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만에 가족에 전달된 임시정부 편지…증조부 비밀 풀고 57년 뒤 문화재 됐다

  • 송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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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6   |  발행일 2020-02-26 제15면   |  수정 2020-02-26
1931년 작성된 문영박 추조문
1963년 발견돼 가족에 전해져
"이전엔 증조부 독립운동 몰라"
이달 초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동네뉴스
지난해 7월11일 문화재위원들이 인흥마을을 찾아 추조문과 특발문을 살펴보고 있다.

1963년 경남 창원 어느 민가. 집수리를 위해 천장을 뜯자 천장 위에서 빛바랜 보자기 하나가 발견됐다. 보자기엔 1931년 상해임시정부에서 작성한 여러 점의 독립운동 관련 문서가 들어 있었다. 보자기의 주인은 독립지사 이교재. 그는 1931년 임시정부로부터 경상남북도 대표에 임명돼 국내 잠입 활동 중 체포됐고, 1933년 고문 후유증으로 출소 후 10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체포되기 전 임시정부 문서를 싼 보자기를 자신의 집 천장 위에다 숨겼고, 32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집수리를 하는 과정에서 보자기가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보자기 안에서 수신처가 대구 달성 인흥마을로 되어 있는 두 점의 문서가 나왔다. 1930년 세상을 떠난 문영박(1880~1930)에 대한 추조문과 독립자금지원 협조를 요청하는 특발문이었다. 특별히 추조문에선 문영박을 대한국춘추주옹(大韓國春秋主翁)으로 칭했는데 이는 역사의 주인공이란 의미의 극존칭이었다.

두 문서는 곧장 달성 인흥마을로 전달됐다. 발송 32년 만에 편지가 수신인에게 전달된 것이다. 문영박은 조선말 대구 선비로 남평문씨 인흥마을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특히 부친의 명을 받들어 선비들을 위한 도서관이자 토론장이었던 광거당을 건립하고, 무려 2만 권에 이르는 서책을 사들여 국내 최대 규모 문중도서관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32년 만에 전해진 두 통의 편지는 그동안 후손들조차 몰랐던 문영박에 관련한 몇 가지 의문에 대한 단서를 제공했다. 문영박과 그의 아들 문원만이 일제에 의해 40여 일간 구금을 당한 이유와 2만 권의 책 중 상당수를 왜 굳이 중국 상해에서 구입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단서였다.

이에 대해 문영박의 증손자 문승기씨는 "편지가 전해지기 전까지 우리는 증조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증조부가 중국 상해를 통해 청나라 책을 집중적으로 사 모은 것도 아마 독립자금을 상해로 전달하려는 방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죽는 날까지 가족에게조차도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실을 철저히 비밀로 했던 문영박. 32년 만에 그의 아들에게 전달된 상해임시정부 명의 추조문과 특발문은 그로부터 또다시 57년이 지난 2020년 2월6일 국가등록문화재 제774-2호로 지정됐다.

글·사진=송은석 시민기자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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