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혜진 변호사 |
15년 다니던 직장을 사직하고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하러 로스쿨로 진학하던 내게 많은 분들이 과분한 격려의 말을 해주셨는데, 그중에서도 크게 용기가 된 말이 있다. "법은 상식이니까, 나이 들어 새로 공부한다 해도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늦깎이 학생에게 공부가 쉽지는 않았지만, 법이 상식이라는 건 법을 공부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더욱 공감하게 되는 말이었다. 추상적인 법률용어가 어렵게 느껴져서 그렇지, 법의 정신이나 어떤 구체적인 법의 본질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 질서이거나 혹은 그 시대, 그 사회에 고유한 합의이기에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로스쿨 시절 민법 교수님이 알려준, 어느 독일 학자의 민사법 사례 문제 풀이 방식에 관한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그 독일 학자는 법률관계가 복잡한 사례를 풀 때 체계적인 법적 사고방식을 동원해 나름의 결론을 내린 뒤, "우리 할머니는 이 결론에 대해서 무어라 하실까?"라고 꼭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 질문이, 자신이 내린 결론이 정의의 관점에서 수긍할 만한 것인지를 검토하는 마지막 단계라는 것이다. '우리 할머니'로 대표되는 법률 문외한, 하지만 건전한 상식과 오랜 경험을 통한 삶의 지혜를 가진 분이 그 결론에 대해 "그건 옳다고 할 수 없어"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법적 사고 과정에서 무엇인가 잘못 판단함으로써 결론에 오류가 생겼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지난해 연말 계엄 선포에 모두가 화들짝 놀라고 당황했다는 사실은 2024년 대한민국에서 계엄은 상식에 어긋난다는 걸 말해준다. 법을 공부하고 매일같이 법령을 들추어보는 국무위원이나(계엄을 건의한 장관은 빼고) 법을 배운 적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나 똑같이 계엄이 잘못된 선택임을 직관적으로 알았다. 상식이란 그런 것이다.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도 상식이다. 사소한 일은 사과 정도로 끝나지만 심하면 법적 처벌이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고, 몰상식적 행동을 계속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이가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함으로써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지금 그 책임을 따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법에 대해 누구보다 전문가이던 사람이 상식에서 그렇게까지 벗어날 수 있는지, 참담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은 계엄이 선포될 당시에는 그것이 상식에 어긋나는 일임을 알았던 이들 중 상당수가 이런 궤변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의견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상식은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다.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 상식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계엄을 선포한 정치인을 정치적 성향으로 지지할 수는 있어도,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으로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과 인식을 지지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당리당략적 화법과 극단적 화법으로 이익을 챙기는 유튜버들의 선동은 법과 상식이 아니라 '너는 어느 쪽이냐'를 묻고, 자기 쪽에 유리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절차를 무효라고 하고 법적 체제를 전복하려는 폭력을 행사하며 이를 정당화한다. 어느 쪽을 지지하든 정치적 취향은 존중하되 상식을 하수구에 던져버리지는 말자. 상식을 저버린 지도자가 있다고 하여 우리 사회 공통의 상식마저 무너질 수는 없다.
정혜진 변호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