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울산 처용암과 개운포 좌수영성,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해도 처용암은 늘 저 자리서…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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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1-29  |  수정 2024-11-29 08:29  |  발행일 2024-11-29 제15면

[주말&여행] 울산 처용암과 개운포 좌수영성,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해도 처용암은 늘 저 자리서…
처용암은 세죽마을과 처용마을, 외황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는 작은 바위섬이다. 처용설화가 탄생한 곳으로 세죽마을 강변에서 약 100m 떨어져 있다.

본적 없는 것에 대한 다정한 마음이 있다. 예를 들면 폐허가 된 성의 분수대에 고인 빗물이나 잠든 아이를 웃게 하는 꿈같은 것 말이다. '산의 모습 비슷하게 깃으신 눈썹에, 애인을 만나보사 오롯하신 눈에, 바람 가득한 뜰에 드사 우그러진 귀에, 홍도화같이 붉으신 모양에, 오향 맡으사 우멍하신 코에, 아으 천금 먹으사 드넓으신 입(고려가요 처용가 중)'을 가졌다는 처용은 어떤가. 본 적 없어도 다정한 마음일 수밖에. 비가 내렸고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영남 알프스에 접어들 무렵에는 믿을 수 없는 진눈깨비를 보았고 우박도 만났다. 그러나 울주에 다다랐을 때 하늘은 회색구름을 빠르게 쫓아내며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보여주었다. 개운포로 가는 길이 이렇게나 운명적일 수 있나.

신석기 때부터 사람 살던 곳이라는
동해가 지척인 외황강변 세죽마을
1970년대 강 상류 공단 들어와 이주

처용·세죽 나루 사이에 누운 처용암
물길 거슬러 오르면 구릉지 옛 성터
경상좌도 첫 수영성 축조된 개운포


◆ 처용암

[주말&여행] 울산 처용암과 개운포 좌수영성,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해도 처용암은 늘 저 자리서…
처용공원 물가에 '세죽옛터 비'와 '처용가 비'가 있다. 세죽마을은 약 6천여 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라 한다.
[주말&여행] 울산 처용암과 개운포 좌수영성,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해도 처용암은 늘 저 자리서…
개운포 좌수영성의 남쪽 체성과 이주한 주민들이 심은 느티나무. 가장 양호한 상태의 성벽을 볼 수 있는 구간이다.

동해가 지척인 외황강(外煌江)변 세죽마을에 처용공원이 있다. 공원의 가장자리에 선 까만 '처용가비' 너머로 물 가운데 누운 처용암이 보인다. 처용이 바다에서 올라온 곳이다. 그것은, 쌓고 무너지기를 반복한 돌탑 같고 등껍질에 숲이 생겨버린 불사의 거북이 같다. 그의 출현은 서기 879년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 때의 일이다.

순행에 나선 왕이 울주 고을 포구에서 쉬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길을 분간할 수 없게 된다. 일관(日官)이 말하기를 "이는 동해용의 조화입니다. 용왕을 위한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다" 하였다. 이에 왕은 동해용을 위해 절을 세우도록 했다. 그러자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맑고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고 동해용은 기뻐하며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춤을 추었다고 한다. 동해용을 위한 절이 망해사(望海寺), 구름과 안개가 걷힌 바닷가가 개운포(開雲浦)다. 그리고 동해용은 한 아들을 왕에게 보내어 보좌하게 하였는데, 그가 바로 처용(處容)이다. 그는 신라의 높은 관리가 되어 정착했다.

어느 달 밝은 밤 집으로 돌아온 처용은 기막힌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역신(疫神)이 그의 아내와 동침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춤추며 노래한다. '서울(서라벌) 밝은 달에/ 밤드리(밤새도록)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마는/ 앗아간 것을 어찌 하리오.' 그러자 역신은 다시는 처용이 있는 곳에 다시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조하고 곧바로 사라져 버렸단다. 이후 처용은 벽사의 신이 되었다.

그가 불렀다는 노래의 리듬은 전해지지 않으나 향가로 남은 가사와 그의 춤은 지금까지 전해지며 '처용무'는 국가무형문화재 제39호이자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처용가비' 옆에 '세죽옛터'라고 쓰인 큰 돌비석이 있다. 세죽마을은 약 6천여 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라 한다. 마을사람들은 1970년대 외황강 상류에 석유화학공단이 들어서면서 이주했다. 강변을 따라 꽤 많은 배가 정박되어 있다. 이곳은 세죽나루, 맞은편은 처용나루다. 처용나루위로 공단의 커다란 위용이 드리워져 있고 이제 배들은 나루를 오가지 않는다.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해도 처용암은 늘 저 자리에서 있다.

◆ 개운포 좌수영성

[주말&여행] 울산 처용암과 개운포 좌수영성,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해도 처용암은 늘 저 자리서…
포구나무 너머 지척에서 스러지는 성벽 끝에 대숲이 무성하고 외황강 위를 달리는 도로의 곡선이 보인다. 대숲과 도로 사이는 '영시끝'이다.

처용암에서 물길을 거슬러 조금 올라가면 강변 구릉지에 옛 성터가 남아 있다. 커다란 바위에 '개운포성지'라 새겨져 있다. 공단이 들어서면서 이주했던 주민들이 세운 것이다. 아름다운 느티나무 두 그루가 옛 성의 주인처럼 서 있다. 이 역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이 심은 것이다. 세찬 바람이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어도 고운 잎들은 멀리멀리 떠나지 않고 주변을 뒹군다.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 경상좌수영에 속한 만호진(萬戶鎭)이 있던 곳이다. 배를 건조하고 수리하는 선소도 있었다. 여말선초 극심했던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바다를 지키기 위해 동해안에는 모두 12개의 크고 작은 수군부대가 창설됐다. 이들을 총괄하는 경상좌수영은 1413년에 부산 지역에 최초 설치되었으나 세조 5년인 1459년 울산 개운포로 옮겨 왔다. 당시 수군진에는 별도의 성곽이 없었다. 바다에서 싸우는 수군에게 육지에 성 짓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후 육군과 수군의 연합방어체제로 바뀌면서 성종 조부터 수군에게도 성곽 쌓는 일이 허용됐다. 기록에 의하면 중종 5년인 1510년에 이곳 개운포에 성곽이 축조됐다. 울산으로 수영이 옮겨온 지 51년이 지난 일로 경상좌도 최초의 수영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성벽은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고 둘레는 1천264m라 한다. 성문터와 해자와 치성 같은 방어시설과 성문터 등도 확인되었다. 이곳은 남쪽 체성으로 가장 양호한 상태를 볼 수 있는 구간이다. 남문터는 찾지 못했다 한다. 여기부터 저 끝까지 한눈에 보이는 규모다. 경상좌수영은 1544년 해운포로 옮겨 갔다. 이후 개운포성에는 만호진이 해안을 지켰고 조선후기에는 읍 수군의 기지로 사용됐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 성에서 세 차례 정도 전투가 있었다고 한다. 성벽 위를 징검다리 건너듯 성큼성큼 걷는다. 성벽아래 빈 대지에는 선수(선소)제당이 있었다. 해마다 정월 15일에만 제를 올리다가 한국전쟁 때 전장에 나간 자식들이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 옆 빈터에는 구멍가게 두 개가 있었단다. 성벽 길 몇 미터 사이에 몇백 년이 흐른다.

느티나무를 지나 성벽은 뚝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진다. 한 그루 은행나무를 지난다. 금빛 비단길이다. 성 안 어딘가에서 개들이 짖는다. 성안 텃밭에서 푸성귀들이 자란다. 수목들 사이 얼기설기 지어진 집들에는 사람이 사는 걸까. 수령 50년의 팽나무 포구나무 한 그루가 성벽의 돌들과 함께 벽처럼, 기둥처럼, 파수꾼처럼 서 있다. 지척에서 스러지는 성벽 끝에는 대숲이 무성하다. 그 너머로 외황강 위를 달리는 도로의 곡선이 보인다. 대숲과 도로 사이는 '영시끝(營西串)'이다. 영은 개운포영성, 시는 서의 와전, 끝은 곶이니, 곧 '개운포영성의 서쪽 끝에 있는 곶'이다. 포구에 일렁이는 물결소리가 몽롱이 들리는 듯하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성벽에서 내려선다. 축축한 땅, 여기저기 조개껍질의 하얀 파편이 흔하다. 갈대숲 지나 강변 나대지를 가로질러 영시끝으로 향한다. 그리고 조개껍질의 이유를 알게 된다. 성 바로 앞 갈대숲에 '성암동 패총'이 있다. 신석기인들의 흔적인 조개더미다.

외황강을 가로지르는 파이프라인이 교량 형태로 지나간다. 보통 개운포성지 일대를 개운포라 하는데, 보다 넓게는 울산화학공단과 온산화학공단 사이 외황강 하구 지역 전체를 일컫는 듯하다. 개운포는 선사시대 삶의 터전이었고, 역병, 역신, 귀신을 쫓는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 곳이고, 신라 해양문화의 창구였으며, 조선 수군의 기지였다. 지금은 경제대국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산업의 중심이다. 강변의 너른 대지에 주황색 라바콘이 몇 개 서있고 투명 비닐집이 임시 안내소 명패를 달고 있다. '울산 개운포 경상좌수영성'은 지난 8월에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됐다. 관아 건물터를 발굴 조사하고 조선 후기 선소 마을 복원 등 일대를 정비할 예정이라 한다. 어디선가 기계음이 장장하다. 비행기가 끝없이 날아가는 소리 같아 속이 울렁울렁하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대구부산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가다 밀양 분기점에서 함양울산고속도로 울산 방향으로 간다. 울주 분기점에서 65번 동해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가다 청량IC에서 내려 계속 직진, 처용암삼거리에서 광석부두 쪽으로 우회전해 50m 정도 가면 왼쪽에 처용암 안내판이 커다랗다. 좌회전해 들어가면 바로 외황강과 처용암을 볼 수 있다. 처용암 입구에서 좌회전해 나가면 처용암삼거리에서 청량IC가는 길과 시청가는 길이 Y자로 갈라지는데 시청방향으로 직진해 가다 개운삼거리에서 좌회전해 300m 정도 가면 오른쪽에 개운포성지 안내판이 있다. 진입도로에서 바로 성벽이 보인다. 두 곳 모두 주차공간은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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