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로 보는 대구·경북 산단과 택지 .3] 대구 연경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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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2   |  발행일 2014-10-22 제16면   |  수정 2014-10-22
“출중한 인재 길러내기 적합한 터”
▨ 양룡상우(兩龍相遇)에 용비봉무(龍飛鳳舞) 형세의 땅 - 대구 연경지구는 ‘열공’중

20141022
연경지구는 두 마리의 용이 즐겁게 어울리는 형국으로 생기가 넘친다. 또 열심히 책을 읽는 선비를 연상시키는 지세로 인재가 나올 터라고 할 수 있다.

양용상우(兩龍相遇)는 용 두 마리가 서로 만나 즐겁게 어울리는 형국이다. 팔공산 동봉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힘찬 산줄기는 팔공산 갓바위를 지나 환성산을 돌아 공산지를 가로질러 대구 연경지구로 곧장 내달린다. 팔공산 동봉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산줄기는 파계봉을 만들고 도덕산으로 솟았다가 무태동(無怠洞)으로 뻗어서 내려앉는다.

내달리는 용의 형상을 한 산줄기가 연경지구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동화천(桐華川)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다시 만난 것이다. 반갑고 즐겁고 활기찬 분위기다. 반가운 나머지 손을 뻗어 어깨를 툭툭 치고 몸을 기대고, 마침내 서로 엉켜 붙을 기세다. 연경지구를 남북으로 에워싼 산기운이 이처럼 활기차고 시끌벅적하니, 그 사이에 펼쳐진 개활지의 분위기도 오롯이 이와 같이 생기가 넘치기 마련이다.

동화천은 산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 굽이치고 저리 넘쳐 어울려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으로 연경지구를 관통한다. 산태극 수태극은 풍수지리에서 산줄기와 물이 휘둥그스름하게 굽이져 태극 모양을 이루는 형세로 편안한 쉼터를 의미한다.

 

용 형상을 한 산줄기가 만나는 곳
책 읽는 선비를 연상케 하는 지세

 


여기에 더해 연경지구의 중심에 자리 잡은 인천채씨 종갓집 마당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풍수에서 최고의 명당을 일컫는 남주작(南朱雀) 북현무(北玄武)의 형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종갓집 사랑채에는 대청마루와 높이를 달리해서 관수대(觀水臺)라는 누마루를 따로 두었는데, 여기서 주변을 둘러보면 남쪽을 둘러선 산이 춤추는 학처럼 보인다.

학산은 형상적으로 큰 봉황의 모습을 하고 북쪽으로 날아드는 형국으로 도덕산에 뿌리를 두고 남쪽으로 힘차게 뻗어나간 용의 형상과 조화를 이루어 기운이 넘치는 용비봉무(龍飛鳳舞)의 형세를 연출한다. 결과적으로 학산과 도덕산 사이에 동화천이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엄청난 에너지를 품에 안고 있는 셈인 것이다.

도덕산, 용의 기운이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멈춘 곳이 화암(畵岩)이다.

그림처럼 아름답게 생겼다고 해서 화암이라고 이름이 지어진 바위에 대해 퇴계 이황 선생도 ‘연경화암’이란 글을 남겨 더 유명해졌다. 화암은 남쪽에서 산기운을 거느리고 날아오르는 봉황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바위기둥과 마주하고 서 있다. 동화천이 흘러 나가는 방향으로 산자락이 겹겹이 막아서는 가운데 화암은 수구한문의 역할을 한다. 즉, 재물이 모인다는 뜻이다.

연경지구의 지세는 인근 단산지·봉무지구와 어울리고, 장중하고 차분하게 자리 잡은 도덕산과도 상응한다. 학이 춤을 추는 고귀함을 품고서 또 한편으로는 진중함을 더하고 매일같이 열심히 책을 읽는 선비를 연상하게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젊은이들에게 어울리는 지세이고, 등용문을 열고 나갈 출중한 인재를 길러내기에 적합한 터라고 할 만하다. 게으름 없이 생산성이 무궁무진한 분위기를 지녔으니, 입시를 앞둔 학생을 둔 가정과 사회생활 초년에 열심히 일해서 차곡차곡 재물을 일구는 회사원에게도 제격이다.

마지막으로 광해군 태실이 있었던 연경동 태봉마을의 앞뜰에 봉곳이 솟은 터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서 있다. 물에 잠긴 잉어가 등지느러미를 살짝 드러내고 여유를 부리면서 헤엄치는 어염통 형상 위에 마을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이 보호수가 솟아 있다. 둘레 7m의 이 보호수는 단지개발 후에도 공원 부지에 포함되어 새로 들어서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이어가며 재물과 건강을 지킬 것이다.

글·사진= 풍수연구가 일봉 김경우

연경·무태 이름 유래

연경(硏經)은 경서를 연구하고 공부한다는 뜻이다. 또한 연경동의 행정명칭은 무태조야동이다. 무태(無怠)의 지명유래에 몇 가지 설이 있다.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대패하여 도주하면서 부하들에게 ‘쉬지 말고 빨리 가자(無怠以促足)’고 독촉하면서 무태라고 했다는 설, 왕건과 신숭겸 장군이 야행하면서 ‘이 마을 아낙네가 야밤에도 부지런히 길쌈을 하고 있어 칭찬하여 게으름이 없다는 것(動織組而無怠平)’에서 연유했다는 설 등이다. 또 서변동에 위치한 서계서원(西溪書院)의 기록에 따르면 ‘마을의 지명은 왕건 군대가 견훤 군대를 치러 갈 당시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는 것(洞卽麗朝之討甄萱時警軍曰無怠者也)’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왕건 군대가 이곳을 지날 무렵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게으른 사람이 없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이곳 지명은 쉬지 않고 부지런히 공부한다는 뜻이 서려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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