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여행] 전남 광양 진월면 망덕포구와 윤동주 길…강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어둠 속 시인의 詩도 빛을 찾았다

  • 류혜숙
  • |
  • 입력 2021-01-08   |  발행일 2021-01-08 제13면   |  수정 2021-06-2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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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망덕포구. 강과 바다가 만나는 포구 앞에는 배알도가 무심하게 떠 있다. 배알도는 망덕산을 향해 절을 하는 형상이라 한다.
백두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의 큰 맥이 우뚝 멈추어 남쪽 바다를 바라보는 자리에 망덕산(望德山)이 있다. 광양만을 한눈에 파수할 수 있는 위치라 하여 '망뎅이'라 하였고 이를 한자로 '망덕'이라 표기했다. 그 산 아래에서 섬진강과 남해가 만난다. 강이자 바다인 곳, 바다가 시작되고 강이 끝나는 곳, 어쩌면 바다도 아니고 강도 아닌 곳, 또 어쩌면 강이 시작되고 바다가 끝나는 곳. 그곳에 망덕포구가 있다. 내내 흐리던 하늘은 포구에 도착하자 환해졌다. 따스한 햇빛에 어리둥절해진 채 외투까지 벗고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포구를 걷는다.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곳
망덕산 향해 절하는 듯한 섬

윤동주 육필 숨긴 정병욱집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30편의 詩 새겨진 공원도

◆망덕포구, 시를 품은 집

동그란 만을 따라 매끄럽게 달리는 해안도로와 도롯가에 조르르 줄지어 선 횟집들은 여전하다. 벌교여관과 망덕다방이 사라졌구나. 모텔식 민박과 카페가 들어섰고 해안선을 따라 무대처럼 높고 널찍한 데크 산책로가 생겼다. 산책로에 걸쳐진 부잔교들은 줄줄이 미끄러져 수면에 떠 있는 선착장에 착지하고, 정박된 배들과 밧줄에 매인 작은 바지(Barge) 시설들은 이따금 미동을 드러낸다.

포구 앞바다에는 배알도가 떠 있다. '망덕산을 향해 절을 하는 형상'이라는 동그란 섬이다. 조수의 탓인지 강산이 변해서인지 섬은 작아 보인다. 혹은 커다란 콘크리트 구조물이 섬 앞의 바다에 박혀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지금 배알도와 망덕포구 사이에는 해상 보도교와 집트랙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선창가 횟집들 사이에 삼각지붕의 단층집이 하나 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집은 국문학자인 정병욱 전 서울대 교수의 집이다. 그는 시인 윤동주의 후배였다. 윤동주는 1941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육필로 3부를 만들어 그중 1부를 정병욱에게 주었다. 그리고 이듬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정병욱은 1944년 1월 일본군에 끌려가면서 윤동주의 원고를 어머니에게 맡겼다. 그는 모두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독립이 되면 그의 원고를 연희전문학교로 보내 세상에 알리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현재 집은 수리 중이다. 가림벽이 설치되어 있지만 찾아오는 이들을 배려한 듯 투명창을 마련해 두었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아들이 부탁한 원고를 명주보자기로 겹겹이 싸서 이 집 마루 밑에 숨겼다.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16일, 젊은 시인 윤동주는 일본의 형무소에서 죽었다. 정병욱은 살아 돌아왔고 1948년 시는 세상으로 나왔다. 시인 정지용은 그 유고시집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원고를 숨겨두었던 마루 밑의 그 어둠을 기억한다. 바람에 둔탁하게 펄럭이는 비닐 창에 매미처럼 붙어 서서 보이지 않는 그 어둠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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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병욱 가옥(왼쪽 삼각지붕의 단층집)과 윤동주 길.
◆윤동주 길

해안 산책로 동쪽 끄트머리에 '윤동주 시인과 망덕포구'라는 시비가 있다. 시 '별 헤는 밤'이 마루 밑에 숨겨져 있던 그의 자필 그대로 음각되어 있다. 시비에서 내륙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왼편에는 해안선이 내륙 쪽으로 깊숙이 만입되어 잔잔한 호수처럼 펼쳐져 있고 오른편에는 소나무 숲이 봉긋하다.

호수와 같은 물가에는 커다란 전어 조형물이 있다. 망덕포구는 전어로 유명한데 특히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어를 활어로 개발한 곳이다. 가을 전어철이 되면 이 조형물 일대에서 축제가 벌어진다. 만의 물길을 따라 들어서 있는 마을은 진월면소재지인 선소마을이다. 이름 그대로 배를 만드는 선소(船所)가 있던 마을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부임해 있을 때 이 마을에서 주력선인 판옥선 네 척을 건조했다고 한다. 지금 선소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만 깊이 숨겨져 있던 배들이 깜짝 나타나 광양만으로 진격하는 모습은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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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접도 솔숲 아래에 있는 윤동주 시 공원에는 30편의 시가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소나무 숲 봉긋한 땅은 원래 섬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군량미를 쌓아두어 일명 '미적도(米積島)' 또는 '무적섬'이라 했고 나비가 춤을 추는 형국이라고 해서 '무접도(舞蝶島)'로도 불렸다. 조선 말기에는 시문에 능한 이들이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기도 했던 곳이다.

지금 무접도 솔숲 아래에는 윤동주 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31편의 시 중 '별 헤는 밤'을 제외한 30편의 시가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2020년 7월, 선소리 801-1번지부터 망덕리 60-11번지까지 약 2㎞의 거리에 '윤동주 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주소로는 사용되지 않는 명예도로명이다. 무시무시한 고독으로부터 끌어올려져 우리로부터 긍지를 느끼게 하는 신화적인 사건들에는 분명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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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도와 배알도를 연결하는 해상 보도교.
◆배알도에서…

망덕포구의 해안도로 서편에서 태인대교를 건너면 태인동이다. 다리가 놓여져 육지화되었지만 원래는 태인도(太仁島)다. 조선 중기 전우치(田禹治)가 이곳에 궁궐을 짓고, 지방 수령의 탐학을 징계하여 백성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태인도의 가장 북쪽에 배알도 수변공원이 있다. 해송 500여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그리 넓지는 않지만 백사장도 펼쳐져 있어 최근에는 캠핑족들이 많이 찾는다. 또한 이곳은 섬진강 자전거길 150여㎞의 시작점이자 종착지이기도 하다.

수변공원에서 해상을 가로질러 배알도로 향하는 보도교가 놓여 있다. 다리 가운데의 원형 광장은 일출 명소라 한다. 배알도 정상까지는 계단이 놓여 있다. 해발고도는 약 25m, 118개의 계단을 오른다. 정상에는 해운정이라는 정자가 올라있다. 1940년 당시 진월면장이었던 안상선이 진월 차동마을 본가의 나무를 베어 건립했고 현판은 김구 선생의 글씨였다고 한다. 정자는 1959년 태풍 사라호에 붕괴되었고 현재의 것은 2015년에 복원됐다. 그러나 진월면사무소에 보관해두었던 김구 선생의 현판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배알도에서 물길 너머 하동 땅이 훤하다. 멀리 섬진대교 아래를 지나 더 먼 남해로 향하는 물길도 아스라하다. 망덕포구를 바라본다.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보이지 않는 그 이상한 것을 바라본다. 이상한 것이 사무치게 좋은 이상한 성격이다. 작은 샘 '데미'에서 시작되어 천리를 흐르며 68개의 물줄기를 모아 커다란 하나가 된 것이, 형상도 드러내지 않고 소리도 없이 바다가 된다. '사랑의 전당'이다. 바람이 차가워진다. 지리산을 넘고 섬진강에 실려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칼바람이다. 그러니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 눈을 내려 감아라 / 난 사자처럼 엉크린 머리를 고루련다.'(윤동주, 사랑의 전당 中)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대구에서 달성 방향 451번 중부내륙 고속지선을 타고 가다 현풍 지나면서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창원 방향으로 간다. 칠서에서 10번 남해고속도로 진주·순천 방향으로 가다 진월IC에서 내린다. 진월IC에서 망덕포구는 승용차로 약 10분 이내 거리.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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