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이 시대와 맞닥뜨린 현실 속 극렬한 거부

  • 백승운
  • |
  • 입력 2024-03-15 08:03  |  수정 2024-03-15 08:34  |  발행일 2024-03-15 제16면
갈등·충돌·번민하는 화자
시구절 하나하나 극사실적
남성성·폭력성 대변한 사회
록밴드 자전적 모습도 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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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시집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를 펴낸 김사람 시인. 〈본인 제공〉

대구에서 활동하며 시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김사람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최근 우리 시단에서 찾아보기 힘든 장시(長詩)로 엮어 새롭다. 무엇보다 시구절 하나하나가 극사실주의적이다. 때론 극단적이고 때론 비정하다. 어느 구절에서는 다음 장을 넘어가지 못하고 읽는 시선이 일시 정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갈등하고 충돌하며 번민하는 시적 화자가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그 모습은 시적 화자만의 내면은 아니다. 시집을 엮은 시인은 물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맞닥뜨린 '현실'처럼 보인다.

시집은 첫 구절부터 충격이다.

"손목을 긋고 싶다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나는 병원에 가 보라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침묵했다// 밤새 심장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두근거렸다"

표지
김사람 지음/걷는사람 /132쪽/1만2천원

비극을 모른 척하며 침착하려 하지만 밤새 심장이 두근거리는 '대치된 현실',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보여 주며 시작하는 시집에서 시적 화자는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애초에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감정을 제거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하지만 남성성과 폭력성으로 대변되는 시대에서 기계가 되거나 폭력성에 동화되지 못하면 사회에서는 '제거 대상'이 되는 사실도 안다. 폭력에 동화되지도 못하고 따듯한 심장을 가진 존재로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며 살아가지도 못하는 존재, 결국 시적 화자는 자아 갈등이 극에 달할 때 스스로의 기억을 삭제하거나 왜곡하려 한다. 동시에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생존을 위해 인정해야 하는 초라한 자아에 대해 극렬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여기는 어딘가/ 땅 위에 솟은 기괴한 것들과/ 허공을 묶은 굵고 검은 줄들" "무엇이 진짜 기억인지/ 무엇이 진짜 나인지/ 모르겠다// 이상하다/ 내 기억 속 세계와는 다르다"

문학평론가 임지훈은 해설에서 "김사람의 시가 반복하는 것은 바로 시에 대한 최소한의 정의로서의, 자신에 대한 정의의 배반인 셈"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반복적인 자기 정의는 계속해서 미끄러짐을 거듭하지만 그것 자체로 의미 있으며 이 행위를 통해 '나와 세계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밝힌다.

한때 록밴드 멤버로 활동한 시인의 자전적 모습이 투영된 장면도 이번 시집에서 엿볼 수 있다. 역시 극단적이고 사실적이며 충격적이다.

"록은 젊음 자유 낭만이라던/ 선배들에게 정기적으로 빳다질을 당했다// 복종과 질서 속에서 헤드뱅잉을 하며/ 미래를 규칙적으로 연주했다//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고/ 선생이 되어 버렸다"

시적 화자의 갈등과 현실 부정의 모습도 여전하다.

"한 선배가 말했다// 무슨 남자가 술도 못 마시노/ 매력없어// 여러 선배들이 말했다// 병신새끼 좆 떼라/ 술도 못 처먹는 새끼/ 내 눈앞에 띄지 마라// 남자 망신 다 시키는 놈/ 술맛 떨어진다// 끝이 없어 보였다/ 남자인 내가 싫었다"

제도와 규율 속에서 내적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지만 시인은 마냥 체념하지 않는다. 시대의 불의를 시구로 옮겨와 최소한의 기본과 정의를 묻는다. 특히 계급화된 대한민국의 단면(학교)을 비추며 꼬집는다. 록밴드가 자유의 정신을 외치며 낡은 질서를 파괴하는 상징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오히려 더 은밀한 폭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시인은 독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툭 던진다. "가르치려 들지 말며/ 배우려 들지 말지니"!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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