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법의 지배'를 형해화하는 것들

  •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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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2-27  |  수정 2025-02-27 09:22  |  발행일 2025-02-27 제22면
폭력과 허위조작 정보·궤변

광장·정치권의 사법부 공격

'법에 의한 지배' 두둔 행위

헌재, 혼돈 평정할 심판자

법리와 증거로만 판단해야

[박규완 칼럼] 법의 지배를 형해화하는 것들
논설위원

'법의 지배(rule of law)'는 모든 권력이 법에 의해 통제되는 원칙을 말한다. 행정·입법·사법 등 국가권력의 상위에 법이 존재한다는 영미법 개념이며, 국가권력도 법에 복종해야 한다. '법의 지배' 국가에선 통치자의 자의적인 권력을 배제하고, 통치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법에 종속된다. 실질적 법치주의다.

반면,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는 법을 통치자의 의사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간주한다. 권위주의 국가의 통치 방식이며, 형식적 법치주의다. 헝가리의 오르반 독재정권이 '법에 의한 지배'를 시전한 상징적 사례다. 오르반 총리는 합법적 방법으로 의회·사법부·언론·선관위를 차례로 장악했다. 거시적으론 합법을 표방했지만, 과도하거나 부당하게 법을 적용하고 법을 선택적으로 집행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과거 우리 군사독재정권이 그러했듯이.

'압축 민주화'를 통해 이뤄낸 민주주의이긴 해도 대한민국은 명색이 '법의 지배' 국가다. 한데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탄핵 후에 전개되는 카오스 현상은 '법의 지배' 국가를 무색게 한다. 무엇이 '법의 지배'를 형해화할까. 첫째는 폭력이다. 탄핵 반대 세력의 서울서부지법 폭동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출입을 통제한 난행도 폭력이나 진배없다.

둘째는 폭력적 언어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 아파트 앞 시위대는 '야동 판사' '음란 수괴' 팻말을 흔들었다. 탄핵 찬성 집회엔 섬뜩한 '윤석열 참수' 모형 칼이 등장했고, 탄핵 반대 집회에선 "국민 여러분이 헌재를 파괴해달라"는 구호를 외쳐댔다. 극언이거나 선동적 폭언이다.

셋째는 허위정보 전파다. 극우 유튜버는 "헌재 헌법연구관 중에 중국인이 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 또 짜깁기한 조작정보로 "문형배 대행이 고교 동문 카페의 음란물에 댓글을 달았다"고 조롱했다. 우파 매체 스카이데일리는 "12·3 비상계엄 당일 계엄군이 중국인 간첩 99명을 선관위 연수원에서 체포했고, 이들이 부정선거를 자백했다"는 황당한 뉴스를 보도했다.

넷째는 위헌·위법한 계엄을 옹호하는 궤변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질서 유지를 위해 계엄군이 출동했다"고? 정치인 체포를 시도하고, 위헌적 포고령을 발령하고, 무장군인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청에 난입하고, 지하에 내려가 전기를 차단하고, 방첩사 간부가 수방사 B-1 벙커 구금시설을 점검했는데도 아무 일이 없었다니. 질서 유지한다면서 유리창 깨고 전기 차단?

다섯째는 사법부 공격이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과 여당, 광장의 극우 세력은 동맹군처럼 헌재를 협공하며 법치를 흔든다. 이들은 헌재가 편향됐다고 되뇌는데, 내란 피의자를 대놓고 두호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훨씬 편향적이며 오염된 것 아닌가. 우원식 국회의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작금의 상황을 응축했다. "법관에 대한 폭력과 위협, 허위주장과 선동, 가짜뉴스가 도를 넘었다".

'법의 지배'는 법치보다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법치 부정은 '법의 지배'의 무력화 시도이자 '법에 의한 지배'를 두둔하는 행위다. 헌법재판소는 계엄과 탄핵의 혼돈을 평정할 유일한 심판자다. 탄핵 반대 세력과 정치권은 헌재 공격을 멈춰야 한다. 헌재는 여론동향이나 외부의 겁박, 재판관 이념성향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법리와 증거로만 탄핵 인용 또는 기각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결정이 나오든 승복해야 한다. '법의 지배' 국가답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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