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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방준호가 자신의 작품에 걸터 앉아 바람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 뒤에 펼쳐진 숲이 작가에게 영감을 준다고 한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1965년 달성군 현풍면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구문화예술회관, 두산아트센터, 갤러리제이원 등에서 12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중국 상하이국제아트페어, 대구아트페어 등 단체전에 300여회 참여했다. ‘제7회 부산바다미술제’ 대상, ‘제34회 경북미술대전’ 도지사상 등을 받았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겠지만 예술가 역시, 환경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도심에서 생활하다가 전원으로 들어간 작가 상당수는 작업실을 옮긴 뒤 작품의 주제나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주변의 환경, 특히 자연환경이 작가들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다.
조각가 방준호 역시 작업실을 칠곡으로 옮긴 뒤 작품의 주제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의 작업실은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의 도로변에 있다. 2005년 이 곳에 작업실을 지은 작가는 “내 작업실만큼 바람이 많고, 센 곳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겨울철 거센 바람이 불 때는 작업실 마당에 서 있기가 힘들 정도란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자칫 바람에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설명이다.
방 작가는 이처럼 거침없이 불어대는 바람이 좋다고 한다. 세상에 무엇 하나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마음대로 펼치는 바람의 기상이 한없이 부럽기 때문이다. 유난히 많은 바람을 맞으며 작업하던 그는 결국 작업실 앞을 휘몰아치는 바람을 작품에 담아내기에 이르렀다.
그의 작품에는 돌로 만든 나무 형상만 존재한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감상자들은 나무의 휘는 정도에 따라 바람의 세기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작품에 숨겨진 매력이다. 거친 바람 속에서도 휘어지기만 할 뿐, 꺾이지 않는 나무의 모습도 나름 의미가 있다. 아무리 힘든 고난도 버텨내는 나무를 통해 인간 삶의 모습과 희망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나무는 하늘로 곧게 뻗은 것을 찾기 힘들다. 이곳에 처음 둥지를 튼 뒤 초기 작업기간에 잠시 곧게 뻗은 나무의 형상을 담았지만, 곧 바람에 휘어진 나무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던 그가 갑자기 작업실 앞에 펼쳐진 숲을 보라고 손짓한다. 취재를 간 날도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제 작품에서 보여지는 나무의 형상과 숲 속에서 바람결에 좌우로 흔들리는 나무가 너무 닮지 않았느냐”고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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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호의 작품들 |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작품과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많이 닮았다. 이런 풍경을 보니 이런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이런 순간의 모습을 작품화하는 것이나, 이 모습을 방 작가처럼 색다른 해석으로 담아내는 것이 결국 작가의 역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돌이란 무겁고 정적인 소재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떠한 무게감도 느낄 수 없는 바람을 담아내는 그의 작업이 신선함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돌로 바람을 표현한 작업을 선보인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는 설치작업에 관심이 많았다.
“설치작업의 가장 큰 매력은 실험성이 강하다는 것이죠. 새로운 재료와 표현기법으로 전혀 상상치 못한 것을 제작하는 기쁨은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습니다.”
설치작업에 몰두했던 그는 ‘1993년 부산바다미술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처와 자식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깨닫게 됐다. 설치작업으로는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먹고 살 방편을 찾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돌을 소재로 한 조각이었다.
“물론 작가가 돈벌이보다는 작업에 열중해야겠지요. 하지만 가정을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어떤 재료로 조각을 할까 고민하다가 돌이 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변하지 않고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돌이 좋았습니다.”
그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돌 속에 숨겨진 형상을 찾는 것으로 바라봤다. “그냥 네모나거나 둥근 돌처럼 보이지만, 그 돌 속에는 수많은 형상이 들어있습니다. 조각은 결국 작가가 자기만의 형상을 그 돌 속에서 찾아내는 과정이지요. 아무 모양이 없던 데서 어떤 모양을 하나씩 찾아가는 그 것이 바로 조각의 마력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조각을 택했지만, 돌을 다루는 과정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 돌을 운반하거나 자르면서 자칫 실수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의 작업실 마당에는 돌을 옮기고 자르는 데 필요한 대형톱과 기중기 등 공사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기계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인 전원생활을 하는 예술인들의 잘 다듬어진 잔디정원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그는 작업실을 혼자 쓰지 않는다.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한 뒤 조각을 하는 신동호 작가, 배정길 작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작업실을 같이 쓰면서 서로에게 작품에 대해 조언하는 등의 이점은 물론,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업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이 직업병을 앓고 있듯이 작가들도 나름대로의 직업병이 있다. 평면작업을 하는 작가의 경우 팔과 어깨를 많이 쓰기 때문에 어깨와 목 등의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조각가의 육체적 고통은 평면작업을 하는 작가보다 더 심하다. 그만큼 육체노동이 크기 때문이다. 돌, 철, 나무 등 소재를 두드리고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년을 이렇게 작업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이런 고통은 작품을 가지고 이곳저곳 쫓겨다니는 떠돌이 신세보다는 낫다. 방 작가는 작가로서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해 이사오던 날이라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작가생활을 시작하면서 청도와 경산 등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작업했다. 설치작품이나 조각작품을 들고 이사하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비용이나 육체노동도 많이 필요하지만, 이보다는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는 이 작업실을 얻은 것이 모두 아내 덕분이라고 한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아내가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10여년간 번 돈으로 작업실 터를 구하고 건물도 지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도 쉽지 않다. 생계를 유지하는데 지금도 아내의 도움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런 작업실을 가지는 것 자체가 조각가들의 꿈을 이룬 것이지만,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작업할 수 있도록 아내가 경제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것도 크게 감사할 일이지요. 아내가 제게 가장 큰 스폰서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온 뒤 그의 작업이 많이 편안해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안정된 공간에서, 그것도 평화로움을 주는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작업을 한다는 것이 제게는 더할 수 없는 행운이지요.”
이렇다보니 그는 날마다 작업하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이런 즐거움이 작업에 그대로 다 스며드니, 그의 작품이 보는 이들에게 더 편안함을 주는 것은 당연한 듯싶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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