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요한 지역과 인재 대표 |
피로사회에서 불안사회로, 과민사회에서 분노사회로, 곳곳에서 경종이 울린다.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라며 최신작 '불안사회'에서 이 시대의 질병을 '불안'이라 진단했다. 그는 10년 전 '피로사회'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었다. 한편 철학자 이진우 교수는 "어떤 자극에도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과민성(過敏性)'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 정서처럼 보인다"라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적(敵)으로, 악(惡)으로 대하는 분노의 사회로 갈 수 있음을 경고했었다.
겨울 아침, 앞산 고산골에서 맨발산책을 하는 모습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최근 마음이 힘들고 불안한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 #그라운딩, #칠가이, 해시태그도 달았다. '그라운딩(Grounding)'은 말 그대로 발을 땅에 붙인다는 것이다. 발바닥의 감각으로 땅의 지지를 충분히 느끼며 호흡을 조절해서 안정감을 찾는 것이다. '칠가이(Chill Guy)'는 청바지, 티셔츠에 붉은색 운동화를 신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무심한 듯 편하게 미소 짓고 있는 캐릭터다. 'chill'이라는 단어는 명사로는 '한기'라는 뜻이지만, 형용사로 '느긋한'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칠가이는 차분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지닌 성격으로 해석된다. 2023년 10월 미국 디지털 아티스트가 SNS에 공개한 이후, 2024년 틱톡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현재 한국에서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칠가이가 밈(meme)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2월29일에는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까지 있었다. 불안과 공포, 우울함으로 연말을 보낸 국민은 이제 사상 초유의 탄핵정국으로, 일상적으로 화가 나 있다. 특히 청년들은 고용한파까지 굳어지면서 칠가이의 느긋하고 차분한 표정에서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관세 정책 등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국경제는 비상등이 켜졌다.
3월1일, 독립운동을 기리는 날에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탄핵 찬반 집회가 열렸다. 순국선열들은 이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분노는 이중적이다. 사회를 개혁하는 정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깨뜨리는 복수의 파괴력이 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일이 임박하면서 개강을 앞둔 대학가까지 탄핵 찬반 집회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극렬해진 갈등이 미래세대까지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아무튼, 이제는 차분해질 시간이다.
지역과 인재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