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가기 딱 좋은 청정 1번지 영양]〈5〉본신계곡과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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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7   |  발행일 2020-09-17 제11면   |  수정 2020-11-27
고요한 계곡에 안겨 걷다보면 붉고 곧은 금강송 기운 '흠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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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신계곡 일대에는 다음 세대를 이을 금강소나무 숲이 경영되고 있다. 하늘을 향해 솟구친 금강소나무 숲 사이를 걷다보면 향긋한 솔향에 저절로 힐링이 된다.
산들의 포위다. 가슴을 열어 '야호'라거나 '안녕'이라고 소리치면, 저 모든 봉우리들이 일제히 대답해 줄 것도 같지만 후문(喉門·목구멍)은 꼼짝하지 못한다. 산과 물의 이 고요, 이 내음은 낮잠에 든 아기 같기도 하고 예민한 애인 같기도 하다. 하여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심정으로 이 골짜기를 거닌다. 산은 높아 언제나 구름이 끼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계곡물이 열어 놓은 원뿔형의 하늘로부터 한나절 눈부신 빛이 쏟아질 때면 계류는 물장구치듯 명랑한 소리를 내고 온갖 수목들은 깊은 호흡으로 수런거린다. 붉고 곧은 금강송 줄기가 솟구친다. 물가의 오리나무가 신성한 얼굴로 버들치를 쫓는다. 경북 영양에서 평해로 넘어가는 구주령 서쪽 아래에 이런 계곡이 있다.

경북내륙~동해 잇는 본신계곡
계곡이 품은 신원천은 왕피천 최상류
88번 국도따라 이어져 곳곳 멋진 풍경
주변 60여종 울창한 나무 청량함 선사

꿈이 자라는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
사라질 위기 금강소나무 후계림 조성
자생식물 탐방로·숲체험시설 등 갖춰
물고기·야생동물 먹이사슬도 복원


#1. 본신계곡

경북 울진 온정면의 외선미리와 영양 수비면 본신리(本新里)의 경계에 금장산(金藏山)이 솟아 있다. 해발 800m가 넘고 멸종위기 산양이 집단으로 서식하는 산이다. 그 산에서 물줄기가 흘러 서쪽으로 간다. 본신리를 지나고 신원리(新院里)를 지나는 동안 물길은 신원천(新院川)이라 불린다. 이름에 대한 옛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마을 이름을 딴 것일 게다. 신원천은 수비면소재지인 발리리에서 북쪽으로 몸을 틀어 장수포천이 되고 울진으로 넘어가며 왕피천이 되어 동해로 흘러든다. 수많은 산과 골짜기에 숨어 돌고 돌다 마침내 바다로 뛰어드는 맑디맑은 왕피천. 그 청정하천의 최상류가 바로 영양의 신원천이고 천이 몸을 숨긴 9.3㎞ 골짜기를 본신계곡이라 한다.

신원천의 북쪽에는 울련산·우렁산·금장산이 들솟았고 남쪽에는 검마산이 내솟았다. 이 산들의 호위 속에서 계곡물은 유리알 같은 투명함으로 흐른다. 맑은 물이 바위를 타고 흐르며 군데군데 빚어놓은 물웅덩이(소)는 아이들이 물장구치고 멱 감기에 그만이다.

계곡에는 산그늘이 맑게 잠겨 있고 다슬기와 버들치, 퉁가리, 꺽지, 누치, 은어 등이 산다. 계곡 주변에는 소나무, 참나무, 신갈나무, 오리나무, 낙엽송, 자작나무, 고로쇠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 싸리나무 등 60여 종의 나무들이 우거져 청량하고 상큼한 향기를 내뿜는다. 한여름 초록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 주었던 산들은 머지않아 노랑과 빨강과 고동색 사이의 모든 스펙트럼을 펼쳐 놓는다. 그리고 빈 가지 위로 눈이 내리는 계절이 오면 본신계곡은 설악(雪嶽)에 안겨 더욱 조용히 깊어진다.

본신계곡은 경북 내륙 지방과 동해를 이어주는 길목이다. 신원리 마을 이름이 조선 초 공무수행으로 다니는 관원들을 위해 원(院)을 설치하면서부터 생겼다고 하니 길의 시간은 오래된 셈이다. 검마산의 북쪽 자락에는 본신리에 그늘을 드리우는 해발 1천m가 넘는 선운봉(仙雲峯)이 솟아 있다. 옛날에는 선운봉에 해만 지면 산짐승이 많이 나와 겁이 나서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 본신계곡은 88번 국도변을 따라 이어져 있고 어느 곳에서 멈추든 멋진 세계와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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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 옆으로 흐르는 본신계곡.


#2.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

신원2리 본신계곡 일대에는 100년 후를 이을 다음 세대의 금강소나무 숲이 경영되고 있다.

옛날 농부들은 봄마다 떡갈나무 잎을 베어 모내기 논에 묻고 한 움큼 흙과 섞어 퇴비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 가을이면 지게꾼이 땅 위에 내려앉은 마른 솔잎들을 긁어 갔다고 한다. 농부와 지게꾼이 사라지자 솔잎은 겹겹이 쌓여 땅을 덮고 떡갈나무는 자라 하늘을 막게 되었단다. 그때부터 가을날의 솔씨들은 흙과 햇빛을 만날 수 없어 제 힘으로는 씨앗을 틔울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 숲에는 어린 나무 없이 대부분 40년 이상 된 나무들만 자라고 있었고 그 나무들이 오래되어 죽으면 금강소나무는 사라질 터였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금강소나무의 후계림 경영이다. 마른 솔잎을 거둬내고, 가지를 치고, 잡목들을 솎아내어 땅과 빛을 만나게 하는 일. 그리하여 솔씨가 스스로 싹을 틔우도록 돕는 일….

숲 입구에는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이라 가슴에 새긴 장승이 객을 맞이한다. 금강소나무를 대표로 내세웠지만 이 숲에는 더 많은 것들이 있다. 긴긴 본신계곡을 한 곳에서 편안하게 만나는 공간이라 해도 좋겠다. 계곡에는 출렁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는 울련산 등산로와 이어진다. 출렁다리에서 약간 상류에 있는 징검다리 어도를 건너면 자생식물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금강소나무와 함께 서어나무, 쪽동백나무, 산벚나무, 층층나무 등의 목본류와 노루귀, 흰털괭이눈, 투구꽃, 산자고, 연복초, 꿩의바람꽃 등의 초본류 군락지가 산책로와 어우러져 온화하게 펼쳐져 있다. 그사이 군데군데 평상과 벤치가 있고 유아들을 위한 숲 체험 시설물들도 마련돼 있다.

후계림 조성과 함께 추진한 것이 계곡을 중심으로 한 먹이사슬 복원이다. 1급수에만 사는 가련하리만치 사랑스러운 물고기들을 건강하게 살게 하고 물을 마시러 계곡을 기웃거리는 새와 토끼, 노루와 같은 생명들이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계곡에는 물고기들을 위해 심은 갯버들도 살랑거린다. 산딸나무, 마가목, 찔레 등 새들의 먹이가 되는 열매나무가 함께 자라고, 토끼풀·벌개미취 등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는 식물도 잊지 않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는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몇 해 전 상류에서 설거지를 한 기름진 물이 흘러내려온 이후 야영과 취사는 금지되었다. 계곡 주변 금강소나무의 가슴에 푯말이 달려 있다. '나를 안아 주세요.' 잠에서 깬 아기가 방긋 웃고 예민한 애인이 다정해지는 순간이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영양군 누리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지명유래집. 영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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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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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령.
옥녀당과 구주령

조선 인조 때 영해부사로 일하던 황(黃)씨 성을 가진 이에게 옥녀라는 딸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명으로 공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구주령을 넘다가 갑자기 병이 들어 하루 만에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옥녀의 넋을 위로하고 공을 기리기 위해 고개에 무덤을 만들고 사당을 세웠다. 그 사당이 신한천이 시작되는 숲 즈음에 '옥녀당'이라는 현판을 걸고 자리한다.

옥녀당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구주령이다. 아홉 구슬을 꿰어 놓은 것 같다는 구주령. 시계가 좋은 날이면 동해까지 보인다. 무엇보다 첩첩으로 육박해오는 거대한 산들과 아찔하게 내리꽂히는 협곡 앞에서 할 말을 잊게 된다. 저 깊은 숲 속에 동해를 등지고 흘렀다가 긴 길을 돌아 다시 동해로 향하는 신한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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