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준 교수의 '북한 이야기' .5] 험난했던 청진 가는 길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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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22   |  발행일 2021-01-22 제21면   |  수정 2021-01-22
라선시 벗어나자 뚝 끊긴 포장도로…"마사지 받을 준비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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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선~청진 사이 해안도로에 위치한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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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선~청진 사이에 위치한 농촌마을 모습.

함경북도 라선시에 며칠간 머무른 후에 나는 청진으로 향했다. 라선시는 경제특구지역인 만큼 북한 주민들도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특별한' 곳이다. 라선에서 청진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타기 전에 검사소에서 신분 확인을 받아야만 했는데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으슥한 곳이었다. 장총을 안은 군인들이 삼엄한 표정으로 내가 타고 있는 차량을 주시했다. 우리 일행의 여권을 가지고 있던 북한 가이드가 차량에서 내려 사무실 같은 곳에 갔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도 차량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캐나다의 토론토대 경영학과 학생 신분으로 북한 당국으로부터 비자를 받았는데 그 학교에는 당시 기준으로 14년 전에 2년 동안 다닌 것이 전부였다. 북한 세관에서 몰래카메라를 손목에 찬 채 가슴을 졸이며 입국했을 때처럼 심장박동 수가 점차 빨라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나의 신분에 이상 징후를 느낀 것인지…"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20분 정도 지난 시점에 얼굴에 인상을 잔뜩 쓴 채 무장한 군인 한 명이 우리 차량에 올라탔다. 나는 버스의 맨 뒤쪽에 앉아 있었는데 우리 일행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살피면서 점점 깊숙이 내가 있는 곳으로 터벅터벅 다가왔다. 떳떳하게 눈을 마주쳐야 되는 것인지…, 마주친다면 살짝 미소를 보여줘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눈을 피해야 되는 것인지…. 머릿속이 엄청 복잡했던 기억이 난다. 그 군인은 나를 5초 정도 동안 쳐다보고 다시 차량에서 내렸는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나는 차량 앞 쪽 창문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또한번 가슴 졸인 검문소 40분 대기
'떳떳하게 눈 마주칠까? 미소 지을까?'
날 쏘아보는 무장군인에 머릿속 복잡

요동치는 몸에도 몰래 마을풍경 담아
눈치챈 가이드 "모두 지워라" 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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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도로에서 대기 중인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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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에서 차량을 세우는 군인.


그러고 나서 20분 정도는 더 기다렸던 것 같다. 총 40분이라는 시간 동안 차량 안에서 검사소를 최대한 많이 살펴보았다. 이 검사소는 농구 골대 2배 정도 높이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벽 위에 있던 무시무시한 철조망은 전기 철조망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까다로운 세관 절차 때문에 그런 생각을 문득하게 되었다. 장총을 든 채 차량을 에워싼 군인들 중에는 여성 군인들도 있었다. 내 창가 쪽 여성 군인은 험악한 표정을 내내 짓고 있던 다른 군인들과는 달리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옅은 미소를 보여주더니 금세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짧지만 따뜻했던 미소에 불안했던 나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던 기억이 난다.

결국 검사소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나중에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북한에서 비자 발급 시 필요했던 나의 서류들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를 해서 늦어졌다고 얘기를 해주었다. "같은 함경북도에서 합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이렇게까지 복잡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청진으로 가는 여정이 마치 해외로 출국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라선시를 벗어나 함경북도 관할 지역에 들어서기 전까지 대략 20분 정도까지는 도로 사정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때 잠시 쉬었다 갔는데 출발 직전 운전기사가 우리에게 "이제부터 마사지 받을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때부터 청진까지 난 매우 과격한 '마사지'를 받았다. 청진으로 갈 때에는 라선시에서 타고 다녔던 '평화자동차'가 아닌 20인승 버스로 갔는데 한 번은 나의 머리가 버스 천장에 닿을 정도로 몸이 높게 튀어 오른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신기한 나머지 어린아이가 놀이터에 온 듯한 느낌으로 재밌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현기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청진은 라선시에서 대략 100㎞ 정도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는데 동해 해안도로를 따라 가끔씩 넓고 멋진 바닷가의 모습이 눈 안에 펼쳐지기도 했다. 물론 차가 너무 흔들려서 넓게 펼쳐진 멋진 광경을 만끽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비포장도로에는 리어카에 짐을 가득 실은 채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도대체 저렇게 가서 목적지에 언제 도착할지"라는 생각을 하며 그나마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도로 위에는 여기저기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가 보였는데 마치 한국의 60년대의 모습이었다. 버스가 심하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나는 바깥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북한에 처음 도착했을 때 농촌 마을은 촬영 금지라고 가이드가 충고했지만 나는 신기하면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모든 광경을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컸다.

버스 안의 모든 사람이 위아래로 몸이 솟구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내가 촬영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더욱 좋은 질의 영상을 담기 위해 DSLR 카메라의 녹화버튼을 여러 번 누르곤 했는데 청진에 가까워질 무렵 버스가 속도를 조금 낮춘 상태에서 버스 앞 쪽에 앉아 있던 북한 가이드가 나에게 갑자기 다가오더니 버럭 화를 냈다. 지나가던 사람이 내가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본인이 보는 앞에서 영상을 지우라고 해서 여러 장 지우고 나서 다 지운 척했더니 카메라를 따로 검사하지는 않았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의 교통이 열악하다"고 말하며 결국 내가 촬영한 비포장도로의 영상은 이러한 북한의 민낯을 '증빙하는' 귀중한 자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4시간의 험한 여정 끝에 청진에 도착했는데 대구에서 부산역까지의 거리 정도 된다. 한국에서는 1시간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가 2배 이상 걸린 셈이다. 라선시에서 출발하기 전에 운전기사가 나에게 귀띔해줬던 말이 있었는데 청진은 평양처럼 정치적으로 상징적인 도시이기 때문에 라선시처럼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라선시의 '자유로움'은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장마당에서 북한 주민들이 거래를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촬영의 제한도 더 클 것이니 조심스럽게 행동하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삐라'에는 청진의 모습도 많이 담겨 있는데 청진에서만큼은 실제로 조심스럽게 촬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많이 놓이기도 했다. 청진에 들어서니 라선시에서 보다 더 많은 김일성·김정일 동상이 보여서 왠지 모를 정치적인 냄새가 많이 느껴졌다. 청진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돼서 내가 타고 있던 버스를 포함한 모든 차량이 갑자기 도로에 멈춰 서야만 했고 주민들이 다들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추었다. 도로에 남은 건 다시 한 번 장총을 어깨에 맨 군인들뿐이었다. 이것은 또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른 채…. 북한의 제2 정치도시 청진에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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