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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장 |
드라마는 1950년부터 현재까지 3세대가 헤쳐온 애환을 생생하게 다루면서 5주 동안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지난달 공개 후 2주 만에 600만 시청수(총시청시간÷총방영시간)를 기록했다. 또 글로벌 톱10 시리즈(비영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뿐 아니라 브라질과 칠레, 멕시코, 터키 등 모두 42개 국가에서 톱10에 올랐다. 그에 힘입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인 넷플릭스의 3월 활성이용자(MAU)가 1천409만명을 기록했다. 종전 기록은 '더 글로리'의 1천401만명이다.
'폭싹'의 어떤 면들이 지구촌 시청자들의 눈길을 빨아들였을까? 그 답을 톺아보는 것은 K-드라마의 갈 길과 맞닿아 있다.
먼저 탄탄한 이야기의 힘과 울림이 큰 주옥같은 대사를 꼽는다. '제주판 응답하라 1988'로 해석될 정도로 일상생활에 밀착된 감성으로 공감의 폭을 키웠다는 것. 광례(염혜란), 애순(아이유·문소리), 금명(아이유) 3대의 인생 여정을 다루며 사랑, 가족, 성장 등의 보편적 주제를 실감나게 그렸다. 특히 "살면, 살아져. 죽어라 팔다리를 흔들면 검은 바다 다 지나고 반드시 하늘 보여" 등의 대사는 지친 일상에 촉촉한 힘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다.
마케팅 전략도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제목을 현지화한 전략이 눈길을 끌었다. 제주 특산물인 귤을 이용, 영미권 속담을 연상시키는 영어 제목 '삶이 당신에게 귤을 줄 때(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로 익숙하게 다가간 것이나 태국 제목 '귤이 달지 않는 날에도 웃자' 등이 그 사례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고수하던 '몰아보기' 방식 대신에 1주일 단위로 4편씩 나눠 공개한 방식도 입소문을 자극하면서 흥행몰이에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폭싹'이 갖는 큰 의미는 K-드라마 소재 영역을 확장했다는 데 있다. 즉, '오징어게임1·2' '더 글로리' 등 현대적 소재가 아니라 경제성장기를 관통하는 공동체 정신과 전통적 감성 등도 세계적 인기몰이가 가능함을 입증했다.
한편 이 드라마는 공간 콘텐츠 설정의 중요성도 잘 보여주었다. 주요 무대인 1950년대 제주 마을은 현지가 아닌 경북 안동 풍천면에서 촬영했다. 대형 세트장에 초가집, 현무암 돌담은 물론 어선까지 이동시키는 치밀한 기획으로 제주보다 더 제주 같은 무대를 만들어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경북도는 영상산업 활성화를 위해 로케이션 지원사업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촬영 공간을 임대하고 한 작품당 최대 7천만원을 제작 지원하면서 '하얼빈' '고려거란전쟁' '외계+인' 등의 영상콘텐츠의 제작에 기여했다.
이런 총체적 요인이 잘 맞물려 또 한 편의 글로벌 K-드라마가 탄생했을 것이다. 명대사와 명장면 등을 잘 버무려 높아진 K-드라마의 위상을 보여준 제작진에게 시청자들이 던질 수 있는 덕담은 이런 게 아닐까? 신산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잊게 해줘서 "폭싹 속았수다".
이종수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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