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 사이] 중2가 읽는 '채식주의자'

  •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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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2-03  |  수정 2025-02-03 07:53  |  발행일 2025-02-03 제13면
[밥상과 책상 사이] 중2가 읽는 채식주의자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중2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책을 좋아하는 아들이 거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겠다고 해서 고등학교 가면 보라고 말렸는데, 자기 행동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조언을 구했다. 엄마는 '채식주의자' 2부 '몽고반점'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엄마의 우려가 이해된다며 적절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엄마가 말려도 아이는 반드시 읽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중에 읽으라고 하면 더 읽고 싶을 것이니, 그냥 읽게 두라고 했다. 단 읽고 나서 엄마나 아빠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읽어보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하는 아이가 참 기특하지만, 중2가 '채식주의자'를 읽겠다면 누구라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자, 경기도교육청이 '채식주의자'를 '성 유해 도서'로 지정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어느 국회의원은 한강 작품에 대한 경기도교육청의 사상검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의원은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는데, 일선 학교에서 금서로 지정하도록 보이지 않게 압박을 가했다"고 말했다. 또한 보수단체와 지역의 보수의원들이 도서 폐기 압력을 넣었다며 진영논리까지 동원하며 교육청을 공격했다. 교육청은 그 과정을 제대로 설명도 못 하고 궁색한 변명에 급급했다. 언론도 교육청의 금서 지정 비난에 가세했다. 대부분 언론은 학부모의 고민, 다양한 민원에 시달리는 교육 현장의 고충, 유사사례에 대한 향후 대응책 등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신들이 간음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흉계를 꾸미는 이야기는 알리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호메로스를 비롯한 많은 시인을 폴리스에서 몰아내야만 한다"라고도 썼다. 부분적인 내용만 보고 많은 사람들이 플라톤은 예술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철학자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체 맥락 속에서 그의 말을 판단해야 한다. 그는 "어머니나 유모가 아이를 재울 때 호메로스의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안 된다"고 썼을 뿐이다. 청년에게도 금지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사리를 아는 사람들은 원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플라톤은 대화편 '이온'에서 호메로스를 '신에게 불려 간 시인'으로 평가하며 매우 존경했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유소년 교육과 관련한 견해다. 교회에서 유년부 아이들에게 구약성경을 읽어줄 때, 주일학교 선생님은 창세기 38장에 나오는 오난의 성행위 관련 부분이나, 사무엘 하 11장에 있는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고 나체의 아름다움에 유혹되어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빼앗는 이야기 등은 건너뛸 수밖에 없다. 같은 이야기라도 연령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나이와 성장 속도에 맞도록 지도해야 한다. 아무 책이나 많이만 읽으면 좋다는 식의 독서 장려는 문제가 있다.

'몽고반점'에는 형부의 예술적 욕망 충족을 위해 처제의 나체에 꽃무늬를 그리는 엽기적인 내용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순수한 예술 작업을 넘어 형부의 욕망과 도덕적 한계가 드러나고, 형부와 처제의 관계는 파괴적이고 위험한 단계로 발전한다. 전체 맥락 속에서 그 장면들을 음미해야 왜곡된 예술적 욕망과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을 이해하게 된다. 중2 학생이 도덕적 경계를 넘나드는 묘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걱정은 당연하다. 독자의 성향과 연령대에 따라 형부의 예술적 욕망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나이가 어려도 그 모든 함의를 이해할 수 있는 조숙한 학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평균 수준의 중2 학생에게는 좀 무리라고 생각하는 부모를 고지식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작가 한강은 어린 시절 한국 작가가 쓴 동화책뿐만 아니라 시집, 그림책, 소설 등 다양한 책을 읽었다고 했다. 열두 살 때 그녀는 스웨덴 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고 폭력적인 세상과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고, 수백 장에 달하는 러시아 소설도 즐겨 읽었다고 했다. 소설가인 아버지로부터 알게 모르게 독서지도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이들은 모든 것에 노출되고 있는데 부모나 학교가 다루기에 어색하거나 힘든 것을 무조건 금지하거나 대책 없이 허용하는 것은 일종의 무책임이다. 성장 속도에 맞는 체계적인 독서지도를 위해 학부모가 참고할 수 있는 자료 제공과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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