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스페셜] 총성없는 ‘공천 전쟁’

  • 최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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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3-22   |  발행일 2014-03-22 제1면   |  수정 2014-03-22
허주 빈소를 찾은 YS는 작심한 듯…
“이회창癌 때문에 돌아가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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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작고한 허주(虛舟·김윤환 전 의원 아호)의 빈소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찾았다. 허주의 친동생인 김태환 현 국회의원(구미을)은 ‘신장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러자 YS가 불쑥 내뱉었다. “이회창암 때문에 돌아가신 것 아니냐.”

허주의 별칭은 ‘킹메이커’였다. 1987년 직선제로 전환된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을 도와 승리에 일조했다. 92년 김영삼(YS)정부 탄생 때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로 TK(대구·경북)의 표를 끌어모아 PK(부산·경남) 출신인 YS를 권좌에 앉혔다. 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가 임박하자 허주 자신이 대권을 꿈꿨다. 하지만 막판에 대권을 포기하고 다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세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이후 한나라당을 장악한 이회창 총재는 별개의 세력을 만들기 위해 2000년 16대 총선과정에서 허주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토사구팽(兎死狗烹·사냥에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게 되어 삶아 먹는다)이었다.

허주는 절치부심했다. 민주국민당을 창당해 구미에서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분을 참지 못한 허주는 지병이 악화됐고 결국 3년 후 작고했다. YS가 장례식에서 ‘이회창암’이라고 한 건 이회창 총재에 대한 배신감으로 울화가 치밀어 건강을 상한 것 같다는 의미다.

정치권에서 말하는 ‘공천’이란 일반적으로 정당이 공직선거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여의도에서는 ‘총성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신경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까닭이다.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후보는 많은데 실제 본선에 나설 후보의 수는 한정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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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영·호남의 경우 특정 정당이 초강세여서 ‘정당 공천=당선’을 의미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선거전보다 공천을 따내는 것이 더 어려운 현실이다. 올림픽 금메달보다 국내 선발전 통과가 더 어렵다고 하는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과 비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야의 치열한 승부가 벌어지는 수도권은 본선에 앞서 치러지는 예선에서 같은 당 후보끼리 상처를 많이 내고 에너지를 다 쏟아부으면서 정작 본선에서는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공천을 위한 룰이 공정하면 그 결과에 대해 승자나 패자나 인정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불협화음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여의도에서는 이를 두고 ‘공천 전쟁’이란 표현을 쓴다.

최종무기자 ykjmf@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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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의원, 김재원 공천관리 부위원장, 김세연 제1사무부총장(왼쪽부터) 등이 지난 14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상향식 공천제도 설명회에서 사무총장인 홍문종 공천관리위원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당겼다 놨다 ‘고무줄 룰’…잘못된 셈법은 어디서 시작되나
유력 정치인 줄세우기…계파간 힘겨루기 우려
끊임없는 공천의 잡음…국민 납득이 최우선 잣대

 

◆공천 학살의 추억

각종 선거에서 공천과 관련한 잡음은 항상 있었다. 대표적인 유형은두 가지다. 하나는 허주(김윤환)가 팽(烹) 당한 것처럼 정치적 의도에 의해 공천권을 쥔 쪽에서 잠재적 정적(政敵)을 쳐내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공천 헌금’이다. 3김 시대에 ‘공천 장사’가 관례처럼 이뤄졌다. 김영삼의 상도동, 김대중의 동교동, 김종필의 청구동 자택에서 은밀하게 공천을 주는 조건으로 돈 거래가 이뤄졌다. 특히 전국구(현재의 비례대표) 공천은 돈이 좌우했다. 앞 순위는 30억, 중간 순위는 20억, 뒷순위는 10억원대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3김 시대 이후 공천헌금 관행은 많이 줄었다. 대신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공천권이 이용됐다. ‘공천 학살’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부터였다. 18대 총선에서는 ‘친박계 공천학살’로 대대적인 인적 교체가 이뤄졌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현역 의원 128명 중 50명이 교체되면서 현역 의원 교체율이 39%로 집계됐다.

 

이때 당시 친박계의 수장이었던 박근혜 의원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비판했고,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는 낙천자들을 끌어모아 ‘친박연대’를 결성했다. 결국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을 합쳐 26명이 생환해 국회로 돌아왔다. 이들은 나중에 박근혜정부 탄생의 디딤돌이 됐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19대 총선에서는 상황이 역전됐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하에서 치러진 공천 과정에서 기존 ‘친이계’ 의원들은 겨울의 칼바람을 기다리는 가을 잎 신세였다. 18대 총선에서 ‘이명박 바람’을 타고 당선됐던 초선 의원들은 전멸하다시피 했고, 상당수의 친이계 중진 의원 가운데서도 살아남은 의원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런 현상은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의 공천을 두고 나온 이야기는 ‘친노(親盧)의 귀환’이었다. 17대 총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열풍을 타고 쉽게 금배지를 따낸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18대 총선에서는 고배를 마셨으나 19대 총선에서는 한명숙·문재인 의원을 중심축으로 한 친노계가 약진했다. 박지원으로 대표되는 호남 중심의 옛 민주계와 손학규계는 힘을 쓰지 못했다.

 

물론 여야 할 것 없이 “계파는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계파 정치가 극에 달했던 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3김 시대’가 종말을 고한 이후에도 대한민국 정치에서는 ‘계파 정치’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정치권을 보면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 민주당은 친노와 비노(非盧)로 나뉘어 있다.

 

다만 민주당의 경우 최근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새정치연합과의 합당을 통해 신당 창당을 선언했지만, 신당이 창당되더라도 각 계파를 대변하는 자존심 싸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의 공천 전쟁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여야의 공천 전쟁은 겉으로는 이전과는 달라보이지만 실상은 기존과 거의 비슷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공천 경쟁이 자칫 유력 정치인의 줄 세우기, 또는 당내 계파 간 나눠먹기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15일 공천 신청을 마감하고 일찌감치 경선 체제에 돌입한 새누리당은 상향식 공천 확정에 따른 셈법 계산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이 추진하고 있는 야권 통합신당의 경우도 물밑에서 지분 다툼을 벌이는 모양새다.

 

새누리당은 4월 중 모든 광역·기초단체장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가 100% 상향식 공천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잇단 중진 차출과 박심(朴心·박근혜 대통령 의중) 논란, 특정 계파를 위한 전략공천 의혹까지 등장하면서 살얼음판을 걷듯이 위태롭게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약 폐기에 따른 대안으로 상향식 공천을 약속했다. 광역단체장 공천에서는 총선 및 대선과 마찬가지로 ‘2:3:3:2(대의원 20%, 당원 30%, 국민선거인단 30%, 여론조사 20%)’의 경선 원칙을 지방선거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기초단체장 및 지방의원을 대상으로는 국민참여선거인단대회를 통한 전면 경선을 원칙적으로 실시하되 각 시·도당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여론조사로 갈음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여성·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의 추천이 특별히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우선 공천’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당이 ‘혁명’이라고까지 자랑했던 공천제도에 대한 파열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당장 지난 13일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예외적으로 제주도지사 경선을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결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마구잡이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기초단체장 여성 우선공천지역 선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일부 지역이 타 후보에 비해 인지도나 경쟁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성 후보가 출마했다는 이유만으로 전략공천지역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야당에 비해 사정이 낫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이 추진하고 있는 야권 통합신당은 4월 이후에나 공천과 관련한 논의가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신당 창당 작업이 진행 중인 까닭에 아직까지 공천과 관련해서 별 다른 잡음이 일고 있지는 않지만 잠재적인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신당 창당 방식, 정강·정책 등에 대한 이견 조율이 진행되고 있는 탓에 공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신당 창당이 완료되면 공천 규정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당원 수를 비롯한 조직은 물론 후보 개인별 인지도에서 차이가 있어 현행 민주당의 경선 규정(당원 50%+일반시민 50%)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새정치연합 측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이에 새정치연합 측에서는 조직동원 가능성과 사실상의 인지도 조사로 평가받는 여론조사를 대체하는 방안으로 배심원을 활용한 공론조사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론조사는 흔히 여론조사에 뒤진 후보들이 주장하는 방식이기에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바람직한 공천의 모습은 무엇인가

원론적인 말이지만 공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공정한 추천이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당심이 중요한지, 유권자의 민심이 중요한지를 잘 판단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1인 지배정당에서의 공천과 지금의 공천을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와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정치는 여의도가 중심이고 각 시·도당은 중앙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누가 지금의 공천 방식을 정했겠나.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모두 중앙의 권력자가 정한 것을 당원이나 국민에게 따라오라고 강요한 측면이 크다”며 “그렇기 때문에 그때 그때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공천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공천제도는 정치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척도인데 우리나라는 선거 때마다 공천 혼란으로 매우 시끄럽다”며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제대로 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천을 하는 것”이라며 “다른 경쟁자에 비해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단지 어느 계파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공천을 하는 것은 유권자들을 속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당 못지 않게 유권자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여야 할 것 없이 우리나라의 정당은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만을 두려워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여야가 공천 과정에서부터 유권자들의 눈치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이기 때문에 무조건 지지할 것이 아니라 당을 떠나 후보자의 공약과 도덕성, 자질, 경력에 대한 검증을 꼼꼼하게 해야 한다”며 “그래야 실세 눈치보기, 계파 꽂아 넣기 등 비정상적인 공천이 사라지고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바람직한 공천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무기자 ykjmf@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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