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무기화시대…경북, 원전 수출 전진기지 될 것

  •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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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15  |  수정 2022-06-14 17:14  |  발행일 2022-06-15 제3면
김천혁시도시 자리한 '한전기술'

한국 원전산업 중심이자 큰 자산

"미국서 설계인증 받은 첫 국가"

소형원자로 독자 개발에 총력
에너지 무기화시대…경북, 원전 수출 전진기지 될 것
한국전력기술이 설계한 원전 가운데 하나인 한울원전 전경. 한국전력기술 제공
에너지 무기화시대…경북, 원전 수출 전진기지 될 것
원자력발전소 설계 3D 모델링 화면. 한국전력기술 제공
에너지 무기화시대…경북, 원전 수출 전진기지 될 것
탈원전 정책으로 지난 5년 동안 사업실적이 크게 부진했던 한국전력기술 사옥 전경. 김천시 제공

지난 5년간의 탈(脫)원전 정책은 원자력발전소 설계엔지니어링 공기업인 한국전력기술(이하 한전기술)뿐 아니라 김천혁신도시에도 큰 피해를 줬다. 한전기술은 탈원전으로 일감이 끊기는 등 나락에 떨어졌고, 김천혁신도시는 주력 공기업인 한전기술의 침체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떠안아야 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도 한전기술은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등 글로벌 진출을 위한 준비를 모색해 왔다.


◆탈원전에 김천혁신도시 큰 피해
탈원전에 나선 문재인정부는 울진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중단하고 영덕 천지 1·2호기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는 한편 경주 월성 1호기는 조기 폐쇄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한전기술은 신한울 3·4호기 실시설계가 48.5% 진행된 상태에서 설계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회사 경영의 어려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전기술이 공시한 경영자료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5년간 매출액은 4천300억원대에 머물고 있다. 같은 기간 기대 매출액(1조 5천억원)에 크게 밑도는 실적이다.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 삼척 대진 1·2호기 등 당초 계획된 원전 6기를 설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전기술의 이 같은 사업 부진은 협력업체는 물론 김천혁신도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김천혁신도시로 이전한 협력업체 수십 곳이 조직과 인력을 축소하는가 하면, 견디다 못해 수도권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공기업 이전을 통한 국토 균형 발전'을 목적으로 추진한 혁신도시의 근본 취지가 무색해졌다. 한전기술 협력업체는 100여개로, 당초 이 중 상당수는 혁신도시 클러스터용지를 분양받는 등 김천에 정착할 계획이었다. 한전기술 관계자는 "향후 원전산업이 활력을 되찾으면 김천혁신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며 "탈원전 정책이 추진된 지난 5년간 한전기술 경영성과는 답보 상태였다"고 밝혔다.


◆바람직한 원전 활용 방안 모색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는 자국 가스를 무기화했다. 이 바람에 유럽 각국에선 '에너지 안보'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서유럽 국가들이 선도적으로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등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국가 간 탄력적인 에너지 공급체계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의 재생에너지 중심 전기공급 정책은 프랑스 등 이웃 국가로부터 언제든지 전기를 수입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원자력 에너지 중심의 프랑스는 원전 비중이 50% 이상이지만 가스발전 비중은 10% 미만이다. 반면 독일은 가스발전이 10% 이상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50% 수준이다. 전력 생산만 놓고 보면 독일이 크게 불리한 상황이다. 원전은 안정적인 전력 생산이 가능하지만 재생에너지는 자연적인 조건에 따라 생산량의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에너지 수급정책에서 에너지 믹스(EnergyMix·전력 발생원의 구성비)가 합리적이지 못할 경우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지난 5년간 탈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추진한 우리나라는 세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다행히 새 정부가 에너지 안보 확립과 탈원전 정책 폐기 및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를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합리적인 배분을 통해 공급체계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원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새 정부는 앞으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2030년 운영허가가 만료되는 원전(10기)의 설비 보강과 안전성 확보를 통한 지속적인 가동 △원전 10기 해외 수출 △소형원자로(SMR) 독자 개발 및 원전 연계 수소생산 기술 개발 등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동 중인 국내 원전 24기 중 11기가 경북 동해안 지역에 집중돼 있는 만큼 경북은 새로운 원자력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사업'을 다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설계(한전기술)·운영(한수원)·폐기물처리(원자력환경공단)를 아우르는 원전 전문기관을 보유하고 있는 경북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좋은 원자력산업 환경을 갖췄다. 전문가들은 경북이 원전수출전진기지가 되고, 아울러 △원전해체 △가동원전 안전성 강화 △원전연계 수소 생산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소형원자로 사업 등을 육성함으로써 원자력산업의 세계적인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전기술의 뛰어난 기술력
경북 원자력산업의 중심에 한전기술이 자리한다. 한전기술 관계자는 "원전산업 가치사슬에서 설계엔지니어링 기업으로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게 한전기술"이라며 "2천200여 명의 고급 기술자는 우리나라 원전산업이 세계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산이며 그만큼 기술적인 자부심도 크다"고 소개했다. 이어 "최근 원전산업 재개 분위기에 기대감은 높지만 환경이 변화될 조짐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나 원전 수출을 위한 기술지원에는 언제든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이 시행되는 가운데도 한전기술과 원자력산업계는 기술개발에 몰두해 뚜렷한 성과를 냈다. 2019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한국형 원자력발전모델인 APR1400이 설계인증을 받았다. 미국으로부터 원전기술을 전수 받은 우리나라가 기술 자립 및 고도화를 통해 원전 종주국 미국에 우리의 설계기술로 원전을 수출할 길을 연 것이다. NRC 설계인증은 미국 외의 국가로는 최초의 사례라 의미가 크다.


한전기술은 100MW급 소형원자로(SMR)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SMR은 원자로·증기발생기·냉각재펌프 등 주요 기기를 일체화한 300MW 이하의 소규모 원전으로, 비용과 안전성에서 차세대 원전으로 꼽힌다. 개념설계는 완성됐고 앞으로 기본설계와 건설 상세설계(2027년까지 완성)를 거쳐 해외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원전 수출을 위한 움직임 역시 활발하다. 앞서 진출한 아랍에미리트(UAE)를 대상으로 후속 원전 수출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으며 체코·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에도 한국형 원전 수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원자력산업은 우리나라 대표 산업이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한미 원자력 수출동맹'도 체결됐다. 전문가들은 양국의 원전 협력 배경에 대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면서 원전의 중요성이 강조된 상황과 현재 세계 원전시장을 주도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 목적 등이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우리나라 원전기술의 우수성은 UAE 원전 건설 과정에서 입증됐다. 2015년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정해진 예산 범위에서 계획된 공정에 맞춰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나라로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평가했다. 원자력발전설비는 완벽한 안전성과 성능을 확보해야 할 시설로, 설계·기자재제작·시공 등 모든 과정에서 최고의 수준이 요구된다. 우리나라는 원자력산업에 필요한 모든 기반을 갖추고 있으나 이에 걸맞은 글로벌 시장 공략을 추진하지 못했다. 늦은감이 있지만 이제 글로벌을 향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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