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아트테크도 좋지만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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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16   |  발행일 2022-06-16 제23면   |  수정 2022-06-16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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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경북부장

10여 년 전 미술담당 기자로 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미술작가가 컬렉터를 만나 자신의 작품 홍보하는 것을 세일즈라 생각해 부정적으로 봤다. 작품의 호당 가격을 자랑하는 작가, 화랑에서 백화점 옷 사듯 이 작품 저 작품의 가격을 물어보는 컬렉터도 좋게 보진 않았다. 순수한 창작에너지의 산물인 작품을 돈의 잣대로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많은 작가, 갤러리스트를 만나면서 작가가 지속가능한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선 안정적 경제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컬렉터도 작품 소장을 통해 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익을 창출하면 더 활발한 컬렉션이 가능하다. 이는 작가에게 창작 활성화의 자극제가 된다.

미술계를 수년간 돌아본 뒤 미술품의 경제순환 원리를 터득한 필자와는 달리 이 원리를 쉽게 깨달은 똑똑한 이들이 많아졌다.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아트테크'가 활발하다. 말 그대로 예술을 즐기면서 경제수익도 올리는 재테크다. 책 '나는 샤넬백 대신 그림을 산다'에서 강조하듯, 다른 재테크가 투자목적만 있다면 미술품 컬렉션은 감상하고 높은 가격으로 되팔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이러니 아트테크를 하는 이들이 늘 수밖에 없다. 시중에 돈은 엄청나게 풀려있고, 부동산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뭉칫돈이 갈 곳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잘만 투자하면 가격이 곧바로 서너 배 뛰는 몇몇 유명작가 작품에 컬렉터가 몰리게 된다.

대구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부터 미술도시라는 자부심이 강했던 '대구의 저력을 이번에도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미술시장의 광풍이 지역에도 엄습했다. 코로나19 속에서도 신생 갤러리의 오픈이 줄을 잇고 올해 대형 아트페어가 2개나 생겼다. 대구화랑협회가 매년 열던 대구아트페어에다 아트페어대구, 대구블루아트페어가 새롭게 열린다. 가히 아트페어 전성시대라 할만하다. 하지만 시장 과열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비정상적인 가격 급등, 묻지마 투자, 투기성 짙은 기획세력의 개입 등으로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 미술작품이 예술적 가치보단 투자가치로 전락했다.

흔히 이상적인 컬렉터로 간송 전형필을 꼽는다. 최고의 부호였던 간송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문화재 약탈을 막기 위해 수집에 나섰다. 그의 컬렉션은 정선, 신윤복의 그림을 비롯해 훈민정음 해례본 등 한국 최고명품을 총망라한다. 그가 없었다면 위대한 우리 문화재 상당수는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자신이 모은 작품을 아낌없이 기증한 사람도 있다. 거액을 투자해 평생 모은 미술품을 미술관에 기증하는 게 쉽진 않다. 하지만 수집의 열정을 더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게 기증이다. 1980년 국보 보물급 문화재 수천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사업가 이홍근은 문화재 기증의 전범을 보여줬다. 미국의 보겔 부부 이야기도 감동을 준다. 도서관 사서와 우체국 직원이었던 보겔 부부는 아내 봉급으로 생활하고 남편 봉급으로 작품을 꾸준히 구매했다. 이들은 사들인 작품을 절대 되팔지 않았다. 그리고 평생 모은 수천 점을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책 '명품의 탄생'에서 저자 이광표는 예술은 두 번 태어난다고 말한다. 한번은 예술가의 손, 또 한번은 감상자와 컬렉터에 의해 탄생한다는 것이다. 최근 아트테크와 관련해 혹자는 미술시장을 부동산시장처럼 변질시킬까 봐 걱정한다. 미술품을 투자와 투기의 대상으로만 보는 세태에 대한 우려다. 기우만은 아니다.
김수영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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