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쓴소리 판을 깔아라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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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06 06:53  |  수정 2023-11-06 06:53  |  발행일 2023-11-06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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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논설위원

'소통(疏通)'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히 조직의 리더를 평가할 때 1번으로 꼽힌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리더는 항상 귀를 열어 놓아야 한다. 듣기에 고울 리 없지만 아랫사람의 '직언(直言)'을 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직언을 많이 하는 부하를 둔 리더가 복 받은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조선 세종 임금 때 정승을 지낸 경산 하양 출신의 허조(許稠) 대감이 있었다. 간도 컸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임금과 입씨름을 했다. 세종도 사람인지라 잘못된 결정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아니되옵니다"라고 직언했다. 실록에는 세종이 그런 허조를 때론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올곧고 청렴한 인품을 알고 있기에 국가중대사는 늘 그와 논의했다. 또 성종 임금은 신하들에게 붓과 먹을 쥐어주며 "왕의 잘못을 꼬집는 데 써달라. 먹이 빨리 닳으면 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강력한 왕권국가의 조정에서도 강직(剛直)과 겸허(謙虛)의 소통이 있었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작금의 시대, 윤석열 정부의 내부 소통은 어떤가. 언로가 더 열려있을 법한데, 직언의 소통을 찾기 힘들다. 그간의 일방통행식 인사(人事)만 봐도 그렇다. 대통령은 요직에 학교 선·후배를 앉혔다. 헌법재판소장 후임으론 서울대 법대 동기를 지명했다. 오죽하면 '대통령실은 대통령 지인 직업소개소'라는 비아냥까지 나왔겠나. 잊힌 'MB맨'까지 소환해 알짜 자리를 맡겼다. 참모들과의 논의 과정이 왜 없었겠나. 문제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라는 불신감이다. 관련해 현 정부 출범 1년 6개월간 가장 잘못한 건 '인사'라는 여론조사 결과(한국갤럽 3일 발표)는 주목할 만하다.

'친분 인사'와 '과거 회귀 인사'는 대통령을 '우물'에 가둬 놓을 수 있다. 선택된 지인 가운데 어느 누가 대통령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겠나. 듣고 싶은 말만 주고받는다. 정부 스스로 엄격한 제어를 할 수 없다. 의아한 인사가 잇따라도 참모 가운데 아무도 "천부당만부당하다"고 직언하지 않는다. 국무총리의 책임이 작지 않다. 총리직이 옛 정승처럼 쓴소리하라고 있는 자리임을 모르는가. 여당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에게 찍소리조차 못하고 있지 않나.

대통령 비위만 맞추는 참모는 존재 이유가 없다. 정부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정권 말기 단 소리만 들었다. 결과는 실패 아니었나.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과(功過)를 떠나 직언의 소통을 제일로 쳤다. 국무회의에선 '폐부를 찌르는 정문일침(頂門一鍼)'이 용인됐다. 쓴소리를 한 참모는 대통령 눈 밖에 날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됐다. 윤 대통령이 곱씹어볼 만하다.

윤 대통령이 민심 보듬기에 부쩍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보선 패배가 뼈아팠고, 보수 언론의 비판적 시선에도 당황했을 터. TK의 예전 같지 않은 민심에도 적잖이 놀랐을 게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소통 부족을 지적하는 이가 많아서 많이 반성하고 소통하려고 한다." 대통령의 최근 워딩이다. 각성과 변화를 다짐한 것은 고무적이다. 말에 그쳐선 안 된다. 대통령이 정부 안에서부터 '소통의 리더십'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 지근거리에 '쓴소리맨'을 많이 두시라. 하시라도 싫은 소리를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잘못을 지적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리스크는 없다. 마침 여권에서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참에 대통령은 '후환(後患)없는 쓴소리 판'을 깔아 놓아야 한다.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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