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마크밀리 대장과 김형기 중령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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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30  |  수정 2025-04-30 07:11  |  발행일 2025-04-30 제27면
[영남시론] 마크밀리 대장과 김형기 중령
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
지난 22일 KBS 다큐프로그램 '시사기획 창' '항명과 복종'을 봤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직후인 지난 8일에 방영 예정이었으나, 사정상 2주 연기됐단다. 12·3 비상계엄을 계기로 군대 내 상관의 명령에 대한 항명과 복종의 참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한국 육군사관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파헤친 수작이었다.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 재임 시 2023년 9월에 열린 미군 서열 1위인 마크밀리 미국 합참의장의 퇴임사를 소개한 장면이다.

"미군은 왕이나 여왕, 폭군, 독재자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독재자를 꿈꾸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개인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헌법에 충성합니다."

궁금해서 마크밀리를 검색했다.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ROTC 출신으로 주한 미2사단에서 대대장을 했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이 매티스 국방부 장관의 반대에도 그를 임명할 만큼 신뢰가 깊었으나, 이듬해 트럼프가 백악관 인근에서 열린 대규모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군대 동원 명령을 내리자 이를 거부하면서부터 사이가 벌어졌다. 당시에도 마크밀리 대장은 지휘서신으로 "미군의 핵심 임무는 대통령(트럼프)의 지시에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기본권 즉 종교, 언론, 청원, 출판, 집회의 자유를 피 흘려 수호하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항명을 했다.

2021년 1월6일 미 국회의사당 폭동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트럼프의 군대 동원을 우려해 "어디서 명령이 내려오더라도 합참의장으로부터 직접 확인받지 않으면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용현을 비롯해 12·3 비상계엄 명령에 맹종한 한국군 장성들의 비굴하고, 비겁한 태도와 극명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우리는 "신속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가 군경의 소극적 임무 수행 덕분"이란 헌재의 탄핵 결정문에도 나와 있듯 12·3 계엄 때 불법·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영관급 장교들이 있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퇴행을 막을 수 있었다. 김문상·조성현·권영환·윤비나 대령 외에도 특히 주목받은 군인은 지난 21일 윤석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형기 특전여단 대대장이다. 김 중령은 '채상병 사건'의 해병대 박정훈 대령과 같은 포항 출신이다. 2003년 이등병으로 입대해 부사관과 3사관학교를 거쳐 간부 사관이 된 그는 비상계엄 때 국회에 진입했으나 "국회의원을 강제로 끌어내라"고 하는 상관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 당시 박정훈 대령을 언뜻 머릿속에 떠올렸다고 했다.

"전 23년 군 생활 동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해왔습니다. 그 조직은 제게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상급자의 명령에 하급자가 복종하는 건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임무에 국한됩니다. 항명이라고 한다면 저를 항명죄로 처벌해주십시오.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제 부하들 덕분입니다."

김 중령의 마지막 법정 진술문은 1979년 12·12 군사반란군에 맞서다 35살에 전사한 특전사 선배 김오랑 소령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군이 다시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게끔 제 뒤에 앉아 계신 분들께서 철저하게, 날카롭게, 혹은 질책과 비난을 통해서 우리 군을 감시해주십시오. 그래야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절체절명의 순간에 헌법에 충성한 마크밀리 대장과 김형기 중령. '영웅'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는가.

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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