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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
3월, 방학이 끝난 교정은 다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대학가도 청춘의 활력으로 가득하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땅속에서든, 마른 나뭇가지에서든, 어디서든 생명이 용수철처럼 솟구치는 계절이다. 산도 들도 겨우내 칙칙하고 차가웠던 무채색을 벗고 햇살이 닿는 곳은 선명한 색이 입혀진다. 모든 것이 기쁘고 설렐 것만 같은 3월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우울은 가장 찬란한 햇살이래서 더욱 대비되며 짙어진다. 봄이라는 계절은 창조와 시작, 설렘과 희망의 계절이지만 정작 어떤 이에게는 역설적으로 우울감이 더 가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계절성 정서 장애(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는 가을이나 겨울에 종종 발생하지만, 봄철에도 계절의 변화에 따른 부적응으로 우울감이 늘어날 수 있다. 아동이나 청소년들도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 등 바뀐 환경에 대한 부적응으로 여러 어려움을 호소하며 상담실을 찾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봄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겨울에 비해 활력을 찾는 반면,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더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우울증이 심화하기도 한다. 핀란드, 덴마크,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봄철에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연구 보고도 있었다. 봄이 되면 주변 환경이 활기를 띠고 사람들도 여러 가지 기대감이 높아지고 에너지를 얻은 데 비해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연예인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자살을 막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살예방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유명인의 자살은 베르테르효과가 생길 수도 있어서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미 자살사고를 경험했거나 자살 시도를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실제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매우 높다. 또 자살은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흔하다. 따라서 자살은 위기 상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예방 활동이다. 위기 상담만으로는 자살을 막을 수 없다. 물론 자살하는 사람들마다 각자의 상황과 히스토리는 다를 수 있어서 일반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세상의 온갖 부조리는 여전하고 빈부격차는 커지고 있다. 불황에 빈 가게들이 즐비하고 정치적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그만큼 더 팍팍해졌다. 핵가족화된 도시의 삶, 가족 해체가 가속화되고 1인 가구는 급증하고 있다. 가족과 마을이라는 공동체는 갈수록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다.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더 낫다는 우리네 속담도 있지 않은가. 내 가족, 내 친구가 아니더라도 기꺼이 내 안에 있는 그 인간적인 따스함을 조금 나눠줄 수 있지 않은가. 관공서든 은행이든 어디든, 볼일을 보러 들렀을 때 그런 따뜻함을 내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갑기 그지없는 이들도 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사랑과 친절이다. 친절이나 배려는 선택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친절할 의무, 배려할 의무가 있다.
친절과 따스함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도리이다. 오늘 잠시 스친 누군가가 당신의 작은 친절에, 따뜻한 한마디에, 다시 살맛이 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자. 고마워요. 괜찮아요?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이 따뜻한 한마디의 친절이, 우리의 삶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작은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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