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현대판 아고라

  • 박규완
  • |
  • 입력 2025-03-11  |  수정 2025-03-11 07:03  |  발행일 2025-03-11 제23면

2025년 대한민국 정치의 새로운 화두는 '광장'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후 주말마다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는 광장은 또 하나의 정치 현장이다. 광화문 등지에서 분출되는 '시민의 소리'는 정치적 함의로 가득하다. 이른바 광장정치다. 시민집회는 탄핵 반대와 탄핵 찬성으로 쪼개지며 국론 분열 상황을 노정한다. 그렇더라도 여의도 대의정치와는 사뭇 다른 직접 민주주의 형태를 표방한다.

광장정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아고라다. 아고라는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polis)에 형성된 광장이다. 민회와 재판, 집회, 상거래 등 다양한 활동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아고라(agora)의 어원은 '사다' 뜻을 지닌 아고라조(agorzo)다. 원래 시장 기능이 본령이었던 아고라는 점차 정치·종교·문화 행사를 아우르는 광장으로 발전했다. 의사소통과 여론 형성의 공간이 되면서 시민들은 민회를 열어 정치 및 국방 현안을 토론했다. 그리스의 아고라는 로마 시대엔 포룸(forum)이란 명칭으로 계승됐다.

우리는 2016년 겨울의 촛불집회를 광장정치의 전범으로 기억한다. 단 한 건의 폭력도 없었던 평화시위였다. '대한민국 촛불시민'이 2017년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금의 광장엔 극단의 언어와 선동, 증오와 반감이 넘쳐난다. "개XX" 같은 쌍욕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정치인들까지 광장 세력과 야합할 궁리에 몰두한다. 종교의 광장정치 개입은 더 위험하고 뜨악하다. 현대판 아고라의 면구한 풍경이다. 박규완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