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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
# 독해진 트럼피즘=정치 지도자의 이름에 노믹스를 접목하는 합성어는 레이거노믹스가 그 시발(始發)이다. 레이거노믹스는 미국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경제정책으로, 규제완화와 '작은 정부'에 방점을 찍었다. 복지정책을 축소하고 노조 통제를 강화했던 대처 영국 총리의 대처노믹스는 주로 대처리즘으로 통용됐다. 아베노믹스는 통화완화·재정지출 확대·구조개혁 등 소위 '세 개의 화살'이 주무기였다.
도널드 트럼프를 수식하는 어휘나 접미사는 변화무쌍한 그의 '색깔'처럼 다채롭다. 트럼프노믹스, 트럼피즘 외에도 트럼프 쇼크, 트럼프 스톰, 트럼플레이션, 트럼포비아, 트럼프 트레이드 등이 폭넓게 사용된다. 그린란드에 대한 영토 야욕, 가자지구 점령 따위의 제국주의 세계관을 언급할 땐 '트럼프 독트린'으로 묘사한다. '돌아온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1기 때보다 훨씬 독해졌다. 다음 달 12일부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으며, 상호관세와 자동차·반도체 관세의 4월 시행을 예고했다. 비관세 장벽까지 아우르는 상호관세가 시행되면 기업 보조금, 환경·안전규제, 부가가치세까지 트럼프의 사정권에 들어간다. 한국엔 직격탄이다.
# 트럼프는 틀렸다= 21세기의 국제분업체계는 정치(精緻)하고 촘촘하다. 전 산업에 걸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글로벌 가치사슬이 정교하게 작동하며 분업의 효용성을 창출한다. 한데 트럼프의 관세 폭격은 필시 가치사슬을 파괴하고, 생산성 향상 등 분업의 효용성을 누실하며, 상대국의 보복관세를 촉발해 물가를 자극할 것이다. 미국 의회예산국은 트럼프의 구상대로 보편관세 10%와 중국에 60%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분석했다. '트럼플레이션'의 현실화다. 인플레이션은 구매력을 약화시켜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보호무역의 부메랑이다. 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가장 어리석은 전쟁"이라고 비판했을까.
트럼프는 '스무트-홀리법'의 흑역사를 상기해야 한다. 1930년 미국은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2만여 개 수입품의 관세율을 평균 59%, 최대 400%로 올렸으나 교역 혼돈만 자초했다. 경제학자 존 스틸 고든은 "1929년 주가 대폭락이 경제 대공황의 시작이 아니라 1930년의 스무트-홀리법 제정이 결정타였다"고 술회했다. 필자도 과거 대학에서 '관세법'을 강의할 때 스무트-홀리법을 관세 폐해의 극단적 사례로 들었던 적이 있다.
# 어떤 전략이 유효할까=트럼프는 타고난 장사꾼이자 '돈 밝히는 남자'다. 장사꾼엔 장사꾼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 일론 머스크가 전범(典範)을 시전했다. 머스크는 대선 때 1천800억원을 트럼프에 후원하고 정권 2인자 권력을 꿰찼다. 8천억달러이던 테슬라 시가총액은 트럼프 당선 확정 사흘 만에 1조달러를 넘어섰다. '베팅의 정석'이다. 트럼프는 호주를 철강 관세 예외 국가로 빼주며 "우리 비행기를 많이 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도 미국산 원유·LNG·무기 수입을 늘릴 필요가 있다.
세계 주요국은 AI 기반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변곡점에 와 있다. 한국은 트럼프가 러브콜을 보낸 조선 말고도 반도체·로봇·방위산업 등 테크 제조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미국의 동맹국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여력이 있다는 의미다. 관세 폭격이 예고된 4월까지 고도의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기브 앤 테이크' 전략이 유효할 것이다. 우선은 철강의 무관세 쿼터와 승용차 무관세를 계속 유지하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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