1985년 광주포크라인이 구체적으로 형성된다. 현재 광주의 사직골 통기타 거리와도 연관이 있다. 거기서 신상균을 자주 만났다. 그의 음반을 만들어 주려고 이동락이라는 한 대학강사가 제작비를 마련했다. 신상균이 부를 노래를 수소문했다. 당시 사직골에서 자주 불리던 노래가 있었다. 김원중이 불러 히트친 배창희 작곡의 ‘바위섬’, 박태홍이 작곡한 ‘짜장면’ 등이다. 음반 제작과 관련해 이동락이 내게 상의하러 왔다. 내가 제안했다. 기왕이면 광주대학가요 입상자 옴니버스버전으로 만들자고 했다. 그도 좋다고 했다.

이때 신상균, 소리모아, 김정식(2회 대학가요제 은상 수상), 김종률, ‘바윗돌’로 유명한 정오차 등 5명이 리스트업됐다. 정오차는 나중에 빠진다. 대신 들어간 사람이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원중이다. 이때 ‘예향의 젊은선율’이란 음반이 나온다. 지역색을 표방한 포크음반은 전국적으로도 희귀했다. 모두가 한솥밥처럼 움직였다. 유일한 독신이었던 김원중을 서울에서 띄워주기 위해 바위섬을 홍보하러 다녔다. 전국적 반향을 얻는다. 김원중 첫 독집을 만들 때도 내가 연출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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