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김동원 시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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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5   |  발행일 2018-11-15 제35면   |  수정 2018-11-15
“읽는 詩에서 듣고 보는 詩…예술과 융합 경험하지 못한 詩세상 선사”
[이사람] 김동원 시인
1994년 시인으로 등단한 이래 4권의 시집, 2권의 동시집, 기타 시평론서, 시낭송론, 시창작론 등을 펴내며 전방위 시인의 삶을 살아온 김동원 시인. 자신이 쓴 아호 시천 액자 앞에서 그동안 펴낸 10권의 각종 저작류를 알처럼 품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사람] 김동원 시인
시의 본령을 캐기 위해서 시와 관련된 인접 학문을 계속 연마 중인 김동원 시인. 그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기상하자마자 명상을 하고 붓글씨를 연습하며 새벽 산행을 통해 시인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는 두 번 사경을 헤매는 사고와 중병을 앓았고 이를 통해 신탁에 가까운 시심을 갖게 된다. 그 맘을 이어가는 게 그의 숙업이기도 하다.
[이사람] 김동원 시인
김동원 시인이 펴낸 10권의 저작물.


지난 1일은 ‘시의 날’.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1908년 ‘소년’지에 처음 발표된 날을 기리는 날이다. 시인을 만나 보고 싶었다. 시인은 각인각색. 저마다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있어 누굴 선택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퍽 의미있는 저작물 하나를 발견했다. ‘저녁의 시인’(대구문화예술회관)이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주최하고 이하석 시인이 2년여간 총괄 진행했던 강좌 내용을 정리한 시평론대담집이다. 참가한 23명 시인의 구술 내용을 책임 정리한 건 김동원 시인.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는 1994년 시인으로 등단한 이래 이번 작업이 시인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의 아호는 ‘시천(詩天)’. ‘시를 하늘처럼 받들고 살겠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전방위 시인’으로 살아간다. 7년 전 텃밭시인학교를 개교했다. 그리고 4권의 시집, 2권의 동시집, 시낭송 관련 이론서, 시창작론, 한국시 100년 대표시 자료집를 펴냈다. 현재 서정주, 박목월, 박재삼 등 한국 대표 시인론도 정리 중이다. 뿐만 아니라 서예에도 심취해 있으며 최근에는 도예·서화 미학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해 나가고 있다. 김해의 대표적 도예가인 운당도예의 김용득 도자인생을 묶은 ‘동화요변’이란 도예론도 그런 인연으로 탄생됐다. 최근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린 백천 서상언 초대전 서문까지 의뢰받았다. 맘이 동하면 경주에 살고 있는 동양화가 소산 박대성을 찾아가 서화의 본질에 대해 차담을 나누고 올 정도다.

그는 성한 몸이 아니다. 아직도 투병 중인 몸이나 진배없다. 몇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영덕군 남정면 구계항 근처에서 태어나 12세 때 대구로 왔다. 젊은 시절은 시에 홀려 온통 현기증으로 가득했다. 28세 때 대구 달서구 대곡지구 아파트 공사장 엘리베이터에 끼여 한 달간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모두 죽는다고 했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거구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변해 버렸다. 그 후유증으로 36세 때 전신이 마비되는 중병을 앓게 돼 두 번이나 대수술을 받는다. 그는 절체절명의 고비를 시를 통해 극복했다. 그때부터 그에게 시는 ‘수호천사’다.

그는 시의 본질을 알기 위해 가능한 시에서 멀어지려 했다. 붓글씨, 아침 명상, 산행 등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시·서·화는 한몸. 그래서 서화 연구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추사 김정희 서체를 분석하기 위해 관련 서적을 모조리 사갖고 와 정독했다. 새로운 이미지를 찾기 위해 틈만 나면 사진기를 들고 산천을 돌아다닌다. 그래서 미학적 구도를 가진 2천여 장의 풍경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요즘 시에 동심을 투입하는 실험을 즐긴다. 어른들의 맘이 아이들의 맘과 동기감응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도 결코 밝지 못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낭송의 신지평을 여는 실험도 계속하고 있다. 읽는 시에서 듣고 보는 시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동요 작곡가 권효정의 도움으로 6편의 동시가 동요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대구문협 시분과 위원장, 대구시인협회 부회장이다.

마지막 꿈은 시를 화두로 한 시 100편을 연결해 괴테의 ‘파우스트’ 같은 명작을 남기고 싶단다.

젊은시절 절체절명 생사 고비 詩로 극복
“시를 하늘처럼 받들고 살겠다” 아호는‘詩天’
시낭송·韓 대표 시인론 정리…‘전방위 시인’
시·서·화는 한몸…산천 돌며 서화 연구 매진
어른과 아이들의 마음 같아…詩에 동심 투입
자연과 언어 상상놀이 동시집‘태양셰프’화제

시노래·시연주·시 뮤지컬 종합예술 승화 고민
세상 밖으로 나온 詩 들려주는 낭송미학 확산
좋은 시로 다양한 낭송…시공화국 만들고 싶어
지역 첫 시도한 유튜브 영상시 ‘오십천’호평


▶최근 나온 동시집 ‘태양 셰프’는 우주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기존 동시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시공을 맘대로 넘나드는 상상력이 인상적인데 그런 발상은 어디에서 왔나.

“태양 셰프는 2017년 매일신문 동시 당선작이다. 알고 보면 시도 놀이 중 하나. 자음 14자와 모음 10자를 갖고 원고지 속에 붙였다 뜯었다 조립하는 언어 상상놀이다. 해와 달, 그리고 산과 바다를 공깃돌처럼 갖고 노는 동시다.”

▶화제가 된 태양셰프는 어떤 계기로 쓰게 됐는가.

“요즘 대세인 ‘먹방’을 보다 홀린 듯 받아썼다. 주인공을 ‘셰프’로 설정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싸이의 ‘말춤’과 별나라 친구들을 한 명씩 초대했다. 황소별을 통째로 구워 메인 요리로 내고 지구의 모든 어린 친구들을 불러올려 달 위에서 콘서트를 연다는 엉뚱한 상상이다. 장자의 나비꿈 모티브를 끌고 와 아이의 눈으로 재배치한 것이다. 나는 동시집 태양셰프를 통해 한국 동시문학이 놓친 새로운 시적 이미지를 발견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 동시’를 개척하고 싶었다.”

▶본인의 시세계를 형성하는 데 누가 크게 영향을 주었는가.

“당나라 시인 이백과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다. 스무 살 무렵 난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에 푹 빠져 살았다. 이백은 연금술사처럼 무한한 상상력을 내 머릿속에 펼쳐 주었다. 황당무계한 비유도 좋았거니와 그의 시적 압축과 팽창은 엄청났다. 하늘과 땅을 맘대로 주물렀다.”

▶시집을 포함 저작물이 10권이다. 김동원을 시낭송·시노래 무대 연출가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던데, 너무 많은 걸 건드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20대 문청 시절 성우들(배한성 외)이 녹음한 ‘한국의 애송시’ 낭송CD를 후배로부터 선물 받았다. 주옥같은 초기 한국 낭송 서정시의 보물창고였다. 1997년부터 나는 차하늘(전통찻집), 송앤포엠 무대를 통해 시(동시)낭송, 시노래, 시연주, 시춤, 시극, 시영상, 시 퍼포먼스, 시 뮤지컬 등을 어떡하면 종합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지난 시대의 아날로그 정신과 새 시대의 디지털 문화의 접점으로서 디지로그(Digilog)를 꿈꾼 것이다. 일종의 ‘융복합 문화욕구’였다. 아닌 게 아니라 지식·예술·테크놀로지·문화·자본의 융합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환상적 무대를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게 됐다. 모든 건 다 연결돼 있다. 하나를 알기 위해 하나만 파면 하나를 찾을 수 없다. 이것저것 다 건드리는 게 아니라 관계항에 있는 사물을 하나씩 익혀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 요즘 낭송미학이 큰 반향을 주는 것 같다.

“단순히 수동적 장치에 머문 PC에서 찍고 보고 쓰고 말하는 능동적인 스마트폰으로의 진화는 문자언어가 어떻게 영상·음성언어와 창조적으로 융합해야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문자 매체의 약점을 딛고 확장 진화한 분야가 다름 아닌 낭송이다. 이제 낭송은 시는 물론 수필·소설 등 문학 여러 장르로 확산 중이다. 대표적인 게 시낭송과 시노래다. 아무리 훌륭한 시집이 보물처럼 감춰져 있다한들 그 시가 세상에 걸어나와 그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무덤 속 진주에 불과하다. 시낭송과 시노래 인구는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나는 좋은 시를 다양한 낭송 기법으로 포장해 한국을 시공화국으로 만들고 싶다.”

▶ 최근 유튜브는 영상시가 대세다. 1인 뮤지컬낭송으로 제작된 김 시인의 ‘오십천’을 무척 인상 깊게 보았다.

“오십천은 어릴 적 홀어머니와 함께 오십천 천변에 핀 복사꽃 꽃구경을 갔던 추억을 절제와 암시를 통해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오십천은 낭송가 도현정의 낭송으로 예술기획 ‘진진아트’에서 영상시로 제작돼 유튜브에 올려졌다. 이후 오십천은 뮤지컬 시낭송가 이지희에 의해 새롭게 재조명된다. 2015년 대구예술제에 맞춰 올려진 오십천의 영상미학은 복사꽃 꽃잎의 서러운 분홍 색감뿐 아니라 젊은 어머니의 클로즈업된 슬픈 이미지의 영상 때문에 호평을 받았다. 이런 시도는 지역에선 처음이었다.”

▶김동원에게 시란 무엇인가.

“난 사경에서 두 가지를 염려했다. 이토록 뼈 가죽만 남은 내 몰골을 돌아가신 어머니가 알아볼까란 한 생각, 아내 뱃속 아들이 평생 골목 앞에서 아비를 기다리면 얼마나 서러울까를 생각하니 갑자기 살고 싶었다. 천지신명께서 살려 주신다면 내 생애를 던져 시로써 세상에 헌신하리라는 원을 세웠다. 그때 난 해외토픽에나 나옴직한 신비체험을 하게 된다. 그 이후부터 내게 시란 ‘신탁(神託)’이었다. 시가 뭔가? 듣는 게 아니라 들리는 것, 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 것,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는 것이다. 시구 한 자를 빼면 우주가 무너지고 한 자를 더하면 한 우주가 생겨나는 묘처, 난 그게 시라고 생각한다. 촛불정신에서 구현된 시민정신, 이제 시인은 그걸 ‘시인정신’으로 승화시킬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본이 짐승에서 벗어나 비로소 인간의 얼굴을 갖게 된다. 시인의 역할이 정말 막중하다.”



인터뷰 마지막 그가 대표 동시인 ‘태양셰프’를 낭송해주었다. “나는 우주에서 제일 어린 태양 셰프/ 황소별을 통째로 구워 메인 요리로 낼 거야/ 지구의 모든 어린 친구들 다 불러 올려/ 달 위에서 콘서트를 열 거야/ K 팝 아이돌 형아들 초대해 힙합을 추게 하고/ 걸그룹 누나들 샛별과 댄스를 추게 할 거야/ 수천 대 인공위성은 녹여 피아노를 연주하게 하고/ 달빛 속에서 친구들과 손잡고 / 싸이 아저씨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출 거야/ 화성에겐 북극 오로라 빛을 섞은/ 달콤한 아이스크림 천 개쯤 만들어 오게 하고/ 물고기별과 고래별은 밤하늘 바닷속에 헤엄치게 할 거야/ 아! 그 새벽 만약 내가 오줌이 마려워/ 꿈만 깨지 않았다면/ 나는 우주에서 제일 멋진 태양 셰프”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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