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가기 딱 좋은 청정 1번지 영양]〈6〉 일월산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과 자생화 공원

    • 류혜숙
    • |
    • 입력 2020-10-08   |  발행일 2020-10-08 제9면   |  수정 2020-11-27
    일월산 자락 버려진 옛길 잇고 다듬어 치유의 숲길로 새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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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파르지 않고 완만해 걷기 편안한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 길을 걷다 보면 이름 모를 들풀과 야생화, 금강송과 낙엽수들이 지천으로 너울거려 이내 사람조차 숲이 된다.


    일제 만든 옛국도 새 길 생기며 잊혀
    2006년부터 대티골 주민들이 새단장
    칠밭길·댓골길 등 연결 10㎞ 숲길 탄생
    가파르지 않고 완만 누구나 걷기 편해
    일제 선광장 자리 들어선 자생화공원
    야생화 64종·조경수 1만그루 멋진 자태


    산은 웅장하고 거대하게 일어나 하늘에 닿는 두 개의 봉우리를 세웠다. 동쪽에는 해의 봉우리(일자봉·日字峰), 서쪽에는 달의 봉우리(월자봉·月字峰). 그래서 산은 해와 달의 영악(靈嶽)인 일월산(日月山)이다. 그곳에서는 동해에서 해와 달이 솟는 것을 가장 먼저 본다. 먼먼 옛날에는 산정에 천지(天池)가 있어 그 모양이 해와 달 같았다고도 전한다. 산은 심장 깊숙이 유용한 광물들을 품고 온갖 진귀한 풀꽃과 나무들로 피부를 감쌌다. 그 가운데에서 샘이 솟는다. 샘은 산의 뭇생명들을 보살피다가 이윽고 반변천(半邊川)이 되고 낙동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그 샘가에 해와 달을 머리에 인 오래된 마을이 있다. 대티골이다.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

    산의 북쪽과 서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 내를 이루는 깊은 골짜기에 옛날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용들이 모두 뜻을 이루어 하늘로 올라간 뒤 골짜기에는 용화사(龍化寺)라는 절이 지어졌다. 지금은 전설과 오래된 탑만이 남아 있는 그곳이 오늘날 일월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마지막 마을인 '용화리'다.

    대티골은 용화리의 자연부락으로 일자봉과 월자봉의 북동사면 해발 450~600m에 자리한다. 대티는 한자어 큰 대(大)와 언덕 치(峙)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치'가 구개음화에 따라 '티'로 소리가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대티골 옆으로는 영양과 봉화를 잇는 31번 국도가 일월산 자락을 가로 밟아 놓여 있고 터널도 두 개나 이어진다.

    지금의 매끈한 국도가 놓이기 전 대티골 숲에는 옛 국도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대티 서북쪽에 있는 일월광산에서 캐낸 광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산의 등줄기를 잘라 길을 내었다. 그 길로 일월산의 금과 은, 구리와 아연 등이 봉화의 장군광업소로 옮겨졌다.

    광복 후 잠시 고요했던 옛길은 1960년대에 들어 질 좋은 소나무를 베어 옮기는 임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1990년대 초 새길이 놓이면서 옛길은 잊혀 갔다. 아니 잊혀 갔다기보다는 자연 스스로가 그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절이 온 것이라 해도 좋겠다. 고단하게 밟혀온 몸과 기억을 치유하는 시간, 한 번도 체념하거나 포기한 적 없는 자유를 맹렬한 생명력으로 획득하는 시간….

    그리고 2006년 어느 날 대티골 사람들은 그 길에 들어섰다. 무너진 흙을 치우고 허물어진 곳은 돌을 쌓아 북돋웠다. 그렇게 옛 국도는 사람의 발길이 간간이 오가는 고요한 숲길이 되었다. 이어 대티골 사람들은 오래된 길들을 다듬었다. 쉼터를 만들고 이정표를 세웠다. 깨밭골, 진등, 칠밭목, 말머리등, 댓골 등 정겨운 옛 이름을 딴 이정표를 따라 옛 마을길, 칠(칡)밭길, 댓골길 등이 옛 국도와 이어졌다. 골짜기의 이 길들은 하나 되어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이 되었다. 그리고 대티골은 '자연치유생태마을'이라 명명되었다. 대티골의 아름다운 숲길은 봉화·영양·청송과 강원도 영월을 잇는 '외씨버선길'의 일곱 번째인 '치유의 길' 일부 구간이기도 하다.

    대티마을에서 옛 국도로 들어서면 금강소나무와 활엽 교목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있다. 길은 평탄하고 넓다. 숲의 청량한 숨소리만이 가득한 길에는 '영양 28㎞'라는 녹슬고 칠이 벗겨진 오래된 이정표만이 옛 도로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옛 국도가 끝나는 부분에서 칠밭길이 시작된다. 칡이 밭처럼 많았다는 길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며 잠깐 환한 하늘이 열리기도 한다. 칠밭길 초입에는 마을로 내려오는 옛 마을길이 있고 끝에는 댓골길이 비스듬히 마을로 내려온다. 옛 마을길에는 일월산에서 발원해 영양군을 지나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반변천의 발원지인 뿌리샘이 있다. 작은 동굴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은 얼마 흐르지 않아 곧 수량이 풍부한 계곡을 이룬다. 댓골길은 계곡을 따른다. 켜켜이 쌓여 폭신폭신한 낙엽의 촉감에 몸을 맡기고 아름다운 단풍과 울창한 숲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 내림에 젖는다.

    안내도에 있는 모든 거리를 합해 보면 숲길은 10㎞가 넘지만 이정표 따라 길게 혹은 조금 짧게 각자가 코스를 만들 수 있다. 모든 길은 크게 힘들지 않다. 가파르지 않고 완만해 어른 아이 모두 걷기 편안하다. 들풀과 야생화들, 금강송과 낙엽수들이 지천으로 너울거릴 뿐. 그저 길과 마음이 발걸음을 이끌어 걷는 것조차 잊고 이내 사람은 숲이 된다. 가끔은 일월산에 사는 수달과 담비, 삵, 너구리, 족제비, 노루, 고라니, 멧토끼를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은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길 부문 '아름다운 어울림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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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월산 자생화공원에는 64종의 야생화와 1만 그루가 넘는 향토수종의 조경수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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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월산 자생화공원 자리는 일제강점기 일월산 광산에서 채굴한 광물들을 제련하던 선광장이었다. 옛 선광장 시설이 고대의 유적처럼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일월산 자생화 공원

    보통은 대티마을에서 걸음을 시작하곤 하지만 숲길 안내에는 용화리 마을 입구에 있는 일월산자생화공원을 출발 지점으로 삼고 있다. 지금은 아름다운 공원이지만 원래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월산 광산에서 채굴한 광물들을 제련하던 선광장(選鑛場)이었다.

    땅은 30여 년간 방치돼 있었다. 심하게 오염돼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었고 가까운 계곡에는 물고기 한 마리 살지 못했다. 2001년 오염원을 완전히 밀봉해 매립했다. 그 위를 깨끗하고 좋은 흙으로 덮고 일월산 일대에서 자생하는 우리 꽃들을 심었다. 지금은 꽃향유, 하늘매발톱, 벌개미취, 일월비비추, 쑥부쟁이, 과꽃, 구절초, 낙동구절초, 상사화, 동지꽃, 하늘말나리 등 64종의 야생화와 1만 그루가 넘는 향토수종의 조경수가 자라나는 정원이 되었다. 코스모스가 피었다. 보라색 부처꽃과 벌개미취도 소박하고 품위 있게 피어 있다. 화살나무 이파리는 이글이글 붉다. 풀숲에 감춰진 수로를 타고 물이 흐르고 일월산을 품은 연못이 평온하다.

    옛 선광장 시설은 허물어진 고대의 유적처럼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가파른 산자락에 가파르게 서 있다. 그 가장자리를 가파른 나무계단이 오른다. 오르다 뒤돌아보면 꽃들의 정원이 한눈에 보인다. 장승이 굼실굼실 손짓하고 정자들은 느긋하다.

    광산이 운영되던 당시에는 이곳에도 많은 사람이 살았다. 인근 주민은 1천명이 넘었고 광산 노동자는 5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전기도 공급되고 있었다. 광복 후에도 광산은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계속 운영되었다. 폐광된 것은 1976년이다. 오를수록 솔숲이 무성하다. 짙은 초록의 솔에 윤기가 흐른다. 선광장 꼭대기에 다다르면 의자들이 관객처럼 앉아 있다. 이제 아래 공원은 보이지 않고 오직 일월산과 마주한다. 단아한 봉우리와 굳센 능선이 각별하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영양군 누리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누리집, 한국지명유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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