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신노우 수필가·시인·대구문인협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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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3-06  |  수정 2025-03-06 08:33  |  발행일 2025-03-06 제16면

[문화산책] 봄이 오는 길목에서
신노우〈수필가·시인·대구문인협회 수석부회장〉


새벽을 밀치고 강가에 섰다. 별빛 같은 물 내음 훅- 스며들어 날숨을 멈추니 멀리 닭 울음소리 들린다. 길 잃은 물오리 한 마리 허둥대어 어지럽혀진 수면을 물안개가 다독인다. 깊은 침묵을 삼키며 나는 청둥오리 떼 따라 뒤척거리며 흐르는 강물 따라 내 마음이 달음질치며 따른다. 보에서 떨어지는 물보라가 나를 씻기며 수런거린다. 푸른 별빛은 긴 하품을 하고 지던 달이 가야산정에 걸렸다. 새벽 강물에 풀어 헹군 마음이 내가 내가 아닌 듯하다.

응달진 산자락 치마 끝에 겹겹이 미련으로 눌어붙은 허연 잔설 위를 한풀 꺾인 삭풍이 슬몃슬몃 눈치 보며 애무한다. 견디다 못해 버들강아지가 사르르 치마끈을 풀어주어 앙가슴이 설렌다. 얼음 밑은 벙긋벙긋 선하품 하며 잠이 깬 산 개울물 소곤소곤 꼬드김에 귀 여린 매화가 몸을 내맡긴다. 가지는 탱탱하게 물이 오르고 부풀어 달아오른 꽃망울이 더는 못 참아 툭, 터지며 봄 향내를 토해낸다.

양지바른 밭둑 밑에 온 겨울 얼음 추위를 배웅받은 냉이와 쑥이 연둣빛으로 몸치장하며 나들이를 서두른다. 먼 들녘 위로 곰실곰실 피어오른 봄기운을 이불 삼아 스멀스멀해진 몸을 뉘고 보니, 하늘 끝 종다리의 사랑 노래 열창에 저 산 넘어 타는 그리움이 한바탕으로 들어와 앉는다.

금산령(錦山嶺)에 봄이 왔다. 산모롱이 길섶 아름아름 벚나무 가지에 때아닌 하얀 눈꽃의 축복이어라. 온 산은 솔향 밴 녹색 저고리에 진달래 연분홍 꽃치마 두르고 부추기는 훈풍에 홍안으로 달아올라 보라 꽃 박태기, 붉은 철쭉은 고운 자태로 초록의 미소를 시샘한다. 봄비에 젖은 굴참나무 군락이 아침햇살을 배웅받아 은물결로 굽이친다.

사노라면 자칫 산 속에서 그저 나무만 보고 바닷속에서는 마냥 물만 본다. 한발 물러서서 보면 나무만 있고 물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더하여 숲과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하늘이 푸르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산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 가슴에는 제각각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가득가득하다 보니 자기합리화의 틀 속에 짜맞추어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산 속에는 나무만 있는가. 바닷속에는 물만 있는가. 많은 것들이 더불어 생존하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봄이 오는 길목에서 생각해 본다.

신노우〈수필가·시인·대구문인협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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