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메일] '토사구팽', 이제 반격이 시작된다

  •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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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2-17  |  수정 2025-02-17 07:07  |  발행일 2025-02-17 제21면

[월요메일] 토사구팽, 이제 반격이 시작된다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蜚鳥盡良弓藏, 狡免死走狗烹'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은 창고에 묻히게 되고, 날쌘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져 죽게 된다. 이 고사성어는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의 재상 범려가 남긴 말로, 오늘날 '토사구팽(兎死狗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목표를 달성한 후 그 과정에서 사용된 도구나 사람이 버려지는 상황을 비유하는 이 말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권력의 속성을 예리하게 꿰뚫고 있다.

최근 화제를 모은 드라마 '원경'은 조선 초 태종과 원경왕후의 이야기를 통해 권력의 본질과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원경왕후 민씨는 1365년 여흥(여주)에서 아버지 민제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민씨의 가문은 고려 후기 과거 급제자를 대거 배출한 신진 사대부 집안이었다. 한편, 당시 이성계는 1380년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섬멸한 구국의 영웅이었고, 그의 아들 이방원은 진사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입학한 유능한 학생이었다. 민제의 눈에 들어 두 집안은 혼인을 맺게 되었다. 고려 말의 최고의 문관과 명망 있는 무관의 가문이 통혼한 것이다. 후에 세종대왕의 명석함과 뛰어난 천재성은 이러한 가문에서 비롯된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조선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는 처음에는 굳건한 동지 관계였다. 1398년 8월, 정도전 일파와 이방원 일파 간의 권력 다툼인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다. 당시 원경왕후는 정도전의 계략을 눈치채고, 아프다는 핑계로 남편 이방원을 무사히 집으로 불러들이며 숨겨놓은 무기까지 내놓아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2년 뒤 1400년 친형 이방간과 왕위를 두고 맞서야 했던 2차 왕자의 난에서도 원경왕후는 망설이는 이방원에게 갑옷을 입히고 군사를 움직이게 했다. 이러한 민씨의 적극적인 역할은 왕비에 책봉될 때의 책문(冊文)과 각종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을 쥔 태종은 원경왕후와 그의 가문을 경계하며, 민씨를 폐비할 생각까지 했으나 형인 상왕 정종이 말려 그만두었다. 원경왕후의 가장 큰 비극은 태종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남동생 민무구·민무질 등 4형제를 모두 죽였다는 점이다. 드라마에서 원경왕후가 태종에게 "제가 상과 함께 어려움을 지키고 화란을 겪어 국가를 차지하였사온데, 이제 나를 잊음이 어찌 여기에 이르셨습니까?"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권력에 의해 배신당한 이의 절절한 호소로 다가온다. 태종과 원경왕후의 관계가 변화하는 토사구팽의 과정은 권력과 인간의 욕망, 갈등을 여실히 드러내며, 이는 현대 사회의 정치 상황을 되새기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여론조사 자료를 제공하는 등 여러 정치적 활동에 관여한 명태균의 구속은 현대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사구팽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명태균이 이른바 '황금폰'을 야당 쪽에 제출할 수도 있다는 폭탄 발언을 한 후, 다음 날인 12월3일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과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 및 구속이 이루어졌고, '내가 구속되면 한 달 안에 정권이 무너진다'는 명태균의 장담은 사실이 되었다.

정치는 권력의 덧없음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무대이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고, 한때 절대적 신임을 받던 이가 순식간에 버림받는 일은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 왔다. 최근 윤석열 정권과 명태균 사이에서 벌어진 관계 변화는 단순한 토사구팽을 넘어, 권력의 본질적 취약성과 반격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토사구팽, 당한 자의 반격은 이제 시작이다.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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