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창의적 게으름, 그 미덕에 대하여

  •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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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2-26  |  수정 2025-02-26 07:08  |  발행일 2025-02-26 제26면
비효율 줄이는 창의적 사고

게으름이 만든 기술의 진보

불필요한 노력 최소화 중요

이제 게으름을 재평가하고

혁신 잠재력 적극 활용할 때

[시선과 창] 창의적 게으름, 그 미덕에 대하여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주변 사람들은 필자를 두고 부지런하다 말한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오해다. 필자는 태생부터가 게으른 사람이다. 일을 시작하면 늘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마감 기한에 쫓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런 게으른 성향이 의외의 결실을 보았다. 반복되는 업무를 할 때마다 '이걸 꼭 이렇게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됐다. 단순 작업은 최대한 자동화하고, 단순화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필자의 이런 습관은 강점이 되었다. 남들보다 게을렀기에 오히려 더 스마트한 방식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려운 일을 시킬 때는 게으른 사람에게 맡긴다. 그들이 더 쉬운 해결책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남긴 이 말은 우리가 '게으름'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은 단순히 일을 회피하거나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주어진 일을 더 스마트하게 처리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다. 비효율적인 과정을 개선하고, 불필요한 노력을 줄이며,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려는 사고방식.

인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창의적 게으름'의 힘이 더욱 분명하게 보인다. 산업혁명 이래 자동화 기계들은 반복 노동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욕구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증기기관에서 시작해 현대의 첨단 로봇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을 덜어주려는 끊임없는 시도였다.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의 발전 역시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게으른 욕망이 추동력이 됐다. 특히 디지털 혁명은 물리적 노동뿐만 아니라 정신적 노동까지도 효율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급성장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은 이러한 '창의적 게으름'의 정점을 보여준다. AI의 발달이 일자리 감소에 대한 불안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는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어 더 창의적이고 가치 있는 영역에 집중할 기회를 제공한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과도한 노동은 창의성과 문화 발전을 저해할 수 있고, 적절한 여가야말로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러셀의 이 통찰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부지런함'과 '성실함'만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조금이라도 쉬고 싶어 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게으름이 '적은 노력으로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창의적 혁신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이러한 '창의적 게으름'의 가치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확산된 원격근무와 디지털 협업 도구들은, 불필요한 대면 미팅과 통근 시간을 줄이고 업무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이제는 게으름을 부끄러워하기보다 그것이 가져올 혁신의 가능성을 인식해야 한다. 앞으로의 AI 시대는 단순한 부지런함보다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창의적 게으름'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중요한 자질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게으름 속에서 발견한 창의성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용기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게으름을 재평가하고, 그것이 가진 혁신의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다.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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