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방차 막는 불법 주차…소송 부담에 강제처분 꺼려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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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16  |  수정 2023-10-16 06:54  |  발행일 2023-10-16 제23면

분초(分秒)를 다투는 화재 진압 현장에서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선 소방차 진입로 확보가 최대 관건이다. 그러나 불법 주정차 차량에 막혀 애를 태우는 게 현실이다.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한 강제처분을 법에서 허용하고 있는데도 실제 처분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정감사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전국 소방본부가 진행한 강제처분 훈련은 모두 6천394차례에 이르지만 실제 강제처분은 4차례에 불과하다. 번거로운 매뉴얼과 차량 파손에 따른 민원·소송 부담 탓에 소방관들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소방차가 제때 진입하지 못해 대형 화재로 이어진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불법 주정차 차량 강제처분은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를 계기로 개정된 소방기본법에 따른 것이다. 당시 불법 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수십 분 지연돼 화재가 커졌다. 강제처분은 원활한 화재 진압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구미(歐美)에선 절대적 무관용 원칙이다. 현장 소방관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불법 주정차 차량의 유리창을 깰 수 있고, 고액의 벌금도 물릴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먼저 차주에게 차량 이동을 요청하고, 여의치 않을 땐 강제처분을 설명한 뒤 지휘대장의 지시를 거쳐야 한다. 위급 상황에서 신속한 법 적용이 어려운 이유다.

강제처분이 남발돼서는 곤란하겠지만, 있으나 마나 한 제도가 돼선 안 된다. 관련 매뉴얼을 간소화하고, 손해배상 소송에 대비한 전문 인력을 별도로 둘 필요가 있다. 법이 보장한 강제처분 조치를 소방관들이 소신 있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론 강제처분만이 능사는 아니다. 소방차 길 터주기에 대한 시민 의식을 함양시키는 게 먼저이고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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