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같았던 삶…‘길’에서 만나는 대구 근대기 여성들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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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9   |  발행일 2016-09-29 제21면   |  수정 2016-09-29
■ 여성탐방로 ‘눈썹길’‘반지길’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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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대구여성의 치열하고, 굴곡진 삶을 엿볼 수 있는 여성투어길인 ‘반지길’ ‘눈썹길’이 만들어졌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은 일반에게 정식으로 길을 공개하기에 앞서 전문가 대상으로 반지길 팸투어를 최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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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성의 강인하고 굳건한 삶을 엿볼 수 있는 투어길이 조성됐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은 근대기 사회적 편견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대구여인의 삶을 조명하는 여성탐방로 ‘눈썹길’과 ‘반지길’을 새롭게 만들었다.

최근 대구에는 근대를 조망하는 행사도 많고 다양한 루트의 근대길이 조성돼 있다. 그런데 여성들의 이야기는 그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대구여성가족재단은 그동안 여성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했으며, 지난해 1차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번에 공개된 탐방로는 그 보고서를 토대로 엮은 결과물이다. 시민들이 직접 길을 걸으면서 공간과 함께 근대기 여성들의 삶을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반지길’과 ‘눈썹길’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름조차 제대로 쓰이지 않을 정도로 여성이라는 존재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진취적으로 시대를 개척한 인물을 주로 발굴했다. 한국 최초의 비행사 권기옥,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 대구 최초의 여자 초등학교 설립자인 마르다 브루엔 등 최초의 길을 걸었던 여성들의 사연을 담았다.

길 이름이 지어진 사연도 흥미롭다. 반지길은 길의 형태가 반지처럼 둥근 모양을 띠고 있다는 공간적 의미와 반지를 팔아 국채보상운동에 뛰어들었던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의 정신을 기리고자 명명됐다. 여성의 반듯하고 아름다운 눈썹을 형상화한 눈썹길은 부드럽고 올곧은 삶을 살다간 여인들을 기리는 의미를 담았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은 이번 길 조성을 계기로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와 보완을 거쳐 여성 투어길을 완성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반지처럼 둥근 모양 띤 반지길
대구·경북 기독교 여성선교 선구자
마르타 스위츠 등 20여명의 삶 담겨
◇여성의 눈썹 형상화한 눈썹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등 기금 기탁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사연도 소개

◆굴곡진 삶이 흐르는 반지길

동산의 마르타 스위츠 선교사 주택에서 출발해 3·1만세운동길, 옛 제일교회, 약전골목, 마당깊은 집, 종로, 진골목, 염매시장, 이상정고택, 계산성당으로 이어지는 반지길에는 20여명 여성들의 삶이 녹아있다. 대구·경북지역 기독교 여성선교운동의 선구자인 마르타 스위츠(1880~1929)는 여자 독신선교사로 지역의 부녀자와 아이들을 위해 자기 재산을 기꺼이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도 여성교육사업에 헌신했다.

스웨덴 구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구·경북지역에서 사역한 최초의 구세군 여성 선교사 마그다 콜러(1887~1913)의 삶도 반지길에서 만날 수 있다. 열정적인 봉사정신과 사랑으로 많은 사람을 감화시켰던 그녀는 1913년 장티푸스 환자들을 도우면서 시체를 수습하는 등 열정적으로 봉사하다가 감염이 되어 대구 은혜의 정원에 묻혔다.

독립운동가 현계옥(1887~?)은 ‘빈처’ ‘운수좋은 날’을 쓴 현진건의 형인 독립운동가 현정건의 연인으로도 유명하다. 유부남인 현정건과 한 기생집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던 현계옥은 항일투쟁을 하는 현정건에게 “나를 애인으로 혹은 한 여자로만 보지 말고, 같은 동지로 생각해 달라”고 하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평양출신으로 11세에 기생이 된 강명화의 비극적 삶도 놓칠 수 없다. 대구판 ‘라 트라비아타’의 모델이었던 강명화는 기생의 신분으로 대부호의 아들인 장병천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자 일본으로 사랑의 도피를 떠나지만 결국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 이 밖에 22세의 나이에 연애에 실패하자 “나도 사람이며 남자와 똑같이 당당한 사람이다. 남자에게 의뢰를 하고 남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은 근본부터 그릇된 일”이라며 머리를 깎은 단발기생 강향란,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해 은금폐지부인회를 만들고 자신의 패물을 모두 의연금으로 내놓는 등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안중근의 어머니 조성녀 등의 삶을 만날 수 있다.

◆올곧은 삶이 흐르는 눈썹길

눈썹길은 반지길과 상당부분 노선이 중복된다. 동산에서 출발해 약전골목, 종로, 진골목까지는 반지길과 동일하게 진행되며 이후 대구여자경찰서, 일본군위안부역사관 등으로 이어진다. 반지길이 한국 근대사를 맨몸으로 일군 여성 개인의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면, 눈썹길은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낸 여성들의 삶을 담았다.

지금의 대구중부경찰서는 1945년 대구경찰서로 문을 열었다. 2년 후 47년 중앙여자경찰서가 만들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대구에도 여자경찰서가 설치되었고 독립적인 조건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구여자경찰서는 청소년과 부녀자 보호 단속을 위주로 했다. 초대서장은 정복향(1910~98)이었는데, 기혼자라는 이유로 면접에서 불합격을 하게 되자 항의를 했고 우여곡절 끝에 간부로 채용되었다. 대구여성경찰서는 10년간 짧은 역사를 뒤로 하고 1957년 문을 닫았다.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은 전쟁과 여성,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곳이다.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주축이 되어 한국의 위안부 역사를 바로잡고, 위안부 피해자의 진실 규명에 시민들이 힘을 합쳐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2009년 김순악 할머니가 “내가 죽어도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유언과 함께 5천여 만원을 기탁하였고, 다른 할머니들도 함께 뜻을 모아 역사관 건립의 씨앗기금이 마련되었다.

이 밖에 눈썹길에서는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의 감동적 사연도 만날 수 있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2천만 동포가 담배를 끊어 국채를 갚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여성들의 첫 국채보상운동 조직체는 1907년 2월23일 대구 남일동 부인 7명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 이들은 취지문을 발표하고 ‘여자는 백성이 아닌가’라고 하면서 은반지, 은장도 등 패물을 내어놓았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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