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교과서에 실려야 할 시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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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2-28  |  수정 2025-02-28 09:04  |  발행일 2025-02-28 제19면

[정만진의 문학 향기] 교과서에 실려야 할 시
정만진 소설가

"설령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먹장 같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다 쳐도/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은// 앓고 있는 하늘/ 구름장 위에서/ 우리들의 태양이 작열하고 있기 때문// (중략) 보라, 스크럼의 행진!/ 의를 위하여 두려움이 없는 10대의 모습,/ (중략) 그 깨끗한 지성을 간직한 머리에선 피가 흘러내리고/ 불행한 일요일, 구루미 선데이에 오른/ 불꽃/ 불꽃!// 빛 좋은 개살구로 익어 가는/ 이 땅의 민주주의에/ 아아 우리들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모습./ 하필 손뼉을 쳐야만 소리가 나는 것인가/ 소리 뒤의 소리,/ 표정 뒤의 표정으로/ 우뢰 같은 박수 소리,/ 터져나는 환호성,/ (중략) 1960년 2월28일,/ 우리들 오래 잊지 못할 날로,/ 너희들/ 고운 지성이사/ 썩어 가는 겨레의 가슴속에서/ 한 송이 꽃으로 향기로울 것이니, (하략)"

위 시는 대구 2·28기념공원, 대구 두류공원, 경산 남매공원 등에 시비로 세워져 있는 김윤식 시인의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이다. 해마다 2월28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번 기억에 떠올리는 한국현대사의 생생한 기록문학이다. 김윤식의 이 시는 마산 의거와 4월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그해 10월 19일 유치환은 "부정부패의 가슴팍에 증언의 화살을 용감히 꽂은 자는 오직 김윤식 시인뿐이었다"라는 글로 김윤식의 의기와 예술혼에 찬사를 보냈다.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은 교과서에 수록되어야 한다. 현대시 중에서 이보다 더 뜻깊은 '국민시'는 달리 찾기 어렵다. 근대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광야'를 연상시킬 만큼 힘차게 시대정신을 노래하고 있는 절창이다.

비슷한 사례로,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를 교과서에 실어야 옳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20년 전이다.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포항)에 게시되어 있는 6·25 당시 중3학생 이우근의 편지글을 발견한 직후였다. 편지는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로 시작됐다. 글을 행 구분해서 시 형식으로 바꾼 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모두들 감동했다. 살아있는 비극에 담긴, 어린 청소년의 진솔한 생각과 감정이 참으로 눈물겨웠기 때문이다. 1950년의 학도의용군이 바로 1960년의 청년학도인 것이다.

과학적 글은 사실이나 주장을 담지만, 문학적 글은 감동 선사에 목적을 둔다. 감동의 원천은 무엇인가. 글을 쓴 사람, 글 속 인물의 진정성이다. 감동은 그런 인물의 인간다움, 안타까운 비인간화에 공감하고 동정하는 데서 촉발된다. 기성세대는 차세대에서 희망을 볼 때 체념의 늪을 건널 수 있다. 김윤식과 이우근의 글은 미래의 빛을 보여준다. 참된 교과서는 그런 글들을 실어야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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