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제왕적 권력'의 민주적 分化 필요하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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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2-13  |  수정 2025-02-13 08:36  |  발행일 2025-02-13 제22면
로마 황제들 비극적 결말

1987 헌정체제의 대통령

성공·영예 누린 인물 없어

'초초갑' 권한이 위험 요인

비선 발호·관료 소신 위축

[박규완 칼럼] 제왕적 권력의 민주적 分化 필요하다
논설위원

절대 권력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로마 황제. 하지만 그들의 서사는 대체로 비극적이다. 3대 황제 칼리굴라는 근위대에 살해당하고 4대 클라우디우스는 네로의 어머니에게 암살된다. 5대 황제 네로는 자살하며,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등장하는 코모두스 황제 역시 측근에 암살당한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이래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까지 30명의 황제 중 자연사한 논설위원경우는 12명뿐이다. 자살, 전사도 있었지만 주로 암살이다. 왜일까. '로마인 이야기'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정곡을 찔렀다. "권력이 황제 1인에게 집중돼 있어서 그 한 사람만 제거하면 정치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극적 결말, 어쩌면 '제왕적 권력'의 필연일지 모른다. 1987년 헌정체제에서 등극한 대한민국 대통령 8명 중 성공과 영예를 온전히 누린 인물이 있기나 한가. 가족 문제로 시끄러웠던 김대중 대통령이 그나마 무탈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4명이 구속되고 한 명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외환위기 책임론 속에 물러난 김영삼 대통령의 퇴임 소회가 비수처럼 꽂힌다. "영광은 짧고 고뇌는 길었다".

우리나라 대통령 권한은 '제왕적' 수식이 붙을 만하다. 헌법이 규정한 권한만으로도 막강한데 관행에 의한 비공식 권력까지 향유한다. 국정원장·검찰총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KBS사장 등 권력과 여론의 향배를 주도할 수 있는 요직은 물론, 장·차관 및 200여 명의 공공기관장에 대한 임명권을 갖는다. 국정을 좌지우지할 보검을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강력한 대통령 권한은 국가위험지수를 끌어올린다. 현실적으론 '세종대왕'이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고, 독선적이고 무도한 '연산군'이 등장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흔히 대통령 거부권을 국회 입법권과 등치하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탄핵소추권·예삼심사확정권·국정감사권 등이 있으나 입법권, 즉 법률 제·개정권은 국회의 본령이자 핵심 권한이다. 그래서 입법부라고 한다. 이 입법권을 대통령 권한의 극히 일부인 거부권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 대통령 권력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해 "언론과 국회가 '초갑(甲)'"이라고 말했다는데 대통령은 '초초갑'이다. 계엄선포권·외교권·사면권·행정입법권·국군통수권, 이 엄청난 권력들이 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1987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없앤 게 그나마 다행이다. 군사정권 때처럼 국회해산권이 있었다면? 12·3 계엄이 악몽이 되지 않았겠나.

제1인자의 권력이 너무 크면 대개는 비선 세력이 발호하고 양봉음위(陽奉陰違) 무리들이 득세한다. 테크노크라트의 입지는 좁아지고 관료의 소신은 위축된다. 우린 대통령실이 사실상 여당과 내각을 통제한다. 나쁜 관행이다. 분권형 대통령제 프랑스 대통령 비서실은 글자 그대로 비서 역할만 수행한다. 조선시대에도 승정원이 의정부를 장악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제왕적 권력'이 비극적 결말의 원인이라면 제도 개선을 통해 권한을 분산하는 게 순리다. 헌법기관장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폐지하고 이해충돌 소지가 있을 경우 거부권 행사를 제한해야 한다. 책임총리제를 도입하고 인사권·재정권을 대거 지방으로 이양함으로써 권력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집단지도체제 애플과 수평적 조직문화가 정착된 구글이 IT 제왕이 된 게 우연일까. 개헌을 통한 권력의 민주적 분화, 더는 미룰 수 없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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